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하는 것이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습성이나 그럴듯한 추측보다는 좀 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그를 고발할 수 있습니다. - 오셀로 中 -
To vouch this is no proof, without more wider and more overt test Than these thin habits and poor likehoods Of modern seeming do prefer against him' - Othell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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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출처 : www.pinterest.co.kr/pin/427208714625932919)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와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의 사상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쿤과 포퍼가 생각하는 과학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 포퍼 : 과학적 진술이란 무엇인가?
포퍼는 그의 저서인 <추측과 논박 : 과학적 지식의 성장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Routledge>(1963)을 통해 과학적 진술이란 '반증 가능'한 진술임을 밝힌다. 과학자들은 반증 가능한 명제를 바탕으로 증명과 반증을 통해 기존 이론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포퍼는 연역만으로 작동하는 과학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귀납의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던 과학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줬다... 포퍼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진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 scientific statement"라고 규정한다.'(p75)
'포퍼의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진술이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반증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다... 어떤 사람이 "과학자냐, 사이비 과학자냐"라는 문제는 그의 태도나 행위와 관련된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자는 반증 가능한 진술들을 던져놓고 그것을 혹독하게 반증하려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과학자는 반증 가능성이 더 높고 더 대담한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사람들이며, 사이비 과학자는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고 계속 변명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p77)
2. 쿤 : 도그마와 패러다임
이에 반해, 쿤은 과학의 발전이란 객관적인 증명과 반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심리상태, 사회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게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cific Revolutions>(1970)속의 내용을 통해 과학의 발전과 패러다임의 내용을 살펴보자.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서 쿤은 당시에 널리 받아들여진 과학에 대한 이미지와 양립할 수 없는 아주 새로운 과학관을 제시한다. 쿤은 한마디로 실제 과학은 절대로 포퍼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규범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신 과학에는 "도그마 dogma"와 같은 것이 필요하고 대부분의 정상적인 과학은 그것에 기댄 활동이며, 드물게 일어나는 과학혁명은 논리적 절차보다는 과학자들의 심리상태에 더 크게 의존해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혁명을 통한 과학의 변동이 꼭 진보적인 변화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p107)
특히, 쿤의 용어 '패러다임'은 과학철학 용어를 넘어 지금은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원리로 해석될 수 있을 듯하다.
'쿤은 "패러다임 paradigm" 이라는 용어를 크게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는 어느 주어진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이고, 좁은 의미는 그 집합의 한 구성 요소로서 구체적이고 인상적인 문제 해결의 사례에 해당하는 "범례"가 그것이다.'(p114)
'요약하면 범례는 어떠한 기호적 일반화가 성공적으로 적용되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들의 모음이다. 과학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범례를 학습해 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범례를 학습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현상이 어떻게 동일한 원리의 지배를 받는가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시 세계에 대한 유사성 관계 즉, 이 세계의 존재자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서 패러다임은 점점 더 성숙해진다. 이것이 바로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다.'(p120)
<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칼 포퍼와 토마스 쿤의 사상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과학은 과연 포퍼가 주장한 것처럼 객관적인 탐구 과정의 결과일까, 아니면 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대 사회의 지배원리가 상호 작용하면서 성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일까. 이러한 과제를 던지는 책을 읽으면서 포퍼와 쿤의 사상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포퍼의 사상에서는 우주가 한 순간에 만들어졌다는 빅뱅 이론 (Big Bang Theory)과 같은 느낌을, 쿤의 사상은 우주가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들 과학철학자들의 사상을 깊이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느낌을 잡고 그들의 저서를 향후 살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과 내용을 보자. 개인적으로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여러 책들을 소개한 우수한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는 쿤과 포퍼 외에도 다른 과학철학자인 라카토시(Lakatos Imre, 1922 ~ 1974)와 파이어아벤트(Paul Karl Feyerabend, 1924 ~ 1994)의 사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현대 과학철학사를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독자들의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추천도서 목록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보다 '깊이 읽기' 에 해당하는 추천 도서 목록을 2~3배 많이 제공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알찬 내용은 아마도 저자인 장대익 교수가 지식인 마을의 전체 기획자인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볼 때< 쿤 & 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좋은 입문서 시리즈인 지식인 마을 책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표작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