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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상평통보의 원료를 확보하는 것에 골몰하던 정부는 1816년에 하는 수 없이 모든 동광산에 설점수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1817년에는 은광 채굴과 그 제련도 민간상인에게 맡겼다... 이후 광산 경영은 실제로 민간자본가들에게 맡겨졌고 그들에 의해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이 점점 발달해갔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p153)
이 시기의 일부 개화파들은 문명개화, 부국강병에 뒤떨어진 제 민족에 대한 비판과 경각심을 강조하다가 마침내 민족패배주의에 빠져 들었다. 민족과 문화에 대한 애정 자체를 잃고 그 역사적 주체성을 부인하면서, 일본 측이 침략의 구실로 내놓은 한반도 지역의 정체 • 후진성론에 동조하여 반민족세력으로 전락해가는 경우가 있었다.(p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