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주정 및 과두정과 병행해(para) 이른바 '혼합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그것이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말해보자.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들 간의 구분을 파악해야만 하고, 그런 다음에 이것들 각각으로부터 징표(sumbolon)를 취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조합해야만 하기 (suntheteon) 때문이다....내가 의미하는 바는, 이를테면 관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하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dokein)는 것이다. 또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지 않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각각으로부터 하나의 것을 취하는 것은, 즉 과두정으로부터는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치하고, 민주정으로부터는 재산 평가 기준에 따르지 않고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취하는 것은 귀족정과 '혼합정'의 특징인 것이다.(제4권 1294a30 ~ 1294b 14) <정치학 Politika>,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3) 中


 수많은 자료들은 추첨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추첨이 바로 민주주의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치나 귀족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민주적 제도와 과두적 제도를 종합한다면 한쪽만의 특징을 가진 정체보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p4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민주적인가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nment>에서 버나드 마넹(Bernard Manin, 1951 ~ )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인가? 저자는 고대 아테네에서는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해 행정관이 지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상당수의 주요 권력을 민회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특정한 기능은 선출된 행정관이 수행했다. 그러나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민회가 수행하지 않은 대부분의 업무가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에게 위임되었다는 것이다.(p23)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고대 아테네에서의 추첨은 운(運)에만 의존한 제도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후보자의 자가검열과 함께 심사단의 심사를 통과한 동등한 자격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이기에 무자격자가 추첨에 뽑힐 가능성은 낮았다. 반면, 선발은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은 추첨 후 사회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좋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추첨 제도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 행정관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만이 추첨 기계 kleroteria에 넣어졌다는 사실이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후보로 지원한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p2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의 두 가지 성격은 민주정에서 필수적이다. 추첨은 행정관으로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도 또 불명예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운에 따라 자신도 공평하게 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추첨은 뽑힌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방지한다.(p9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이에 반해 선거는 추첨제에서는 없는 두 가지 단점을 갖는다. 하나는 후보의 교체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선거로 인한 분열(사회 갈등)이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행해지지만, 이것이 반드시 대표자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같은 후보가 계속 대표로 선임될 수 있으며, 선거과정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사회 균열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최선의 제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제도로 인식된 것은 대의제(代議制)의 도입 결과다. 복잡해진 사회구조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정의 배경이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교체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 근본적인 원칙이 추첨에 의한 선발을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관직에 올라가기 때문에, 관직에 진출하는 순서는 운에 맡겨졌을 것이다. (p49)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언제나 유권자들 사이의 분할과 변별(differentiation)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선거의 목적은 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드시 분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들은 적수가 있고, 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인식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화합하게 된다. 따라서 후보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적을 정의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차별성도 제시해야 한다.(p269)... 하나의 균열이 지속적인 동시에 특별히 두드러진 사회에서, 정치인들은 선거 이전에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균열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지식에 기초해서 차별적인 원칙들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이 제시하는 선택의 항목은 이미 존재하는 균열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적 역학이다.(p270)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근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입된 선거제도는 같은 시기 발달하게 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경제력'이 당락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되었고, 이는 조직화된 정당(政黨)을 탄생시키게 된다. 또한, 의회 내에서의 목소리가 아닌 의회 바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등장은 선거에서의 균열을 메우기도 때로는 더 크게 벌리기도 하면서 현대 선거제도의 복잡성을 증대시켰다.


  대중정당이 대의 정부를 지배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 정부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엘리트가 등장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표의 두드러진 특성은 더 이상 지역적 지위와 사회적 유명세가 아니라 행동주의와 조직 기술이었다. 투표자는 이를 근거로 대표를 선출하지 않지만, 정당이 내세운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유권자는 이러한 범주가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고 인준하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활동가와 정당 관료의 통치인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한다. 이것은 선거 결과의 안정성이라는 두드러진 현상에 의해 증명된다.(p25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대중매체는 특정한 개인적 특성에 유리하다. 즉 성공적인 후보들은 지역 명사가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한 의사소통 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적 인물 media figure"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대의 정부의 원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선택된 엘리트 유형의 변화이다. 의사소통에 능숙한 새로운 엘리트들이 정치활동가와 정당 관료를 대체했다.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는 이른바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인 것이다.(p267)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저자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통해 선거가 민주주의 제도라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과연 민의를 대표하는 제도인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비판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는 선거가 시민(demos)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는 다른 엘리트를 선출하는 제도임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거의 비(非)민주적인 면을 보완할 요소(선거비용 규제, 재임 방지 등)등을 통해 민주적으로 실행될 수 있음도 함께 밝힌다.


 선거의 두 가지 측면(귀족주의적인 측면과 민주주의적인 측면) 모두 객관적 진실이고, 둘 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똑같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인 혼합 정체와는 달리, 인민에 의한 선거는 그 구성 부문들로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과정이다. 그 두 가지 속성은 너무나 단단하게 짜여져 있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p19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그림] 카이사르 암살(출처 : https://www.pinterest.pt/pin/552746554238535254/)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는 '시민의 무리(Demos, 민중)'가 '국가 지배권(Kratos)'을 갖는 체제를 가리킨다. '민(民)'이 나라의 주권과 정치권력의 '주인(主)'이 된다는 '민주(民主)'의 이념을 담는다는 뜻에서 '민주주의(democracy)'로 옮겨진다(p9).... '공화(共和)'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 뿌리를 둔다. 국가와 권력은 모두 인민(populus)에게 속하는 '공공의(publica)의 것'이며 특정 집단이나 계층, 지도자들이 사유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최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특정 계급에게만 주어져 있었지만, 평민 계층을 대표하는 호민관에 의해 견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왕정과는 다른 민주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p11) <두 정치 연설가의 생애> 中  


  우리는 민주정(民主政)과 공화정(共和政)을 자연스럽게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원로원 중심의 로마 공화정이 결코 민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BC 384 ~ BC 322)가 지키려 했던 정체가 로마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공화정과 다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의 가치는 이들의 가치와도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위해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Quintus Servilius Caepio Brutus, BC 85 ~ BC 42)가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 100 ~ BC 44)를 죽이면서 지키려고 했던, 시라쿠사의 디온(Dion)이 독재자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us 2nd of Syracuse)를 추방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선거를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선거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세부적으로 우리의 혼합정체 -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난 '민주 공화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 민주 공화제라는 혼합 정체 - 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잡고 잘 나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제도와 법을 고쳐 나가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우리의 의사표현이 이루어지는 제도인 '선거'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A Comparative Introduction>의 리뷰 편으로 미루도록 하고, 페이퍼를 이만 마무리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3 신분이란 무엇인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33
E.J. 시에예스 지음, 박인수 옮김 / 책세상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에예스(Emmanuel Joseph Sieyes, 1748 ~ 1836)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e tiers etat?>에서 귀족, 성직자, 평민으로 대표자로 구성된 삼부회(Etats generaux)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된 제3신분의 문제에 주목한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는 시에예스가 주목하는 문제와 이에 대한 시에예스의 대답이며 문제해결 방안이다.

1.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 모든 것.
제3신분은 전체 국민에 속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제3신분이 아닌 것은 모두 전체 국민으로 간주될 수 없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p24)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2. 정치적으로 제3신분은 현재까지 무엇이었는가 - 무(無)
제3신분은 현재까지 삼부회에서 진정한 대표를 갖지 못했다. 따라서 제3신분의 정치적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p34)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3. 제3신분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 그 무엇이 되는 것.
제3신분의 대표자는 진정 제3신분에 속하는 시민 중에서만 선출될 것.(p40)... 제3신분 대표자의 수가 두 특권 신분 대표자의 수와 동일할 것.(p48)... 삼부회에서는 신분별이 아니라 개인별로 투표할 것.(p54)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주권으로부터 소외된 제3신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에예스는 이들을 대표하는 국민의회 설립을 제안한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에서 제기되는 시민대표제는 공화정(共和政)이 민주주의(民主主義)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 representative democracy)는 과연 시민주권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시에예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대표에 의한 지배체제만이 전제와 혼란으로부터 벗어날 길이라 대답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계몽주의시대의 낙관적인 기대 위에 놓여있다.

시민의 공통적 자격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모든 것은 정치적 권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인민의 입법 기관은 오직 일반 이익에 대해서만 필요한 것을 마련해줄 의무를 띌 수 있다. 그러나 법률과는 거의 무관한 단순한 구별에 의존하지 않고, 통상적인 규범에 따른 평가에 의해 특권적인 적들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들은 적극적으로 추방되어야 한다. 오만방자한 특권을 지속하는 한 그들은 유권자일 수도, 피선거권자일 수도 없다.(p133)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시에예스의 안에 따라 1789년 소지된 삼부회에서 국민의회가 구성된 이후 이제는 대의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버렸다. 현재 우리나라의 헌법체제는 국민주권주의를 보장하지만, 대의제도가 통치자를 피통치차의 판결에 종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과거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다중(多衆)의 목소리를 모아 대의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면, 보다 효과적인 대의제를 운영하기 위한 방안 마련은 오늘날 우리의 숙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20-04-10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일교차에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0-04-10 20:23   좋아요 0 | URL
후애님께서도 건강한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김명수 지음, 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수는 과연 무슨 공동체를 꿈꾸었는가? 그것은 율법과 폭력에 근거한 기존 사회의 가치와 질서에 대립되는 공동체 질서를 지향한다. 예수의 대안공동체는 본질적으로 당시 폭력, 지배, 권위, 강압, 착취, 성차별에 근거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가치체계와 정면으로 마주서있다. 예수는 사랑, 화해, 평등, 섬김, 봉사, 모성에 근거한 타자(식민지 민중) 중심적 대안 공동체를 추구했다.(p90)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에서 저자 김명수는 역사 속의 예수와 예수 공동체를 민중신학(民衆神學)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민중신학을 통해 예수와 소외받은 계층인 민중과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주변부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수. 이러한 예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예수의 모습 - 부활한 메시아 - 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 위에 '동양인 예수'의 사상을 제시한다. 


 예수의 수난과 처형은 갈릴리 민중의 고난에 대한 집단적 표상이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의 수난과 처형에서 바로 민중의 운명을 보고 있다. 민중의 운명에서 예수의 수난이 현재화되고 있음을 본다.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신학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민중을 신학의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역사의 예수를 로마 식민지 민중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종말론적인 민중해방의 전통에서 재해석하고 있다.(p70)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민중신학에서의 예수과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면, 저자는 서양인 예수와의 헤어짐을 선택한다. 동야인 예수의 가르침과 공자사상, 노자사상, 동학사상, 불교사상 등 동양철학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안에서 재해석된 예수의 모습은 평등주의자, 평화주의자, 환경주의자, 페미니즘 사상가로, 급진적 혁명가의 모습이다.


 공동체 안에는 새 형제자매를 발견하고,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새 어머니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보상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제도의 상징이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대한 예수의 부정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예수가 생각했던 대안공동체의 탈 脫가부장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p86)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저자는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가 당대의 가치관의 부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당시 유대지역이 헬레니즘 질서 안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플라톤(Platon, BC 428 ? ~ BC 348)의 이성(理性 logos)으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사회질서 부정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변질과도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이었는가? 로고스 logos에 의해서 뮈토스 mytos가 통제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로고스 사상은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저자는 플라톤과 필로로 이어지는 희랍사의 보편적 개념인 로고스를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였다.(p110)... 요한복음 저자는 그들이 믿고 따르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이 로고스의 화신 化身이라고 선포하였다.(p111)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저자는 <요한복음>을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반(反)예수의 가르침' 문헌으로 바라본다.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가 이러한 로고스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지혜' 대신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역사 속의 나자렛 예수와 그리스도교의 예수가 다른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초대 교회에서의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으로 바라본다. 이런 해석은 새롭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를 비판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기원이 헤브라이즘(Hebraism) 전통에 있는 것으로 본다. 


 예수 사후 20년 내에 다양하게 발달했던 여러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론은 모두 유대교의 지혜사상을 그 모태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소피아(sophia)와 연결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이 지혜(소피아)를 말씀(로고스 logos)으로 대체한 것은 당시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부장적 구조로 변모하고 있던 맥락과 일치한다. 즉 소피아가 억압되는 과정은 곧 교회 안에 성차별주의 sexism가 성장하는 과정과 정비례한다.(p217)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교회 내의 여성성 억압이 헬레니즘의 수용이라는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면, 헤브라이즘 전통은 성평등적인가? 지혜문학 작품 중 하나인 <구약성경> <잠언>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창녀는 깊은 구렁이고 낯선 여자는 좁은 우물이다. 그런 여자도 강도처럼 숨어 기다리다가 사람들 사이에 배신자를 늘린다.(잠언 23 : 27)


 지혜문학 뿐 아니라 구약성경의 다른 신명기계 역사관, 역대기계 역사관에서도 성평등 관점의 전통은 발견하기 어렵다. 성평등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공통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헬레니즘의 수용이 교회 내 여성성을 억압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요한 복음> 의 <로고스 찬가>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우선, <로고스 찬가>가 당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에 반박하고 교리를 세우기 위한 목적에 의해 씌여졌다는 일반적 이론을 생각해보더라도 이는 '말씀 logos'에 의한 '지혜 sophia' 살해라는 일종의 '여신(女神)살해'관점에서 바라본 한정된 해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지혜문학(智慧文學)이 고대 중동 지역에 공통된 문학형태임을 생각해본다면, <요한복음>은 지혜 문학로 대표되는 오리엔트 문화에 대한 헬레니즘 문화 침공으로 바라보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III of Macedon, BC 356 ~ BC 323)이 다리우스 3세(Darius III, BC380 ~ BC 330)의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 첫 번째 전투인 그라니코스 전투(Battle of the Granicus)를 여기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림] 그라니코스 전투 (출처 : 위키백과)


 또한, 공동체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 자신이 많은 곳에서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공동체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있기에, 인간 '아버지'가 필요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가부장제의 질서를 부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아버지 = 하느님'을 가정했다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권한에 신(神)권을 부여한 것으로 강력한 체제 옹호자로 해석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물론, 지금 지적한 부분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의 짧은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으리라 생각이 들면서도, 저자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공부해나가기로 하고...


  이제 마무리하자.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은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서양인 예수'가 아닌 '동양인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그리고, 동양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오늘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 서양 종교로 인식된 기독교 사상 속에서 동양철학과의 접점을 발견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대안을 알기쉽게 제시했다는 점을 배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5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경미 옮김 / 책세상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 ~ 1895) 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은  루이스 헨리 모건 (Lewis Henry Morgan)의 <고대 사회 Ancient Society>를 계승하면서 유물론적 역사관을 발전시킨 책으로, 책세상에서 나온 문고판은 9장에 원본의 축약본이다. 축약본에서는 1장 선사시대의 문화 단계들 과 2장 가족이 담겨있다. 그렇지만, 2장이 다른 장의 4배 분량을 차지하고, 3장 이후 내용이 2장의 실증 예시임을 고려한다면 엥겔스 주장의 대강을 파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상세한 내용은 완역본을 통해 다시 살펴보도록 하되, 요약본에서는 큰 줄기를 파악하도록 하자.


 부(富)가 가족의 사적 재산으로 급속히 늘자 대우혼과 모권적 씨족에 기초한 사회는 강한 타격을 입었다. 대우혼은 가족에 새로운 요소를 가져왔다. 그것은 친어머니와 함께 공적으로 인정된 친아버지를 내세운 것이었다.(p86)... 당시 가족내의 노동 분업에 따라, 남편은 식량을 조달하고 그에 필요한 노동 수단을 만들었고, 이에 대한 소유권은 그에게 있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아내가 가재도구를 보유하듯 남편은 이 노동 수단을 차지했다. 그러나 동일한 관습에 따라 자식들은 그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었다.(p86)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엥겔스는 가족의 발전도식(혈연 가족 -> 푸날루아 가족 -> 대우혼 가족 -> 단혼 가족)에 따라 가족의 모습이 변화, 발전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가족 발전도식에서 '혈연 가족'과 '푸날루아 가족', '대우혼 가족'에서 공통된 특성이 모계제 母係制다. '대우혼 가족'에서 '단혼 가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부계제 父係制의 모습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상속재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망한 남자의 자식들은 그의 씨족이 아니라 어머니 씨족에 속했다. 따라서 가축 떼의 소유자가 사망한 경우, 그 가축 떼는 우선 형제자매와 자매들의 자식들, 혹은 그의 어머니의 자매들 자손에게 넘어갔을 것이다.(p87)... 그러므로 부가 늘어남에 따라 가족 내에서 남편이 아내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한편, 강화된 지위를 이용해 관습상의 상속 순위를 자식들에게 유리하게 완전히 바꾸려는 욕망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모권에 따른 혈통이 이어지는 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모권제가 폐기되어야만 했고, 결국 폐기되었다.(p88)...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p89)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생존에 위협을 받던 수렵시대와는 달리 가축과 작물을 통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고, 생산량의 증대로 인한 가족 부의 증가는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시킨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인 단혼이 포유류에서도 인간만이 가진 특성으며, 이러한 특성은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모순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부르주아적 결혼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이 젊은 부르주아 아들에게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이 젊은 부르주아 아들에게 적당한 아내를 얻어주는데, 그 결과 당연히 일부일처제에 내재된 모순이 전면에 나타난다. 즉 남편의 왕성한 난교와 아내 측의 왕성한 간통이다.(p108)... 어느 경우든 결혼은 당사자의 계급적 위치에 의해 규정되며, 이런 점에서 언제나 정략 결혼이다.(p109)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엥겔스는 이러한 부르주아적 결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의 공적 산업으로의 복귀와 개별 가족의 성격이 제거되어야 함을 본문에서 강조한다.


 가족 내에서 남편을 부르주아고,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p113)... 남편과 아내가 법적으로 온전히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현대 가족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가 가지는 특성, 그리고 부부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방법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여성 해방의 전제 조건은 모든 여성이 공적 산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p114)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가족의 발전 도식은 칼 맑스(Karl Marx, 1818 ~ 1883)의 유명한 역사발전 5단계를 떠올리게 한다. '원시 공산주의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 -> 공산주의'로 이르는 일련의 흐름이 가족 단계에서 구현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흐름이 5단계 발전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근거로 엥겔스 이론을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엥겔스의 역사관 속에 담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속에서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게 된다. 중동의 기후와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그들의 문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일단은 여기서 멈추자.


 사실상 일부다처제는 노예제의 산물이었으며, 특별한 지위를 가진 개인들에게 국한되었다.... 일부다처제는 실사에 있어서 회교도의 질투로 가득 찬 하렘 제도보다는 훨씬 더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p95)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中


 정리하자면,  '국가 = 부르주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수탈 도구'가 맑스의 관점이며, 이보다 소공동체인 가족에 적용되는 정의가  '가족 = 남성에 의한 여성의 수탈 도구'다. 이는 엥겔스의 정의이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다. 이러한 엥겔스의 관점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비판적인 입장인데, 이는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집 6>에 실린 완역본 리뷰를 통해 보다 상세한 내용 정리 후 여러 문헌을 통해 페이퍼에서 하는 것으로 일단 미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성탄 공현 강론집- 레오 대종
레오 대종 지음, 이형우 옮김 / 분도출판사 / 1998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4월 05일에 저장

레오 대종: 사순시기 강론집
이형우 / 분도출판사 / 1996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20년 04월 05일에 저장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