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하는 새벽길에 음악방송을 통해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들었습니다.
어두운 출근길에 떠오르는 해를 통해 서서히 밝아지면서 보이는 주변은 마치 음악으로 인해 세상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너무도 좋은 느낌에 출근 후 동영상을 찾아 다시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합창>은 봄에 참 잘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점심 시간에 듣던 중 이 곡을 통해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이 있어 잠시 적어봅니다. 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은 잘 아시다시피 처음에 관현악으로 연주만으로 곡이 진행되다가, 남성 바리톤의 음성이 들리며 잘 진행되던 연주는 잠시 중단이 됩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이 말을 시작으로 바리톤이 가세하고, 이후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합창단의 등장으로 이 곡(曲)은 우리가 잘 아는 절정으로 향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완벽한 악기라는 말이 있는데, 합창단의 가세로 음악은 깊이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합창>에서는 특히 더 잘 느끼게 됩니다.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상양의 김수겸을 연상시키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 만화를 봤던 것이 1992년이니 아주 오래된 만화이기에 모르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김수겸을 모르는 분들께 소개합니다.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그림] 김수겸이 없는 상양 (출처 : 슬램덩크)
[그림2] 상양의 김수겸(출처 : 슬램덩크)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의 이상형이 김수겸이었기에 저는 별로 이 녀석을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당시에 많은 여성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만화주인공 중 한 캐릭터였습니다.
악기의 연주에 인간의 음성이 더해져서 곡의 차원(次元)이 달라진다면, 지휘자에 따라 곡의 깊이, 높낮이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른 지휘자들이 해석한 <합창>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 지휘자가 해석한 <합창>의 느낌은 좀 다릅니다. 주관적인 생각이니 전문 감상가분들 견해에는 크게 못미칩니다만,
개인적으로 바렌보임의 '합창'은 조금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카라얀의 '합창'은 보다 선이 굵다고 느껴지네요. 같은 악보를 토대로 하지만, 지휘자들이 평면적인 악보의 음표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연주'라 생각됩니다. 음(音)의 강약(强弱), 장단(長短)의 작은 차이가 전체 느낌을 크게 바꾼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사람 얼굴에서 입모양 하나로 전체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이런 면에서 음악과 미술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네요...
[그림3]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출처 : http://oxygen1114.tistory.com/category/?page=2)
<합창>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을 보니,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악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리듬악기라고도 불리우는 트라이앵글, 북 등이 보이네요. 흔히 우리는 타악기를 쉽게 생각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타악기를 잘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다른 악기연주자들에 비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약된 상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음악가들입니다. 1시간 30분 가까이 계속되는 긴 연주 시간 동안 몇 번 안되는 작은 기회를 포착해서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공기의 떨림, 최적의 연주법을 고민한다는 것은 피아노 독주자들의 연주와는 다른 의미에서 긴장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음악을 듣다보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의 고민이 담긴 <콘트라베이스>가 생각이 납니다. 짧은 책이었지만, 큰 덩치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음악가의 느낌이 잘 묻어난 책이었습니다.
교향곡에는 정말 많은 악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조화(調和)를 이루어 하나의 음(音)을 연주하기에 많은 색깔들의 꽃이 피어나는 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산에 있는 서로 다른 꽃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색(色)과 크기로 자신을 표현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저는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산에 온통 보라색 꽃만 있다면 그보다 공포스러울 것도 없을 것같습니다. 초록색과 빨간색 심지어는 작년에 땅에 떨어진 낙엽도 어울려서 자신을 표현할 때 비로소 생명이 있을 수 있음을 교향곡과 산에 핀 꽃을 통해 느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준표, 심상정과 같이 서로 다른 위치의 정치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어지럽다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멀리서 본 아름다운 산도 막상 올라가보면 엉켜있는 나무뿌리, 잡초 등으로 생각만큼 아릅답진 않습니다. 심지어는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또한, 벌레도 날아다니기에 지저분한 것 같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봄은 살아가는 향(香)이 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은 생명이 없는 봄은 아니었는지. 추상적인 봄(cosmos)를 꿈꿔왔기에 현실의 봄(chaos)이 우리에겐 실망스러운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이런, 음악을 잘 모르니 음악의 미(美)에 빠지지 못하고 깔대기처럼 또 이상한 쪽으로 나왔습니다..ㅋ
꽃 피는 봄. 서로 다른 많은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조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베토벤의 <합창>을 들으며 소원해 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ps. 상양의 김수겸은 20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군요..ㅜㅜ 이런 피터팬같은 녀석. 예나 지금이나 별로 마음에 안듭니다. ㅋㅋ 20년 전에는 조금 부러웠는데, 지금은 조금 많이 부럽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