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란 무엇인가
임마누엘 칸트 외 지음, 임홍배 옮김 / 길(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미성년 상태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서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의 결핍 때문이라면 미성년 상태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_이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 p28


 <계몽이란 무엇인가>에는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를 비롯한 모세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9 ~ 1786),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 등이 <베를린 월간 학보>에 발표한 '계몽(啓蒙)'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19세기 지식인들이 가졌던 '계몽'과 '이성'의 역할, 그리고 계몽을 위해 필요한 전제 등을 알게 된다. 


 여러 지식인들의 글을 소개한 책이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계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각자가 찍은 서로 다른 방점은 계몽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책에서 계몽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어떤 이는 '자유'를, 다른 이는 '법률' 등 제도를 말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성의 자유로운 사용이 강조되는 반면, 또다른 부분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강조된다. 마치 자유주의자와 전체주의자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성의 사용'이 단편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에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계몽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계몽'의 틀을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사고방식의 진정한 개혁을 가져오는 계몽을 위해서는 다름 아닌 자유가 요구된다. 특히 자유라 일컬어지는 것 중에서도 가장 해롭지 않은 자유, 다시 말해 어떤 일에서든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요구된다._이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 p31


 프로이센의 군주는 마치 아버지가 자녀들과 함께 어울리듯 신하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지 않은가? 의문의 여지 없이 프로이센은 세계에서 가장 계몽된 나라이다. 계몽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군주의 생명이 안전하고, 모든 나라의 법률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법률을 통해 신민들의 안녕과 양심의 권리와 시민의 자유가 확고한 기반 위에 보장되어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_ 안드레아스 림,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은 인간 이성의 요청이다> , p190


 이 부분 이해와 관련해서는 칸트의 이성의 사적(私的) 사용과 공적(公的) 사용을 다룬 옮긴이의 해제가 도움이 될 듯하다.  비록, 오늘날의 이해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라 조금 혼동이 올 수도 있지만, 의미면에서 '이성'을 이분화(二分化)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강조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됨을 느끼게 된다. 


 국가에 봉사하는 '관직'의 의무에 합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 일컫고, 반면 그런 관직의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식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성의 '사적' 사용은 도구적 이성을 가리킨다. 그런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은 '단지 수동적 태도만 취하게 하는 기계적 장치'의 일부로 기능하며, 이성 사용의 보편타당성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되고 국가의 명령과 관직의 의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반면 이성의 '공적' 사용에서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_임마누엘 칸트 외, <계몽이란 무엇인가> , 해제, p254


 마지막으로 '계몽'과 '이성' 그리고 '근대화'와 관련해서, 대략 두 가지를 추가적으로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먼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화로 가는 길을 열었던 일본은 '도구적 이성'을 강조한 개혁을 이뤘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왕제'와 '이성'이 공존하는 기묘한 형태의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도구적 이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M.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 ~ 1973)의 <도구적 이성 비판 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nft>의 책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리뷰에서 마저 정리하도록 하자...

국민이 스스로에 관해 결정해선 안 될 일을 하물며 군주가 국민에 대해 결정할 수는 없다. 군주의 입법적 권위는 전체 국민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와 합치시키는 데 근거하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개선 또는 개선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시민적 질서와 더불어 존립한다는 사실을 군주가 유념하기만 한다면 군주는 그의 신민들이 영혼의 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군주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_이마누엘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 - P35

프로이센 사람들은 그들의 적인 편견에 맞서 과감히 투쟁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프로이센을 지켜주는 가장 확고한 보루이다. 프로이센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몽테스키외가 왕권의 전횡을 막기 위해 적극 옹호한 견제장치보다 더 효과적인 기능을 한다. 프로이센 군대가 무적의 힘을 보유한 것은 복종체계 덕분이다. 프로이센의 시민사회가 확고한 질서를 갖춘 것은 그런 복종 체계에 연유한다. 그런 복종체계야말로 프로이센 국가 전체를 지탱하는 정신이다._ 에른스트 페르디난트 클라인, <계몽이란 무엇인가> <사상과 출판의 자유에 대하여> - P83

계몽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누구도 모든 학문 분야에 통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계몽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자산이 되려면) 계몽의 대상을 보편적 인간 행복의 기초가 되는 진리로 설정하는 것이 계몽의 요체다._ 카를 프리드리히 바르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언론의 자유와 그 한계> - P89

객관적 진리란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것을 뜻하다...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사물 자체가 우리의 표상을 통해 실현되거나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를 통해 실현되거나 할 수 있지만, 두 경우가 서로 긴밀히 얽혀 있어서 명확히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 전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이성과 상충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표상은 결코 사물 자체와 일치할 수 없다._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계몽이란 무엇인가> <유럽 군주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회복할 것을 촉구함> - P15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06-29 1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뭐뭐란 무엇인가, 하는 책이 어렵더라고요. 그런 어려운 맛에 읽는 거라고 봅니다.
어려움의 산을 넘고 넘고 하다 보면 마침내 어떤 깨달음의 문 앞에 당도할지니...^^

겨울호랑이 2021-06-29 12:38   좋아요 3 | URL
^^:) ‘~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들은 대체로 주장이 너무 단정적이고 내용상으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독자가 생각을 정리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면에서 의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듣기로는 큰 나라에 살면서 아무런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은 항상 거만한 짓을 많이 하고, 작은 나라에 살면서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잘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거만한 짓을 많이 하면 혼란이 생겨나고 잘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잘 다스려지는 일이 나타나는 것은 이치로 보아서 늘 그런 것입니다. (24/79) - P24

무릇 대업을 세운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고, 각각 그 숭상하는 바를 갖고 있지만 여러 가지를 겸하여 가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무력을 끝까지 쓰는 영웅은 어질지 못한 데서 죽게 되고, 의를 갖고 있는 나라는 나약하고 물러나는데서 잃게 된다.(29/79) - P2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06-29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절하게 기도할 게 있는 사람이 겸손해지는 법이죠. 기도할 게 없을 정도로 일이 다 잘 풀리면 거만해지죠.

겨울호랑이 2021-06-29 12:32   좋아요 1 | URL
페크님 말씀처럼 우리 삶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것이 우리에게 더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서양 각국과 일본에는 있고, 중국에는 없는 것은 사회 전체에 권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이었다. 국가가 충분히 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 자체에 기업가들을 도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각종 제도, 은행, 합자회사 나 입법적 틀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이 다른 길을 걷게 된 많은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국가의 힘과 조직, 지휘감독의 차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손이 일찍이 제갈각에게 말하였다.
"나보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내가 반드시 받들어 함께 승급하도록 하고, 나보다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부축하여 받아들여라."(24/74) - P24

의논하는 자들은 대부분 장군에게 신중함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장군께서 신중하신 것은 옳지만 군사를 정지시키고 나아가지 않는 것은 그릅니다. 신중하게 한다는 것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진하지만 범접할 수 없게 하는 것뿐입니다.(36/74)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차에 관한 최소한 한 가지 해석은, 정체성의 범주가 단일해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바로 모든 정체성 안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젠더 트러블」은 최소한 두 가지 종류의 다른 도전과 마주해애 했다. 이제 나는 이런 문제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 후속 작업에서는 그게 시작되기를 바란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5

전작「젠더 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성차‘를 양성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기를 거부하고, 젠더가 사회적 규범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헤겔, 라캉의 해석과는 또다른 궤를 통해 보다 실체화시켰다면, 「젠더 허물기」에서는 교황청과의 논쟁등을 통해 보다 정치철학적 면모를 보인다.

「젠더 허물기」에서 언급된 철학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미셸 푸코다. 그의 세계가 「말과 사물」에서 「성의 역사」로 이어졌다면, 버틀러는 「성의 역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젠더 허물기」를 통해 정치적 해결점을 찾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본문 중에 제시된 버틀러의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에피스테메(episteme)에서 보다 행동화된 주장으로 실체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스스로 젠더의 규범화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또 무엇이 실제이자 진실로 간주되는지의 문제는 분명 지식의 문제이다. 그러나 푸코가 밝히듯, 그것은 또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리‘와 ‘실재‘를 갖고 있거나 보유한다는 것은 사회 세계에서 대단히 강력한 특권이자, 권력이 마치 자신은 존재론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편이다... 지식과 권력은 결국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은 함께 세계에 대한 사유를 하기 위한 미묘하고 분명한 일단의 기준을 설정하는 일을 한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