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식인마을 25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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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하는 것이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습성이나 그럴듯한 추측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를 고발할 수 있습니다. - 오셀로 中 -


To vouch this is no proof, without more wider and more overt test Than these thin habits and poor likehoods Of modern seeming do prefer against him' - Othello - 


[그림]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출처 : www.pinterest.co.kr/pin/427208714625932919)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와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쿤과 포퍼가 생각하는 과학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포퍼 : 과학적 진술이란 무엇인가?


 포퍼는 그의 저서인 <추측과 논박 : 과학적 지식의 성장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Routledge>(1963)을 통해 과학적 진술이란 '반증 가능'한 진술임을 밝힌다.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한 명제를 바탕으로 증명과 반증을 통해 기존 이론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포퍼는 연역만으로 작동하는 과학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귀납의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던 과학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포퍼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진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 scientific statement"라고 규정한다.'(p75) 


 '포퍼의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진술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반증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다... 어떤 사람이 "과학자냐, 사이비 과학자냐"라는 문제는 그의 태도나 행위와 관련된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자는 반증 가능한 진술들을 던져놓고 그것을 혹독하게 반증하려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과학자는 반증 가능성이 더 높고 더 대담한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람들이며, 사이비 과학자는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계속 변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p77)


2. 쿤 : 도그마와 패러다임


 이에 반해, 쿤은 과학의 발전이란 객관적인 증명과 반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심리상태, 사회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게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cific Revolutions>(1970)속의 내용을 통해 과학의 발전과 패러다임의 내용을 살펴보자.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서 쿤은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에 대한 이미지와 양립할 수 없는 아주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다. 쿤은 한마디로 실제 과학은 절대로 포퍼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규범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신 과학에는 "도그마 dogma"와 같은 것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과학은 그것에 기댄 활동이며, 드물게 일어나는 과학혁명은 논리적 절차보다는 과학자들의 심리상태에 더 크게 의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혁명을 통한 과학의 변동이 꼭 진보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p107)


 특히, 쿤의 용어 '패러다임'은 과학철학 용어를 넘어 지금은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원리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쿤은 "패러다임 paradigm" 이라는 용어를 크게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는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이고, 좁은 의미는 그 집합의 한 구성 요소로서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해결의 사례에 해당하는 "범례"가 그것이다.'(p114)


'요약하면 범례는 어떠한 기호적 일반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들의 모음이다. 과학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범례를 학습해 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범례를 학습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현상이 어떻게 동일한 원리의 지배를 받는가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시 세계에 대한 유사성 관계 즉, 이 세계의 존재자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패러다임은 점점 더 성숙해진다. 이것이 바로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다.'(p120)


 <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사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학은 과연 포퍼가 주장한 것처럼 객관적인 탐구 과정의 결과일까, 아니면 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대 사회의 지배원리가 상호 작용하면서 성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일까. 이러한 과제를 던지는 책을 읽으면서 포퍼와 쿤의 사상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포퍼의 사상에서는 우주가 한 순간에 만들어졌다는 빅뱅 이론 (Big Bang Theory)과 같은 느낌을, 쿤의 사상은 우주가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들 과학철학자들의 사상을 깊이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느낌을 잡고 그들의 저서를 향후 살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과 내용을 보자. 개인적으로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여러 책들을 소개한 우수한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는 쿤과 포퍼 외에도 다른 과학철학자인 라카토시(Lakatos Imre, 1922 ~ 1974)와 파이어아벤트(Paul Karl Feyerabend, 1924 ~ 1994)의 사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대 과학철학사를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독자들의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보다  '깊이 읽기' 에 해당하는 추천 도서 목록을 2~3배 많이 제공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알찬 내용은 아마도 저자인 장대익 교수가 지식인 마을의 전체 기획자인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볼 때<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좋은 입문서 시리즈인 지식인 마을 책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표작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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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6-30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셀로와 데스데모나가 등장하는 저 그림은 제 눈에도 익숙하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제가 갖고 있는 책 (앤터니 홀든 지음,『윌리엄 셰익스피어』, 부제는 <그림과 자료로 복원한 셰익스피어의 삶과 예술>)엔 저 그림과 ‘아주 비슷한 그림‘이 두 페이지에 걸쳐 커다랗게 실려 있는데, 화가 이름이 겨울호랑이 님께서 밝혀주신 출처에 나오는 화가(Carl Ludwig Friedrich Becker)와 서로 다르네요. 제가 지닌 책에서는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로 표기되어 있거든요. 그림이 서로 ‘살짝‘ 다른 걸 보면. 누가 누구의 그림을 베낀 듯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셀로의 아내 이름이 살짝 뒤바뀐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6-30 18:59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잘 못 적은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제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그림에 대한 부분은 잘 몰랐네요. 요즘 oren님께서는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희비극 작품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그림까지도 깊이 있게 공부하시고 계신 듯합니다. 덕분에 저도 같은 듯 다른, 동일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네요.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작품을 읽을 때 관련 주제인 음악과 미술 작품도 읽는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니벨룽겐의 반지>를 읽으면서 바그너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처럼요. oren님으로부터 좋은 독서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oren님, 행복한 저녁 되세요.^^:

oren 2017-06-30 18:56   좋아요 1 | URL
좀 더 찾아 보니 아무래도 Carl Ludwig Friedrich Becker(1820∼1900, 독일)의 그림이 먼저인 듯싶네요.
그런데 매우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받는 앤터니 홀든의 책에서는 왜 하필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이탈리아)의 그림을 실었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제가 얼핏 봐서는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이 훨씬 더 나아 보이긴 한데, 만약에 그게 독일 화가의 그림을 보고 베낀 작품이라면 ‘독창성‘이 결여된 ‘모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지요...

겨울호랑이 2017-06-30 19:07   좋아요 1 | URL
^^: 아무래도 oren님께서 말씀하신 앤터니 홀든의 책을 저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제가 미술 관련된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oren 2017-06-30 21:33   좋아요 1 | URL
앤터니 홀든의 책은 강추합니다. 도판도 아주 훌륭하고 내용도 충실하니까요. 다만 한가지 아숴운 점이라면 책값도 비싸고 이미 절판되었다는 점이지요.. 저는 정말 우연히 이 책을 구입했답니다. 몇 년 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이 커다란 책이 제 눈에 번쩍 띄었으니까 말이지요. 이 책에 담긴 그림들만 보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풍성하고 퀄리티 높은 도판 하나만큼은 이 책이 단연 최고더군요...

서니데이 2017-06-30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참 덥습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데, 그래서 더 더운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금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6-30 20:37   좋아요 1 | URL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네요. 가뭄이 해소되길 기대해 봅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oren 2017-07-01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형식을 빌어 글을 하나 써봤습니다. ‘먼댓글 주소‘를 제대로 넣었는데도 ‘링크‘가 생기지 않네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7-07-01 20:13   좋아요 0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oren님 글을 통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2017-07-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2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7-03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객관적 탐구라는 게 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쿤쪽에 더 기웁니다.
DNA 발견 이후 생물학의 판도가 달라졌듯이 거울뉴런으로 뇌과학도 판도가 달라질 거라 말하죠. 즉 당대 지배적 과학 기반이 발전의 척도죠.

겨울호랑이 2017-07-03 18:13   좋아요 1 | URL
^^: 그리고 하라리의 관점이기도 한 것 같네요. 과학, 종교, 제국주의가 별개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