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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넛지 Nudge : 1.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2. 주의를 환기시키다. 3.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by 탈러 & 선스타인)
<넛지 Nudge>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 휴가 때 들고간 책으로 기사에서 소개된 후였다. 출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이 책에서 전달하는 메세지는 간결하고 분명하다.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결론을 끌어내라.' 는 결론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많은 여운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지에 들고갔었던 책이 2~3권이 넘었던 것 같은데, 유독 이 책만이 기억에 남았을까.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부드러운 개입 그 이상(以上)의 것을 의미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관련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379511
1. 자유주의적 개입
넛지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은 '자유주의적 개입'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하고 편향된 존재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개입(자유주의적 개입)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나타낸다... "개입주의"라는 말은,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해 선택 설계자가 그들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나타낸다.'(p20)
'넛지는 선택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p21)
'많은 연구결과가 인간의 예측이 불완전하고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인해 현상을 유지하거나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 기본값)을 따르려는 강한 성향을 갖는다.'(p24)
여기서 '바람직한 방향의 결정자가 누구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넛지>에서 방향의 결정자는 '선택설계자'로 정의된다. 선택설계자는 넛지를 행하는 주체(主體)이며, 넛지의 방향성과 강도를 결정하는 존재다. 때문에, 선택설계자의 역할은 <넛지> 내에서 매우 중요하다. 책의 본문에서 선택설계자를 살펴보자.
2. 선택설계자
'캐롤린 같은 사람을 우리는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라고 부른다. 선택설계자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다.'(p16)
'캐롤린과 애덤은 급식 메뉴에 변화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음식의 진열이나 배열만 바꾸는 것으로 과연 학생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슈퍼마켓 진열대를 설계해본 경험이 있는 애덤은 이 실험의 결과가 매우 놀라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단지 구내식당의 음식을 재배열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을 무려 25%씩이나 올리거나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p14)
적은 비용으로도 선택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될 수 있다면, 이는 '효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정치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넛지>의 예시에서 '구내식당의 음식' 대신 '선거의 후보자'를, '특정 음식의 소비량' 대신 '선택'을 대입해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우리는 넛지의 정치적인 활용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3.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넛지> 책말미에서 저자인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와 캐스 R.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특정 정책이나 방침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하여 선택 설계자가 의도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타성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한 정책이나 방침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되면, 민간의 기업이나 공공 부문의 관리자들은 그것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함으로써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p25)
<넛지>에서는 선택설계자가 어느 분야에서 의도를 가지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 연금시스템, 의료보험 프로그램, 결혼제도 등 사회 전반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하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넛지>에서 말한 '부드러운 개입'이 우리 사회에서는 '노골적인 개입'으로 적용된 것은 아니었을까. '댓글부대' 또는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디폴트 옵션'을 통해 결정을 제한했던 지난 이명박-박근혜 9년간 어떻게 우리가 유도되었는가를 <넛지>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넛지>는 우리 사회에 '은근하게 통제된' 방법론을 제시한 부정정인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악의를 가지고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들은 책에서 넛지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넛지>의 부정적인 영향은 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포스(Force)의 어두운 측면'에 빠져 '다스 베이더(Darth Vader)'가 되버린 이들의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것은 여러 곳에 해당되는 말인듯하다.
'넛지를 가하는 사람들의 무능력과 이기적인 거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넛지를 가하는 사람들이 무능력하다면, 그들은 사람들의 선택을 좋은 방향이 아닌 해로운 방향으로 이끌수도 있다. 그리고 이기적인 거래를 할 위험이 높다면, 넛지를 가하려는 시도를 경계하는 것이 옳다.'(p364)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역시 "정황 또는 맥락(context)"의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영향력은 더 나은 쪽으로도 혹은 더 나쁜쪽으로도 행사될 수 있는 것이었다.'(p14)
지난 2010년 <넛지>를 읽고 거의 7년 만에 다시 <넛지>를 펼쳐들었다. 오랫만에 <넛지>를 읽으면서 선의(善意)를 가지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좋은 내용이 선민사상(選民思想)과 무능력(無能力)을 만났을 때,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넛지에 4번째 의미를 추가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넛지 4. 권력 유지를 위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개입 (by MB & 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