마하바라따 2 - 1장 태동: 신들은 영생을 위해 불사주를 구하고, 인간들은 사랑과 명예를 위해 삶을 버린다 마하바라따 2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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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도 언제나 다르마를 향해 있고, 다르마와 베다를 알고 있으며, 열망에 넘치고 덕을 구족한 브라만을 사제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쁘르타의 아들이여, 세상을 정복하고자 하는 크샤뜨리야는 누구든 왕국의 영광을 위하여 사제를 구해야 합니다. 세상을 정복하려는 왕은 브라만을 자기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하니, 덕 높은 브라만을 당신들의 사제가 되게 하십시오.(p697)... 크샤뜨리야의 빛은 힘이며 브라만의 빛은 인내이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2>, p700


  위야사의 <마하바라따 2 : 태동>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리뷰에서는 통치권을 가진 크샤뜨리야보다 브라만의 힘이 왜 더 강한가를, 그래서 인도 전통의 계급 구조에서 최상위에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려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계급인 크샤뜨리아가 속(俗)의 권력이라면, 브라만의 권위는 성(聖)으로부터 나온다. 힘으로 남을 복속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자신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는 없기에, 크샤뜨리야의 지배를 위해서는 브라만의 힘이 필요하다. 단지 이것만으로는 브라만이 크샤뜨리야 위에 있다는 설명에는 부족하기에, 우리는' 브라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봐야 한다. 다르마를 깊이 알고 있는 이에 따르면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삼계와 신들의 제왕이 되는 것, 혹 그보다 더한 것도 다 버릴 수 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이 향기를 버린다 해도, 물이 제 맛을 포기한다 해도, 빛이 비추는 일을 그만두어도, 바람이 접촉하는 성질을 잃는다 해도, 태양이 빛을 버린다 해도, 불이 뜨겁지 않게 된다 해도, 창공이 소리를 버린다 해도, 달이 차가운 빛을 뿜지 않는다 해도, 인드라가 위용을 버린다 해도, 다르마의 왕이 다르마를 저버린다 해도 제가 진리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2>, p482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지만, 아무나 진리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누구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은 물론,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엄격하게 제약된다. 각자 저마다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왕이 아닌 자가 왕의 친구가 될 수 없듯, 오직 진리의 가치를 이해하는 자만이 그것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브라만이고,  브라만의 진리 추구는 금욕(禁慾)으로 행해진다.


 학식 없는 자는 학식 있는 자의 벗이 되지 못하며, 마차 없는 자는 마차 가진 자의 벗이 되지 못한다. 왕이 아닌 자는 왕의 벗이 될 수 없다. 옛날의 벗이며, 무엇을 바라는가?(p666)....  

 

 인간이 아무리 다르마와 아르타와 까마를 추구해도 그것들은 인간을 빠져나간다. 그것들과 멀어지니 모진 고통만 따르는구나. 어떤 이는 해탈을 최상이라 말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듯하다. 재산을 아무리 모은다 해도 지옥이 기다릴 뿐이다. 재산을 바라는 그 자체가 크나큰 고통이 따른다. 가진 것을 사랑하는 자가 그것을 잃으면 더 큰 고통이 뒤따른다. 나는 이 재난을 헤쳐 나갈 어떤 방법도 아직 찾지 못했구나. _ 위야사, <마하바라따 2>, p643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깨달음을 위한 정진. 브라만의 금욕 수행은 아킬레우스와 같은 전사의 분노를 세상의 법칙 안으로 던져 넣었을 때 완성된다. 아서 왕(King Arthur)이 죽음 직전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져 버리고 아발론(Avalon)으로 떠났듯, 브라만의 힘은 크샤뜨리아의 힘을 버린 후에야 얻을 수 있음을 <마하바라따 2>는 알려준다. 불과 같은 분노를 버리고 물과 같은 평정심을 얻었을 때 브라만은 진리를 깨닫고, 세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브라만이 크샤뜨리아보다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난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결심했소. 묶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재앙이기 때문이오. 난 아버지의 멸하지 않을 선행을 본받아 반드시 필사적인 고행에 나를 묶을 것이오. 탁발로 연명할 것이며 머리를 삭발하고 성자들처럼 이 세상을 유랑하겠소. 내 몸이 먼지에 파묻히도록 내버려둔 채 빈집이나 나무둥치 아래 의지해 살겠소. 좋고 나쁜 것을 모두 떠나고, 어떤 일에도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비난이나 칭찬을 똑같이 여길 것이오. 누구의 축복도 바라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절하지 않겠소. 양극의 상반되는 모든 개념을 버리고 철저히 무소유가 될 것이오. _ 위야사, <마하바라따 2>, p521


  <마하바라따>의 저자는 한 손에 불을, 다른 손에 물을 들라고 말하지 않는다. 불을 넘어선 물은 깨달음을 위한 단순한 단계에 대한 설명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저자가 성(聖)과 속(俗)이 함께 할 수 없음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마하바라따>를 통해 후대에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모두 가지려는 이들이나, 두 권력의 결탁이 후대에 계속되어 나타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들게 된다....


 분노에서 일어난 불, 세상을 삼키려 하는 그 불을 물속에 던지거라. 그리고 축복 있거라. 세상은 물 위에 서 있는 것이란다. 모든 것의 진수는 물로 이루어진 것이며, 실로 온 세상은 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훌륭한 브라만이여, 그러니 불 같은 네 화를 물에 던지거라. 브라만이여, 네가 하고 싶다면 성냄에서 비롯된 네 불을 바닷속에 있게 하거라. 물을 태우거라.  _ 위야사, <마하바라따 2>, p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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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4- 강화에서 고도성장 이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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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3- 태평양 전쟁 후반부터 한국 전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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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2- 중일 전쟁부터 태평양 전쟁 전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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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1- 간토 대지진부터 중일 전쟁 돌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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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2 - 중일 전쟁부터 태평양 전쟁 전반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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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참전 상이 군인이기도 한 <전원 옥쇄하라!> 의 작가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현대사. 2권에서는 중일전쟁의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독-일-이 추축국 동맹과 태평양 전쟁의 개전이 그려진다. 진주만 공습 -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의 세력 확장 - 미드웨이 해전으로 이어지는 진행은 다른 역사 만화와 큰 차이가 없다.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현대사>가 다른 역사만화와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현대사에 맞물린 개인의 삶이 함께 서술된다는 점이다.

조금은 엉뚱한 학생이었던 시게루가 전황이 어려워 짐에 따라 강제 징집되고 동남아시아 전선으로 끌려가 겪는 고초는 일본 현대사의 불행이자 개인의 불행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항공모함 4척이 격침되었던 미드웨이 패배가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전 때까지 일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보듯 예나 지금이나 일반 대중들은 대의(大義)를 위한 프로파간다로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더해 개인을 사선(死線)에 올려놓은 전쟁이라는 상황은 모든 사람을 평균화시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라면 다소 엉뚱한 천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학생이 덜 떨어진 고문관으로만 인식된다면, 이는 전쟁의 또 다른 참혹함일 것이다. <미즈키 시레구의 일본 현대사 2>는 이런 점에서 다른 책들과는 다른 차별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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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정당들을 위해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19세기 말에 이르러 대중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약속했다. 반대당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대중 정치에 더 능숙한 그 정당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흡수하고 수용했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에 양보했듯이 민주주의도 자유주의에 양보한 것이었다. 이러한 타협의 자유주의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 타협의 핵심은 타협의 다짐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1870년대 말경 반동의 위험에서 안전해지자 프랑스는 본질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인 공적 삶의 형태를 잘 잡아놓았다. 요건은 자본주의 기업,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국가, 계급 차별 없는 투표에 기초한 다당제 민주주의, 개인과 재산을 보호하는 법질서였다. 그 틀을 일컫는 프랑스어는 공화 민주주의democratie republicaine였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영어 번역어는 훗날 쓰이게 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말이다.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은 자유롭게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공정하고 공통된 사회 원칙들에 합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정치는 다양한 용도를 가진 건물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표에 관해 완전히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어떻게 상호 인정과 관용에 근거한 기본법들 내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글레의 생각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했고 앞을 내다보는 것이기도 했다. 분명 그의 생각은 1945년 이후에 특히 미국과 독일의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고 확장시킨 일련의 원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계주의 해명은 경제적 선택의 성격을 분명히 했고, 그 선택이 일어나는 곳을 분리했고, 좋은 경제적 선택과 나쁜 경제적 선택을 분별하는 법을 제시했다. 한계주의는 경제적 선택이 대체에 의해 작동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의 물건을 다른 것, 예컨대 재화, 화폐, 노동, 시간, 만족으로 교환하는 것과 관련 있었다. 모든 경제적 선택은 거래,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거래와 관련 있었다. 경제적 선택은 잃으면서 얻고 얻으면서 잃는 것인 등가 교환으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볼 때 경제적 선택은 욕망의 충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욕망의 재조정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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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모두 인간성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은 도덕적 논쟁이 아니라, 공통된 도덕적 확신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러한 언명이 꼭 같은 생각을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는 같았다. 그 언명들이 가리키는 바는, 인간 각자의 삶에는 도덕적 해를 끼치지 않고는 착취되거나 침해될 수 없는, 그 자체로 귀중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1880~1945년의 자유주의자들은 부당한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동등한 시민들 사이에서의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인간 진보의 질서라는 매력적인 이상을 물려받았다. 물질적 진보, 교육의 확산, 절제와 타협이라는 중간 계급 가치들의 수용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지배자 없는 질서라는 자신들의 꿈이 결국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국가적 통일성은 1880~1945년 내내 자유주의 질서에의 기대를 위협할 정도로 계속 지리멸렬했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제국은 다양한 신분의 뒤얽힘과 상충하는 권위들 때문에, 그리고 자유주의 원리에 대한 많은 도전 때문에 비통일성이 한층 더 심각했다.

경제적으로, 민주주의와의 타협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맞닥뜨린 대가였다.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협상의 윤곽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만약 소수가 다수와 몫을 나누어야 한다면, 다수는 소수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그런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묻어두었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한참 후퇴해 보통선거권을 인정했고, 다수에 의한 통치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다수의 지배가 갖는 한계들에 대한 탐구를 결코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전략적 후퇴의 첫 번째 요소는 인민 주권에 대한 자유주의의 암묵적 합의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국민에 의한 정부는 특히 대의代議 representation, 정확히 표현하기articulation, 관료화bureaucratization, 절연insulation이라는 제약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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