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전영우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림 황폐화는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거주 인구가 많은 도성 주변에서 시작되었다. 1611년의 실록은 벌목으로 인해 도성 안팎의 산들이 민둥산으로 변한 책임을 한성부 당상에게 묻고 있다. 나라에서 금령을 엄히 다스려도 "도성 사방에 있는 산들이 볼품없이 벌거숭이가 되어 이미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는 1621년 기사는 산림 파괴의 심각성을 증언한다. 18세기에 이르러 헐벗은 한양의 사산(四山)에서 유출된 토사가 청계천의 하천 바닥을 높여 도성에 물난리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청계천 준설(1760)로 이어져 도성 주변이 모두 헐벗었음을 전한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41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헐벗은 민둥산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산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붉은 흙으로 덮인 민둥산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수탈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참화로 여겨지지만, 전영우의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이러한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이미 조선 후기부터 산림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조선의 산림 황폐는 산림 정책 부재, 조림/양묘 기술 미비, 민간 참여 배제, 권력층의 부패, 목재 및 땔감 생산 체계 부재와 온돌의 전국적 보급이 결합한 결과였다. 산림 황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이 모든 원인은 산림 자원의 가치와 중요성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조선 사회와 그 당시 지배층의 잘못된 산림 인식 탓이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11

저자는 본문에서 산림(山林)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지배층의 인식이 효과적인 정책 수립과 실행을 방해했고, 이러한 한계 속에서 효과적인 임업자원을 유지 관리하기위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한, 과도한 중앙집권적 관리 체제 안에서 임업정책은 민간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산림이 일종의 '공공재'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의 산림 파괴는 '공유지의 비극'이 되고 만다.

송금(松禁)의 실패 원인을 제시한 정약전과 김대길과 노성룡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것은 산림 자원의 고유특성인 지속 가능성을 간과한 사실이다. 산림이 보유한 지속 가능성이 훼손되거나 파괴될 때 산림은 사회 안정을 무너트리고, 종국에는 한 국가의 존립 기반이나 문명까지도 붕괴시킬 수 있음을 무시했다. _ 전영우,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p335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참상이 황폐한 산림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황폐한 산림이 조선을 쇠약하게 만들어 일제 강점기로 이끌었는가. 단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하나의 정책 안에 담겨있는 시대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는 잘 보여준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가 그 나무의 나이를 말해주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