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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관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143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 / 한길사 / 2016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신기관(Novum Organum)>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 ~ 1626)이 저술한 책으로 전체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우상)파괴편'이며, 제2권은 '(진리)건설편'으로 불리운다. 제1권에서는 유명한 '베이컨의 4가지 우상'이 언급되면서 귀납법을 통한 학문의 추구를 강조하고, 제2권에서는 '열'을 통해 학문추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1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
가. 베이컨과 데카르트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명제에 도달한 다음, 그것을 [제1]원리로 혹은 논쟁의 여지 없는 진리로 삼아 중간 수준의 공리를 이끌어내거나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감각과 개별자에서 출발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상승한 다음, 궁극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명제에까지 도달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방법이다.'(제1권 19)
[그림1]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 ( 출처 : 위키피디아)
베이컨과 같은 시기에 대륙에서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가 활동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철학의 제1명제(Cogito ergo sum)를 도출하고 그로부터 그의 사유를 넓혀갔다고 한다면(연역법 演繹法), 베이컨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베이컨 자신은 '귀납법'만이 진정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깊이 와닿지 않는다. 제2권에서 제시된 그의 과학적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점을 특히 더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과학(科學)적 방법에 '수학(數學)'이 빠졌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 베이컨 식(式) 귀납법의 한계 : 정량적 분석의 한계
역설적으로 베이컨이 비(非)과학적 방법이라고 비판한 '연역법'의 데카르트가 수학을 강조한 반면, 정작 '과학적인' 베이컨의 방법론에서는 수학이 빠져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다음의 베이컨의 진술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거의 무한(無限)과 미래의 무한(無限)'사이의 구별도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만일 양자의 구별이 성립한다면, 하나의 무한이 또 하나의 무한보다 더 큰 것이 되고, 더 작은 무한은 점차 줄어들어 마침내 유한에 근접하고 말 것이다.'(제1권 48)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과거의 무한', '미래의 무한'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신학대전>에서 나온 개념이다. '과거의 무한'과 '미래의 무한'을 '음의 무한대(마이너스 무한대)', '양의 무한대' 라는 개념으로 대칭시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베이컨의 논술(두 개의 무한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이론)이 맞지 않음을 우리는 수학의 좌표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베이컨 이후에 '극한', '미적분'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에 베이컨을 비판할 이유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림2] 정발산 수열(출처 : http://hanmaths.tistory.com/95)
'설명의 편의를 위해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추론을 (경솔하고 미숙한 것인만큼) "자연에 대한 예단(豫斷, anticipation)"이라 부르기로 하고, 사물로부터 적절하게 추론된 것을 "자연에 대한 해석(解析, interpretation)"이라고 부르기로 하자.'(제1권 26)
베이컨은 자신이 주장한 '귀납법'을 '자연에 대한 해석'으로 부르며, '연역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펼친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념이 '우상(偶像, idola)'이다.
2. 베이컨의 우상(偶像)
가. idola와 idea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우상(偶像, idola)과 신(神)의 이데아(idea) 사이에는, 다시 말해 황당무계한 억측과 자연에서 발견되는 피조물의 사실상의 모습 사이에는 실로 큰 차이가 있다.'(제1권 23)
베이컨은 자연의 실체를 왜곡하는 인간의 편견을 4가지 우상으로 정리하고,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귀납법'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편의상) 이름을 짓자면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iolda Tribus 인간성 자체에 뿌리막고 있는 우상)이요, 둘째는 '동굴(洞窟)의 우상'(idola Specus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요,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idola Fori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우상)이요,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idola Theatri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에서 생기는 우상)이다.(제1권 39)... 이러한 우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참된 귀납법으로 개념과 공리를 형성하는 것이다.'(제1권 40)
나. 우상의 극복 방법 : 귀납법
베이컨은 '종족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연을 분해하는 방법(제1권 51)'을, '동굴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지성을 강하게 의심하는 방법(제1권 58)'을, '시장의 우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황당한 학설을 거부하거나,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극복하는 방법(제1권 60)'을,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학문의 방법(귀납법)(제1권 61)'을 활용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베이컨은 특히 '시장의 우상'을 강조한다.
'시장의 우상은 모든 우상 중에서 가장 성가신 우상으로서, 이른바 언어와 명칭이 [사물과] 결합해 지성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이 언어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 언어가 지성에 반작용하여 지성을 움직이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수학자들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정의에서 출발해서 논쟁을 차근차근 전개해나가는 쪽이 훨씬 낫다.' (제1권 59)
다. 시장의 우상과 비트겐슈타인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의 내용은 후대의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그의 전기 철학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급한 다음의 내용을 연상케 한다. 베이컨의 조언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을 통해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를 극복해 나간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중에 자세히 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위키백과]의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내가 믿기에는, 이러한 문제들의 문제 제기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뜻은 대략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나에겐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나는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생각한다.'(출처 :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책세상)
[그림3]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출처 : 위키피디아)
3. 베이컨의 학문 연구 방법
베이컨은 <신기관> 제1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그의 귀납적 연구 방법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귀납법이라는 방법이 bottom-up 방식이기 때문에 충분한 사례의 수집과 이상치(outlier) 제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베이컨은 강조한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자연지와 경험지를 앞에 놓고 다만 두 가지만 주의하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정신 본래의 힘만으로도 우리가 설명한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첫째로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이며, 둘째로 적당한 시가가 될 때까지 성급한 일반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다.'(제1권 130)
'어떤 사물의 본성을 오직 그 사물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하책(下策) 가운데 하책이다. 어떤 사물에는 숨어 있는 본성이 다른 사물에는 아주 명백하게, 거의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물에서는 경이롭게 생각되는 일이 다른 사물에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일이 왕왕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에 숨어 있는 본성은 그 사물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그 사물에 대한 실험과 고찰만으로는 알아내기 어렵다. 그런 본성이 아주 분명하게, 흔하게 나타나는 다른 사물을 보아야 한다.'(제1권 88)
'학문과 기술의 발견 및 증명에 유용한 [참된] 귀납법은, 적절한 배제와 제외에 의해 자연을 분해한 다음, 부정적 사례를 필요한 만큼 수집하고 나서 긍정적 사례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제1권 105)
<신기관>은 '과학적 학문 연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음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신기관((Novum Organum))> 전체에서 베이컨이 그렇게 비판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 저서 <형이상학>,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 등 구(舊)Organum에 해당하는 저술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베이컨의 '학문을 대하는 정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림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출처 : 나무위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헛된 숭배에 빠져들어 <창세기> 나 <욥기>와 같은 성경 구절에 기대어 자연철학을 세우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이것은 실로 "산 자들 가운데서 죽은 자를 찾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이처럼 어리석게 결합되면, 공상적인 철학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단적인 종교가 출현하기도 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헛된 숭배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규제해야 한다.'(제1권 65)
마치, 위의 글은 베이컨이 21세기 미국으로 돌아와 '진화론'과 '창조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쓴 것과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을 보면 <신기관>은 역시 우리 시대에도 고전이라 생각된다.
ps. '우상(偶像)'이라고 할 때는 잘 몰랐는데 idola와 idea라고 놓고 보니, 베이컨이 용어 선택을 할 때 언어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