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는 씨알 함석헌(咸錫憲, 1901 ~ 1989) 저작집 중 비폭력운동과 관련한 글들을 모은 글이다. 한국사를 관통하는 일련의 사건 중에서 특히 1960년대 당시 군사정부와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반대,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글을 담고 있는 책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 몇 가지 사안에 대한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살펴보자.
1. 1965년 한일 합의에 관하여
'이번에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주권을 우리 손에 꼭 찾아 쥐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을 하기 전에 이것부터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물론 그다음에 올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문제를 해결한 다음의 일이지,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다른 모든 활동 노력이 소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부가 서두르고 있는 한일회담 같은 것도 민중이 엄중히 삼시할 필요가 있다. 제일 그것을 급히 서둘러서 할 필요가 없다. 정말 나라의 만년대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이 중대한 문제가 있는 이때에 국민 전체의 의사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몇 사람이 서둘러서 하려고 할 리가 없다. 그 서두르는 데가 의심스럽다.(p22)' <사상계> 1963년 8월호 : 한일회담 함부로 하지 말라
저자가 제기한 '의심스러운 곳'은 시간이 흘러 2004년 말 1965년의 한일 협정 내용이 공개되면서 드러난다. 그들은 왜 그토록 서둘러서 협정을 체결했는가? 그 내용을 우리는 <대한민국사 03>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1965년으로부터 50년이 흐른 시점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는 탄핵으로 치루게 되지만 정통성없는 이들이 하는 일의 수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차례에 걸쳐 확인하게 되었다.
[사진]2015년 위안부 합의(출처 : 불교방송)
'박정희 찬양론의 핵심은 경제 성장이다. 만약 우리가 경제만 잘 되면 다른 것은 볼 것 없다는 경제지상주의에 기대어 박정희의 군사반란과 헌정질서 파괴, 인권 유린과 정보정치를 용인한다면, 우리는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p21)... 2004년 말에 공개된 한일 협정 관련 문서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참으로 속이 쓰리다 못해 아리다... 유상, 무상에 차관까지 합한 8억 달러. 박정희는 겨우 그 금액을 받아내면서 왜 그렇게 청구권 문제를 서둘러 포기했을까?(p22)... 정통성 있는 정부를 총칼로 뒤엎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일단 급전이 필요했다. 조건은 상관없었다. 정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민족의 역사도, 피해 당사자인 개인의 권리도 고려사항이 아니었다.(p23)' <대한민국사 3 > : 똑바로 살아라- 변절의 역사, 변질의 역사
2. 광주민주화항쟁에 관하여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 중 하나인 광주민주화항쟁은 어떠한가. 사건이 발생한지 37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실이 은폐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 민족 전체를 이 폭력주의의 악의 흐름 속으로 몰아넣는 주된 동기가 광주사건(광주민주화항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한다. 어제 오늘 일어나는 신민당의 분열, 거기에 대한 여당의 하는 꼴, 어디서 누구의 생각으로 되는지 보통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미리 짐작할 수도 벗고 어째서 그런 괴상한 일들이 백주에 일어나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p317)... 학생 데모가 20년도 더 계속되는 것은 무엇인가? 광주사건 잘못한 것을 솔직히 자백하기를 재촉하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고칠 수 있는 것을 고치지 않고 그것을 변명하고 부인만 하면, 그것은 하늘을 업신여김이요, 또 사람을 업신여김이다. 사람을 업신여기면 사람도 그를 업신여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자백하기를 꺼리면 꺼릴수록 양심은 더욱더 약해진다. 숨긴 죄악은 숨긴 시체같이 그 냄새가 갈수록 지독하다. 그러면 전체가 그때문에 썩게 된다. 광주사건은 이제 당시에 저지른 사람들만 아니라 민족의 죄가 됐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이 우주가 그저 물질적인 존재만이 아니고 도덕적, 정신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p318)' <기독교 사상> 1987년 5월호 : 정치/사회적 풍토와 폭력
[사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투입된 군 헬기(출처 : 서울신문)
3. 언론장악과 관하여
'내가 아는 것은 잘못은 좋은 정부에서나 나쁜 정부에서나 다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판의 자유가 몇몇 사람의 수중에 집중된다면, 행정관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기 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질러진 오류를 기꺼이 그리고 신속하게 시정하는 것이, 그리고 최고의 권위로써,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유혹보다는 솔직한 충고를 존중하는 것이, 여러분의 고귀한 활동에 합당한 미덕입니다.(p119)' 존 밀턴(John Milton, 1608 ~ 1674) <아레오파기티카 Areopagitica, 1644>
저자는 민중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선행되어야한다고 말하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론의 자유' 이전에 공정한 '언론'을 요청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퇴보한 언론계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정치는 본래 싸움이다. 다스리고 다스림 받음의 관계다. 다스림이란 말부터 틀린 말이다. 정치라면 민중이 제일이지 남의 다스림을 받을 리가 없다. 이론으로 그렇지만 현실의 정부는 언제나 정직한 대표자가 아니고 사사 야심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민중은 늘 제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p146)... 당초의 잘못은 민중이 깨지 못한 데 있다. 민중 스스로가 제 노릇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됐지. 죽음으로 자유 지키는 민중에 도둑이 어디 들 수 있나. 또 바른 길 말할까. 이것도 다 알면서 못 본 척하는 길이다. 무슨 길? 언론의 자유다. 민중이 깨는 데 언론의 자유 없이 어떻게 되겠나... 한 사람이 걱정해서 천하를 건진다는 생각은 이제는 인생을 망치는 생각이다. 너는 겸손히 민중에게 물어라. 그러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전체만이 자기 일을 알고 자기 길을 택한다. 신문 잡지를 마비시켜놓고 민정이 무슨 민정이냐.(p147)' <사상계> 1963년 4월호 :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안타깝게도 친일(親日)세력과 결탁한 군부정권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부터 지금의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시대의 비극은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부정(不正)한 자들이 먼저 눈을 뜬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부일장학회 등 사건은 1962년 당시에 첫손에 꼽히던 재력가인 김지태를 사소한 혐의로 구속시켜놓고 부일장학회 명목으로 그가 소유한 토지 10만 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주식 100퍼센트를 "헌납"받고 풀어준 사건이다.(p138)... 이 사건의 본질은 박정희가 김지태에게서 빼앗아 5.16장학회로 넘긴 재산의 성격을 보면 잘 나타난다. 김지태는 그 당시에 수십억 대의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지태가 구속됐다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왜 하필이면 언론 3사의 주식을 "헌납"하였는가? 바로 박정희가 언론사를 원했기 때문이다.(p140)' < 대한민국사 4 > : 기억하지 않는 자와 고백하는 자
[사진] 공영방송 파업(출처 : 중앙일보)
4. 사드 배치에 관하여
그외에도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에 나오는 많은 구절은 주어와 날짜만 바꿔 오늘날 신문에 사설로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21세기 현실 역시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다. 이는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시대가 지금도 1960년대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미국 사령관의 허락 없으면 한 방 쏘지도 못하는 그까짓 무기 믿지 말고 네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정신을 믿으려무나. 일본 군벌과 손잡으려는 그런 따위 어리석은 생각 말고 바로 알아만 주면 목숨도 내놓고 오는 우리 민중을 믿으려무나! 돈 생각부터 하지 말고 정신 생각부터 제발 해보려무나! 일본 백성으로 살기보다는 한국 사람으로 죽을 생각을 해보자꾸나! 외교(外交)는 그만두고 내교(內交)부터 해보려무나!... 민중의 신이 나게 해라, 나라가 그 안에 있다. 민중의 신이 나게 하기 위해 대적 앞에서 수그렸던 네 머리를 번쩍 들어라! 알아들어라, 한일회담 이대로 하지마!(p93)'<사상계> 1967년 9월호 : 한일회담을 집어치우라
[사진] 사드 배치(출처 : 주권방송)
5. 한 시대를 마감하며
'이명박-박근혜'정권 10년을 마감하는 우리에게, 군사정권 10년을 마감한 저자의 글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역사 속에서 군인정치는 마무리되지 않고 더 악랄한 유신(維新)시대에 접어드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나온 10년을 돌이켜봐야 하는 자리에 왔다. 사람은 돌이켜볼 줄 아는 물건이다. 길은 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라 이때까지 온 길을 기억하고 이제 갈 길을 미리 생각할 줄 알아야 길이 된다. 앞뒤가 없으면 지금 가는 것은 하나의 헤매임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삶도 과거와 미래가 있어야만 삶의 될 수 있다. 그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생기느냐 하면 기억과 상상에 의해서 된다.(p236)... 10년이 지나고 이제 끄트머리가 차차 내다뵈는 오늘 나는 그 올 것이 왔다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 오늘날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느냐. 그래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하느냐. 제발 사람이 되고 싶고, 나라를 사랑하고, 잘못을 저지른 그들도 사람으로 건져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거든 이제라도 그것은 잘못한 말이었다고 바로잡기를 바란다.(p241)' <씨알의 소리> 제5호(1971년 10월) : 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
비록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의(民意)가 승리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건너야할 많은 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없겠지만, 선거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선거에 우리의 민족적인 콧마루가 꺾어지지 않느냔 말입니다. 한 번 잃으면 다시는 못 찾는 자유의 코를 한두 마디 달콤한 말이나 조그마한 위협 때문에 떼이도록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분명히 알고 다시금 다시금 다짐을 하면서 마지막 한 발걸음을 내켜야 합니다. 이것은 자유냐 종이냐, 사람이냐 짐승이냐의 갈라지는 길목입니다. 짐승으로 살기보다는 사람으로 차라리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운명의 한 표, 이것은 결코 윤과 박의 싸움이 아닙니다. 여당 야당의 다툼만이 아닙니다. 정신과 물질의 싸움입니다. 정의냐 힘이냐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속에 들어오는 악과 싸우는 것입니다.(p131)' <동아일보> 1963년 10월 14일자 : 한 발걸음 바로 앞에서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를 읽으면서 마치 예언서(豫言書)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길게는 50년 전, 짧게는 30년 전에 쓰여진 글 속에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바라봐야할 지점이 적시되어 있었다. 뛰어난 사상가인 저자의 통찰력이 글의 생명력을 주는 원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1960년대 이후 큰 틀에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다소 답답해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로 지금이 20세기 한국의 묵은 과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인 요즘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는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원로(元老)의 좋은 조언집(助言集)이라 생각된다.
'입법권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절대적, 자의적(恣意的)으로 다룰 수 있는 권력이 아니며 또 그러한 권력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입법권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한데 결합시킨 권력을 입법자인 개인이나 집회에 양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 사람들이 사회에 들어가기 전 자연상태에서 가지고 있다가 공동체에 양도한 것 이상의 권력이 될 수 없다.(p129)'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 <통치론 Two Treatises of Government : 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1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