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 마르크스 : 역사를 움직이는 힘 지식인마을 24
손철성 지음 / 김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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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헤겔&마르크스 :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헤겔과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입문서다. 책의 주요 내용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특히 역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두 개의 축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 두 사상가에게 영향을 미친 칸트의 사상과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근대 이후 역사 철학에 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의 사상가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도서출판b의 <현대철학사전>시리즈 5권 중 각각 1,2,3 권을 맡는 사상가라는 점을 가진다. 권당 700페이지에 이르는 각 사전의 내용은 이들의 사상이 몇 줄의 글로 압축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헤겔&마르크스>는 입문서로서 가지는 내용적, 양적 한계를 고려하여 역사 철학의 내용으로 내용적 범위를 한정한다. 그리고, 이들 사상가들의 독자적인 사상보다 그들 사상의 연관관계에 주목하여 서술하고 있어 독자의 내용이해를 쉽게 한다.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칸트는 역사의 발전을 자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 법칙에 따라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목적을 '이성(理性)'이라 규정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이성의 계몽'에 따라 점차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헤겔은 칸트의 사상을 이어받아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이성이며, 이를 통해 역사는 진보(進步)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은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을 이끄는 사람, 영웅을 '절대정신(絶對情神 absoluter Geist)'로 정의한다. 그리고, 역사는 절대정신이 이끄는 '정(正)'과 '반(反)'의 대립을 통해 새로운 '합(合)'에 이르는 '변증법적 전개'를 통해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는 역사가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는 것과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는 관점에서는 헤겔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헤겔과는 달리 '물질적인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유물론(唯物論)'을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시대를 '원시 공산주의 사회-고대 노예 사회-중세 봉건 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 - 공산주의 사회'로 파악했다는 면에서는 법칙을 따른다는 측면을 받아들였지만, 시대적 구분 기준을 '사상'이 아닌 '생산구조' 측면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관점의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책에서는 이러한 틀을 가지고, 역사의 법칙성, 역사 연구의 방향,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거대 담론의 타당성, 역사 탐구의 기본 단위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입문서의 성격을 고려할 때'역사학(歷史學)'에 대한 좋은 화두를 제기했다고 생각하고, 관련 서적을 읽을 때 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6년 12월 9일에는 역사적인 일이 발생했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본격적인 탄핵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한 편에서는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유신체제의 종말이 공식화되었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한다. 탄핵소추안 의결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통해 이 사건을 바라보자.



[그림]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는 국회의장(출처 : 한겨레 신문)


헤겔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이성'에 따른 역사의 발전의 과정 중 일어난 사건이며, '절대정신'에 의해 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이성'은 우리 시대를 보다 나은 시대로 이끌어줄 것이며, '절대정신'을 통해 역사진보는 일어난다. '절대정신'을 '촛불'로 나타난 민심이라고 볼 때, '정(正)'은 '국민의 뜻'이며, 이에 대항하는 '반(反)'은 '친박(親朴)세력'으로 해석된다.(물론, 친박에서는 이와 반대의 관점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탄핵소추안 의결'이라는 합은 이제 새로운 '정'이 되어 이에 대항하는 '반'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끊임없는 변증법적인 상승과정을 통해 우리 역사는 끝임없이 상승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어떻게 볼 것인가.

마르크스 역시 변증법적 전개에는 동의할 것이다. 다만, 그는 '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절대정신'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다르게 해석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자본은 대형화되어 왔다. 자본은 이윤량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은 대형화되고 소수에 부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된다. 그 과정에서 몰락한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농민, 학생 등 사회계층에서 변혁의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역사발전의 힘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할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지금의 이 단계는 자본주의가 그 스스로의 모순을 나타내며 붕괴되는 '공산주의'혁명의 초기 단계라고 해석될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이러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사회가 발전한다는 법칙성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견해를 가진다. 이들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밝은 빛을 향해 나갈 것이라 기대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미래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가령, 우리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장기(long term)적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단기(short term)적으로 생각할 것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AD622년에 일어난 헤지라는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망간 사건이다.

그 사건 자체만으로는 패배지만, 이후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세력을 키워 후대 이슬람 세계를 구축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그렇기 때문에, 헤지라는 무슬림에게는 패배의 사건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시작으로 비춰진다.(헤지라가 일어난 AD622년은 이슬람역 원년이다.)


우리는 매일 닥쳐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시적으로 희망적으로 되기도 또는 절망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역사라는 관점을 통해 생각한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보다 우리의 위치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비록, 우리는 현대 역사의 물살 속에서 헤엄치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헤겔&마르크스>와 2016년 12월 9일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은 현대 우리시대를 바라보는 하나의 귀감(龜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처럼, <헤겔과 마르크스>는  입문서라는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서양역사철학의 주요 사상을 전반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주며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좋은 역사 철학 입문서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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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2-10 0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역사가 현실의 삶과 무관하지 않는 반복성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헤겔&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입문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12-10 08:36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기분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번 주말은 작은 승리의 기쁨을 누려도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사마천 2016-12-10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혹시 헤겔을 이어 받은 코제브,앨랜 블룸, 레오 스트라우스나 다른 사상가들에 대한 책도 보셨는지요? 저도 잘 모르지만 주변에서 추천해서요 ^^

겨울호랑이 2016-12-10 09:55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사실 헤겔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라 그 이후 철학자까지는 아직 진도가 못나갔습니다. 사마천님 덕분에 헤겔 이후의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네요. 철학사 큰 줄기를 잡고 이후 사마천님께서 추천하신 분들에 대한 공부도 해야겠습니다. 사마천님, 항상 좋은 책과 저자를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탄핵 소추안 가결과 더불어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16-12-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0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0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6-12-10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진보한다. 내 신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증명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였어요..

겨울호랑이 2016-12-10 19:59   좋아요 2 | URL
^^: 네 어제의 탄핵소추안 의결은 분명 의미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산을 올라가는 심정으로 차분히 올라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