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무기와 침도(針刀, 의술용)는 모두 반입될 수 없었고, 황상이 전(錢)과 비단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얻지 못하였으며, 종이와 붓을 요청하였으나 역시 주지 않았다. 당시 날씨가 대단히 추웠는데 빈어와 공주들은 의복과 이불이 없었으니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유계술 등은 조서를 고쳐가지고 태자에게 감국(監國)하게 하고, 태자를 영접하여 궁궐로 들어왔다.

무릇 인주(人主)께서 중시할 것으로는 신뢰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이미 이러한 조서가 내려졌다면 그를 지키는 것이 마땅히 견고해야 하고, 만약 다시 한 사람이라도 도륙한다면 사람마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무릇 제왕(帝王)의 도리란 당연히 중후(重厚)함을 가지고 그들을 진정시켜야 하며, 공정(公正)함을 가지고 그들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고,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교활한 음모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쪽에 계기가 생기면 저쪽에 계기가 호응하게 되어 끝내 큰 공로를 이룰 수 없게 되니, 이른바 누에고치의 실을 잘 정리하려 하다가 오히려 더욱 헝클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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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왕들은 마땅히 스스로 혐의(嫌疑)를 피해야지, 가볍게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폐하께서 만약 우애를 가지고 용납하고 있다면, 청컨대 옛 제도에 의거하여 16택(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사부(師傅)를 절묘하게 선발하여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가지고 가르쳐서, 군대를 다루거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한건이 주문을 올렸다.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로부터 근보(近輔)와 서로 나빴던 것은 모두가 여러 왕들이 군대를 다루고 흉악한 무리들이 화란을 좋아하여 난여(?輿)가 불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 신(臣)이 주문을 올려서 병권을 철회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예측하지 못할 변란을 염려해서입니다. 지금 듣건대 연왕(延王)과 담왕(覃王)이 오히려 흉한 계획을 끌어안고 있다 하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성스런 판단을 내리어 의심하지 말며, 아직 변란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통제하신다면 사직(社稷)의 복일 것입니다."

한건이 또 주문을 올렸다. "폐하께서 현명한 사람을 선발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임용한다면 재앙과 어지러움을 청산하기에 충분한데, 왜 반드시 전후사군(殿後四軍)을 별도로 설치하셔야 했습니까! 두터움과 엷은 은혜와는 차이가 두드러지게 있으니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하는 도리를 어겼습니다. 또 모아놓은 사람들은 모두 시장거리에서 무뢰하고 간악하며 교활한 무리들로 평안하게 거처할 때에도 여전히 재앙과 변고가 나기를 생각하였으니, 환난에 직면하여서는 반드시 쓰임이 되지 않을 것인데, 그들에게 활을 당기고 칼을 잡게 하여 황상의 수레에 밀착시켜 가까이하게 하니 신은 가만히 마음이 오싹합니다. 빌건대 모두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유인공이 또 사신을 보내어 이극용에게 사죄(謝罪)를 하고, 거취(去就)와 스스로 편안하지 못한 속마음을 설명하였다. 이극용이 회답하였는데, 그 대략이다. "지금 공(公)은 부월(斧鉞)에 기대고 군사를 장악하였으니, 백성을 다스리고 법규를 세우고, 인사들을 발탁하고서 그들이 덕에 보답하기를 바라고, 장수들을 선발하고서 저들이 은혜에 보답하기를 희망하겠지만, 이미 아직 그렇지 못하니, 다른 사람들이 어찌 충분히 신뢰하겠소!
내가 헤아리건대, 의심과 방비는 골육으로부터 나올 것이고, 미움과 질투는 병유(屛?, 병풍 쳐진 휘장 안, 막사) 안에서 발생할 것이며, 간장(干將)을 가지고 있어도 감히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것이니, 맹세하는 접시52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해도 무슨 말로 맹세를 드러낸다는 것이오!"

우습유(右拾遺) 장도고(張道古)가 소문을 올려 말하였다. "국가에는 다섯 가지의 위기와 두 가지의 재난이 있습니다. 옛날 한 문제(漢 文帝)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가의 사무를 명백히 익혔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등극한 지가 이미 10년이나 일찍이 임금 됨과 신하를 부리는 방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종(太宗)은 안으로 중원을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사방의 이족(夷族)들을 개척하며 바다 밖의 나라도 들어와 신하가 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먼저 있었던 조정이 물려준 영역은 날로 오그라들어서 거의 없어졌습니다. 신은 비록 미천하나 가만히 폐하의 조정과 사직이 처음에는 간신들에 의해 농간을 당하다가 끝내는 역신(逆臣)들의 소유가 될 것을 마음아파 합니다!"

"여러 방사(方士)들이 궁정을 출입하며 성청(聖聽, 천자가 들음)을 현혹시키니 의당 모두 금지하여 궁에 들어올 수 없게 하십시오." 조서를 내려 모두 그의 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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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부사 황갈(黃碣)이 말하였다. "지금의 당실(唐室)은 비록 쇠미하였지만 천도(天道)와 인심(人心)은 아직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제 환공(齊 桓公)과 진 문공(晉 文公)은 모두 주실(周室)을 보좌하고 추대하며 패업(?業)을 이루었습니다. 대왕(大王, 동창)께서는 밭도랑과 밭이랑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서 조정의 두터운 은혜를 받아 지위가 장상(將相)에 이르고 부귀가 극에 달하였는데, 어찌하여 하루 사이에 홀연히 가족이 멸할 계책을 세우려 하십니까! 저 황갈은 차라리 죽어서 충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반역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번진의 신하 가운데 발호하는 사람이 이무정에 그치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종묘(宗廟)와 원릉(園陵)을 떠나 변방 시골을 순행(巡幸)하신다면, 신은 거가가 하(河, 황하)를 건넜다가 다시는 돌아올 기약이 없을까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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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되던 날 산속의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나와서, 초안채로 가는 것이 마치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고, 초안채가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해체하여 이것을 넓혔으며, 장사하는 곳이 점차로 생겼고, 또 삼을 꺼내 그것을 판매하기도 하였다.

백성들은 촌락에 약탈하거나 폭행하는 근심거리가 없게 되는 것을 보고 점차로 현령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원래의 생업으로 돌아갔다. 한 달여 후에 초안채는 모두 텅 비게 되었다.

유자는 그 집안의 자제들에게 일찍이 훈계하면서 말하였다. "무릇 가문의 지위가 고귀하다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지 믿을 만한 일은 아니다. 자신을 세우고 움직이면서 만약 한 가지 일이라도 실수가 있게 되면 죄과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죽은 후에도 지하에 계신 조상들을 뵐 면목이 없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이유인 것이다. 가문이 고귀하면 교만한 마음이 쉽게 생기고, 가족이 창성(昌盛)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질투를 받게 된다. 아름다운 품행과 실제적인 재간은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사소한 결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리들은 모두 그것을 지적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그 믿을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름진 것을 먹는 집안의 자제들은 배우는데 의당 더욱더 근면해야 하며 행동에서는 의당 더 힘써야 하는데, 겨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을 뿐이겠는가!"

"지금 조정에서는 단지 강약(强弱)만을 살필 뿐이지 시비(是非)를 따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쇠잔한 사람들을 묶어서 법을 시행하지만, 강성한 사람들을 따라서 은상을 내리고 있어서 사물의 치수(?銖)는 사람을 보고서 형광(衡?)94하고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황상이 말하였다. "왕실의 지위는 갈수록 낮아지고, 호령은 국문을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뜻이 있는 지사들이 비분하고 침통할 시기이다! 약을 먹고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하지 않으면 그 질병은 완치될 수 없소.98 짐은 즐거운 마음으로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가 되어 묵묵히 나날들을 보내면서 앉아서 모욕하는 것을 볼 수는 없소. 경(卿)은 단지 짐을 위해 군량미를 조달하면 짐이 친히 여러 친왕들에게 위임하여 군대를 사용할 것이고 성패는 경에게 책임 지우지 않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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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이 조용히 장준과 더불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치란(治亂)을 논의하였는데, 장준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영명하시고 슬기롭기가 이와 같지만, 그러나 안팎으로 강력한 신하들에게 견제되니,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지근거리게 하는 것입니다." 황상이 현재 급한 일을 묻자, 대답하였다.
"군대를 강력하게 하여서 천하를 복종시키는 것만 같은 것이 없습니다." 황상은 이에 경사(京師, 장안)에서 널리 병력을 모집하였는데, 온 사람이 10만 명이었다.

진경선(陳敬瑄)은 부유한 백성의 재산을 거두어 군대에 공급하면서 징독원(徵督院)을 설치하여 차꼬와 수갑을 채우고 채찍을 쳐서 압박하여 각자에게 자기의 재산을 스스로 등록하도록 하였는데, 무릇 재산을 가진 사람이 만약에 재물을 은닉하였거나 허점(虛占)하였다면 급히 징발하니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가 없었다.

저들에게는 상을 주고 이쪽은 주살하려 하니 신이 어찌 할 말이 없겠습니까! 또 조정이 위험에 처하였을 때는 신을 한신(韓信)·팽월(彭越)·이윤(伊尹)·여상(呂尙)이라고 칭찬하였지만 이미 안정되기에 이른 후에는 곧 신을 욕하여 융족(戎族)·갈족(?族)·호족(胡族)·이족(夷族)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천하에 병권을 장악하고 공을 세운 사람들이 다만 폐하가 다른 날에 꾸짖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신이 과연 큰 죄가 있어서 육사(六師)91가 토벌하는 데는 스스로 형벌을 관장하는 방법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신(臣)이 약해진 이후에 행차하여 이를 빼앗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습이 죽었는데, 양행밀이 그를 위하여 곡하며 말하였다. "하늘은 내가 큰 공을 이루는 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어찌 나의 팔다리를 자르는가! 나는 관대한 것을 좋아하였으나, 원습은 항상 나에게 죽이는 것을 권하였는데, 이것이 그가 장수하지 못한 까닭이구나!" 손유(孫儒, 회남절도사)가 병력을 보내어 여주(廬州, 안휘성 합비시)를 공격하자 채주(蔡?)는 주(州, 여주)를 들어가지고 그에게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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