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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 환경의 역할 ㅣ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조준희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평점 :
우리가 살펴본 지역, 이처럼 밀집되고 복합적이고 규정하기 어려운 이 지역에 어떤 단일성(unite)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람들이 모여들고 역사들이 혼합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지중해의 중심에는 지중해를 하나로 만드는 강력한 자연의 단일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기후이다. 기후가 지중해의 풍광과 삶의 방식을 하나로 만들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99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1>에서 우리는 단일한 기후 아래 묶여있는 지중해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경작지도, 목초지도 갖춰지지 않은 척박한 곳. 비가 내리면 흙의 영양분이 쓸려 내려가 오히려 강한 햇볕이 지력을 유지시켜 준다는 지중해성 기후는 이들을 교역(交易)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밀어버렸다.
기후학자들이 보기에 지중해는 마땅히 서로 구별되어야 할 다양한 일군의 소기후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간의 유사성 혹은 부정할 수 없는 단일성을 지우지는 못한다. 반면에,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같은 기후, 같은 계절적 변동, 같은 식생, 같은 색채, 또 지형적 구조 덕분에 같은 풍경이 거의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방식이 같다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306
지중해 지역의 바다는 육지보다 결코 더 생산적이지 않다. 극히 자랑하는 해산물은 그저 소박한 양만 생산될 뿐이며, 이곳의 어장은 산출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생선의 부족은 어부의 부족, 그리고 곧 선원의 부족을 초래했으며, 이는 지중해 세력의 대사업에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정치적 야망과 실제 사이에는 언제나 이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176
이러한 자연 환경이 지중해 인근 주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유사한 삶의 형태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단일성을 부여했다면, 이러한 단일성은 다양성의 밀바탕이 된다. 자급자족할 수 없는 지중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내외부에서 긴밀하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형성된 교역관계 속에서 우연과 필연이 누적되면서 지중해의 정치 패권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베니치아, 제노바, 오스만 투르크, 에스파냐 등으로 차례로 옮겨가게 된다.
지중해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이중고, 곧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중고 때문에 지중해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검약하고, 부지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이중고가 동기가 되어서 지중해 나라들은 특정한 방식의 제국주의를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지중해는 내재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행동을 취해야 했고, 외국으로 나가야 했고, 먼 나라들의 협력을 구해야 했고, 그곳의 경제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지중해의 역사는 더욱 확장되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320
각각의 바다는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지중해의 동서쪽 양쪽 해역 모두 자신의 선박들을 이용하여 자체적인 운항 시스템을 조직했다. 양쪽이 서로 소통하고 연결점들을 유지하긴 했지만, 자체의 폐쇄적인 회로를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p172)... 1559년 이후 프랑스 함대의 쇠퇴, 프랑스와 투르크 제국 사이의 관계 약화 이후 서부 지중해는 명백히 에스파냐의 바다가 되었다... 반대로 이오니아 해, 즉 "크레타 해"는 오스만 제국의 바다였다. 이 두 개의 상이한 지중해 구역은 쌍둥이 제국주의의 매개체이자 창조자였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173
브로델은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에서 지중해의 생활에서 큰 틀인 환경에 대해 말한다. 저자가 제1부에서 보여준 이 틀은 지중해의 문화에 큰 영향을미쳤고, 역사의 큰 줄기 속에서 일종의 공식(公式)을 보여주며, 장기(長期)의 역사의 순환을 이해하게 만든다.
바다의 삶. 그 생명력은 가장 작은 곳, 가장 무게가 덜 나가는 부분을 먼저 통제한다. 그것은 섬과 일부 연안 지역으로, 마치 북유럽의 밀물과 썰물이 조약돌을 가지고 놀 듯이 이리 던지고 저리 돌리고 하는 것이다. 점차 더 강해지고 더 강제적이 되자 이 힘은 자신의 궤도 안으로 더 큰 덩어리들인 반도들을 끌어들이는데, 이렇게 되면 바다의 역사는 한 수준 더 위로 상승한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순간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해져서 드디어 대륙 덩어리 전체를 끌어들일 때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12
그렇지만, 이러한 대류(大流)에 대한 이해는 펠리페 2세의 시대라는 한정적인 시기에 대한 설명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또다른 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보여준 3층 구조 - 교환,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 - 에서처럼 보다 깊은 역사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제는 2층 지중해의 사회사로 넘어갈 차례다...
역사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리를 통제하고 발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다시 한번 설명할 수 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291
도시 역사의 역동성은 우리를 원래의 주제의 바깥으로 데리고 간다. 제1부의 목적은 논의의 초점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특징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상적인 통계들, 반복적인 현상들, 지중해 삶의 기반들, 지중해의 진흙 바닥과 잔잔한 물에 두는 것이었다. 도시들은 내연기관과 같아서, 회전하고, 활력을 띠고, 헐떡거리다가 다시 전진한다. 내연기관의 고장 그 자체도 우리를 변동의 세계로 이끄는데, 그것은 제2부의 주제이다. 고장은 우리에게 진화와 콩종튀르를 말해주고, 우리에게 운명선을 예감하게 한다. 16세기 말에 이미 여러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쇠퇴는 17세기 들어서서 더욱 급격해졌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1- 환경의 역할>, p470
카스티야의 현저한 팽창 사례는 명백한 결론에 이른다. 이목은 내부와 외부의 복잡한 구조들 그리고 중량감 있는 제도들을 전제로 한다. 카스티야의 양모는 세고비아와 같은 도시 및 시장을 필요로 한다. 양모를 선배하고, 피렌체인과 마찬가지로 양모를 세탁할 수 있는 대형 통을 소유하고 있는 제노바 상인들, 이 대상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카스티야의 중개인들, 양모 운반인들, 빌바오에서 플랑드르로 해상운송을 책임지는 선단들, 알리칸테와 말라가를 통해서 이탈리아행의 수출을 담당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일상의 차원에서 관찰한다면 목장에서 가축들에게 먹일 소금을 구매하고 수송하는 사람 등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 - P116
16세기 이후 기술적으로 그리고 산업적 진보에서 혁신을 경험하는 서방 세계와 그렇지 못한 동방 세계 사이에 생활수준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졌다. 서방으로부터 생활비가 싼 동방 세계로 들어오는 화폐는 자동적으로 가치가 상승했고 더 큰 구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수준 차이가 어떤 면에서는 두 지역 간의 경제적 통합성을 재창조했다. 지중해 역사의 흐름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서 원격 지배하는 것은 그와 같은 심층의 요구, 균형의 혼란과 회복, 필수적인 교환이기 때문이다. - P175
모든 활동이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활동이 상업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매력에 의지했다. 대규모 장거리 상업의 절대적 필수 조건, 곧 자본의 축적이 상업 자본주의의 원동력이었다.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 및 밀라노 등지에서 공업 활동은 상업 경제가 규정한 공간 내에서 부양되었고, 특히 새롭고 혁명적인 직물업, 곧 면직물과 견직물의 경우가 그러했다. 폴 망투의 고전적인 이론, 곧 공업은 상업에 의해서 창출되고 육성된다는 이론은 이미 16세기에도 사실이었다. - P422
지중해와 주변 사막 간의 갈등은 단순히 가축과 쟁기 간의 대립 이상의 것이었다. 이는 두 가지 종류의 경제, 문명, 사회, 삶의 방식의 충돌이었다. 러시아의 역사가들은 스텝으로부터의 침략은 언제나 먼저 유목 문명의 변화, 곧 원시 단계에서 "봉건적인" 사회로의 이행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슬람의 성공적인 정복 과정에서 종교적인 신비주의의 발흥이 기여한 바는 잘 알려져 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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