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정당들을 위해서는 아니라 할지라도, 19세기 말에 이르러 대중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일정한 보상을 약속했다. 반대당들이 집권하게 되면서 대중 정치에 더 능숙한 그 정당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흡수하고 수용했다.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에 양보했듯이 민주주의도 자유주의에 양보한 것이었다. 이러한 타협의 자유주의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 타협의 핵심은 타협의 다짐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1870년대 말경 반동의 위험에서 안전해지자 프랑스는 본질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인 공적 삶의 형태를 잘 잡아놓았다. 요건은 자본주의 기업,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국가, 계급 차별 없는 투표에 기초한 다당제 민주주의, 개인과 재산을 보호하는 법질서였다. 그 틀을 일컫는 프랑스어는 공화 민주주의democratie republicaine였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영어 번역어는 훗날 쓰이게 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말이다.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은 자유롭게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들을 내버려두는 공정하고 공통된 사회 원칙들에 합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정치는 다양한 용도를 가진 건물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삶의 목표에 관해 완전히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어떻게 상호 인정과 관용에 근거한 기본법들 내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글레의 생각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했고 앞을 내다보는 것이기도 했다. 분명 그의 생각은 1945년 이후에 특히 미국과 독일의 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하고 확장시킨 일련의 원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계주의 해명은 경제적 선택의 성격을 분명히 했고, 그 선택이 일어나는 곳을 분리했고, 좋은 경제적 선택과 나쁜 경제적 선택을 분별하는 법을 제시했다. 한계주의는 경제적 선택이 대체에 의해 작동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의 물건을 다른 것, 예컨대 재화, 화폐, 노동, 시간, 만족으로 교환하는 것과 관련 있었다. 모든 경제적 선택은 거래,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거래와 관련 있었다. 경제적 선택은 잃으면서 얻고 얻으면서 잃는 것인 등가 교환으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볼 때 경제적 선택은 욕망의 충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욕망의 재조정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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