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웃분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을 선물해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읽던 중 시간 時間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이번 페이퍼에서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크로노스 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가 바로 그 것이지요.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녀를 다 먹어 치웠던 원시 시대의 신神을 가르킵니다. 따라서 "크로노스"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시간, 곧 우리가 쫓기듯 보내는 시간, 이런저런 일을 더 빨리 처리하도록 재촉받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촉하다"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단어 "헷첸 hetzen"은 "미워하다"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단어 "하센 hassen"에서 왔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자신을 재촉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행위로, "크로노스"는 곧 자기 증오의 시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유쾌한 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가 있습니다.(p76)... 다른 한 편으로, "카이로스"는 "꼭 알맞은 순간"을 뜻합니다. 카이로스는 앞머리에 머리카락이 풍성하기에 제때라면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기에 지나간 뒤에는 잡을 수가 없지요. 이 비유를 통해 그리스인들은 기회를 제 때 잡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려 했습니다.(p78)'
여기에 다른 책에 나타난 시간에 대한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봅니다.
'흐로노스 chronos"는 우리가 잘 아는 베테랑 할아버지, 시간의 아버지 Father Time, 즉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반면, "카이로스 Kairos"는 완전히 반대의 예측 불가능한 주관적인 시간이다. 객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아이작 뉴턴이 얘기하는 시간의 특징 aquabiliter fluit - 즉, 강의 물이 항상 일정하게 흐르듯 영원히 고정된 시간이 바로 흐로노스이다.(p35)... 그에 반해서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흔히 "기회 opportunity"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일정하게 아주 "적절한 때 right timing"을 의미한다. 흐로노스가 신적인 우주의 영원한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인간세상의 찰나, 즉 짤막한 현재의 시간이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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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크로노스 (출처 : https://www.1st-art-gallery.com/Franz-Ignaz-Gunther/Franz-Ignaz-Gunther-oil-painting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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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카이로스(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의 저자 안셀름 그륀(Anselm Grun, 1945 ~ )신부는 크로노스를 '증오의 시간'으로, 카이로스를 '유쾌한 시간'으로 해석한 반면,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의 저자 김승중(金承中) 교수는 크로노스를 '객관적인 시간'으로, 카이로스를 '주관적인 시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같은 듯 조금은 다른 시간에 대한 관점이지만, 두 저자 모두 카이로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시간을 "카이로스"로 경험할지 "크로노스"로 경험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제정신을 차리고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제정신을 차리고 전적으로 현존할 때, 우리는 "카이로스" 곧 유쾌한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압박할 때는 "크로노스" 곧 자신을 집어삼키는 불편한 시간을 경험하지요.(p78)... 지금 이 순간에 전적으로 현존함은 시간을 "카이로스"로 경험하기 위한 전제 조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전제 조건으로 "건강한 생활 리듬"과 "유익한 의식儀式"을 들 수 있습니다.(p79)'
'인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운에 따라 생겨난다. 기회가 생길 때 그 기회를 제대로 잡아야하고, 그에 따라 승부가 판결난다는 것이다. 운이 없으면 기회가 안 생기고, 기회가 생겨도 잡지 않으면 무의미하지 않은가? 튀케 tyche(운명, 행운 good luck)가 인간의 힘으로는 조정할 수 없는 우연적 현상이라면, 카이로스는 반대로 인간의 능력과 노력을 상징한다. 즉 오직 카이로스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결정권을 부여한다.(p43)'
카이로스를 '기회', '꼭 알맞은 순간' 또는 '유쾌한 시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우리 삶이 기회 幾回 의 계속이고, 이에 대한 선택이 유쾌한 경험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작 우리들 자신은 미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매 순간의 경험이 유쾌한 경험이 아닌 힘든 경험으로 다가오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17년도 불과 열흘 정도 남겨두고 있는 2017년 12월 19일입니다. 일년 전에 아무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2017년 12월 20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치뤄야 했을 것입니다. 2017년 12월 20일을 '아무 일도 없던 일'로 만든 것은 우리가 '카이로스'를 잡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년 전의 선택이 바로 지금의 시간을 바꿨다고 볼 때 카이로스는 우리 삶의 크로노스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어주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2017년이라는 크로노스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이 우리에게 아쉬움을 주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지금 해야할 일을 하면서, 현존 現存을 통해 카이로스를 붙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7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을 통해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기에 맞춰 좋은 책을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합니다.
PS. 그리고, 지금 제 카이로스는 늦은 밥을 먹을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