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씨부인은 끊임없이 매질을 하던 형리를 잃었다. 생전의 최치수는 아들이 아니었으며 가혹한 형리였던 것이다. 그것을 윤씨부인은 원했다. 원했으며 또 그렇게 되게 만든 사람이 윤씨부인이다. 그 사실을 지금 윤씨부인은 공포 없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엾은 형리, 세월을 물어뜯으며 물어뜯으며 지겨워서 못 견디어 하다가 그 세월에 눌리어 가버린 사람, 최치수는 윤씨부인을 치죄(治罪)하기 위해 쌓아올린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의 여윈 암소는 아니었는지._박경리, <토지 2>, p368/408


 박경리(朴景利, 1926 ~ 2008)의 <토지 2>에서는 최참판 가문의 당주 최치수가 귀녀와 김평산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이런 상황에 처한 어머니 윤씨부인의 복잡한 심경이 묘사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그렇지만, <토지>에서 윤씨부인이 아들 최치수의 죽음에서 느끼는 감정은 여느 어머니의 슬픔과는 다르다. 불공을 드리던 중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사건 이후 윤씨부인에게 아들 최치수는 예전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에서 돌아오던 날 어머님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달려온 치수를 뿌리친 그때부터 윤씨부인은 죽은 남편의 아내가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편의 아들인 치수의 어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의식의 심층에는 부정(不淨)의 여인이며 아내와 어미의 자격을 잃은 육체적인 낙인이 빚은 절망 이외의 것이 또 있었다. 핏덩어리를 낳아서 팽개치고 온 뼈저린 모성의 절망이었다._박경리, <토지 2>, p368/408


 자신이 낳은 아들이라는 사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윤씨부인의 두 절망이 자신의 정신 층위를 갈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 라캉(Jacques Lacan, 1901 ~ 1981)의 상징계-상상계-실재계와 연관시켜 설명해보면 어떨까.


 라캉은 정신의 세 층위로서 'Imaginaire', 'Symbolique', 'Reel'을 말한다. 우선, 'Imaginaire'는 이미지적인 것, 영상적인 것(Image!), 영상계라 볼 수도 있고, 이미지를 통해 상상하니 상상적인 것, 상상계라고 볼 수도 있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7장에서 심적 장치를 설명하면서 제1차 과정은 지각된 것을 영상으로 바꾸는 것이고, 제2차 과정은 이 영상을 언어(단어)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제1, 2차 과정의 경계는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곳으로서 '영상-단어'의 짝이 문제시되는 곳이다. 두 번째로 'Symbolique'는 상징적인 것(Symbol~)으로 구성되는 상징 체계이다. 마지막 'Reel'은 뭐라고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 체계에 가두어지지 않는 어떤 것인데, 실재적인 것, 실재계로 불린다. 라캉은 실재적인 것 안에서 상징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접합과 교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셋의 어울림이 바로 정신 작용인데, 이 삼위체는 정신분석 기술을 세우는 체계이자, 정신분석 기술 개념을 생산해 대는 장치이다._ 강응섭, <자크 라캉의 세미나 읽기>, p26/240


 소설에는 나오지 않은 사실이니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원치 않은 일을 당하기 전 윤씨 부인의 현실은 자신이 가고자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리고 사회규범과도 어그러지지 않은 삶이 아니었을까. 윤씨 부인의 삶에서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는 크게 충돌하지 않고 '대지주 가문의 안방 마님'으로서 자신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삼위일체가 되어 분열되지 않은 자아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상태. 이것이 사건 전의 윤씨 부인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상징계'와 '실재계'와 건널 수 없는 틈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그의 모든 것이 바뀌었던 것은 아닐까.

 

 라캉에게 인간존재의 현실을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 등 얽혀 있는 세 차원으로 구성된다. 이 세 영역은 체스 게임에서 간명하게 예증된다. 체스를 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칙은 체스의 상징적 차원이다. 상징적 차원은 상상적 차원과 명확히 대비된다. 상상적 차원에서 각각의 말들은 특유의 형태를 가지며 서로 다른 이름(왕, 왕비, 기사)으로 개별화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는 게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속적인 환경의 전체집합이다. 경기자의 지능이나 경기자를 당황하게 하고 갑자기 게임을 중단시키는 예기치 못한 침범 같은 것이다. 대타자는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상징적 질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의 발화 행위는 복잡한 규칙의 네트워크와 서로 다른 전제들의 수락과 의존으로 이루어진다._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p20/160


 라캉의 타자가 상징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자기 너머에 있는 절대적 타자라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고, 해석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윤씨 부인의 타자는 '정결(貞潔)'이라는 사회적 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윤씨부인의 감정과 태도는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는 라캉의 유명한 말을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윤씨부인이 느꼈던 두 절망 중 하나는 사회적 규범 문제로 무리없이 잡을 수 있지만, '모성(母性)' 문제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통해 내용을 정리하는 것으로 넘기고, 다시 <토지 2>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1999)에서, 허디는 가능한 모성적 본능들을 탐사했다. 그는 모든 포유류 암컷에 타고난 모성적 반응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미가 자신이 낳는 모든 자식을 자동으로 양육하지도, 모든 자식에게 똑같은 정도로 헌신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간에게 초기의 모성적 헌신은 다양한 요인, 특히 사회의 뒷받침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_ 버니지아 헤이슨 외, <포유류의 번식 - 암컷 관점> , p14/286


이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실재계의 '아들' 최치수를 잃은 슬픔보다 '치죄자' 최치수를 잃은 감정을 더 크게 느꼈을 윤씨부인의 내면에서 타자와 자신을 분리시킬 여지는 없어보인다. 이의 연속선상에서 최치수 죽음 후 더 냉혹해지는 윤씨부인의 태도는 '상징계의 타자'를 잃은 분노때문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토지>를 읽던 중 유독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한 대목에서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나열한 페이퍼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그것은 회환 때문이었다. 공포 없이 생각할 수 없는 치죄자(治罪者)로서의 최치수, 그는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도현의 고초를 겪는 망모의 구원을 위해 석가에게 법을 물었던 목련존자(目連尊者)일 수 없는, 심판장의 형리로 그 어미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이다. 목련존자의 악모 이상의 악모임을 윤씨부인은 깨달은 것이다._박경리, <토지 2>, p368/409 


 날이 갈수록 윤씨부인에게서 뿜어나오는 독기는 치열해졌으며 삼엄하고 공포에 찬 공기는 충만하여 하인들은 주술에 걸린 것처럼 빠져나갈 구멍조차 찾을 수 없이 마치 제가끔 자신이 치수를 죽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_박경리, <토지 2>, p3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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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11 14: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씨부인의 심정을 저렇게 라캉의 이론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철학은 철학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읽고는 연결을 못시켜서 항상 따로 놉니다. ㅎㅎ 토지의 인물 성격 묘사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아 사람이 정말 단순한 존재가 아니구나, 얼마나 다양한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한 인물이 얼마나 다양한 면들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 깊고깊은 곳이 토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언제든 제가 읽은 최고의 소설은 변하지 않고 <토지>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1-06-11 14:5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토지>는 잔잔하게 그려낸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이 적절하게 잘 드러난 작품이라 여겨지네요.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아리랑>의 배경이 넓다면, <토지>의 인물은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붕붕툐툐 2021-06-11 17:52   좋아요 2 | URL
저도요!! 최고의 소설은 <토지>!!

붕붕툐툐 2021-06-11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시금 토지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라캉과 연결해 읽기 인상적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19:1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붕붕툐툐님. 뒤늦게 <토지>를 읽는데, 참 대단한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6-11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이 대목에서 분노가 일어요. 피해자였을 뿐이었던 윤씨부인은 왜 자신을 죄인이라는 굴레에 얽매었어야 했을까. 당대 윤리가 지금과 다름을 감안한다 해도 여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지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은 치죄자를 두어 자신을 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토지> 세계관에서 가장 사패에 가까운 최치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오히려 힘들었다는 점에서 자기 구원이란, 해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한편 이런 냉정함을 서희가 물려받았기에 서희는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아 토지 다시 읽고 싶네요 ㅠㅠ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6-11 23:27   좋아요 2 | URL
조그만메모수첩님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윤씨부인의 치죄자는 아들 최치수가 아닌 오히려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완벽한 아내, 어머니로서 존재해왔던 윤씨부인이 변을 당한 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최치수를 볼 때마다 느꼈기에 아들을 멀리했고, 그 결과 한창 성장기에 엄마의 사랑을 못 받은 최치수는 점차 차갑게 변해가고, 그런 아들을 볼 때마다 윤씨부인은 더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악순환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최치수 역시 피해자이며, 마치 불효자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후회하듯, 윤씨부인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풀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가도 생각해 봅니다.(이 경우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바뀐 듯 합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저는 윤씨부인도 피해자이지만, 이로 인해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의 벽을 느낀 최치수가 어쩌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함께 우리 모두가 사회와 관계를 맺고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산다고 했을 때, 우리의 상상계는 주변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만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우리의 상상계와 윤씨부인의 상산계는 아마도 다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상상계-상징계-실재계의 관계는 오늘날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그에게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한 인물의 작은 사건 하나로 여러 관점에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조그만메모수첩님 좋은 의견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수(漢水)·면수(沔水)에 의지해있고 이로움은 남해(南海)까지 다하며 동쪽으로는 오회(吳會, 강소성 소주시)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파(巴, 사천성 중경시)와 촉(蜀, 사천성 성도시)으로 통해 있으니 이는 전쟁하기에 적당한 나라이며 그곳의 주군은 지킬 능력이 없으니 이것은 거의 하늘이 장군에게 보탬이 되어 준 것입니다.

익주(益州, 사천성과 운남성)는 험준한 요새이고 비옥한 들판이 1천 리이며 천부(天府)의 토지입니다. 유장(劉璋)은 어리석고 약하며, 장로(張魯)는 북쪽에 있으면서 백성은 많고 나라는 부유하나 불쌍히 여겨 구휼함을 모르니, 지혜롭고 능력 있는 선비는 개명한 주군을 얻으려고 생각합니다.

장군은 이미 황족의 후예이며 신의는 사해에 드러났으니 만약 형주와 익주를 걸터앉고 그 바위로 막힌 곳을 지키고 융족(戎族)과 월족(越族)을 어루만지며 화목하고, 손권과 우호관계를 맺으며 안으로는 정치로 닦고 밖으로는 시대가 변화하는 것을 바라본다면 패업을 이룰 수 있고 한실을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17/56) - P17

운수가 이동하고 대세가 사라지기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부귀함이 어질지 못함을 만들어 내고 가라앉고 빠진 것이 어리석고 괴로움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존망이 이로 인하여 부단히 교체하고 치란(治亂)도 이로부터 돌고 반복하니, 천도란 늘 그러한 큰 운수이다.(12/56)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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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심각한 경우든 가장 가벼운 경우든 모든 사례가 다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실수나 우연 행위 속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현상들의 근원을 따지면 모두가 불완전하게 억압된 심리 재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심리 재료는 의식에 의해 거부되긴 했어도 그 표출 능력을 완전히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214/272)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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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이나 동맹은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에 부끄럽게 여겼던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려 합니다. 로마는 ‘동맹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우리의 군대를 로마의 군대에 추가하여 그들의 병력을 두 배로 늘리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가 로마의 허가없이는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독립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공정이고 동맹입니까? 왜 모든 것이 이처럼 공정하지 못합니까? 왜 라틴 인 출신의 집정관은 없는 겁니까? 힘을 공유할 수 있어야 권위도 공유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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