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세계 10대 문명 7
안나 반잔 지음, 송대범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헤로도토스는 ˝어떤 나라들도 페르시아만큼 외국관습을 기꺼이 채택하지는 않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에서는 다양한 인종요소들이 통합되어 아케메네스 양식을 구성하는 독창적인 종합양식을 형성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80

안나 반잔의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문명의 유적, 유물들을 통해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 담긴 사진들은 시간에 따라 정렬되어 독자들을 마치 박물관으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책의 핵심은 이 부분이지만, 리뷰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이어 아쉽게 느껴진다.

아케메네스 제국을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어느 정도 제국의과업을 지속하려고 했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실로 빠르게 ‘이란화‘되었다. 그는 사트라프피 체제를 토대로 아케메네스의 통치체제를 유지햇다. 그리고 그는 이란 고원의 지배자들을 부유하게 했던 교통망과 교역의 확장 노력을 모방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30

이란 고원에 형성된 중앙아시아의 제국(帝國)의 역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글로벌-로컬 global-local‘의 순환이 아닐까 생각된다. 알렉산드로스의 대제국은 중앙집권화된 다리우스의 제국이 없었다면, 그토록 짧은 시기에 확장될 수 없었을 것이고, 이전 시기의 융합정책이 없었다면, 헬레니즘 시대의 코스모폴리탄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글로벌 global‘이라고 한다면, 이어지는 ‘파르티아-사산조‘의 역사는 ‘로컬 local‘이라는 반동(反動)의 움직임이다.

파르티아인들의 도래는 이란 고원의 헬레니즘을 종식시키고 ‘이란다움‘의 부활로 이어졌다(p132)... 사산 왕조는 이란의 심장부인 파르스 출신인 자신들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적통을 잇는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가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와는 달랐다. 서쪽으로는 강력한 로마 제국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박트리아에 정착해서 기원전 100년에 최종적으로 그리스인들을 몰아낸 쿠샨 왕국이 있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서쪽으로 밀고 나오는 헤프탈족, 즉 백인 훈족들의 위협도 있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44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글로벌-로컬‘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은 이슬람화된 이후 역사 속에서도 이어진다. 세계종교인 이슬람교 내에서 소수파인 시아파가 다수인 아랍과는 다른 이란만이 갖는 독특함을 발견하게 된다.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가 결혼했다는 <쿠시나메>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듯 세계와 연결되었으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함을 간직한 이란-페르시아 문명의 성격을 생각하게 되는 도록이었다...

그 이후 사산 왕조의 문화는 일본에까지 건너갔다. 나라[奈良]에 있는 왕실 보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에서 우리는 중국을 통해 전해진 각종 악기, 식기, 상자들과 특히 사산 왕조의 영향을 받은 직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_ 안나 반잔, <페르시아>,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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