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볼트 테일러의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와 함께 좌, 우뇌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은 점은 동양적 사상과의 연관선상에서 양 뇌를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불교의 무아, 공, 중도의 사상에 대한 설명에는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우리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사고형 생명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감정형 생멍체다.˝요즘 어떤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안개속 물체처럼 모호하고 흐릿한 개념들이 일순간 정리되어 또렷이 이해되는 경험을 한다. 예를 들어 직관, 창의성, 혁신 등의 개념이 스토리씽킹에 대해 읽고 머리속에 정리되었던 경험처럼 이책 또한 많은 생각을 정리 해준다. 사고, 감정, 영성, 명상 둥 그동안 개별적인 개념들이 통합되고 연결되는 기분이다. 좌뇌 2 감정형 대한 설명에서 나와 타자의 이 두 캐릭터가 충돌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90초 법칙이라는 사실이 인상깊다. 수년전 아내와 아들의 충돌 경험들이 떠올랐다. 정말 둘 사이에서 나는 대책이 없었다.
이야기 vs 논리<고유지능>의 앵거스 플레처의 또다른 저서입니다.우리의 창의력과 혁신은 논리 기반의 분석적, 비판적 사고 보다는 스토리씽킹 기반으로 만들어 진다는 주장이다.지금의 학교 교육은 논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혁신적이고 창의적 사고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스토리가 가진 고유한 힘과, 인간 고유의 사고력이라는 관점이 신선하다.이어서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까지 일독을 해보고자 한다.
key Word 스토리씽킹, 지능(직관, 상상, 감정, 상식)지능은 선천적인 것일가? 아니면 후천적 양육의 결과일까?사람마다 나타나는 지능의 차이와 다름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본성과 양육의 문제, 재능과의 관계 문제는 오랜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주제이다.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지능을 저자는 네개의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인간 지능의 발달에서 논리 보다는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선하고 충격적인 접근이다. 셰익스피어가 인류사에서 왜 혁신의 원천인지를 고호, 아인슈타인, 퀴리, 테슬라 등 여러 혁신가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또한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인간지능과 비교한 한계점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저자는 학교 시스템에서 강조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최적화 지식이 우리의 고유 지능을 어떻게 억누르고 말살하는지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스토리씽킹 능력을 얘기한다.이 책에 이어 일독해 볼만한 지능에 관한 책들이다.<지능의 기원><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지능의 신경과학><빛을 먹는 존재들><스토리씽킹> 이후 인공지능과 관련 책들을 탐독해 본다면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 놓을 앞으로의 변화를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던 중 40대 중반에 늦깍기로 대학원에 갔다. 나는 대학 전공과 무관한 직종에서 업계 경력이 10년이 넘어 가다 보니 학문적인 호기심과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나의 학부 전공 지식이 다르고 업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암묵지 형태가 대학원 수업을 통해 마주친 것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감 이었다. 또한 수믾은 아티클을 읽고 발표하는 수업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어느 날은 발표 중에 영어 단어의 뜻을 묻는 어느 노교수의 질문에 답을 못해 엄청난 면박을 당했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교수의 권위에 눌려 대들지도 못했다. 그후 석박사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았지만 나는 도대체 대학원 강의에서 그렇게 영어로된 아티클을 읽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한번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또한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절실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위를 받은 후 다시 독학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대학원 강의를 히는 교수들의 그 작태의 한심함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저 강의를 하고 강의료를 챙기는 기계적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적 호기심을 깨우고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적 방법론을 만들 수 있도록 돕지도 못했다. 개념과 원리와 이론의 체계적 단계와 구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도 없었다. 그런 것은 기본이니까 구지 설명하지 않을 테니 아티클이나 열심히 읽어라? 아니다 그들은 무지에서 강의하고 관습적이고 반복적 행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없다. 아니 어딘가에는 있을 수 있다.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나의 불행이다.언어를 배우는 일은 지적 지평을 넓혀 주고 호기심을 일으켜 세우는 훌륭한 도구이다. 이런 도구적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질문은 무엇을 이전에 어떻게가 되어야 하고 그 전에는 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