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버지.


 엄마, 어머니와 같이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 존재인 아빠, 아버지와 관련된 책을 정리해 봅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부모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 유년기(아빠) :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은 일본인 아내를 둔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 ~ 1956)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내는 글과 그림이 담겨진 책이다. 책 중에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는데 이 편지를 통해 '인간 이중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귀여운 즐거움이여, 소중한 나만의 오직 한 사람, 나만의 남덕이여', '나의 귀여운 가장 멋진 남덕 군', '나만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  등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 많이 표현된 잘 표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연애때에는 쑥스러워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은 '가족'이라서(가족끼리 이러는거 아니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느새 결혼 8년차 남편이 되버린 나에 비한다면 이중섭 화가는 사랑을 잘 표현한 예술인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편지가 일본어로 쓰여져 편지 내용이 고(故)  박재삼 시인이 번역했기에 더 아름다운 표현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내게 더 마음깊이 다가왔던 것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번째인 유년기를 맞이한 아들들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를 보려 한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약 20편 정도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양도 적고, 내용도 짤막한 편이지만 짧은 편지 속에 아빠의 사랑이 잘 담겨있다. 특히, 어려웠던 화가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편지를 쓸 당시 화가는 일본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와 있었다. 고국이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시련의 시기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화가에게 편지는 삶의 낙이었으리라. 편지 속에서 아들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선물을 약속하는 화가의 모습은 지금의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빠가 보내준 그림을 보고 그토록 기뻐해주었다니... 아빠는 정말정말 기쁘다. 다음 편지에는 학교에서 재미있었다고 생각한 일들을 적어 보내다오. 아빠도 부지런히 그림과 편지를 보내주마.'(p191)


 '아빠가 가면... 이번엔 꼭 보트를 태워줄께. 몸 성히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아빠는 감기로 누워 있었지만 약을 먹고 이젠 아주 좋아졌단다.(p192)...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주마. 아빠는 감기로 닷새 동안 누워 있었지만, 이제는 다 나아 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어서어서 전람회를 열고서...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가지고... 갖고 갈테니... 몸 성히 기다리고 있어다오.'(p212)


 그렇지만, 화가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 못했던 것 같다. 전체 20편의 편지 중 7편의 편지에서 화가는 아들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한다. 매번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했지만, 가난했던 아빠는 끝없이 약속밖에 하지 못한다.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달 후면 아빠가 도쿄로 가서 자건가 사주마.(p194)... 둘이서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줄께. (p198)... 이번에 아빠가 가면 자전거를 꼭 태현이에게 한 대, 태성이에게 한 대씩 사줄 참이란다.(p202)...이번에 아빠가 가면 틀림없이 근사한 자전거를 태성이와 태현이 형에게 하나씩 사줄 작정이다.(p204)... 아빠가 한 달 후면 도쿄 가서 꼭 자전거 사줄게.(p207)... 전람회가 끝나면 곧 아빠가 도쿄에 가서 자전거를 사줄게.(p208)... 전람회가 끝나는 대로 곧 도쿄에 가서 너희들에게 자전거를 사줄 참이란다.'(p210)


 그런 어려움에 대해 결코 시인은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지만, 지나가는 편지의 문장 속에서 화가의 가난과 좋지 않은 건강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같이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였을까. 화가는 그림 속에서 두 아들의 모습을 참 많이 표현했다. 이중섭 화가의 편지는 유년기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의 아쉬움이 잘 드러낸다. 


 '아빠가 사다놓은 종이가 떨어져 한 장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좋게 봐다오.(p189) ... 내 훌륭한 일들 아들 태현아, 종이가 모자라 한 장에다만 쓴다. 다음엔 길게길게 써 보내마.'(p203)


[사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출처 : http://m.blog.daum.net/prohklee/1765)


 2. 청장년기(아버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중섭 화가의 편지가 아직 어린 시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이 청년기, 장년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내는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의 편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드러낸 반면, 다산의 편지는 아들들이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다. 어린 자식들에게 어려움을 애써 보이려 하지 않는 이중섭 화가의 편지와는 달리, 다산의 편지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37)


  다산의 편지가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걸었던 길을 자식에게 전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저 자식들에게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걸었던 길 속에서 깨우침을 전했기에 진심이 담겨있다. 그러한 편지를 읽다보면, 진정한 부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너희들은 도(道)와 덕(德)이 완성되고 세워졌다고 여겨서 다시는 책을 읽지 않으려 하느냐. 금년 겨울에는 반드시 <서경(書經)>과 <예기(禮記)> 중에서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을 다시 읽는 것이 좋겠다... 역사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적는 '사론(史論)'은 그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기만 하고, 얄팍한 자기 지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p33)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弟)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p39)


 또한, 아들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아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아래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다산이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학습을 지시한 부모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선배(先輩)로서 공부의 어려움을 공감했기에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는 공부하는 부모의 전형을 우리는 다산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 동생 학유의 재주는 너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금년 여름 고시(古詩)와 운이 안 달린 부(賦)를 짓게 했더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가을 무렵에는 <주역(周易)>을 베끼는 일에 힘쓰느라 독서를 많이 못했지만 그애의 견해는 제법이었다.'(p53)


  '아무쪼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국조보감(國朝寶鑑)>, <여지승람(與地勝覽)>, <징비록(懲毖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p57)


 공부를 통해 맺어진 공감대 가 있었기에 부모의 말이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일상의 가르침 역시 자녀의 가슴깊이 와 닿았음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사진] 다산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infiniti&folder=5&list_id=8090481)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거나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저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p61)


 

현대에도 어린 자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책은 많다. 예를 들어  4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하기 전까지 자식에게 남긴 편지를 엮은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책 역시 어린 자녀와 함께 하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 드러난다.


 이에 반해 청장년기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내용의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녀 교육'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학습법 관련 책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부모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교양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고전공부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 책은 과목별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학습목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능력,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수록되어 있어 홈스쿨링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자료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좋은 책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고전공부법을 파고들수록 어린아이들이 예리한 관찰자가 되도록,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교육 목표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가족이 즐겨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해변에서 상어 이빨을 찾는 것이다.. 과학 공부는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를 완벽하게 제공해준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이 정의롭지 못한 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보기를, 자기 힘으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랄 것이다...'(p244)


 이 책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지금 생각하게 된다. <부모 인문학>에는, 아니 대부분의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책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부모가 자녀들과 같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면 결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 인문학>에서는 매 장(章)에서 부모가 함께 공부하기를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부모가 갖춰야할 소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부모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말하지 않고 있기에, 부모 자신은 TV 앞에 있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들어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부모의 이러한 태도는 결코 자녀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 것지만, 이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책의 내용 중에는 현대 부모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복종시킬 것을 요구하는 다음의 단락을 본 후에는 책의 내용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가진 지각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개인 소유물처럼 복종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생각을 어떤 부모는 탐탁찮아할지 모른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복종심을 심어주고 혹독한 노력을 하도록 요구한 결과,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서 자유로워졌다.'(p240)


 저자의 아이들이 자유로워졌는지 부모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의 편지는 진정한 자녀 교육과 자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이제 정리해 보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한결같을 것이다. 다만, 자녀의 성장 시기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달라지는 것일뿐. 어려서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면, 보다 성장한 후에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접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자의 위치로 자리매김해 가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 속에서 어려서는 많은 장난감을 안겨주다가, 성장기에는 아이들에게 '교육(敎育)'이라는 이름하에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자식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중섭의 편지'와 유배지에서 자식을 자주 보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다산의 편지' 속에서 진정한 '사랑하는 아빠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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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갱지 2017-08-04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랑 학부모 얘기가 생각나요:-) 아직은 소년을 키우고 있지만, 앞에 ‘청‘ 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4 18:1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갱지님과 마찬가지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 부딪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2017-08-0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05 0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정도로 다른 이를 위하는 일에 기꺼이 애쓰는 게 바로 정의라고 김경집 교수가 그러더군요. 가족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두루 그런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겨울호랑이 2017-08-05 05:42   좋아요 2 | URL
^^: 그런 사회라면 재산이 많지 않아도 큰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서니데이 2017-08-05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위가 식지 않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저녁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