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의 전통적인 사회 규범으로서의 예(禮), 즉 '주례(周禮)'의 권위가 크게 약화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서 중앙집권적인 법(法)이 제정되고 규범이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지식인들은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고 새로운 질서를 경계하는 보수적인 입장과 옛날의 제도를 부정하고 혁신하려는 진보적인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전자가 바로 '유학 지식인들', 즉 유가(儒家)들이었다면, 후자는 바로 '관료 지식인들', 즉 법가(法家)들이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7


 강신주의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는 공자(孔子, BC 551 ? ~ BC 479 ?)에서 시작된 유교(儒敎)가 맹자(孟子, BC 372 ? ~ BC 289 ?)와 주희(朱熹, 130 ~ 1200)에 의해 시대의 도전을 이겨내고 새롭게 변모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유학의 본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주(周)나라가 쇠약해지는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에 공자는 예(禮)와 인(仁) 그리고 서(恕)를 통해 전통으로의 복귀를 강조한다. 전통적인 행위 규범인 '예'와 이를 내면으로 받아들인 '인'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서'는 공자 철학을 대표하는 핵심어이며, <논어 論語>는 이를 잘 담고 있는 책이다.


안정되고 질서 잡힌 사회는 피통치자들이 '도덕적 수치심(恥)'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공자는 이를 위해 먼저 주례를 잘 지켜야한다고 통치자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한비자와 공자의 정치철학, 즉 '법에 의한 통치[法治]'와 '예에 의한 통치[禮治'는 타율적 복종인가 아니면 자율적 복종인가 하는 차이점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38

 공자와 안연의 대화에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자신을 이겨서 예를 회복한다'는 이 말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여 예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의 모습을 공자는 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한 사람이란 '예를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41


 공자의 자기 반성은 주체가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예에 의해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냈을 때, 그것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서(恕)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에게 내면화된 예의 명령에 따라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57


 그렇지만,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03 ~ BC 221)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게 된다. 진(晋)나라가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뉘어지고, 제(齊)나라 주인이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바뀌면서 시작된 철기문명의 전국시대에서 공자의 사상은 위협받는다.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가는 양주(楊朱, BC 440 ? ~ BC 360 ?)와 묵자(墨子, BC 480 ~ BC 390)로 이들에 의해 국가, 가족의 질서는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맹자는 새롭게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응전해간다.


 맹자에 따르면 양주의 철학은 '자신만을 위하기[爲我]' 때문에 군신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국가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한편 묵자의 철학은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랑하기[兼愛]' 때문에 부자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가족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69


 

맹자에 의하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주체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현실적인 경험에서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측은지심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서 맹자는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측은지심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결론 내린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5

 

 맹자가 도입한 '본성'이라는 개념은 유교 사상 체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공자의 '예'가 거울과 같은 본보기였다면, 맹자의 '예'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무게 중심은 예에서 인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사상 차이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떠올리게 된다. 공자의 '예'에서 깨닫고도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한다는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떠올리고, 맹자의 '예'에 단번에 깨닫고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연상한다면 다소 무리한 연관일 수도 있겠지만.


 공자는 교육을 통해 주례(周禮)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것을 권고했다. 모든 사람이 서(恕)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맹자에게 있어서 예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는 학습 대상이 아니었으며 우리 마음의 본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덕목이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유학의 이론을 내재화하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22


 공자에게서는 인보다는 예가 근본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맹자는 예보다 인을 더 중요시한다. 이는 그의 정치 이상이 인한 정치[仁政]로 표현된다는 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예를 맹자는 본성이 실현되어 나오는 네 가지 마음 중 세 번째 마음 정도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맹자에게 있어 예란 예의범절이라는 외적 형식을 학습해서 내면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불현듯이 출현하는 사양지심과 관련된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78


 이러한 맹자 사상과 공자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맹자의 사상이 본성이라는 혁신을 이루었지만, 지나친 낙관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가한다. 예를 본성으로 내면화했지만, 이것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우며, 오히려 순자(荀子, BC 298 ? ~ BC 238 ?) 철학에서 체계적인 논리와 함께 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공자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음도 지적한다.


 순자는 '본성[本性]의 영역'과 '인위[僞]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본성의 영역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인위의 영역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에 의해 변경 가능한 영역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예를 사단이라는 형식을 통해 본성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 것과는 달리, 순자는 그것을 인위의 영역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순자는 성악설을 통해 예를 외재성이라는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00


  또한, 외래 사상인 불교(佛敎)사상에 대항하는 유학의 또다른 모습인 성리학 사상을 소개하면서 본성의 문제가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가도 이(理), 기(氣)의 개념과 함께 설명된다. 이처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온 유학의 모습과 주요 사상가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로부터 독자들에게 유학이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끊임없이 변화해온 물과 같은 학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송대의 신유학이나 시유학을 체계화한 주희 철학이 후대에 성리학[性理學]이라고 불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들 모두 인간 내면의 잠재성으로서의 '성[性]'과 인간 외부에 있는 사태들의 법칙으로서의 '이치[理]'가 같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즉리[性卽理], 즉 '우리의 본성과 외부 사태의 이치가 같다'는 명제는 주희 철학 체계의 핵심테마가 된다.(p111)... 주희의 발상 중 핵심은 인간에게만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도 그들만의 본성이 있다는 주장에 있다._ 강신주, <공자 & 맹자 : 유학의 변신은 무죄>, p116 

 이와 함께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 걸기>, <정약용 & 최한기 : 실학에 길을 묻다>, <이황 & 이이 :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는 지식인 마을에서 관련성이 높은 책이기에 더불어 읽는다면 체계적인 동양철학 줄기를 잡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논어>와 관련하여 깊이 읽고 싶다면,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이토 진사이의 <논어고의>를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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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9-17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한창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있는데, 오고쇼 씨도 천하를 삼킨
다음에는 무력으로 지배할 수 없다며
논어와 맹자 타령을 하는 걸 보면
역시나 주자학이 지배 계급의 질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7 11:5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종교 또는 사상이 국가와 결탁하게 되면 초기의 뜻보다는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는 현상을 예외없이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한 변화가 사상이나 종교를 처음 일으켰던 선각자들의 뜻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반추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