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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화혁명 - 유럽의 패권을 가져온 세계관의 탄생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 김병화 옮김 / 심산 / 2005년 5월
평점 :
<수량화 혁명>은 유럽 제국주의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 제국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수량화'와 '시각화'의 관점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책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수학은 중요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보다는 이상세계의 추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보다 정밀하게 그려내는 측량술의 발전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음악은 기억에 의존해서 전승되고 있었고, 회화는 신학(神學)적 현실의 반영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16세기에 일어난 인쇄, 계산, 원근법의 변화는 서양인들에게 '시간'과 '공간'에 일대 혁명(革命)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시간적인 변화는 달력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최종적으로 17세기에 도메니쿠스 페타비우스(Domenicus Petavivus)에 의해 AD/BC 체계를 최종적으로 손질하고 이를 확립하게 된다. 공간적인 변화는 측량술의 발전을 통해 보다 정밀한 지도 제작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원거리 항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수학의 발전은 아라비아 숫자 도입과 각종 부호의 사용으로 인해 촉발된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계산이 편리해졌고, 편리한 계산은 화폐경제를 뒷받침하여 복식부기를 탄생시켰으며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게 된다.) 시각화는 음악에 있어서 악보를 만들어낸데 공헌하게 되고, 변화된 시간의 관념을 통해 비정량적인 음악(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다성음악으로의 발전된다. 회화 부문에 있어서는 중세의 추상적인 기법 대신 원근법을 통한 현실의 반영한 기법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수량화, 시각화를 통해 일어난 일련의 혁명이 유럽 제국주의는 다른 제국주의에 비해 유례없는 성공을 가져다 주게 된다.
저자는 유럽제국주의를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서구 문명에 대한 저자의 편향된 시각은 '비유럽권 문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대항해시대 초기에도 유럽의 문명은 타문명에 비해 거의 앞서지 못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제국주의 침탈이 한창이던 19세기 중엽까지도 이어지게 된다. 이는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한 이유를 분석한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널드 라크와 에드윈 클레이가 1965년에 쓴 <유럽을 만든 아시아>에 따르면, 16~17세기에는 수백 권의 아시아 서적이 유럽인 선교사·상인·선장·선원·의사·군인·여행가 등에 의해 유럽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 시어도어 포스가 1986년에 쓴 논문에 따르면, 18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중국의 기술서·실용서 등을 번역하는 데 아주 적극적이었다.
1866년에 프랑스 병사들이 건물은 불태우면서도 책만큼은 소중히 챙겨간 이유는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동아시아 서적을 열심히 번역해내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프랑스 병사들의 눈에는 외규장각 도서들이 아주 값나가는 물건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 서양 중심주의에 빠진 지식인들은 서유럽이 아주 오래 전부터 세계 일류였던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유럽은 19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동아시아를 능가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 탐낸 진짜 이유' 中]
실제로, 유럽은 인도로부터 아라비아 숫자 등 수학을, 아랍으로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롯한 자연철학을, 중국으로 부터는 종이, 화약, 나침반 등을 받아들이는 주변 문명이었다. 유럽문명은 다른 문명에 비해 군사력 이외 부문에 있어서는 후진(後進)문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16세기 이후 다른 문명을 선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유카탄 반도와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도착했을 즈음 마야인들은 이미 지적인 침체에 빠져 들었고 더 이상 수학이나 달력을 발전시키고 있지 않았다.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이 동아시아에 도착했을 무렵 중국인들은 이미 송 왕조의 거대한 시계에 대해 부관심한 상태였고, 결함투성이던 그들의 달력 체계는 예수회 신부들의 도움으로 고쳐질 때까지 내내 그런 상태였다.'(p34)
'우리가 대개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랍인들이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외에 거의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다. 아랍인들은 이 숫자를 인도인들에게서 배웠으니, 인도인들이 발명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그것을 중국인에게서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p146)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접하다보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이 생각난다.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의 성공요인을 유럽 문명의 특징에서 찾으려 했던 것처럼, 저자 앨프리드 W. 크로스비는 유럽 제국주의의 성공요인을 그들의 문명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키루스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칭기즈 칸, 후아이나 카팍은 위대한 정복자였지만 이들이 차지한 땅은 한 대륙 이상을 넘지 못했고, 기껏해야 두 번째 대륙의 가장자기를 건드리다 만 정도이다. 이들은 빅토리아 여왕에 비하면 골몰대장 수준이었던 셈이다. 여왕의 제국에서는 문자 그대로 해가 지는 일이 없었다. 또 전성기 때의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독일의 영토에서도 태양은 지지 않았다.'(머리말 p8)
저자가 말하는 제국(帝國)은 '땅'인 것 같다. 제국의 크기를 제국의 역사적 의의,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으로만 생각하는 그의 관점은 지극히 편협하다. (마치, 부동산 투기업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변화의 원인 중 유럽 고유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외래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굳이 유럽 문명의 고유성을 찾는다면 그들의 '폭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문명들의 발전과는 달리 유럽문명은 측량술의 발전을 통해 침략할 세계를 살펴보고, 수학을 활용한 포병 화력으로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이러한 유럽 문명의 '폭력성'에 대해 저자는 기술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유럽 내부에서 일어난 16세기의 각 분야별 변화요인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반면, 유럽 제국주의의 특징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반쪽짜리 책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