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지러운데 고칠 수 없고 임금이 위태로운데 구제할 수 없으면서 각기 숨어 도망하여 죽음을 면하려고 한다면 어찌 신하라고 하겠소!"(18/102) - P18

"무릇 큰일을 일으키려면 당연히 천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군사가 이기는 것은 화합하는데 있으니 의당 달라서는 안 됩니다."(21/102) - P21

오늘날의 일과 형편은 의로운 사람들이 뒤좇아 일어나는 일이 없으니 비유컨대 호랑이 등을 탄 형세인데 어찌 중간에서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공께서 만약 무리들의 생각과 달리 홀로 돌아가신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반드시 다치게 할 것이며, 무리의 마음이 다치고 일이 실패하면 의로운 깃발은 장차 돌아서 공을 지향할 것입니다."(32/102)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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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받드는 유교적 충성심이 깔려 있는 포고문은 바로 민씨 정권을 향한 전면적 선전포고였고 벼슬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리는 양반 유림을 향한 질타였다.

황현의 기록은 고부 봉기와 의사 봉기를 묶어 이야기하고 있다. "동학과 난민이 결합했다"는 표현은 동학이라는 종교 주도의 봉기가 아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농민군의 성격을 잘 규명한 분석으로 눈길을 끈다

이렇게 집강소를 통한 자생적인 신분타파운동, 상하존비 곧 계급의식을 타파하고자 한 예절개선운동은 인권사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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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을 가진 왕의 군대는 반드시 하늘의 때와 인간의 사정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일으키는 것입니다."(31/99) - P31

"위대하신 우(禹)임금은 성인이신데도 촌음(寸陰)을 아꼈으니, 보통사람들은 응당 분초를 아껴야 할 것이오. 어찌 다만 편히 놀면서 황당하게 술에 취하여 살아서는 그 시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는 뒤에 아무것도 들려주지 못하니 스스로 포기할 것인가?"(15/99)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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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야겠구나! 땅은 황폐하고, 백성들의 수는 적으며, 형세는 외롭고 원조는 끊어졌는데, 장차 어떻게 이를 헤쳐 나가랴! 그러나 죽어서 충성과 의로움을 얻는다면 무릇 다시 무엇을 더 찾을 것인가?"(15/91) - P15

무창이 이미 평정되고 나면 그곳에 있는 군사물자를 점거하여 두 주(州)를 진무하며 은혜를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사졸들을 불러들여 품어주고,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에 돌아간 것처럼 해주시는데, 이러한 것이 여몽(呂蒙)이 관우(關羽)를 이겼던 이유입니다.(21/91)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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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왕이 형벌을 사용할 때에는 오직 으뜸가게 악한 사람만을 죽일 뿐이니 마땅히 많이 죽여서는 안 됩니다."(35/93) - P35

"진시황(秦始皇)을 장사지내며 삼천(三泉)을 굳게 막아버렸지만 장사지낸 흙이 다 마르기도 전에 파헤쳐져서 훼손되었습니다. 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와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이 없으니, 그러므로 성스러운 임금은 검소하게 장사를 지내서 마침내 깊이 먼 장래까지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중흥하는 시절에 나라를 망칠 일을 뒤좇아 하시려고 합니까?"(39/93) - P39

"음과 양이 착란(錯亂)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형벌을 번거롭게 많이 써서 온 것입니다. 죄를 사면하는 것도 자주 하고자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러나 자산(子産)이 형법의 조문을 주조하는 것이 잘하는 정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부득이하여 만든 것이니 반드시 폐단을 구하려고 하였던 연고였습니다."(47/93)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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