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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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위대한 질문>은 <인간의 위대한 질문>과 함께 서울대 배철현 교수가 쓴 2부작 중 하나의 작품이다. <인간의 위대한 질문>이 신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면, <신의 위대한 질문>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서,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된 구약성서를 다루기 때문에 자칫 논점이 흐트러질 수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저자는 <인간의 위대한 질문>와 마찬가지로 <구약성서>를 관통하는 주제에 관해 역사서의 인물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글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책은 매 장(章)마다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저자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저자의 해석이 곁들어진 구조로 되어있다. 저자는 해석을 할 경우 전체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기보다는 히브리어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의미를 해석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똑같이 우주 창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신의 이름이 다르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장 1절 ~ 2장 3절까지는 "엘로힘(Elohim)"으로, 2장 4절부터는 신을 "야훼 엘로힘(Yahweh Elohim)"으로 각각 다르게 쓰여 있다. 그 이유는 각 구절을 쓴 저자가 다르기 때문이다.....성서에서 신을 "엘로힘"이라고 표기한 저자는 "엘로히스트(Elohist)"라 부르고, 이들이 만든 문서를 "E자료"라 한다. 또한 바빌론 유수 때 사제들이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글은 "사제(Priest)"의 첫 글자를 따서 "P자료"라 부르고 이들을 "P저자"로 구분하는데, 이들 역시 신을 "엘로힘"으로 부른다. 반면 신을 "야훼(Yaheh)"라 표기한 저자는 "야위스트(Yahwist)"라 부르고, 그 문서를 "J자료"라 하며, <신명기(Deuteronomy)>와 관련된 글을 쓴 저자들은 "D저자"라 하고 그 문서를 "D자료"라 한다.'(p46)


'이삭을 지칭하는 "이 아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건장한 청년"으로 되어 있다. 이 문장을 "칠십인역(BC 3세기 그리스 번역본)"과 "불가타(Vulgata, AD5세기 라틴어 번역본)"에서 자신의 외아들마저 신에게 바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칭송하기 위해 히브리 원문을 일부러 오역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건장한 청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나아르(naar)"는 다양한 연령층을 가르킨다.'(p138)

 

<신의 위대한 질문>에는 이와 같이 명사 하나, 단어 하나에서 그 의미를 찾아간다. 이를 통해 번역본에서는 인식하지 못한 문제를 독자에게 일깨워 준다. 이를 통해 '번역(translation)'과정을 통해 얼머나 많은 의미가 휘발(揮發)되는지를 다시 느끼게 된다. 이러한 언어적 해석을 바탕으로 저자는 문화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구약성서속의 문헌 안에 있는 사건들이 유대문명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인류 보편적 과제임을 일깨우고 있다.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는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소개된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이가장 잘 나타난 부분은 '아케다(Aqedah)'사건이다. '아케다'는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놓은 사건을 말한다. 저자는 '아케다'를 해석하기 전 먼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王>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Highway 61 Revisited>를 통해  자식을 죽여야 하는 비극과 아버지를 극복한 후 독립하려는 아들의 모습이 문명의 공통된 과제였음을 보여준다.



밥 딜런 <Highway 61 Revisited>


그리고, <이삭의 희생>이라는 동일의 주제에 대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 1669)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 ~ 1610) 그리고 샤갈(Marc Chagall, 1887 ~ 1985)의 서로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그림1] 렘브란트 <이삭의 희생>,1634



[그림2]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이삭의 희생>, 1603


저자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에 나타난 칼의 날카로움,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표정, 날아오는 천사의 위치, 그림 배경(양, 기다리는 2명의 종 등) 등에 대한 의미를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두 작가의 차이를 넘어서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의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림3] 마르크 샤갈 <이삭의 희생>, 1966 (이상 그림 출처 :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4740)


또한, 현대 화가인 샤갈의 그림도 소개한다. 유대인이었던 샤갈은 미드라시(midrash)적 해석과 함께 두 명의 작가는 다루지 않았던 어머니 사라의 슬픔(그림 왼편)과 예수의 십자가 죽음(그림 오른편)을 배치하여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저자는 아카다를 통해 개신교와 가톨릭이라는 종파의 차이, 근대와 현대의 시간적 차이를 이들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제시는 독자들의 폭넓은 사고를 도와준다.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는 새로운 관점만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 알려진 사실과 오류에 대해서도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26절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인간을 만들자."라는 문장을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삼위일체(三位一體)'교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엘로힘(Elohim)"은 "엘로아흐(eloah)"의 남성복수형이다.... 엘로힘은 삼위일체와는 상관없다. 엘로힘이 문법적으로 '신들'이라고 가정한다해도 셋을 의미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엘로힘이라는 개념 연구는 셈족인들의 신관(神觀)에서 시작해야 한다...<창세기>에 등장하는 엘로힘은 고대 지중해 지방을 지배하던 독특한 신관인 "신들의 모임"구성원이다.(p431)'


<구약성서>를 해석할 때 <구약성서>가 당대 문화의 산물임을 인식하고 이를 해석할 때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함을 <신의 위대한 질문>의 전개를 통해 저자는 이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신의 질문'은 무엇일까?

저자는 13개 장을 통해 신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렇지만,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신의 질문을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그리스 문학 전통과는 달리 아브라함 종교의 경전들은 문장의 행간(行間)을 통해 말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을 "침묵 속의 웅변(eloquence from silence)"라 한다. 인간의 경험을 초월한 신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담을 수 없기에, 경전을 쓴 저자들은 침묵을 통해 자신들이 전하려는 내용을 독자들이 직접 찾아내기를 바란 것이다.'(p397)


'한자 "기도(祈禱)"를 풀이하면 "자신의 목숨(壽)을 자신의 도끼(刀)로 찍으려는 시늉을 하며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다... 40일 금식기도를 했다는 사람에게 아무런 삶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묻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욕망만을 무작정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오히려 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는 행위다.'(p186)


결국, <신의 위대한 질문>은 스스로가 깊이 있는 묵상을 통해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나열된 질문과 이에 답하려는 저자의 노력을 본(本)으로 삼아 더 고민하는 삶을 저자가 요청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서인 <구약성서>를 민족적 관점이 아닌 '개인- 신(하나님)'의 관점에서 '신의 은총'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반면 <구약성서>의 배경과 역사적 의미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의 위대한 질문>은 히브리 원어 해석,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료를 제시하고 깊이 있는 고민을 제시한 '성찰서(省察書)'라는 측면에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PS. 밥 딜런과 샤갈이 유태계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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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02-03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다 읽으셨네요 축~★역사적 관점에서의 관계가 아닌 신-나의 관점이라 하시니 케고르가 생각이 나요

겨울호랑이 2017-02-03 08:52   좋아요 1 | URL
^^: Theodora님 감사합니다. 키에르 케고르에 대해서는 ‘신 앞에 선 단독자‘ 밖에는 몰라서 다음에 기회되면 깊이 있게 읽어야겠네요^^:

AgalmA 2017-02-04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이 유대계 고리대금업자 같은 아버지 이미지를 몹시 싫어했다고 하죠ㅎ;;
렘브란트 천사 이미지가 그러다 한 대 치겠다 치겠어라 매우 웃김ㅎ;; 렘브란트와 카라바조 나란히 두고 보니 둘다 이삭의 포즈에서 종교적 미술적 양식화를 볼 수 있군요.
샤갈은 역시 색채의 황홀경^^!

겨울호랑이 2017-02-04 13:33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을 듣고 나서 다시 보니 적극 공감되네요^^: 역시 많은 작품을 접해서 안목을 길러야겠어요. 그림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철학 공부와 같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AgalmA 2017-02-04 13:55   좋아요 1 | URL
그래서 예술과 철학이 엮인 미학이 있잖습니까^^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헤겔이나 진중권이 욕을 먹어도 대단한 건 대단함^^

겨울호랑이 2017-02-04 13:59   좋아요 1 | URL
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많이 알려주세요, Agalma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AgalmA 2017-02-04 14:36   좋아요 1 | URL
저도 겨울호랑이님처럼 세계에 대한 궁금함 탐험 중인걸요. 겨울호랑이님과 동지의식을 많이 느낀 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사마천 2017-02-04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훌륭한 서평입니다. 대단하세요. 많은 공부가 됩니다. 어찌 이리도 부지런하신지 정말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05 05:56   좋아요 2 | URL
^^: 사마천님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덕분에 시행착오없이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