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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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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약이 엄마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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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할멈과 호랑이
박윤규 지음, 백희나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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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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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8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희나 님처럼 글과 그림이 다 가능한 작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28 16:12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동심을 잘 파악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백희나 님의 작품 안에서 앤서니 브라운 작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알사탕 그림책이 참 좋아 3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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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 온책 읽기 다섯 번째. <알사탕>

구슬치기를 하며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 둥둥이. 둥둥이가 알사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구슬과 알사탕. 모양도 비슷하고 예쁜 것도 비슷하지만, 내구성에서는 차이가 있다. 물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도 있겠지만.

구슬은 단단하고 쉽게 깨지지 않는다. 이런 구슬과 함께 하는 동안 둥둥이의 마음도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반면, 알사탕은 깨지기 쉽고 녹이기도 쉽다. 상처받기 쉽고 시간 속에서 오래하지 못하는 알사탕과 함께 하는 동안 동동이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르르 혀 끝에서 녹아들어가는 여러 알사탕의 단맛과 함께 조금씩 낮아지는 동동이 마음의 벽을 생각해 본다. 단단함을 이기는 부드러움. <알사탕>을 통해 이런 부분을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다.

한 걸음 나아가, 내구성이 강한 구슬에서는 문자(텍스트)를, 약한 알사탕에서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문자로 씌여진 책은 혼자서도 읽을 수 있지만, 말로 이루어진 대화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이에 대해서 아이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듯 하다. 아이들이 독서에 너무 빠져 자신만의 세계 안에 갇혀 지내기보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 노는 것이 나이에 맞는 활동이라는 것.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느끼며 친구와 지내는 것이 네가 할 가장 중요한 숙제라는 이야기를. 연의의 경우에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가끔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도 좋겠다 여겨지지만... <알사탕>에 대한 독서 나눔은 구슬과 알사탕의 의미에 대해 아이와 함께 생각해 보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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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비판철학
질 들뢰즈 지음, 서동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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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철학- 사상과 그 원천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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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철학
질 들뢰즈 지음, 박기순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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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철학
질 들뢰즈 지음, 이경신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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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 1930 ~ 2004와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 ~ 1995를 '차이'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데리다의 철학을 말할 때 해체주의라는 수식어를 빼고 말할 수 없고, 해체주의는 '차이'의 데리다식 버전인 '차연 差延'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하기 힘들다. 들뢰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들뢰즈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단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차이'가 될 것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18


  데리다와 들뢰즈 철학 입문서인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는 두 철학자들의 공통된 주제인 '차이'로부터 이들 철학의 전반을 살피는 방향으로 나간다. 두 철학자 모두 '차이'를 다루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데리다는 보다 '기호 - 대상' 이라는 언어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들뢰즈는 '전체 - 부분'이라는 관점에서 체계 측면에 중점을 둔다는 면에서는 이들 사상에 차이가 있다.

 

 데리다는 우리의 가장 일반적인 표상 체계인 '언어'가 이러한 목소리를 어떻게 억압해왔는가를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왜곡된 서구의 사상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한편 들뢰즈는 표상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표상주의에 의해 억압된 존재들의 다양하고 차별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철학의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31 


 들뢰즈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실상은 존재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개념 이라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진 도식에 맞는 부분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설명되지 못한 부분 또한 분명 있기에 기존 개념은 한계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개별 존재는 각자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인 '차이 자체'가 있다고 바라본다. 


 들뢰즈는 이렇듯 개념으로 드러날 수 없는 그 자체의 차이를 개념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와 달리 '차이 자체 la difference en elle-meme'라고 표현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차이 자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p48)... 들뢰즈가 보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차이 자체'를 지니고 있으며, 그 차이는 틀에 박힌 개념이나 표상의 틀에서 깨어날 때 드러난다.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개념이 만들어낸 진부한, 너무나도 진부한 동일성의 틀로부터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 들뢰즈의 생각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49


 들뢰즈가 칸트의 도식으로부터 착안한 것은 상상력은 인식 활동에 종속될 경우에는 그저 개념을 위한 도식을 만들 뿐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개념으로부터 벗어날 경우 거꾸로 기존의 인식 활동이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식을 만들 수 있다... 개념으로부터 새로운 개념이 나올 수는 없다. 새로운 개념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념이 파괴되어야 한다. 기존의 개념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나 인식 활동이 아니라 개념의 밑바닥에 있는 도식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43

 

 들뢰즈는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 ~ 1941의 물질 개념의 설명을 수용하고, 개념으로 표상되는 물(物)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의 총합이라고 해석한다. 그렇지만, 개념은 이러한 물의 다양성 중 일부만을 선택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들뢰즈는 '기계'로 대표되는 물질문명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한 걸음 나아가 들뢰즈는 세상에 모든 것들을 '기계'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들뢰즈는 '기계론적 mecanique'인 것과 '기계적 machinique'인 것을 구분한다. 기계론적인 것이 미리 설계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형성된 체계라면, 기계적인 것은 그러한 엄밀한 체계를 벗어난다. 들뢰즈에게 기계적이라는 표현은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어 언제나 변형될 수 있는, 잠정적이고 우연적인 배치의 상태와 관련이 있다.(p112)... 들뢰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기계로 간주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존재이든 나름대로의 체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113


 들뢰즈의 기계 개념은 '절단 coupure'과 '연결'이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정신분석학의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충동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다만, 들뢰즈는 이러한 분석을 인간 심리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정치철학의 체계와도 연결시키며 분석대상을 넓혀간다. <안티 오이디푸스 L’Anti-Œdipe: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 <천개의 고원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enie>은 이러한 관점에서 들뢰즈를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들뢰즈는 기계론적이고 개념적인 체계를 '수목 樹木적인 것'이라고 부르고, 기계적이고 이념적인 체계를 '리좀 rhizome적인 것'이라고 부른다.(p125)...  수목은 수직적이며 위계적인 구조를 상징하며 통일성과 동질성을 특성으로 한다. 반면, 땅속에서 수없이 줄기와 뿌리가 무한 증식하는 땅속줄기 식물들을 보자. 리좀은 수평적이고 탈중심적이며, 무한한 생산성과 다양성, 개방성이 특징이다.(p126)...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구분을 파시즘과 전체주의는 구분에도 적용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파시즘은 리좀적인 데 반해 전체주의는 수목적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129


 들뢰즈가 개념이라는 동일성의 원리에 억압되지 않는 '차이 자체'를 내세웠다면, 데리다는 차이라는 말 대신에 '차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p50)... 데리다는 굳이 차이가 아닌 '차연 differance'이라는 말을 고집한다. 세간에 너무 굳어져버린 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차이의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51


 들뢰즈가 '개념'의 한계성에 보다 더 주목한다면, 데리다는 언어가 담지 못하는 한계성에 보다 더 주목한다. 음성 언어인 말과 문자 언어인 글이 가지는 서로 다른 특징은 온전하게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이 과정에서 소실되는 의미가 생겨나게 된다.


 difference와 differance은 프랑스어에서 둘 다 '디페랑스'로 발음된다. 3음절의 모음 e와 a에 의해 표기로는 구분되지만 말로 구현될 때 두 단어의 차이는 소멸되고 만다. 분명히 문자로는 차이가 나지만 말소리로 따지면 차이가 없는 것이다. 데리다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철학적 맥락을 지닌다.(p52)... 한마디로 a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존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즉 , "알파벳의 차이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글로 쓰일 수도 있지만, 발음이 같기 때문에 그 차이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a는 죽음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음성 언어'라는 폭군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다. 데리다가 e가 아닌 a를 붙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차이가 어떠한 경우에도 고정되고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진행되는 과정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61


 그렇다면, 과연 존재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데리다에 의하면 존재의 의미가 명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계 자체이다. 의식 - 무의식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텍스트라는 체계이며, 의미이기 때문에,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데리다의 입장이다. 이러한 부분은 들뢰즈의 다양체가 가진 '다양성'과도 통할 수 있다. 들뢰즈의 '다양성' 개념은 모든 물질이 무한한 이미지의 총합이라는 면에서 데리다의 이중인상과도 연결되지만, 이로부터 이들 사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예술작품의 의미가 텍스트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텍스트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라면 당연히 그것들이 얽히는 중간에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 자체는 텍스트의 안과 밖의 구분 자체가 허물어진 경계 자체일 뿐이다. 이 경우 예술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다. 말하자면 텍스트를 구성하는 어떠한 고정된 의미라도 쉽사리 '해체'될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가 본 예술작품의 의미란 바로 이것이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96


 무의미의 존재를 인정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가 삼지 않는가의 문제가 헤겔과 데리다의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낸다.(p147)... 데리다에게 의미란 무의미와 대립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의미란 항상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의미와 무의미가 서로 중첩되어 의미가 무의미이기도 하며 무의미가 의미이기도 한 사태를 데리다는 이중인상 surimpression이라고 부른다.(p148) ... 데리다는 무의미와 의미의 얽힘 혹은 이중인상으로 이루어진 차연의 논리를 주장한다.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은 바로 이러한 차연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잠정적인 체계에 불과하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150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들뢰즈가 '차이 자체'를 인정하며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연결관계 형성에 대해 분석한다면, 데리다는 존재의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에 집중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리마톨로지 Grammatologie> <마르크스의 유령들 Spectres de Marx> <법의 힘 Force de Loi> 등을 보면 그의 사상 자체가 여러 주제의 중첩임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개별 리뷰로 정리하도록 하고,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라는 입문서 수준에서는 이 정도로 거칠게나마 윤곽을 잡도록 하자...


 데리다와 들뢰즈가 개념을 폄하하는 것은 세상을 개념으로 파악할 경우 세상의 다양성이 사라져버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철학이 개념에 저항한다는 것은 곧 현실의 풍부함을 되찾겠다는 노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철학에는 개념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면서 이 세상을 개념과 동등한 것으로 취급하려는 기존 철학자들의 사상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_ 박영욱,  <데리다 & 들뢰즈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p24 


PS. 들뢰즈의 책이 데리다의 책보다 더 접하기 쉬운데, 이는 들뢰즈 철학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들뢰즈의 창' 시리즈도 한 몫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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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7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들을 보니 열공하고 싶은 마음이 팍팍 드네요.
독서 계획표를 짜야겠어요. 스피노자, 칸트, 들뢰즈, 니체 등
책을 읽다 보면 많이 거론되는 분들이네요.

겨울호랑이 2020-09-27 21:41   좋아요 0 | URL
‘들뢰즈의 창‘ 시리즈는 들뢰즈의 시각에서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철학자들의 사상을 잘 정리한 책들이라 여겨집니다. 페크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바람돌이 2020-09-27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설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힐것 같은데 막상 저들의 오리지널 책을 들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ㅎㅎ 무슨 새로운 개념들이 그리 많은지..... 전 겨울호랑이님 해설로 만족하겠습니다. 페크님도 겨울호랑이님도 화이팅하셔서 무지한 저에게 기쁨을주세요. ^^

겨울호랑이 2020-09-27 21:4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뿐 아니라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독자들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대강의 의미를 이해하고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로서는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낯설어도 자주 접하다보면 글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책을 펼쳐 봅니다...^^:)
 

 청전(靑田) 양식을 통해 한국적 산수화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청전 이상범(李象範, 18 ~ 1972)의 작품을 느낄 수 있는 도록. 40호 전지 가격의 그림이 1 ~ 2억으로 평가받는 수묵화 대가의 그림 114점이 생생하게 수록되어 있다. 도록에 수록된 그림 중 다수가 1930년대 후반 이후 1960년대까지 그려진 것으로 이 시기는 작가가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 이후 금강산, 설악산 등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자연의 전체적인 형태감 재현에 집중한 해방 이후 산수화, 고성(古城)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로 그려진 시기에 해당한다.  안개에 싸인 듯 신비한 느낌을 풍기는 산과 함께 있는 지게를 진 농부, 허름한 초가집 등은 이 곳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닌 아름다운 현실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청전 자신은 이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장기 말소사건) 다음 날 나는 경기도 경찰부로 연행되어 갔다.

 내가 경기도 경찰부로 풀려난 날로부터 1945년 8월까지 나의 칩거 생활을 계속되었다.  <신동아>(1971.7) p216 ~ 229

 

 그러나,  <신동아>와의 인터뷰와는 달리 청전은 1940년대 칩거하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은 그가 황국신민화와 군국주의를 선양하기 위한 전람회 심사위원이나 국방헌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에 빠짐없이 출품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가 즐거 사용한 필법과 산수화풍이 실은 일본 남화풍의 잔영으로 해방후 유행했던 전형적 기법이라는 사실도 함께 기록한다.


 1930년대 일본 문화통치에 대한 저항자가 1940년대 친일로 전향한 사례가 청전의 경우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근현대사의 많은 인재(人材)들의 변절과 이들이 해방 이후 각 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청전의 그림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술과 예술가는 분리되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고요하면서도 힘찬, 세밀하게 평화로운 한국의 자연을 담은 청전의 그림은 그림 밖의 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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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6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완용도 명필이었어요. ㅎㅎ
뛰어난 예술인이 그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그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부터 좋아지지는 않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0-09-26 07: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작품이 예술가와 별개라는 생각을 하더라도 그의 사상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면 또 별개는 아니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먼저 뛰어난 전문인 이전에 도덕, 윤리관 수립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