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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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미래에 다가올지 모르는 수많은 재난의 가능성을 알아낸다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회복재생력을 갖춘 구조, 그리고 가능하다면 ‘앤티프래절‘, 즉 위기에 오히려 더 강한 사회적/정치적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또 재난에 압도당한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듯 사람들이 자신의 등에 채찍질을 가하는 혼돈으로 빨려드는 사태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와 더불어 ‘불운한 인류와 취약한 세계를 보호하려면 전체주의적 통치와 세계 정부가 필수적‘이라 꼬드기는 유혹의 소리에 어떻게 저항할지를 역사에서 배우는 것뿐이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80/1246

니얼 퍼거슨 (Niall Ferguson, 1964 ~ )이 <둠 : 재앙의 정치학 Doom: The Politics of Catastrophe>에서 내린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석학의 냉철한 현실 비판이나 코로나 19 이후 달라질 세상에 대한 전망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전공이 역사, 그 중에서도 금융사임을 생각한다면 절제된 저자의 주장에 오히려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니얼 퍼거슨이 <현금의 지배 The Cash Nexus>에서 보여준만큼의 통찰력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자신의 이전 저서들에 다룬 내용을 세 틀 - 회색 코뿔소, 검은 백조, 드래건 킹 - 로 다시 조명하면서 ‘전염병‘이라는 주제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책의 의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내가 이야기했듯, 예측하기 쉬운 종류의 재난에 해당하는 ‘회색 코뿔소‘였던 것이 실제로 재난이 현실화되면서 사람들을 갑자기 경악으로 몰아넣는 ‘검은 백조‘로 변하는 것은 쉽게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검은 백조‘가 ‘드래건 킹‘, 즉 상상을 뛰어넘는 수의 사망자를 낳는 역사적 재난으로까지 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30/1246

사실 제1차 세계대전은 충분이 예측 가능한 ‘회색 코뿔소‘였다. 유럽 전체가 전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생각해봤을 때 말이다. 그러나 막상 발발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점을 보면 그 전쟁은 깜짝 놀랄 ‘검은 백조‘였고, 그것이 낳은 광범위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보자면 진정한 ‘드래건 킹‘이기도 했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418/1246

역사 속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예측된 사건들이 정치가들에 의해 무시되면서 위기가 생겨나고, 복잡계의 연결망으로 인해 큰 재난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이번 코로나 19나 가까운 시기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1918)만이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져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가 전염병 변이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재난의 진화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몫임을 확인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선진국(우리나라를 비롯한)에서 자국의 안전만을 챙기기 위해 부스터샷을 하는 동안 1차 접종도 채 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오미크론(omicron)과 같은 변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을만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 이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역사의 교훈이 아닐런지.

세계 인구의 큰 부분이 백신을 맞지 못한 상태가 유지되는 한 새로운 유행과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정기적으로 부스터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할 수 있고, 그 간격 또한 1년 이하가 될 수 있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29/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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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이 말하였다.
"제왕이 된 사람은 지극히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그런 고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가 있는 것이오."

"군주는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들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각박하게 하여 군주를 받드는 것은 마치 살을 잘라서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르지만 몸은 죽어가니 군주는 부유하지만 나라는 망한다. 그러므로 인군(人君)의 걱정거리는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무릇 군사란 이를 어거하는데 그 도를 얻는데 있는 것이지 숫자의 많음에 있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그들 가운데 장대하고 건장한 사람을 뽑아서 도(道)를 가지고 이들을 다스린다면 천하에는 대적할 사람이 충분히 없게 될 것인데 왜 반드시 가늘고 약한 사람을 데려다가 허수(虛數)를 늘리려고 하십니까?"

무릇 예(禮)라는 것은 위엄을 갖춘 의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위엄을 갖춘 의식이 없다면 예는 시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음악은 음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음성을 갖지 아니하면 음악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릇 예악에는 근본적인 것이 있고 수식한 것도 있는데, 중화(中和)라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고, 얼굴과 소리는 지엽적인 것이며, 이 두 가지는 한쪽을 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라(新羅), 백제(百濟), 고려(高麗) 세 나라가 묵은 원한관계를 갖고 있어서 서로 바꾸어가며 공격하였는데, 황상은 국자조교(國子助敎) 주자사(朱子奢)를 파견하여 가서 타일러서 지적하니, 세 나라가 모두 표문을 올려서 사죄하였다.

군주란 근원이고 신하란 흐르는 물줄기이니, 그 근원을 흐리게 하고 그 흐르는 물이 깨끗하기를 구하면 얻을 수 없는 것이오. 군주가 스스로 속이면서 어떻게 신하에게 곧게 될 것을 책임 지운다는 말이오?

옛말 사람이 이르기를, ‘예(禮)라, 예라고 말하는 것이 옥(玉)이나 비단을 말하는 것이랴! 음악, 음악이라고 하지만 종고(鐘鼓)를 말하는 것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음악은 진실로 인화(人和)에 있는 것이지 성조(聲調)와 소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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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嫡子)를 세우는 것에서 장자로 한다는 것은 예(禮) 가운데 올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고조가 천하를 소유하게 된 것은 모두 태종(太宗)의 공로였습니다. 은태자(隱太子)는 용열(庸劣)한데도 그의 오른쪽[위]에 있게 하였으니 처지는 혐의를 받게 되고 형세로는 압박을 받게 되었으니, 반드시 서로 용납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약에 고조가 문왕(文王) 같은 밝음을 가졌고 은 태자가 태백(泰伯)과 같은 현명함을 가졌으며, 태종이 자장(子臧)과 같은 절도를 가졌다고 한다면 화란이 어찌 스스로 일어났겠습니까?

무릇 창업을 하고 정통에게 내려준 군주는 자손들이 모범으로 삼는 것인데, 저 중종(中宗), 명종(明宗), 숙종(肅宗), 대종(代宗)이 전해서 이어받으면서 지적하는 구실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싸우지 않은 까닭은 내가 즉위한 날짜가 얼마 안 되었고, 국가가 아직은 편안하지 아니하며 백성들은 아직 부유하지 아니하니 또 마땅히 안정시켜서 그들을 위무하여야 하기 때문이었소. 한 번 야만인과 싸운다면 손해되는 것이 아주 많소. 야만인과 원한을 맺어서 깊어지면 두려워하여 대비할 것이니 나는 뜻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갑옷을 말아놓고 창을 감추어 두고 금백으로 입을 막는다면 저들은 이미 바라는 것을 얻었으니 이치로 보아 당연히 물러갈 것이며, 뜻과 생각은 교만하고 타락하여 다시는 대비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다음에 위엄을 길렀다가 틈새를 엿보아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소. ‘장차 그들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들에게 그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오. 경은 이것을 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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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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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것이 신호인 양 두 번째 세 번째 돌멩이가 날아왔다... 바로 대놓고 때릴 수 없는 젊은 사람, 아낙들에게 돌은 참 편리한 것이다.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는 돌멩이는 그 수가 많을수록 군중의 심리를 폭력으로 이끄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삽시간에 돌멩이는 우박이 되어 봉기한테 쏟아진다. _ 박경리, <토지 11> , p149/560


 <토지 11>에서는 삼수에게 겁탈당한 딸 두리를 위해 복동네가 삼수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봉기 이야기가 나온다. 봉기는 석이의 설득으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털어놓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무수한 돌멩이 세례를 받으며 피범벅이 되고 만다. 개인으로서 주변인들은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나이 많은 어른인 봉기를 직접적으로 단죄하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렇지만, 자신의 익명성이 보장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집단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날아든 돌 하나.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많은 개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장면이 작품 속에 표현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장의 제목을 '군중심리'라 이름짓는다. 이에 대해, 귀스타브 르 봉 (Gustave Le Bon,1841 ~ 1931)의  <군중심리 Psychologie des Foules>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껏이다. 여기서 르 봉이 바라본 군중의 속성을 살펴보자.


 '군중'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국적과 직업, 성별을 불문하고, 또한 그들이 어떤 우연한 계기로 모였든지 상관없이 어떤 개인들의 집합을 의미한다.(p42)... 군중이 드러내는 감정의 과격함은 책임감의 부재로 한층 더 과장되며, 이질적인 군중은 특히 그렇다. 군중은 고립된 개인은 할 수 없는 감정 표현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군중은 숫자가 많으므로 무사하리라는 확신과 인원이 많으니 일시적이나마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 덕분이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시기심 많은 개인이 군중을 이루면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기력하다는 감정에서 해방되어 일시적이지만 엄청난 힘을 갑작스레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_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p91/472


 르 봉이 바라보는 '군중'은 비합리적인 집단이다. 외적 충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우 불안정한 존재로서 과잉된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집단. 이 안의 구성원들은 맹목적으로 휩쓸려가기 쉬우며, 이러한 개인이 모여 매우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집단의 성격이 표출된다는 것을 르 봉이 <군중심리>에서 설명한다. 르 봉의 이러한 주장을 학인한 후 <토지 11>의 상황을 돌아가보면, 봉기의 거짓말에 대한 군중의 분노가 돌팔매로 표현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토지 10>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고, 이와 다른 대중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두 청년이 달려든다. 간부(姦夫)와 간부(姦婦)를 치는 것은 누구에게도 거리낄 것이 없는 불문율이다. 홍이와 장이는 비참하게 맞았다. 그러나 육신의 아픔이 무엇인가. 반죽음이 될 만큼 코피가 쏟아져서 낭자한데 중늙은 여자는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징거가 있어야 한다. 야아들아! 그 쪽문 열고오, 이웃 사람들 들어와 구겡하라 캐라! 간통한 연놈들 얼굴을 똑똑히 구겡하라 캐라!" 문이 열렸다. 우르르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낄낄낄 웃는 소리... 사내들의 음탕한 웃음소리... 동정의 소리도 있다. __ 박경리, <토지 10> , p622/682


 <토지 10>에서 홍이와 장이의 불륜을 바라보는 군중(구경꾼)의 대응은 봉기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봉기는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거의 반죽음을 당할 뻔하였지만, 간통현장을 들킨 홍이와 장이는 장이의 친척들의 폭력에 노출되었을 뿐 군중의 폭력으로부터는 안전할 수 있었다. 비웃음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들 두 사건에 대한 군중의 대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설명 또한 르 봉의 <군중심리>에서 찾아본다.


 배심원들은 언젠가는 자신들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범죄들[특히 사회에 위협적인 범죄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했지만 치정범죄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범죄들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기 때문이다._ 귀스타브 르 봉, <군중심리>, p285/466


 르 봉은 배심원(군중)들이 갖는 심리를 분석하며, 배심원들이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범죄는 보다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치정 사건에는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보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신과 주변세계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군중의 반응. 홍이와 장이의 간통사건과 같은 일은 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군중은 제3자의 입장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었던 반면, 봉기의 거짓말은 식민상태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위협이었기에 군중은 분노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군중의 반응은 우리가 <사랑과 전쟁>은 막장 드라마로 가볍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살인 사건은 국민청원의 대상이 되는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 역시 군중의 일원임을 씁쓸하게 자인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이번 주 <토지 11>에서 죽음을 다시 발견한다. <토지> 작품 전반에 수많은 인물들의 죽음이 나오지만, 이번 죽음이 각별한 것은 토지 1세대의 인물들 중에서도 비중있는 이들인 김 환(구천)과 임이네의 죽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환이의 죽음은 환이의 시각에서, 임이네의 죽음은 남편 용이와 아들 홍이의 관점에서 보여주면서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독자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서는  죽어가는 사람과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Norbert Elias, 1897 ~ 1990)가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기나긴 꿈 속으로 떠나가고 세상은 사라진다. 두려운 것은 죽어가는 고통이며, 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자의 상실감이다. 죽음을 둘러싼 집합적이거나 개인적인 환상은 종종 사람들을 섬뜩하게 한다. 그 공포의 독성을 완화하고 유한한 삶이라는 소박한 현실을 그에 맞세우는 것은 아직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죽음은 숨겨야 할 어떤 비밀도 없다. 어떤 문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은 한 인간의 종말이다. 남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 즉 산 자가 가진 기억들이다. _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p74 


 지삼만의 밀고로 붙잡혀 고문을 받으며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김 환은 자신의 죽음 역시 예감한다. 죽음 앞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을 마무리한다. 별당 아씨와의 인연, 자신 삶의 의미 등을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삶을 정리하며 환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혼자 남겨진 이의 죽음.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다.


 '더 늙으면 추해진다.' 눈을 뜨고 노을이 타는 철창문을 또 바라본다. 생애를 통하여 철창문에 비치는 저 노을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과 애증(愛憎)과 원한의 가파로운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_ 박경리, <토지 11> , p200/560 


 다른 한 편, 임이네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기억으로 표현된다. 남편 용이에게 임이네의 죽음은 절망이었다면, 아들 홍이에게 임이네의 죽음은 투쟁이었고, 자리바꿈이었다. 그리고, 임이네의 죽음을 통해 홍이에게 월선과 임이네는 대립되지만 공존(共存)하는 어머니였음을 알게 된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있다면 이들의 관계였을까. '선(善)- 악(惡)'처럼 월선에 대한 그리움이 임이네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통해서 홍이에게 월선이나 임이네가 '키워준 어머니' 와 '낳아준 어머니'로 구분된 존재가 아니라 '월선-임이네'로 함께 자리잡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함께. 홍이가 첫 사랑 장이에게 끌렸던 이유가 장이가 월선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임이네가 홍이 인생에 남긴 그림자가 얼마나 짙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림자가 짙었지만, 그림자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에 그림자가 사라진 이후 홍이의 삶이 행복할 것인가는 이후 지켜볼 부분일 것이다. 죽어가는 자에게 두렵지 않은 죽음과 죽음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남겨진 기억의 의미를 우리는 <토지 11>의 두 죽음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속으로 고개를 저어댔지만 임이네 죽음이 되살아난 것이다.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준 일이 없는 여자,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회한을 남기게 마련이다. 좋지 않은 추억들을 다 떠내려 보내기 위해선 임이네 생각을 말아야 하고, 그 고독하고 처참한 죽음에 대한, 불쌍한 망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슬픔이나 애통보다 용이에게는 충격이었다.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절망, 죽음은 모두 그럴 것이지만 뼛골까지 스며드는 외로운 죽음을 용이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연민이었으나 임이네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절망이었고, 그 절망감은 죄의식을 몰고 오는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11> , p64/670


 견딜 수 없는 죄책감, 죽은 어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런 일이다. 어쩌면 일본으로 간 이유 중에는 모친에 대한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사가 있었는지 모른다. 비참한 죽음을 잊고 싶었는지 모른다. 병석에서 병으로 갔지만 임이네의 죽음은 월선의 죽음과는 달랐다. 이 두 죽음에서 비로소 홍이는 월선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놓여났으며, 월선이 점령했던 자리에 생모의 죽은 모습이 낙인과 같이 찍혀버렸던 것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죽음과의 무참한 투쟁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체념 못한 죽음과의 투쟁이었다.(p266)...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모든 사람의 운명으로 확대되어간 허무의 깊이 모를 심연이었다. 월선이 축복받은 죽음이라면 임이네는 저주받은 죽음이요, 근원적으론 죽음이란 저주받은 것일 거라는 공포는 홍이 마음을 깊이 지배하였다. _ 박경리, <토지 11> , p267/560


 이번 주 읽은 <토지 11>의 내용을 통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중심리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번 페이퍼는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1897 ~ 1957)의 <파시즘의 대중심리 Die Massenpsychologie des Faschismus>에 대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중들의 심리와 지도자의 성격이 일체성이 가져온 비극이 히틀러의 독일 지배임을 밝히는 라이히의 저서 속에서, 선천적으로 지도자의 성격 구조와 대중(군중)의 성격 구조가 동일했을 때만 파시즘 집권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묵돌 선우(冒頓單于, ? ~ BC174)의 경우처럼 강압에 의해서도 강제 동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묵돌의 명적 또는 봉기에게 가해진 첫 번째 돌팔매가 갖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주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묵돌은 명적 鳴鏑(소리나는 화살)을 만들어 부하들에게 나누어 준 뒤 그것으로 기사 훈련을 시켰다. 그는 이런 명을 내렸다. "내가 명적을 쏘면 다 같이 그곳을 쏘도록 하라. 쏘지 않는 자는 참한다." 얼마 후 사냥을 나간 뒤 명적을 쏜 곳에 화살을 날리지 않은 자는 가차 없이 참했다... 얼마 후 묵돌이 사냥에 참가한 뒤 부친인 두만 선우가 타고 있는 말을 향해 명적을 날렸다. 부하들이 모두 일제히 활을 쏘았다. 묵돌은 비로소 좌우 모두 자신의 명을 따른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_ 사마천, <사기열전 2> <흉노열전>,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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