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김명수 지음, 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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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과연 무슨 공동체를 꿈꾸었는가? 그것은 율법과 폭력에 근거한 기존 사회의 가치와 질서에 대립되는 공동체 질서를 지향한다. 예수의 대안공동체는 본질적으로 당시 폭력, 지배, 권위, 강압, 착취, 성차별에 근거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가치체계와 정면으로 마주서있다. 예수는 사랑, 화해, 평등, 섬김, 봉사, 모성에 근거한 타자(식민지 민중) 중심적 대안 공동체를 추구했다.(p90)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에서 저자 김명수는 역사 속의 예수와 예수 공동체를 민중신학(民衆神學)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민중신학을 통해 예수와 소외받은 계층인 민중과의 관계성에 주목한다. 주변부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예수. 이러한 예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예수의 모습 - 부활한 메시아 - 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새로운 인식 위에 '동양인 예수'의 사상을 제시한다. 


 예수의 수난과 처형은 갈릴리 민중의 고난에 대한 집단적 표상이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의 수난과 처형에서 바로 민중의 운명을 보고 있다. 민중의 운명에서 예수의 수난이 현재화되고 있음을 본다.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신학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민중을 신학의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역사의 예수를 로마 식민지 민중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종말론적인 민중해방의 전통에서 재해석하고 있다.(p70)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민중신학에서의 예수과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면, 저자는 서양인 예수와의 헤어짐을 선택한다. 동야인 예수의 가르침과 공자사상, 노자사상, 동학사상, 불교사상 등 동양철학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안에서 재해석된 예수의 모습은 평등주의자, 평화주의자, 환경주의자, 페미니즘 사상가로, 급진적 혁명가의 모습이다.


 공동체 안에는 새 형제자매를 발견하고,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새 어머니들을 발견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보상 가운데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제도의 상징이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대한 예수의 부정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예수가 생각했던 대안공동체의 탈 脫가부장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p86)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저자는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가 당대의 가치관의 부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당시 유대지역이 헬레니즘 질서 안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플라톤(Platon, BC 428 ? ~ BC 348)의 이성(理性 logos)으로 대표되는 헬레니즘 사회질서 부정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변질과도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이었는가? 로고스 logos에 의해서 뮈토스 mytos가 통제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로고스 사상은 요한복음의 로고스 기독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저자는 플라톤과 필로로 이어지는 희랍사의 보편적 개념인 로고스를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였다.(p110)... 요한복음 저자는 그들이 믿고 따르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이 로고스의 화신 化身이라고 선포하였다.(p111)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저자는 <요한복음>을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반(反)예수의 가르침' 문헌으로 바라본다.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추구했던 가치가 이러한 로고스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지혜' 대신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역사 속의 나자렛 예수와 그리스도교의 예수가 다른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초대 교회에서의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으로 바라본다. 이런 해석은 새롭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를 비판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기원이 헤브라이즘(Hebraism) 전통에 있는 것으로 본다. 


 예수 사후 20년 내에 다양하게 발달했던 여러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론은 모두 유대교의 지혜사상을 그 모태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소피아(sophia)와 연결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요한이 지혜(소피아)를 말씀(로고스 logos)으로 대체한 것은 당시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부장적 구조로 변모하고 있던 맥락과 일치한다. 즉 소피아가 억압되는 과정은 곧 교회 안에 성차별주의 sexism가 성장하는 과정과 정비례한다.(p217)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 中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교회 내의 여성성 억압이 헬레니즘의 수용이라는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면, 헤브라이즘 전통은 성평등적인가? 지혜문학 작품 중 하나인 <구약성경> <잠언>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창녀는 깊은 구렁이고 낯선 여자는 좁은 우물이다. 그런 여자도 강도처럼 숨어 기다리다가 사람들 사이에 배신자를 늘린다.(잠언 23 : 27)


 지혜문학 뿐 아니라 구약성경의 다른 신명기계 역사관, 역대기계 역사관에서도 성평등 관점의 전통은 발견하기 어렵다. 성평등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공통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헬레니즘의 수용이 교회 내 여성성을 억압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요한 복음> 의 <로고스 찬가>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우선, <로고스 찬가>가 당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에 반박하고 교리를 세우기 위한 목적에 의해 씌여졌다는 일반적 이론을 생각해보더라도 이는 '말씀 logos'에 의한 '지혜 sophia' 살해라는 일종의 '여신(女神)살해'관점에서 바라본 한정된 해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지혜문학(智慧文學)이 고대 중동 지역에 공통된 문학형태임을 생각해본다면, <요한복음>은 지혜 문학로 대표되는 오리엔트 문화에 대한 헬레니즘 문화 침공으로 바라보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III of Macedon, BC 356 ~ BC 323)이 다리우스 3세(Darius III, BC380 ~ BC 330)의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한 첫 번째 전투인 그라니코스 전투(Battle of the Granicus)를 여기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림] 그라니코스 전투 (출처 : 위키백과)


 또한, 공동체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수 자신이 많은 곳에서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공동체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있기에, 인간 '아버지'가 필요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가부장제의 질서를 부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아버지 = 하느님'을 가정했다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권한에 신(神)권을 부여한 것으로 강력한 체제 옹호자로 해석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물론, 지금 지적한 부분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독자의 짧은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으리라 생각이 들면서도, 저자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공부해나가기로 하고...


  이제 마무리하자. <역사의 예수와 동양사상>은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서양인 예수'가 아닌 '동양인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그리고, 동양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오늘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저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에게 서양 종교로 인식된 기독교 사상 속에서 동양철학과의 접점을 발견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대안을 알기쉽게 제시했다는 점을 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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