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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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다른 식민주의 군사 행동들과 비슷한 전형적인 특징이 많기는 하지만, 또한 아주 특수한 특징도 있다. 대단히 특별한 식민주의 기획인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이 운동을 위해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 열강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수행된 이 식민주의 충돌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두 민족 집단, 두 국민의 민족 대결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특징의 밑바탕에서 그 점을 더욱 증폭시킨 요인은 유대인, 그리고 또한 많은 기독교인에게 역사적인 이스라엘 땅과 성경의 연관성을 불러일으키는 심대한 공명 resonance이다. _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p25

라시드 할리디(Rashid Khalidi, 1948 ~ )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_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The Hundred Years' War on Palestine: A History of Settler Colonialism and Resistance, 1917-2017>은 뉴스를 통해 익숙하지만 문제의 전반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 새로운 관점은 바로 '팔레스타인의 관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두 충돌(1948년 전쟁, 수에즈 전쟁) 모두 거의 오로지 이스라엘군과 이웃 아랍 국가 군대들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자기 땅을 빼앗긴 것을 묵인하지 않고 저항하자, 자국 문제에 정신이 팔린 채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의지나 각오가 전혀 없었던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대결로 이끌려 들어갔고, 이 대결은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었다. _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p144

많은 경우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아랍 제국들과 이스라엘의 전쟁', '이슬람과 유대교의 종교 갈등'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회복'이라는 구약의 실현이라는 종교적인 해석에 이르는 인식의 범위를 넘지 않은 수준에서 바라본다. 그렇지만, 정작 그 땅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고 살았던 이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없었다. 유대 전쟁 이후 멸망한 유대왕국과 디아스포라를 형성했던 유대인들의 불행한 처지, 그 속에서도 탈무드와 토라를 통해 신앙과 민족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있었던 이들이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겪으면서 결국 선조 아브라함이 약속받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는 약속의 실현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는 것이 주된 관점이다.

자연스럽게 약속된 땅에 살고 있었던 이들은 악(惡)으로 낙인찍혔고, 수많은 블레셋인들이 삼손의 나귀턱뼈로 죽임을 당해도, 무너진 건물로 수십 명이 함께 죽어도 되는 사람들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우리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은 골리앗이며, 작고 약한 다윗, 이스라엘인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구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우리에게 뒤바뀐 골리앗과 다윗의 존재를 알려준다.

1차 인피타다가 시작된 순간부터 1996년 말까지 이스라엘 군대와 무장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 1,422명을 죽였다. 거의 이틀에 한 명 꼴로 죽인 셈이다. 그 중에 20퍼센트 이상인 294명이 16세 이하의 미성년자였다. 같은 기간에 이스라엘인 175명이 팔레스타인인들 손에 죽었는데, 그중 86명이 군인이나 경찰이었다. 8 대 1 이라는 사망자 비율은 상징적인데, 미국의 언론 보도를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좀처럼 알기 어려운 수치다. _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p250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의 로켓들은 2014년 이스라엘이 발사한 4만 9,000발 이상의 전차포와 대포처럼 크고 치명적인 탄두가 없었다. 하마스나 그 동맹 세력은 보통 소련이 설계한 122밀리미터 그래드 Grad나 카추샤 Katyusha 로켓을 발사했는데, 약 20킬로그램이나 약 30킬로그램 탄두를 사용했다... 하마스와 동맹 세력이 발사한 미사일이 빗줄기처럼 쏟아진 것은 분명 사거리 안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유력한 심리적 효력을 발휘했겠지만, 이 무기들은 위력이 크지 않았다. _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p325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이 식민주의 기획인 시온주의에 있음을 말한다. 시온주의의 해악은 여러 민족들의 공존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힘으로 관철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를 확대재생산시켜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빚어진 대량학살의 피해자들이라는 엄청난 비극에 대한 세계인들의 미안함과 공감이 배경으로 자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는 더는 피해자일 수 없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 의해 지금도 지워지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에 저항하는 이들이 겪는 비극 속에서 적어도 인간사에서는 영원한 선(善)도, 영원한 악(惡)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함께, 과연 우리 또한 뒤바뀐 골리앗과 다윗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일제 치하에서 남한대토벌작전, 경신대참변 등을 겪으며 민간인 학살의 참상을 비난하지만, 그 후 베트남 전쟁에서 가해자로서 우리가 저질렀던 민간인 학살의 만행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여기에 담긴 의미가 결코 먼 땅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1차)인티파다는 시위와 나란히 파업, 불매 운동, 세금 납부 거부에서부터 다른 창의적인 형태의 시민 불복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다. 항의는 때로 폭력 사태로 바뀌었는데, 대개 비무장 시위대나 돌멩이를 던지는 젊은이들에게 군인들이 실탄과 고무총탄을 발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불이 붙었다. 하지만 봉기는 비무장, 비폭력적인 방식이 압도했다. 그 덕분에 거리에서 항의하는 젊은이들 외에도 사회의 여러 부문을 결집시키는 한편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사회 전체가 현재 상태에 반대하고 인티파다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_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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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11-14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성경의 다윗이 그랬듯 지금의 다윗이 지혜롭게 방법을 찾을 수 있길 희망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3-11-14 20:56   좋아요 1 | URL
약자에 대한 무도한 공격과 탄압은 역풍이 되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스라엘 자신이 역사로부터 가장 많이 실감할텐데 자신들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지금처럼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수렁에 빠지는 것은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NamGiKim 2023-11-14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집속탄 및 백린탄으로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 하워드 진이나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행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여했는데, 어린 아이들까지 집회에 나와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모습에 울컥했죠. 누가봐도 이스라엘의 폭력은 75년간 지속된 즉, 아메리카 백인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에게 보인 폭력과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1-14 21:00   좋아요 1 | URL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석하셨군요. 학업을 하는 중에도 현실에서 눈돌리지 않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입니다. 예전에는 무능하고 게으른 아랍국가들과 현명한 유대민족의 구도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던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점차 나은 미래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합니다. NamGiKim님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3-11-1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기사에서 보니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을 통해 영국과 소련이 제국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분석을 다루었더군요.

그리고 지금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만 드는
어느 제국의 몰락을 예견하기도 했구요.

북한과 더불어 유엔 결의를 가장 무시하고
아랑곳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인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취하지
않네요.

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
가자 전쟁까지 휘말려 들게 된다면 정말 답
이 없다는 이야기도요.
처음부터 이란을 배제한 채, 현상유지를 위
한 줄타기가 결국 오늘의 사태를 불러 왔다
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우크라이나와는 전혀 다른 이중 잣대를 제
시하는 미국의 모습에서 제국의 몰락이 보
이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1-14 21:07   좋아요 1 | URL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장 먼저 시오니즘과 손을 잡은 국가가 영국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영국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이스라엘로부터 팽당하고, 뒤이어 미국과 소련이 영국의 자리를 대신했다는 이야기가 본문에서 다뤄집니다. 그런 면에서 미국 또한 이스라엘의 쓸모가 될 수 없다면, 영국과 소련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겠지요.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개의 전쟁에 대처하지 못하는 미국 앞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터진 상황에서 대만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레산매냐님께서 말씀하신 제국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