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유주의의 역동성은 19세기를 지난 후까지 지속되지 못하였다. 자유주의의 사상과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급진적 시각조정을 통해 부활시키려던 시도는 실패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유주의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당시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운동과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운동에 보통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흔히, 비록 지적으로 정교하고 세련되긴 하였지만, 사실상 반공주의와 동의어였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658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Liberalism>의 저자 앤서니 아블라스터(Anthony Arblaster)는 자유주의의 역사를 밝히면서, 18 ~ 19세기 초에 절정기를 맞이한 자유주의가 20세기 중반 냉전 자유주의로 변질되었음을 밝힌다. 매카시즘(McCarthyism)으로 대표되는 냉전 자유주의는 파시즘(Fascism) 붕괴 이후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1945년 이후 일종의 부활을 한 자유주의의 지배적 특질은 반공산주의였으므로 '냉전 자유주의'라는 말은 적절하다. 냉전 자유주의의 지배(dominance)는 두드러졌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이고 권위주의라고 하면, 자유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고 또 항상 그래 왔다. 냉전시기에는 이 하나의 태도가 너무도 강하게 자유주의의 전체적 성격을 형성하여서, 자유주의의 더 근본적 원리들이 희생되거나 잊혀졌다. 언론의 자유, 관용과 다양성은 느닷없이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원리들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비자유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체제라도 반공산주의라면 눈감았다. 냉전 자유주의는 전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니며 자유주의를 배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로크, 몽테스키외, 토크빌, 밀의 전통을 이어받고 인용하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행하고 승인한 배반이었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590


 '반(反)공산주의'를 강조하는 이념으로서 냉전 자유주의는 '반공'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결과 냉전 자유주의는 이전 시대 나타난 어떤 형태의 자유주의와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전체주의 이론으로 전락하게 된다. 다른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남은 단 하나의 가치. 그것은 '반공(反共)'이다. 


 냉전 자유주의는 논쟁적이고, 시사문제와 관련 있고, 개입적이다. 그리고 그 개입은 반공산주의 정치에의 개입이다.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특정 문제와 위기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그들의 입장에 대한 강고하고 포괄적인 방어를 구축하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거대하고 정교한 '전체주의' 이론이란 형태로, 그리고 전체주의의 이른바 역사적 지적 뿌리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_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p602


 아블라스터는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에서 자유주의의 핵심을 세계와 인간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전제, 낙관과 긍정으로 해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냉전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이름을 차용한 전체주의의 변용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아블라스터는 냉전 자유주의를 로크, 몽테스키외, 토크빌, 밀의 전통을 배반한 이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아마도 냉전 자유주의자들은 강하게 부정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며, 보수주의자라고 강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주의자들 중의 보수주의자라고 할 만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의 눈으로 봤을 때도 이들은 신이 마련한 국가를 부정하는 폭도에 불과하다.


 "우주를 창조한 지고한 신에게 지상에서 가장 흡족한 것은 국가라고 하는 인간들의 질서 있는 집합체다." 머리와 가슴을 향한 이 교훈을 인간의 공통적 본성과 공통적 관계에서 배운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조회하여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믿고, 또 모든 것을 마땅한 기준에 조회하면서, 가슴의 성소에 참여하는 개인으로서나 그러한 개인의 자격으로 단체를 이루면서 스스로 그들의 고귀한 기원과 위치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단체로서, 공공 사회의 설립자이며 창조자이며 보호자에게 국민적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공공 사회 없이는, 인간은 그 본성상 가능한 완성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으며, 멀리 떨어진 미미한 접근조차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우리 본성이 우리 덕성에 의해 완성되도록 마련한 신이 그 완성을 위한 필요한 수단도 마련했다고, 그리하여 신이 국가를 마련했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신이 국가가 모든 완성의 근원이자 원초적 모범과 결합하기를 바란다고 인식한다. _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p174


[사진] 2020년 8월 15일 광화문 집회(출처 : 경향신문)


 2020년 8월 15일 아직 코로나 19 위기가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 강행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대규모 집회는 신천지 사태 이후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다시 경제활동은 둔화될 것이고, 개학이 연기되는 등 우리 공동체가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반공과 빨갱이만 외치면서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는 저들 극우 집단의 모습을 보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변질된 오늘날의 현실을 확인한다.


 보수주의자인 버크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버크의 반대자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에게 지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페인이 프랑스 혁명을 지지한 것은 혁명이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을 부정한 혁명이었기 때문이지, 왕정복고를 꿈꾸는 반동체제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 국민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루이 16세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전제적 국가원리에 반해서였다. 그 기원은 루이 16세가 아니라, 수세기 전의 근원적 제도에 있었다.  그것은 뽑아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깊이 뿌리박혔고, 기생충과 도둑들로 가득 찬 아우게이어스 왕의 외양간처럼 치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독하게 더러웠기 때문에 완벽하고 철저한 혁명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다._토머스 페인 , <상식, 인권>, p104 


 개인적으로 이들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파시즘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적대감과 파괴를 위한 의지 그리고 급진화. 로버트 O. 팩스턴(Robert O. Paxton)의 <파시즘 The Anatomy of Fascism>의 정의보다 이들의 성격을 더 잘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우리가 파시스트들의 부활을 맞은 이유는 때문일까?


 파시즘 정권들은 마치 하나의 분자구조물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 세력과 보수적 질서라는 두 가지의 완전히 다른 물질이 자유주의와 좌파에 대한 적대감,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매개로 하여 결합하여 탄생한 합성물이 바로 파시즘 정권이었던 것이다. _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p333


 급진화 단계는 파시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 어떤 정권도 급진화될 수는 있지만, 자기 파괴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폭력을 분출하는 파시즘적 충동의 깊이와 위력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급진화의 핵심은 팽창주의 전쟁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체제의 적들, 다음으로는 파시즘의 보수파 동맹 세력, 마침내는 독일 국민들까지 상대로 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 몰살을 기도하며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p384)... 나아가 급진화는 파시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던 민족과 국가마저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최종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불안정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파시즘은 겁에 질린 보수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_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p386


그리고, 이들을 파시스트 집단으로 정의했을 때, 우리는 스핑크스(sphinx)에게 선동(propaganda)당한 파시즘의 계급전사의 모습을 광화문 집회 참여자들로부터 발견하게 된다. 이보다 더 파시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다. 이러한 비극이 우리에게 아직도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찬양하는 강인함, 비밀 엄수, 무자비함이라는 덕목이 실제로는 군인의 덕목이라기보다는 검증된 계급 투쟁 전사의 덕목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전쟁의 용병의 가면 아래 양성되었던 것은 실제로 믿음직한 파시즘의 계급전사들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민족 Nation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계급전사 신분에 의지하는 지배자계급인데, 이 지배계급이 누구에 대해서도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가파른 절벽 위 왕좌에 올라앉아 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내놓은 상품의 유일한 소비자가 될 것을 약속하는 생산자의 스핑크스적 용모를 띤다... 자연과 국가라는 두 힘이 여기서 만들어내는 평행사변형 안에서, 대각선은 전쟁이다._발터 벤야민,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p317


 결국,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어느 쪽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냉전 자유주의가 이 땅에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까지 우리가 냉전 최후의 유산인 판문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Billy Joel의 노래 중 <We Didn't Start the Fire>라는 곡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역사적 키워드를 담은 노래인데, 여기에는 한국전쟁과 관련한 키워드(North Korea, South Korea, panmunjom)이 등장한다. 가사에 담긴 다른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죽거나 흘러갔음에도, 가사의 키워드가 아직도 유독 우리에게 진행형이라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극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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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0-08-19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겨울호랑이 2020-08-19 05:17   좋아요 0 | URL
짜라투스트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