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제국 : 중국 - 고대―1600
발레리 한센 지음, 신성곤 옮김 / 까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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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성장 기간들 동안 중국은 통일되지 않은 상태였다.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관찰자들은 모두 제국이 통합되지 않았던 것을 한탄하였다. 그리고 제국을 통일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군주의 출현을 바랐다. 그들은 분열과 전쟁, 잇따른 혼란에서 얼마나 많은 활력(活力)이 비롯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487

발레리 한센 (Valerie Hansen, 1958 ~ )은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The Open Empire : A History of China to 1600> 을 통해 한(漢)족이 수립한 제국(帝國)이 천명(天命)에 의한 정통성있는 국가인 반면, 주변 이민족에 의해 수립한 이른바 유목제국들은 혼란과 파괴만을 주었을 뿐이라는 한족 중심의 사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중원을 지배한 유목제국들은 천명에 어긋나는 오랑캐에 불과했을까.

천명사상은 주나라의 상나라 정복 때에 등장하였지만, 후대 왕조교체의 틀 속에 교묘하게 편입되어 기원전 1세기에 사마천이 <사기>에서 이를 기록할 정도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천명은 신의 의지가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만 확인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건을 신의 의지의 결과로 여기도록 만들어 주었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59

저자는 <열린 제국>에서 시선을 아래로 돌린다. 왕조 중심의 중국사가 아닌 당대의 시대상에 초점을 맞춘 저자의 분석은 단편적으로만 접하던 생활상에 활력을 부여한다. 문학작품에 남겨진 언어와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 분석을 통해 저자는 작품의 행간속에 담겨진 감정을 헤아리고, 생활상을 통해 문자로 표현되지 않은 분위기를 보다 생동감있게 전달한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으로 독자들은 단편적인 지식의 파편이 아닌 열리고 닫히는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전역의 집안에서 일어났음직한 이 대화는 가문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 및 구원과 불교의 요구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요 주제를 보여준다. 안령수는 자신의 부모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들을 구원받게 해주고 싶다고 주장함으로써 일체의 이기적인 동기를 부인한다. 공덕(功德)을 베푼다는 불교의 교리, 즉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나누어줄 수 있다는 교리가 안령수가 펼친 주장의 근거였다. 비구든 비구니든 승려가 됨으로써 자신들이 쌓은 공덕을 자신들의 가족에게 베풀어줄 수 있고, 대신 가족들은 승려를 지원함으로써 공덕을 쌓을 수 있었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198

유행에 민간함 여성들은 중앙 아시아풍의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어깨까지 덮는 최신 유행의 숄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외출의 자유는 후세 상류층 여인의 규방 속 생활풍속과는 전혀 달랐다. 후세의 여인들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발을 졸라매는 전족(纏足)을 해야 했고, 감히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당대의 그림을 보면 북방의 여인들이 누렸던, 상대적으로 강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말을 탄 여인들은 매우 편안해보이고, 한 어머니는 딸에게 말의 고삐를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251

이러한 이해의 기반 위에 독자들은 고대 상(商)으로부터 근대의 명(明)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팽창과 축소라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선진(先秦)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은 크게 진나라의 법가(法家)에 의한 규율과 유가(儒家)에 의한 예(禮)로 정리되면서 국가 단위에서 법과 도덕의 틀을 형성한다.

진한 제국의 통치 400년 동안 중국 사회는 이후의 제국에서 나타날 윤곽이 대부분을 드러냈다. 제국시대는 다양한 계층 사회 사이의 이동 없이 교육받은 가문이 강력한 지주계층으로서 최정상을 점하였다. 한대의 시장경제와 이를 규제하는 정부의 역할 또한 유지되었다. 중대한 변화가 올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은 바로 정신적인 측면이었고, 이 변화는 왕조의 붕괴 직후에 바로 찾아왔다. 유교와 도교를 양 축으로 하던 한대의 신앙세계는 새로운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184

이에 반해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도가(道家) 사상이 중심이 되었다. 이후 서방으로부터 전파된 불교와 그리스도교 모두 도가의 용어 위에서 이해되면서, 본래의 종교와는 다르게 융합된 종교적 색채를 보여준다. 외래로부터 전래된 사상을 중국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열린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예수회는 가톨릭의 주요 개념과 교리를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곧 문제에 부닥쳤다. 그들은 비기독교적인 함의를 내포하는 기존의 중국어 단어를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초기의 불교 신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도교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곤란에 대처하였다... 엄격한 일신교인 가톨릭은 중국에 존재하던 모든 종교적인 전통과 상충되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가톨릭 교리를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였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466

그렇지만, <연린 제국>에서 다루는 기간 내내 중국이 열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크게는 유목민족에 의한 지배 시기, 한족이 지배하는 왕조에서도 중상(重商)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경우 외부와의 교역이 활성화되고 비단길이 열리는 등 열린 제국으로 기능했지만, 반대로 중농(重農)주의자들이 집권한 경우 제국은 장성과 강을 경계로 문을 닫아버리는 닫힌 제국이 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전매정책에 대한 논쟁에는 두 집단이 참여하였다. 한쪽은 대부(大夫)라고 불리는 새로운 전매정책의 입안자들이었고, 다른 쪽은 검소한 생활풍속과 자급자족적 경제체제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비판적 지식인에 속하는 문학(文學) 집단이었다. 문학 집단은 독점의 폐해뿐만 아니라 중국 외의 국가들과 교역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정부관리가 교역을 금지시키고 전매정책을 폐지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급자족하는 보다 단순한 경제체제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大夫)는 정부의 교역정책을 열렬히 옹호하였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163

왕안석의 신법(新法) 중 대부분은 화폐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는 정부의 모든 관리, 심지어 하급 관리가 이전에 받던 모든 종류의 급량(給糧)을 현금 봉록으로 대체하려고 하였다. 왕안석은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는 다마(茶馬) 무역을 관장하는 시역무(市易務)라는 새로운 관료기구를 창설하였다. 상인들이 대거 이 관서에 관리로 충원되었으며, 관리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가를 기준으로 승진하였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325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중국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이민족에 의한 굴욕의 시기가 오히려 중국문명에 있어서는 하나의 혁신이며 도약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분열과 대립의 시기 동안 세계의 선진국이었던 중국이 안정의 시기를 거치며 오히려 서서히 침몰해가는 것은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같이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는 중국인이 아닌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본 객관적인 중국사라 생각된다.

전통시대 중국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지만, 분열은 사람들에게 혁신을 강요한다. 이 시기 동안 도교의 연금술사들은 새로운 처방전과 약초를 실험하였다. 또한 대담한 불교 구법승들과 상인들은 비단길과 바닷길을 개척하여, 이를 가로질러 빈번히 중앙 아시아, 인도, 동남 아시아로 여행하였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1600>, p230

중국은 명대를 통해서 번영과 성장을 누렸다. 이전 시기와 비교해보면 제국의 경제적 팽창은 전례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1600년에 중국은 더이상 세계의 선진국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중국의 그늘에 가려졌던 유럽이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480

글의 마지막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중국에 가서 거래하는 조선상인의 모습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의 또다른 면을 엿볼 수 있다...

<노걸대(老乞大)>는 말을 팔러 베이징에 갔던 한 무리의 한국인들의 여행을 자세히 묘사한 회화책이다. 비중국인을 위한 언어교재로 1400년 이후에 쓰인 이 책은 한글-중국어 두 언어가 병기된 판본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p470)... <노걸대>를 보면 지폐가 없어도 화폐경제가 순조롭게 기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국인들은 모든 거래에서 은을 사용함으로써 현금판매를 하였다. 그들이 상품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상품과 바꾼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_ 발레리 한센, <열린 제국 : 중국 고대 - 1600>,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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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06-30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의의 뒷모습이네요. 연의의 여름이 건강하고 즐겁기를 바라요!

겨울호랑이 2023-06-30 11: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목련님께서도 건강한 여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거리의화가 2023-06-30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이 책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로 빌렸어요. 요즘은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의 입장에서 본 역사를 여러 모로 주목하게 되는 듯 합니다. 안 그래도 중국사 읽기를 진행하고 있는 관계로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6-30 15:3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왕조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중국인과 중국 문화에 초점을 맞춘 다른 매력있는 중국사로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도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 ^^:)

그레이스 2023-06-30 18:22   좋아요 1 | URL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그런데 까치거면 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