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강대진의 고전 산책 3
강대진 지음 / 그린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분노를.

지금껏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을 읽으며 부끄럽게도 저 문장 너머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킬레우스는 전체 24권 중 1권에서 아가멤논에게 화를 내고 자기 진영에 틀어박힌 후 제16권 파트클로스가 죽은 후에서야 싸울 준비를 하고 제20권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다. 그보다 절대적인 용맹을 지닌 아킬레우스의 빈 자리를 메꾸는 인물들 - 불멸의 신들마저 격퇴한 디오메데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트로이아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헥토르이며,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건 메넬라오스와 겁에 질려 헬레네 곁으로 도망치는 파리스, 아가멤논과 아이아스 등 -의 공동주연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게 느껴진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바라보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들은 필멸의 인간이기에 각자 한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가 저마다 죽음의 원인이 된다. 죽음은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어둠이 눈 앞을 가리면‘ 인간들은 더이상 전장에 나설 수 없다. 때문에 항상 죽음을 걱정해야 하는 인간의 영웅들은 신들은 물론 반신반인의 아킬레우스에 비해서도 한없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고 끊임없이 감정에 휩쓸린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가진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불멸의 삶을 부여받는데, 그것은 각자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그리스 비극)안에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는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닌 필멸의 인간들이 불멸의 인간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는 이유를 작품 해설을 통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영화 <트로이>의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호메로스 작품 안에서 살아 있는 인물의 모습을 온전히 찾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대체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가 공동이익만을 고려하는 반면,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고려하는 개별의지들의 총합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개별의지들에서 서로 상쇄하는 넘치거나 부족한 의지들을 빼면 그 차이들의 총합으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일반의지는 언제나 옳고 항상 공익을  지향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민이 심의 deliberations du peuple가 언제나 그처럼 공정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제 좋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알지는 못한다. 인민은 절대로 매수되지 않지만, 종종 속아 넘어간다. 인민이 자기에게 나쁜 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때뿐이다. _루소, <사회계약론>, p46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에서 사회를 '의지의 결합'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이성(理性)을 갖추게 된다면 자기보존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자유롭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계약을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인 인민의 의지는 대체적으로 공익(公益)으로 수렴한다.


 (과두정 이후) 타락의 다음 단계는 플라톤이 '민주정'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는 사회 질서와 권위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무법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적 품성은 무법적인 것이며 무질서한 것이다. 그 품성은 '불필요한' 욕구들, 즉 모든 일시적인 욕구와 변덕의 통제되지 않은 난잡한 추구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_숀 세이어즈, 플라톤 <국가> 해설, p250


 이에 반해,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Politeia(는 '필요(chreia)'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성향(physis)에 맞게 사회적 분업을 할 필요를 느끼고, 이것이 활성화되면서 공동체는 커져간다. <국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체 중 과두정(oligarchy)이 민주정(demonkratia)로 옮겨가고, 민주정이 다시 참주정(tyrannos)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설명된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의 입을 빌려 민주정의 특성을 무질서와 무법으로 보고 이 체제를 긍정하지 않는다. 


 첫째로, (민주 정체에서) 이들은 자유로우며, 이 나라는 자유(elutheria)와 언론 자유(parrhesia)로 가득 차 있어서,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가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 제 마음에 드는 자신의 삶의 개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게 명백하이... 이렇게 되면, 이 정체에서는 무엇보다도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날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557b)... 민주 정체는 즐겁고 무정부 상태의(anarchos)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평등(isotes)을 배분해 주는 정체인 걸로 보이네." _ 플라론, <국가>, 제8권, 558c


 루소의 사회가 자유로운 의지들의 결합이라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의 국가는 필요에 의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회 공동체의 성격 규정이 두 철학자들의 정체(政體)에 대한 평가를 가른 요인이 된 것은 아닐까.


 지난 8.15 광복절 집회 시 나타난 무질서와 혼란을 보면서 공동체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느낀다. 무정부 상태에서 나타난 혼란과 방종의 모습 속에서 지난 시간 공동체의 가치와 안정을 지키려 했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다. 이 과정에서, 플라톤이 느꼈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포스(Force)의 어두운 측면과 함께, 밝은 면을 향한 가능성도 발견한다. <국가>에서 플라톤이 말한 사회적 분업이 서로 다른 성향(physis)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가 지향한 것이 4주덕(4主德)에 근거한 철인(哲人)지배체제라는 점과루소가 말한 '부분적인 사회'(분파)도 함께 생각해보자. 사회 계급의 장벽이 높고,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되었을 때, 사회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지 결합이 아닌, 피라미드 사회가 될 것이고, 이때 민주정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밝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 불평등 해소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출발이 일반의지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때문에, 우리 사회의 태어날 때부터 넘을 수 없는 계급장벽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의 불평등이 보다 깊어질 때 극우 세력이 힘을 키웠음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이 크게 무리하지 않다 생각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결합되어 파시즘의 전사로 거듭나지 않도록 사회안정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의 과제임을 <사회계약론>과 <국가>를 통해 생각해 본다...


 일반의지가 올바르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에서 어떤 부분적인 사회도 존재하지 않고 시민 각자가 자신만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리쿠르고스의 유례없이 탁월한 제도가 바로 이것이었다._루소, <사회계약론>,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자유주의의 역동성은 19세기를 지난 후까지 지속되지 못하였다. 자유주의의 사상과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급진적 시각조정을 통해 부활시키려던 시도는 실패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유주의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당시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운동과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운동에 보통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흔히, 비록 지적으로 정교하고 세련되긴 하였지만, 사실상 반공주의와 동의어였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658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Liberalism>의 저자 앤서니 아블라스터(Anthony Arblaster)는 자유주의의 역사를 밝히면서, 18 ~ 19세기 초에 절정기를 맞이한 자유주의가 20세기 중반 냉전 자유주의로 변질되었음을 밝힌다. 매카시즘(McCarthyism)으로 대표되는 냉전 자유주의는 파시즘(Fascism) 붕괴 이후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1945년 이후 일종의 부활을 한 자유주의의 지배적 특질은 반공산주의였으므로 '냉전 자유주의'라는 말은 적절하다. 냉전 자유주의의 지배(dominance)는 두드러졌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이고 권위주의라고 하면,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고 또 항상 그래 왔다. 냉전시기에는 이 하나의 태도가 너무도 강하게 자유주의의 전체적 성격을 형성하여서, 자유주의의 더 근본적 원리들이 희생되거나 잊혀졌다. 언론의 자유, 관용과 다양성은 느닷없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원리들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비자유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라도 반공산주의라면 눈감았다. 냉전 자유주의는 전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며 자유주의를 배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로크, 몽테스키외, 토크빌, 밀의 전통을 이어받고 인용하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행하고 승인한 배반이었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590


 '반(反)공산주의'를 강조하는 이념으로서 냉전 자유주의는 '반공'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결과 냉전 자유주의는 이전 시대 나타난 어떤 형태의 자유주의와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전체주의 이론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남은 단 하나의 가치. 그것은 '반공(反共)'이다. 


 냉전 자유주의는 논쟁적이고, 시사문제와 관련 있고, 개입적이다. 그리고 그 개입은 반공산주의 정치에의 개입이다.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특정 문제와 위기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그들의 입장에 대한 강고하고 포괄적인 방어를 구축하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거대하고 정교한 '전체주의' 이론이란 형태로, 그리고 전체주의의 이른바 역사적 지적 뿌리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602


 아블라스터는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에서 자유주의의 핵심을 세계와 인간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전제, 낙관과 긍정으로 해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냉전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이름을 차용한 전체주의의 변용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아블라스터는 냉전 자유주의를 로크, 몽테스키외, 토크빌, 밀의 전통을 배반한 이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아마도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강하게 부정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며, 보수주의자라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주의자들 중의 보수주의자라고 할 만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의 눈으로 봤을 때도 이들은 신이 마련한 국가를 부정하는 폭도에 불과하다.


 "우주를 창조한 지고한 신에게 지상에서 가장 흡족한 것은 국가라고 하는 인간들의 질서 있는 집합체다." 머리와 가슴을 향한 이 교훈을 인간의 공통적 본성과 공통적 관계에서 배운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조회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믿고, 또 모든 것을 마땅한 기준에 조회하면서, 가슴의 성소에 참여하는 개인으로서나 그러한 개인의 자격으로 단체를 이루면서 스스로 그들의 고귀한 기원과 위치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단체로서, 공공 사회의 설립자이며 창조자이며 보호자에게 국민적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공공 사회 없이는, 인간은 그 본성상 가능한 완성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으며, 멀리 떨어진 미미한 접근조차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우리 본성이 우리 덕성에 의해 완성되도록 마련한 신이 그 완성을 위한 필요한 수단도 마련했다고, 그리하여 신이 국가를 마련했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신이 국가가 모든 완성의 근원이자 원초적 모범과 결합하기를 바란다고 인식한다. _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p174


[사진] 2020년 8월 15일 광화문 집회(출처 : 경향신문)


 2020년 8월 15일 아직 코로나 19 위기가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 강행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대규모 집회는 신천지 사태 이후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다시 경제활동은 둔화될 것이고, 개학이 연기되는 등 우리 공동체가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반공과 빨갱이만 외치면서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는 저들 극우 집단의 모습을 보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변질된 오늘날의 현실을 확인한다.


 보수주의자인 버크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버크의 반대자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에게 지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페인이 프랑스 혁명을 지지한 것은 혁명이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을 부정한 혁명이었기 때문이지, 왕정복고를 꿈꾸는 반동체제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 국민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루이 16세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전제적 국가원리에 반해서였다. 그 기원은 루이 16세가 아니라, 수세기 전의 근원적 제도에 있었다.  그것은 뽑아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깊이 뿌리박혔고, 기생충과 도둑들로 가득 찬 아우게이어스 왕의 외양간처럼 치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독하게 더러웠기 때문에 완벽하고 철저한 혁명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_토머스 페인 , <상식, 인권>, p104 


 개인적으로 이들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파시즘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적대감과 파괴를 위한 의지 그리고 급진화.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의 <파시즘 The Anatomy of Fascism>의 정의보다 이들의 성격을 더 잘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우리가 파시스트들의 부활을 맞은 이유는 때문일까?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 _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p333


 급진화 단계는 파시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떤 정권도 급진화될 수는 있지만,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분출하는 파시즘적 충동의 깊이와 위력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p384)... 나아가 급진화는 파시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최종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_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p386


그리고, 이들을 파시스트 집단으로 정의했을 때, 우리는 스핑크스(sphinx)에게 선동(propaganda)당한 파시즘의 계급전사의 모습을 광화문 집회 참여자들로부터 발견하게 된다. 이보다 더 파시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비극이 우리에게 아직도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찬양하는 강인함, 비밀 엄수, 무자비함이라는 덕목이 실제로는 군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검증된 계급 투쟁 전사의 덕목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전쟁의 용병의 가면 아래 양성되었던 것은 실제로 믿음직한 파시즘의 계급전사들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민족 Nation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계급전사 신분에 의지하는 지배자계급인데, 이 지배계급이 누구에 대해서도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가파른 절벽 위 왕좌에 올라앉아 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내놓은 상품의 유일한 소비자가 될 것을 약속하는 생산자의 스핑크스적 용모를 띤다... 자연과 국가라는 두 힘이 여기서 만들어내는 평행사변형 안에서, 대각선은 전쟁이다._발터 벤야민,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p317


 결국,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어느 쪽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냉전 자유주의가 이 땅에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까지 우리가 냉전 최후의 유산인 판문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Billy Joel의 노래 중 <We Didn't Start the Fire>라는 곡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역사적 키워드를 담은 노래인데, 여기에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키워드(North Korea, South Korea, panmunjom)이 등장한다. 가사에 담긴 다른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죽거나 흘러갔음에도, 가사의 키워드가 아직도 유독 우리에게 진행형이라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극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짜라투스트라 2020-08-19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겨울호랑이 2020-08-19 05:17   좋아요 0 | URL
짜라투스트라님 감사합니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 -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평
고광식 외 옮김, 김육훈 해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여러 국가의 역사 교과서 발췌문을 살펴보면, 전 세계 모든 주민이 한목소리로 읽을 수 있는 보편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아무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날짜나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 체결 날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해도,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이미 이긴 셈이나 다름없었는데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것은 단지 일본을 겁주기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을 때 폴란드의 절반을 빼앗고자 했던 것일까, 아니면 1년 전 뮌헨에서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를 넘겼던 프랑스와 영국에 보복하려 했던 것일까? 어쨌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세심하게 고민한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하나일 수 없는 역사>, p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하나일 수 없는 역사>는 역사관(歷史觀)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사건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 집단에게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 사건의 이해당사자 또는 호불호의 감정을 가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봄을 의미할 것이다. '사건'이 역사가 아니라, '사건 + 해석'이 역사이기에, 역사가 하나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봐야 하는가? <하나일 수 없는 역사>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차이나는 여러 관점을 보여줄 뿐이다. 얼마나 폭넓게 사건을 바라보는가 또는 얼마나 깊게 사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사건의 의미와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에게 넌지시 던져줄 뿐이다. 그렇지만, 이 물음은 생각하기에 따라 한없이 깊어질 수도 있다.


 주로 세 가지 문제가 쟁점이 됐다. 정복당한 국가에 도로와 학교, 행정조직을 제공한 식민지 지배를 융통성 없게 비난해야만 하는가? 식민지 정복과 지배는 정말로 폭력적이었는가? 독립 후 정권을 쟁취한 새로운 지배층에 의한 자국민 수탈은 없었는가?... 식민지 경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열등한 민족'이 존재하며 이들을 문명화할 '우월한 민족'이 존재한다는 인간 존재의 불평등성이라는 관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p118)... (우리는) 정치적 독립이 곧바로 경제적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약속된 것이 아니었기에 많은 독립국에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해당 지역의 일부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다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조직화된 저항에 부딪혔다. 이처럼 식민지 지배의 끝은 해방을 향한 여정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반드시 내디뎌야만 하는 걸음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하나일 수 없는 역사>, p119


  위에 나온 내용은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논쟁 중 하나인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으로 보이지만 아니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 중 프랑스 역사 교육 과정에 대한 내용 비판 일부를 옮긴 것으로, 이는 식민지 근대화와 관련된 논쟁이 우리나라에한정된 것이 아닌, 제국주의의 잔재가 남은 지역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임을  알려준다. 이로부터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논거 하나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은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이다. 단지 정치적인 차원만이 아닌,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신적 차원까지도 아울러야 한다... 1970년대에 이르러 거의 대부분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 국가들은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희망과 이상을 싹틔웠다. 그러나 유럽에 의해 그어진 문제투성이의 국경선 그대로 식민 통치에서 제각각 벗어난 아프리카는 종종 포악한 독재자의 통치를 받으며 허약하고 분할된 상태로 남았다. 아프리카인들은 어렵게 되찾은 자유를 누리지도 못한 채 외국의 간섭과 쿠데타, 내전, 사회적 갈등이 증폭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하나일 수 없는 역사>, p125


 과거 제국주의 지배의 폐해와 독립 후 이어지는 식민지의 정치적, 경제적 종속 상태보편적 사태다.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 론에 대해 비판할 때, 많은 경우 자본주의의 맹아(萌芽)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이런 통시적 관점의 접근도 의미가 있겠지만, 공간적으로도 시야를 넓혀서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사를 국사의 관점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새롭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고조선의 멸망 원인의 경우도 국사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한(漢)의 침략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유라시아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흉노 - 한'이라는 유목제국과 농경제국의  대립이라는 거대한 역사 흐름 속에서 고조선이 멸망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의 지평을 넓혀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함께 제공한다. 여기서 더 깊어지면, 브로델과 같이 구조사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역사의 법칙을 찾아내고, 이로부터 우리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우리가 갈 길을 정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바르게 배우는 길이고, 역사가 하나일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역사의 흐름이라는 물리 현상에 보다 의미있는 것에 대한 선택이 바로 살아 있다는 표현이기에, 역사는 하나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3세계 국가들은 원자재에 대한 공정한 가격 책정과 선진국과 후진국 간 호혜적 교역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 확립을 요구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부채를 져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선진국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세계은행, 서방 선진국과 은행 등에서 대출 형태로 제공된 '개발 원조 자금'은 종종 선진국의 완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과 맞물려 있었다. 그런데 선진국의 완제품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위해 후진국 경제는 농업 수출과 광물 채굴을 강화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하나일 수 없는 역사>, p135


  구체적으로 그런 관점에서 조금 더 깊게 바라본다면,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가 단순히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연장선상에서 '한강의 기적' 문제가 우리 민족의 성실함만으로 된 것도 아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깊게 보도록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평
고광식 외 옮김, 김육훈 해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20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르몽드 세계사 3- 팍스 아메리카나의 후퇴와 약진하는 신흥 세계
김계영 옮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3년 12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20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르몽드 세계사 2- 세계 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
이주영.최서연 옮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0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20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르몽드 세계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 지구적 이슈와 쟁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권지현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20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