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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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나는 시모네 양이 아틀리에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크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쓰지 않은 한 소녀가 분명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머릿결이나 코, 피부 빗깔을 알아보지 못했고, 또 거기서 폴로 모자를 쓰고 해안을 따라 산책하던 그 자전거 타는 소녀에게서 추측했던 실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알베르틴이었다.(p37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에서 화자(話者)는 두 번째 사랑인 알베르틴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자건거 타는 소녀의 두 눈에 담긴 것을 소유하지 않고는 그녀 역시 소유할 수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따라서 그녀 삶 전체가 내게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고 느껴졌기에 고통스러운 욕망이었으며, 그러나 이제껏 내 삶이었던 것이 돌연 내 삶이기를 그치고 내가 채워 주기를 열망하는, 내 앞에 펼쳐진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졌기에 활홀한 욕망이었다.(p26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하게 느꼈던 욕망만큼 알베르틴은 화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러한 강렬한 이미지는 알베르틴과 함께 있던 소녀들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인 첫인상을 지워버릴 정도였지만, 화자는 자신을 알베르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작품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인정하는데, 이는 화자 자신의 철학(哲學)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케이프를 걸친 그녀 친구를 보며 세웠던 가설을 파기하고, 이 소녀들이 모두 경륜장을 드나들며, 아마도 자건거 선수들의 나이 어린 정부가 틀림없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어쨌든 그녀들의 품행이 단정하리라는 추측은 나의 어떤 가설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p25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화자는 시각으로 느낀 욕망을 사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화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관념'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화자는 매번 새로운 모습의 알베르틴을 발견하고, 이와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관념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현상과 관념 그리고 믿음으로 표현되는 화자의 인식 틀로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랑과 관념을 통해 '사랑'이라는 상태(state)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이르고 싶었던 것은 단지 소녀의 몸만이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이었으며, 그 인간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그녀의 주의를 끌어야 했고, 그 인간 속으로 꿰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마음속에 있는 어떤 관념을 일깨워야 했다.(p13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각각의 존재는 일단 우리가 보기를 멈추면 소멸된다. 그러다가 다음에 다시 나타나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로서, 모든 창조와 다르지는 않지만 적어도 바로 그 직전의 것과는 구별된다. 왜냐하면 이런 창조를 지배하는 최소한의 변화는 이원적이기 때문이다.(p45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나는 그날 알베르틴이 이전 날들과 같이 보이지 않으며 그녀를 볼 때마다 매번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한 존재의 외모나 중요성, 체격에서의 몇몇 변화는 그 존재와 우리 사이에 놓인 몇몇 상태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걸 느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믿음이다.(p357)... 믿음의 변화는 또한 사랑의 소멸이다.(p35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이제 난 알베르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난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샹젤리제에서의 놀이 이후로 내가 전념하는 대상은 언제나 거의 같았지만, 내 사랑의 관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p46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그렇지만,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우리는 화자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은 과거 소녀들에 대해 가졌던 기억마저 왜곡시킬 정도로 강렬했다는 이야기와 작은 위로를 통해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지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다른 의문 하나를 던지게 된다.


 최근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이런 솔직한 말들로 나는 알베르틴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아주 따뜻한 인상도 받았다. 어쩌면 이런 인상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게 아주 중대하고도 난처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알베르틴에 대한 내 사랑의 한가운데 언제나 존속하게 될 거의 가족 같은 감정, 그 도덕적인 중심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인상을 통해서였다.(p49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나는 이 소녀들의 머릿속에 든 순결에 대한 경멸과 일상적인 바람기의 추억을 대신 정숙함의 원칙들로 바꾸었다. 소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부르주아 환경에서 물려받은 이 원칙은 잠시 흔들릴 수는 있었겠지만 이제껏 모든 탈선으로부터 그녀들을 보호해 주었다.(p50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개인적으로 이러한 화자의 강렬한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끊임없이 덧칠되는 색처럼 시간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망각 - 기억'은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현재'의 작업이다. 소녀들에 대한 '경멸'이라는 감정 마저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꿀 수 있다면,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비롯한 다른 이야기들도 사실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의 이야기들 모두가 윤색된 사건일 수 있다는 의심을 던져 본다.


 무언가를 새로 만난다는 것은 실제로 매번 이전에 보았던 것 쪽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일종의 복원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 존재를 회상한단 건 실은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 망각했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면, 우리는 그 모습을 알아보고 그 빗나간 선을 수정한다.(p45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인간의 얼굴은 우리가 바라보는 동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눈으로 지각하기에는 얼굴 변화가 너무도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들 곁에서는 소녀들의 어머니나 아주머니만 보아도 그들 모습이 관통한 거리를 충분히 측정할 수 있으며, 내면의 인력 작용에 따라 대개는 끔찍한 형태로 바뀌는 그 모습은, 삼십 년도 안 되는 사이에 눈매가 처지고 얼굴이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더 이상 빛을 받지 못한다.(p4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에서 우리는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통해 '현상'과 이를 해석하는 '관념'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믿음'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 화자의 믿음이 만약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알 수는 없지만, 다음 문장이 앞으로 진행될 사건의 복선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는 교제를 계속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한 번 한 짓은 끊임없이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처음 약속한 장소에 오지 않거나, 감기에 걸렸다는 친구를 해마다 다시 찾아 보면, 우리는 그때에도 여전히 감기에 걸렸거나 다른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친구를 본다. 친구는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이유를 댄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대는 핑계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p40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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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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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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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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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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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 비판 서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석수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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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관심은 이성으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부여된 일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자기를 인식하는 일을 새로 떠맡아 재판소를 설립할 것을 요구한다. 이 법정은 이성이 제시하는 자신의 정당한 주장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지만, 반대로 모든 근거없는 주장들은 힘 있는 자의 명령이 아니라 이성의 영구불변한 법칙들로 제거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재판소가 순수이성 비판 그 자체인 것이다.( p18)

나는 대상보다는 대상 일반에 관한 우리의 선험적 개념에 종사하는 모든 인식을 초월적이라고 명명한다. 그러한 개념 체계는 바로 초월철학 Transzendental-Philosophie이라 불릴 것이다.(p73)

이 단계에서는 인간의 인식에 두 개의 줄기가 있고, 그리고 이 줄기는 하나의 공통된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언급하기만 하면 된다... 감성 Sinnlichkeit 을 통해서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지만, 지성 Verstand 을 통해서는 대상이 사유된다.(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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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한국현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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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로 접어들면서 광산액, 수산액, 임산액은 증가했고 철도 • 전신 • 전화 • 도로망은 확대되어갔다. 그러나 광업생산을 비롯한 각종 자원의 생산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지배 기구 및 개인에게 독점되어 조선의 민족자산이 되지 못한 반면, 일본 자본주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자원이 되었다.(p217)

외채와의 직접적인 관련 아래 도입된 고도의 기술과 대구모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도시 공업지대 및 임해공업단지의 공업과 중서도시 및 농촌지역의 재래적인 중소규모 토착공업 사이의 구조적 이중성, 그리고 세제 • 금융, 정부지원, 원자재 조달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수출공업과 내수공업 사이의 이중성은 점점 심화되어갔다.(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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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9-06-09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못 읽었습니다.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6-09 21:20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 개론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간결하면서도 저자의 역사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기에, Conan님께서 좋은 독서 시간을 가지시리라 생각합니다.^^:)
 
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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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의 원료를 확보하는 것에 골몰하던 정부는 1816년에 하는 수 없이 모든 동광산에 설점수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1817년에는 은광 채굴과 그 제련도 민간상인에게 맡겼다... 이후 광산 경영은 실제로 민간자본가들에게 맡겨졌고 그들에 의해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이 점점 발달해갔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p153)


이 시기의 일부 개화파들은 문명개화, 부국강병에 뒤떨어진 제 민족에 대한 비판과 경각심을 강조하다가 마침내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들었다. 민족과 문화에 대한 애정 자체를 잃고 그 역사적 주체성을 부인하면서, 일본 측이 침략의 구실로 내놓은 한반도 지역의 정체 • 후진성론에 동조하여 반민족세력으로 전락해가는 경우가 있었다.(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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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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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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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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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1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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