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주정 및 과두정과 병행해(para) 이른바 '혼합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그것이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말해보자.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들 간의 구분을 파악해야만 하고, 그런 다음에 이것들 각각으로부터 징표(sumbolon)를 취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조합해야만 하기 (suntheteon) 때문이다....내가 의미하는 바는, 이를테면 관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하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dokein)는 것이다. 또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지 않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각각으로부터 하나의 것을 취하는 것은, 즉 과두정으로부터는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치하고, 민주정으로부터는 재산 평가 기준에 따르지 않고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취하는 것은 귀족정과 '혼합정'의 특징인 것이다.(제4권 1294a30 ~ 1294b 14) <정치학 Politika>,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3) 中


 수많은 자료들은 추첨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추첨이 바로 민주주의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치나 귀족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민주적 제도와 과두적 제도를 종합한다면 한쪽만의 특징을 가진 정체보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p4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민주적인가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nment>에서 버나드 마넹(Bernard Manin, 1951 ~ )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인가? 저자는 고대 아테네에서는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해 행정관이 지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상당수의 주요 권력을 민회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특정한 기능은 선출된 행정관이 수행했다. 그러나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민회가 수행하지 않은 대부분의 업무가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에게 위임되었다는 것이다.(p23)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고대 아테네에서의 추첨은 운(運)에만 의존한 제도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후보자의 자가검열과 함께 심사단의 심사를 통과한 동등한 자격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이기에 무자격자가 추첨에 뽑힐 가능성은 낮았다. 반면, 선발은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은 추첨 후 사회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좋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추첨 제도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 행정관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만이 추첨 기계 kleroteria에 넣어졌다는 사실이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후보로 지원한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p2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의 두 가지 성격은 민주정에서 필수적이다. 추첨은 행정관으로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도 또 불명예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운에 따라 자신도 공평하게 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추첨은 뽑힌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방지한다.(p9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이에 반해 선거는 추첨제에서는 없는 두 가지 단점을 갖는다. 하나는 후보의 교체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선거로 인한 분열(사회 갈등)이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행해지지만, 이것이 반드시 대표자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같은 후보가 계속 대표로 선임될 수 있으며, 선거과정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사회 균열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최선의 제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제도로 인식된 것은 대의제(代議制)의 도입 결과다. 복잡해진 사회구조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정의 배경이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교체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 근본적인 원칙이 추첨에 의한 선발을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관직에 올라가기 때문에, 관직에 진출하는 순서는 운에 맡겨졌을 것이다. (p49)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언제나 유권자들 사이의 분할과 변별(differentiation)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선거의 목적은 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드시 분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들은 적수가 있고, 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인식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화합하게 된다. 따라서 후보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적을 정의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차별성도 제시해야 한다.(p269)... 하나의 균열이 지속적인 동시에 특별히 두드러진 사회에서, 정치인들은 선거 이전에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균열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지식에 기초해서 차별적인 원칙들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이 제시하는 선택의 항목은 이미 존재하는 균열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적 역학이다.(p270)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근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입된 선거제도는 같은 시기 발달하게 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경제력'이 당락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되었고, 이는 조직화된 정당(政黨)을 탄생시키게 된다. 또한, 의회 내에서의 목소리가 아닌 의회 바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등장은 선거에서의 균열을 메우기도 때로는 더 크게 벌리기도 하면서 현대 선거제도의 복잡성을 증대시켰다.


  대중정당이 대의 정부를 지배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 정부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엘리트가 등장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표의 두드러진 특성은 더 이상 지역적 지위와 사회적 유명세가 아니라 행동주의와 조직 기술이었다. 투표자는 이를 근거로 대표를 선출하지 않지만, 정당이 내세운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유권자는 이러한 범주가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고 인준하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활동가와 정당 관료의 통치인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한다. 이것은 선거 결과의 안정성이라는 두드러진 현상에 의해 증명된다.(p25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대중매체는 특정한 개인적 특성에 유리하다. 즉 성공적인 후보들은 지역 명사가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한 의사소통 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적 인물 media figure"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대의 정부의 원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선택된 엘리트 유형의 변화이다. 의사소통에 능숙한 새로운 엘리트들이 정치활동가와 정당 관료를 대체했다.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는 이른바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인 것이다.(p267)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저자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통해 선거가 민주주의 제도라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과연 민의를 대표하는 제도인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비판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는 선거가 시민(demos)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는 다른 엘리트를 선출하는 제도임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거의 비(非)민주적인 면을 보완할 요소(선거비용 규제, 재임 방지 등)등을 통해 민주적으로 실행될 수 있음도 함께 밝힌다.


 선거의 두 가지 측면(귀족주의적인 측면과 민주주의적인 측면) 모두 객관적 진실이고, 둘 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똑같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인 혼합 정체와는 달리, 인민에 의한 선거는 그 구성 부문들로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과정이다. 그 두 가지 속성은 너무나 단단하게 짜여져 있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p19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그림] 카이사르 암살(출처 : https://www.pinterest.pt/pin/552746554238535254/)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는 '시민의 무리(Demos, 민중)'가 '국가 지배권(Kratos)'을 갖는 체제를 가리킨다. '민(民)'이 나라의 주권과 정치권력의 '주인(主)'이 된다는 '민주(民主)'의 이념을 담는다는 뜻에서 '민주주의(democracy)'로 옮겨진다(p9).... '공화(共和)'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 뿌리를 둔다. 국가와 권력은 모두 인민(populus)에게 속하는 '공공의(publica)의 것'이며 특정 집단이나 계층, 지도자들이 사유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최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특정 계급에게만 주어져 있었지만, 평민 계층을 대표하는 호민관에 의해 견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왕정과는 다른 민주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p11) <두 정치 연설가의 생애> 中  


  우리는 민주정(民主政)과 공화정(共和政)을 자연스럽게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원로원 중심의 로마 공화정이 결코 민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BC 384 ~ BC 322)가 지키려 했던 정체가 로마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공화정과 다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의 가치는 이들의 가치와도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위해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Quintus Servilius Caepio Brutus, BC 85 ~ BC 42)가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 100 ~ BC 44)를 죽이면서 지키려고 했던, 시라쿠사의 디온(Dion)이 독재자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us 2nd of Syracuse)를 추방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선거를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선거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세부적으로 우리의 혼합정체 -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난 '민주 공화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 민주 공화제라는 혼합 정체 - 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잡고 잘 나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제도와 법을 고쳐 나가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우리의 의사표현이 이루어지는 제도인 '선거'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A Comparative Introduction>의 리뷰 편으로 미루도록 하고, 페이퍼를 이만 마무리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