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 종사자들에게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곧 생계와 직결된다. 해녀들의자율 조직인 통영나잠자율공동체 장안석 위원장(66)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생생히 기억한다. 수산물에 대한 불안이 퍼지면서 가격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벌써 당시와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조짐이 보인다. 최근 해녀들이 주로 채취하는 전복, 소라, 해삼 등의 가격이 30%가량 하락했다. 그는 오염수 방류 우려로 불안감이 증폭한 데 따른 결과라 해석한다. - P10

학생 수 감소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나타나는 공통 현상 아닌가? 그렇지 않다. 반대인 곳도 많다. 폐교와 학생 수감소가 이어지는 가양동 등촌동과 서편으로 바로 닿은 마곡동의 공진초등학교는학생이 너무 많아서 학교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올해 초 기준 전교생 1937명으로, 강남구 도곡동의 대도초등학교(1986명) 다음으로 서울에서 학생 수가 많은초등학교다. 공진초는 마곡지구가 조성되던 2014년 서울 가양동에서 마곡동으로 옮겨온 ‘이전 재배치‘ 초등학교다. 원래 가양동 공진중학교와 붙어 있었다. 공진초는 이전하고 공진중은 폐교했다. - P13

학폭위 개최 없이 이 특보의 아들 전학으로 마무리된 사건은 이 특보가 개입된 은폐 의혹으로도 연결된다. 이 특보는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으로 시작해 홍보수석과 언론특보를 지내며 친이명박계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불린다. 아들 학폭 은폐 의혹이 큰 논란으로 번진것은 이 때문이다. - P23

다음날인 3월1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권력은시민단체를 세금으로 지원하고, 시민단체는 권력을 지지하는 부패 카르텔"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은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그때는 시민단체이고 지금은 민간단체다. 사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겨냥했다. 처음에는 국세청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 P26

수신료 분리 징수제가 도입되면 매달전기요금에 합산해 걷던 TV 수신료 2500원을 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KBS는 당장 재원구조에 타격을 입는다. 2022년 기준 KBS의 TV 수신료는 전체수입의 45.3%(6934억원)를 차지한다. 분리 징수가 시행되면 절반 이하인 3000억원대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 P29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5년이 언론계에 중요한 시기였다고 언론단체는 입을 모은다. 언론개혁 열망 속에 집권한정부였던 만큼,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후견주의를 끊어낼 적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시절 발의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법(방송법)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2017년 8월문재인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후, 사실상 좌초되었다. - P31

윤석열 정부는 가루쌀 홍보에 사활을걸고 있다. 농정정책의 최대 현안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황근 농림부 장관은 가루쌀을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부르며 지난해부터 보급 사업을 독려하고 있로 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밀가루 값이 급등하면서 식량 위기를 걱정했던 한국으로서는 가루쌀이 미래의먹거리라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가루쌀이 윤석열 대통령이 4월4일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의 ‘대안‘ 격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쌀값 안정을 위해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논에 쌀 말고 - P42

공화당 여론조사가인 닐 뉴먼하우스는 AP 통신에 "트럼프 스스로 기소될 것이라고 누차 말했기 때문에, 이번 기소는친공화당 유권자들에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면서 공화당 대선주자 1위인 그의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 전략가인 세라 롱웰은 "트럼프가 탄핵되거나 기소될 때마다 오히려 지지자들의 결집 효과가 나타났다. 이번 기소 외에 추가로 기소돼도 트럼프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데 도움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 환경의 역할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조준희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살펴본 지역, 이처럼 밀집되고 복합적이고 규정하기 어려운 이 지역에 어떤 단일성(unite)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람들이 모여들고 역사들이 혼합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지중해의 중심에는 지중해를 하나로 만드는 강력한 자연의 단일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기후이다. 기후가 지중해의 풍광과 삶의 방식을 하나로 만들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99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1>에서 우리는 단일한 기후 아래 묶여있는 지중해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경작지도, 목초지도 갖춰지지 않은 척박한 곳. 비가 내리면 흙의 영양분이 쓸려 내려가 오히려 강한 햇볕이 지력을 유지시켜 준다는 지중해성 기후는 이들을 교역(交易)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밀어버렸다. 


  기후학자들이 보기에 지중해는 마땅히 서로 구별되어야 할 다양한 일군의 소기후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간의 유사성 혹은 부정할 수 없는 단일성을 지우지는 못한다. 반면에,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같은 기후, 같은 계절적 변동, 같은 식생, 같은 색채, 또 지형적 구조 덕분에 같은 풍경이 거의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방식이 같다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306


 지중해 지역의 바다는 육지보다 결코 더 생산적이지 않다. 극히 자랑하는 해산물은 그저 소박한 양만 생산될 뿐이며, 이곳의 어장은 산출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생선의 부족은 어부의 부족, 그리고 곧 선원의 부족을 초래했으며, 이는 지중해 세력의 대사업에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정치적 야망과 실제 사이에는 언제나 이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176


  이러한 자연 환경이 지중해 인근 주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유사한 삶의 형태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단일성을 부여했다면, 이러한 단일성은 다양성의 밀바탕이 된다. 자급자족할 수 없는 지중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내외부에서 긴밀하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형성된 교역관계 속에서 우연과 필연이 누적되면서 지중해의 정치 패권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베니치아, 제노바, 오스만 투르크, 에스파냐 등으로 차례로 옮겨가게 된다. 


 지중해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이중고, 곧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중고 때문에 지중해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검약하고, 부지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중고가 동기가 되어서 지중해 나라들은 특정한 방식의 제국주의를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지중해는 내재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해야 했고, 외국으로 나가야 했고, 먼 나라들의 협력을 구해야 했고, 그곳의 경제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지중해의 역사는 더욱 확장되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320 


 각각의 바다는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지중해의 동서쪽 양쪽 해역 모두 자신의 선박들을 이용하여 자체적인 운항 시스템을 조직했다. 양쪽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점들을 유지하긴 했지만, 자체의 폐쇄적인 회로를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p172)... 1559년 이후 프랑스 함대의 쇠퇴, 프랑스와 투르크 제국 사이의 관계 약화 이후 서부 지중해는 명백히 에스파냐의 바다가 되었다... 반대로 이오니아 해, 즉 "크레타 해"는 오스만 제국의 바다였다. 이 두 개의 상이한 지중해 구역은 쌍둥이 제국주의의 매개체이자 창조자였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173 


 브로델은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에서 지중해의 생활에서 큰 틀인 환경에 대해 말한다. 저자가 제1부에서 보여준 이 틀은 지중해의 문화에 큰 영향을미쳤고, 역사의 큰 줄기 속에서 일종의 공식(公式)을 보여주며, 장기(長期)의 역사의 순환을 이해하게 만든다.


 바다의 삶. 그 생명력은 가장 작은 곳, 가장 무게가 덜 나가는 부분을 먼저 통제한다. 그것은 섬과 일부 연안 지역으로, 마치 북유럽의 밀물과 썰물이 조약돌을 가지고 놀 듯이 이리 던지고 저리 돌리고 하는 것이다. 점차 더 강해지고 더 강제적이 되자 이 힘은 자신의 궤도 안으로 더 큰 덩어리들인 반도들을 끌어들이는데, 이렇게 되면 바다의 역사는 한 수준 더 위로 상승한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순간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해져서 드디어 대륙 덩어리 전체를 끌어들일 때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12


 그렇지만, 이러한 대류(大流)에 대한 이해는 펠리페 2세의 시대라는 한정적인 시기에 대한 설명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또다른 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보여준 3층 구조 - 교환,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 - 에서처럼 보다 깊은 역사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제는 2층 지중해의 사회사로 넘어갈 차례다...


 역사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리를 통제하고 발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다시 한번 설명할 수 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91


 도시 역사의 역동성은 우리를 원래의 주제의 바깥으로 데리고 간다. 제1부의 목적은 논의의 초점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특징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상적인 통계들, 반복적인 현상들, 지중해 삶의 기반들, 지중해의 진흙 바닥과 잔잔한 물에 두는 것이었다. 도시들은 내연기관과 같아서, 회전하고, 활력을 띠고, 헐떡거리다가 다시 전진한다. 내연기관의 고장 그 자체도 우리를 변동의 세계로 이끄는데, 그것은 제2부의 주제이다. 고장은 우리에게 진화와 콩종튀르를 말해주고, 우리에게 운명선을 예감하게 한다. 16세기 말에 이미 여러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쇠퇴는 17세기 들어서서 더욱 급격해졌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470



카스티야의 현저한 팽창 사례는 명백한 결론에 이른다. 이목은 내부와 외부의 복잡한 구조들 그리고 중량감 있는 제도들을 전제로 한다. 카스티야의 양모는 세고비아와 같은 도시 및 시장을 필요로 한다. 양모를 선배하고, 피렌체인과 마찬가지로 양모를 세탁할 수 있는 대형 통을 소유하고 있는 제노바 상인들, 이 대상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카스티야의 중개인들, 양모 운반인들, 빌바오에서 플랑드르로 해상운송을 책임지는 선단들, 알리칸테와 말라가를 통해서 이탈리아행의 수출을 담당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일상의 차원에서 관찰한다면 목장에서 가축들에게 먹일 소금을 구매하고 수송하는 사람 등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 - P116

16세기 이후 기술적으로 그리고 산업적 진보에서 혁신을 경험하는 서방 세계와 그렇지 못한 동방 세계 사이에 생활수준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졌다. 서방으로부터 생활비가 싼 동방 세계로 들어오는 화폐는 자동적으로 가치가 상승했고 더 큰 구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수준 차이가 어떤 면에서는 두 지역 간의 경제적 통합성을 재창조했다. 지중해 역사의 흐름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서 원격 지배하는 것은 그와 같은 심층의 요구, 균형의 혼란과 회복, 필수적인 교환이기 때문이다. - P175

모든 활동이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활동이 상업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매력에 의지했다. 대규모 장거리 상업의 절대적 필수 조건, 곧 자본의 축적이 상업 자본주의의 원동력이었다.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 및 밀라노 등지에서 공업 활동은 상업 경제가 규정한 공간 내에서 부양되었고, 특히 새롭고 혁명적인 직물업, 곧 면직물과 견직물의 경우가 그러했다. 폴 망투의 고전적인 이론, 곧 공업은 상업에 의해서 창출되고 육성된다는 이론은 이미 16세기에도 사실이었다. - P422

지중해와 주변 사막 간의 갈등은 단순히 가축과 쟁기 간의 대립 이상의 것이었다. 이는 두 가지 종류의 경제, 문명, 사회, 삶의 방식의 충돌이었다. 러시아의 역사가들은 스텝으로부터의 침략은 언제나 먼저 유목 문명의 변화, 곧 원시 단계에서 "봉건적인" 사회로의 이행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슬람의 성공적인 정복 과정에서 종교적인 신비주의의 발흥이 기여한 바는 잘 알려져 있다. -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이 채택한 송금 정책은 그 시대 다른 나라의 산림 정책과 달리 민간의 식재 장려보다는 벌채 금지 위반자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수군의 미숙한송금 관리가 학정을 불러왔고 설상가상으로 조선 왕실과 권세가의 봉산 침탈은 산림을 더욱 황폐화했다. - P78

송계는 17세기 후반부터 자생적으로 결성되었고,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 덕분에 송계산의 금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종계는 산림을 지속해서 이용할 수 있는 공용자원으로 육성되었으며, 개인의 다양한 수요도 적절한 수준에서 충족시켰다. 송계는 정부 주도로서 호서 지방에서 1710년 전후에 시범 운영되었지만, 지속하지 못하고 단절되었다. 정부가 산림 금양에 민간의 참여를 끌어낼 소중한 수단을 포기함으로써 산림 황폐화를 막을 기회를 놓쳤다.  - P241

조선 후기 널리 보급된 온돌은 우리 산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주거 시설에 부분적으로 온돌이 설치되기 시작한 때는 조선 전기였지만, 본격적으로 온돌이 설치된 시기는 17세기였다. 특히 17~18세기에 도래한 ‘소빙기(Little Ice Age)‘ 기후는 남부 지방의 가옥뿐만 아니라 궐내까지도 온돌 보급을 촉진하였다. 은돌이 보급된 17세기부터 왕실과 권세가들은 연료 확보를 위해 산림 점유를 강화했고, 그 부작용으로 산림 황폐도 점차 확산하였다.  - P307

수목 인식은 수목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이 성과를 산지에 적용하여 산림을 육성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사대부의 빈약한 수목 인식은 산림 자원 육성에 관한 지식의 부족을 의미한다. 조선의 지배층이 산림 전문 관료는 물론이고, 산림에 관심을 가진 유학자나 실학자를 양성하거나 보유하지 못했던 것은 저급한 산림인식 수준의 당연한 결과였다. - P3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전영우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림 황폐화는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거주 인구가 많은 도성 주변에서 시작되었다. 1611년의 실록은 벌목으로 인해 도성 안팎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한 책임을 한성부 당상에게 묻고 있다. 나라에서 금령을 엄히 다스려도 "도성 사방에 있는 산들이 볼품없이 벌거숭이가 되어 이미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는 1621년 기사는 산림 파괴의 심각성을 증언한다. 18세기에 이르러 헐벗은 한양의 사산(四山)에서 유출된 토사가 청계천의 하천 바닥을 높여 도성에 물난리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청계천 준설(1760)로 이어져 도성 주변이 모두 헐벗었음을 전한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41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헐벗은 민둥산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산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붉은 흙으로 덮인 민둥산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수탈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참화로 여겨지지만, 전영우의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이러한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이미 조선 후기부터 산림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조선의 산림 황폐는 산림 정책 부재, 조림/양묘 기술 미비, 민간 참여 배제, 권력층의 부패, 목재 및 땔감 생산 체계 부재와 온돌의 전국적 보급이 결합한 결과였다. 산림 황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이 모든 원인은 산림 자원의 가치와 중요성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조선 사회와 그 당시 지배층의 잘못된 산림 인식 탓이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11

저자는 본문에서 산림(山林)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지배층의 인식이 효과적인 정책 수립과 실행을 방해했고, 이러한 한계 속에서 효과적인 임업자원을 유지 관리하기위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한, 과도한 중앙집권적 관리 체제 안에서 임업정책은 민간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산림이 일종의 '공공재'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의 산림 파괴는 '공유지의 비극'이 되고 만다.

송금(松禁)의 실패 원인을 제시한 정약전과 김대길과 노성룡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것은 산림 자원의 고유특성인 지속 가능성을 간과한 사실이다. 산림이 보유한 지속 가능성이 훼손되거나 파괴될 때 산림은 사회 안정을 무너트리고, 종국에는 한 국가의 존립 기반이나 문명까지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무시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335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참상이 황폐한 산림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황폐한 산림이 조선을 쇠약하게 만들어 일제 강점기로 이끌었는가. 단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하나의 정책 안에 담겨있는 시대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잘 보여준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가 그 나무의 나이를 말해주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 니콜라오 또한 생전에 행한 무수한 선행이 알려졌고, 그 이야기들은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성 니콜라오는 살아 있는 동안에 많은 도움을 준 어린이와 선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12세기 초부터 프랑스와 벨기에 지방에서는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인 12월 5일에 수도자들이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 사람들은 성 니콜라오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양말이나 신발에 선물을 놓고 간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유럽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성 니콜라오의 라틴어 이름은 '상투스 니콜라우스(Sanctus Nicolaus)'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신터 클레스(Sinter Claes)'라 불렀다. 그리고 산타클로스의 붉은색 옷은 성인의 축일(12월 6일)에 선물을 나눠 주던 주교들이 입던 붉은색 주교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_ 황중선, <굴뚝으로 들어간 니콜라오> , p200


 이번 주에 읽은 책 <굴뚝으로 들어간 니콜라오>는 가난한 이들을 성(聖) 니콜라오스(Saint Nicholas of Myra, 270 ~ 343)에 대한 이야기다. 부자로 많은 유산을 받았지만, 그 유산을 모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한 성인의 삶과 함께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산타 할아버지의 기원으로 연의에게 인상깊게 다가온 것 같구나. 이제는 5학년이 되어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는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모범이 되고 우리가 그런 삶을 본받도록 하자. 끝. 이렇게 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으니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볼까. 연의는 의적(의로운 도적)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고 재물을 빼앗아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도와주는 의적들의 이야기. 서양에는 로빈 후드. 우리 나라에는 홍길동 등이 대표적인 의적들이야. 니콜라오 성인과 의적들은 모두 가난한 이들을 도와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어. 니콜라오 성인은 자신의 것을 나누는 반면, 의적들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나누지. 좋은 행동(선행)을 위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다면 그것을 의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의가 이 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어.


 한 가지 더. 책에서 처럼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성 니콜라우스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빨간 옷을 입은 하얀 턱수염의 뚱뚱한 할아버지의 모습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 코카콜라(Coca Cola) 때문이야. 시원한 음료인 코카콜라를 사람들이 겨울에도 찾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미지.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자료로 보면 좋을 것 같아. 어쩌면,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만큼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 익숙한 문화들 중 많은 부분이 기업들의 광고와도 관련있다는 점을 가볍게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와 비슷한 것으로 발렌타인 데이(Valentine Day), 빼빼로 데이가 있어.


출처 :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 코카-콜라가 만들었다고? https://www.coca-cola.co.kr/stories/since-1886/funfact-santa-claus?utm_source=google&utm_medium=GDN



 이제 날이 많이 더워졌구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여름철 우리 모두 건강하게 보내자! 사랑하는 아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