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모두 인간성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은 도덕적 논쟁이 아니라, 공통된 도덕적 확신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러한 언명이 꼭 같은 생각을 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목표는 같았다. 그 언명들이 가리키는 바는, 인간 각자의 삶에는 도덕적 해를 끼치지 않고는 착취되거나 침해될 수 없는, 그 자체로 귀중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었다.

1880~1945년의 자유주의자들은 부당한 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동등한 시민들 사이에서의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인간 진보의 질서라는 매력적인 이상을 물려받았다. 물질적 진보, 교육의 확산, 절제와 타협이라는 중간 계급 가치들의 수용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지배자 없는 질서라는 자신들의 꿈이 결국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국가적 통일성은 1880~1945년 내내 자유주의 질서에의 기대를 위협할 정도로 계속 지리멸렬했다. 게다가 자유주의적 제국은 다양한 신분의 뒤얽힘과 상충하는 권위들 때문에, 그리고 자유주의 원리에 대한 많은 도전 때문에 비통일성이 한층 더 심각했다.

경제적으로, 민주주의와의 타협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맞닥뜨린 대가였다.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협상의 윤곽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만약 소수가 다수와 몫을 나누어야 한다면, 다수는 소수의 존재를 인정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중 민주주의에 대한 그런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묻어두었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한참 후퇴해 보통선거권을 인정했고, 다수에 의한 통치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다수의 지배가 갖는 한계들에 대한 탐구를 결코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전략적 후퇴의 첫 번째 요소는 인민 주권에 대한 자유주의의 암묵적 합의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처럼, 국민에 의한 정부는 특히 대의代議 representation, 정확히 표현하기articulation, 관료화bureaucratization, 절연insulation이라는 제약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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