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의 부드러운 숨결,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 박솔뫼의 소설집 『영릉에서』을 읽고 내가 떠올린 것들이다. 박솔뫼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박솔뫼를 그리는 장면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솔뫼는 여전히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억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박솔뫼가 쓰는 소설과 내가 읽는 소설의 끝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박솔뫼는 사건이나 서사가 아닌 한순간을 포착해 그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원을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반복이 이어지고 어떤 장면은 중첩되고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는 원준이는 정목이와 정목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계속에 놀러 간다. 그러다 정목이 아버지가 먼저 떠난 걸 알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어른들에 대한 기억. 그런데 묘한 건 이 소설이 아름답고 좋으면서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남았지만 연락은 닿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 왠지 모를 쓸쓸함과 슬픔의 조각이라고 할까.

정목이와 원준이가 정목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처럼 정목이와 원준이를 따르는 것이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햇빛과 선명한 파란색의 하늘은 그대로이고 그것은 어느 다른 날의 햇빛과 하늘과 구름과 같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어느 날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13쪽)

박솔뫼는 특정 장소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영릉이 그러하듯 나머지 단편에서도 독자를 장소로 이끈다.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닌 그곳에 도착해서 마주한 기억, 그러니까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꺼내 들려준다.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의 부산, 「극동의 여자 친구들」속 중부시장, 「아오모리에서」에서는 아오모리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일상의 기록처럼 읽히는 부분도 많다.

김연덕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때문에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를 읽고 「아오모리에서」를 다음으로 읽었다. 「아오모리에서」는 9월의 아오모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 이야기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꿈같기도 한데 덕분에 나는 9월에는 아오모리가 생각날 것 같다.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느리게 외우며 어떨 때는 누군가를 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누구도 잘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것이 슬프지 않았고 기꺼웠다. 나에게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 내 얼굴을 보아주는 사람들 역시 나와 같지 않을까. (「아오모리에서」, 188쪽)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움직임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극동의 여자 친구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투 오브 어스」 세 편의 연작소설이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의 화자 강주는 중부 시장에서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가며 마주한 간판, ‘움직임 연구소’. 움직임을 연구하는 곳이 있다니. 정말 흥미롭다. 밝은 눈을 가진 이만이 그곳을 발견하고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이다. 세 단편의 화자는 움직임 연구소의 워크숍에서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말하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구현한다.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니. 나의 움직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상상하기 어렵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혹은 잘못된 자세 같은 것만 떠오를 뿐이다.


세 편의 이야기는 ‘움직임 연구소’란 공통분모가 있지만 그보다 작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이 오가며 마주하는 공원과 지금은 부지로만 남은 ‘미극동공병단’에 대한 것이다. 1950년대의 공간과 그곳에서 있었을 사람들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 잊히고 사라지는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라고 할까. 미극동공병단 근처를 걷고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매일 걷고 스치는 지나는 공간이 지닌 기억을 헤아리고 회상한다고 할까.


다른 소설이 주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는 조금 다르다. 기정은 자신의 집을 친구에게 내어주며 서원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서원은 기정과 지내면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진다. 기정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서원이 기정과 연결된 사람들과 만나며 기정을 향한 마음은 변화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자신의 머리카락과 이마 눈썹과 피 눈물과 피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한다는 것이 마치 바람의 호흡을 살피고 구름과 별의 움직임을 헤아리는 일처럼 중요하였고 서원이는 자신과 주변의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생각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2쪽)


모든 사랑은 언제나 늦게 찾아오며 이미 시작되어 있다는 것, 이미 시작되었고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또한 사랑은 어긋나며 어긋난 대로 반복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서원이가 사랑을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이며 콧물에서 벌어진 일이자 서원이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7쪽)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걷기를 생각하면 서원이 기정을 향한 마음의 걷기의 속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서 빠르게 걷는 마음, 그리고 조금 멀어져 천천히 걷는다. 마침내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마음의 걷기.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다. 걷기와 움직임, 이 소설은 그렇게 연결된다.

소설을 읽으며 종종 검색을 했다. 영릉, 중부 시장 건어물, 명동 성당, 부산. 그리고 박솔뫼 작가를 검색했고 단편 「사과」로 올해 이효석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과」가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은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가 좋았다는 blanca 님의 댓글이었다. 「사과」로 이어지는 것까지 마음이 흡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 아는 단어 - 늘 따라오는 것, 쫓아오는 것, 나를 숨게 하지 않는 것, 무자비한 것,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것
김화진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시인, 번역가가 사랑하는 단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고유하고 평범한 단어. 어떤 단어는 작가의 일부이자 상징이 된다. 번역가의 단어가 재밌고 특별하게 읽혔다. 내가 모르는 언어라서 그럴 것이다. 나만의 단어를 갖는 일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주말이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해서 고양이 컵이 생각났다. 꺼내놓고 보니 흡족할 정도로 반가웠다. 집사는 아니지만 나는 고양이가 좋다. 아무튼 세계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주말까지 무지 덥더니 어제부터는 뭔가 기운이 달리진 것 같다. 급기야 어젯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잤다. 물론 긴 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8월에도 책을 샀다. 사는 건 즐거우니까. 그게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르고 골라 주문한 두 권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다. 김화진의 소설집『텅 빈 마음 가진 채로 』과 김연수의 에세이가 있는 『계절 쓰기』다. 김화진의 소설을 생각하면 많이 읽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내가 큰 목소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김연수의 글이다. 『계절 쓰기』에서도 김연수는 여름에 대해 썼다. 어느 여름일까, 어떤 여름일까.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 그러면서, 이제 김연수의 에세이나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인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김연수는 계속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계속 좋아하는 마음에 흠집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괜히 그런다. 계속 좋아하다, 계속 읽다가 이제는 읽지도 않고 신간이 나와도 지나치는 작가가 많아졌으니까. 계속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걸까.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글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변심 때문일까.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건 무척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를 계속 좋아하고 싶다. 어쩌면 그냥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내 책임 안에 두지 않아서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겨서. 책임이 부여된다면 더 크게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계속 좋아하는 일은 혼자만의 사랑이라 가능하면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계속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계속 좋아하기를 계속 생각한다. 계속 좋아하기, 계속 좋아해서 끝까지 좋아하기. 계속 좋아하고 좋아해서 계속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면 굳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직은 계속 좋아하는 중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6-08-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가 좋아요. 강아지는 좀 무서운데 고양인 귀여워요.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고(지인집 두 집도 더 있겠군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거든요. 확실히 고양이가 더 이쁘더군요.^^
자목련 님도 집사가 아님에도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반갑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님에 대한 애정도 보기 흐뭇합니다. 저는 아직 김연수 작가님 소설들을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좋아한다고 말 꺼내기가 좀…ㅋㅋㅋ 그래도 신간 소식은 늘 반가워요. 책 좀 자주 내주시면 좋겠어요.^^

자목련 2026-08-13 11:08   좋아요 1 | URL
고양이를 좋아하는 시작은 오빠네 고양이 때문이에요. 조카가 집사라 할 수 있는데 시골이라 매번 냥이들이 바뀝니다. 올케언니의 말에 따르면 새끼를 낳고 달아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고양이가와서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요.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우선은 사두고 ㅎㅎ
이제 신간이 나올 떄가 된 것 같은데 짠 하고 나오면 좋겠어요!

blanca 2026-08-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김연수 작가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자목련님 마음이 너무 같아 깜짝 놀랐어요. 제가 계속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작가거든요.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게 되는 작가로 삼십대 초반부터 여전히 질리지 않는 작가로 남아 있는 작가예요. 이제 단행본 나올 때 됐는데, 해서 신간 알림 오면 깜짝깜짝 놀라다 앤솔로지라 조금 실망하고 그러는 중입니다. 저도 좋아하다 이제 신간을 사지 않는 작가가 늘어갈 때마다 뭔가 마음이 좀 그래와요. 계속 좋아하기,는 참 어렵고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라는 자목련님 문구가 참 귀여워요. :)

자목련 2026-08-13 11: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김연수 작가의 글로 채워진 책을 원하는데, 조만간 나오겠지요.
계속 좋아하고 계속 읽고 blanca 님과 계속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특히 더 좋습니다!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온(on) 시리즈 5
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

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

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즈음 2026-08-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여자였더라고요. 뭔가 고백하기 어려운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묘했어요. 그녀가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그런 상투적 안부를 보내고 싶었어요.

자목련 2026-08-07 14:26   좋아요 0 | URL
저도 응원하고 안부를 전하고 싶어요. 꼭 그녀에게 닿았으면 싶고요! 고양이 ‘등단‘이와 행복하게 지냈고 있을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8-05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하게 자랐던 저에게는 늘 돈이 부족하고 돈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삶이 너무 당연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세상에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게 드라마 같은 곳에서만 있는 건 아니었구나.

가난의 온도 라는 단어를 들으니 지금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이어지고 있는 폭염과 열대야가 생각나네요. 저는 거의 이주일째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여기저기 에어컨이 있는 집들을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에어컨이 있고 저를 재워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며칠씩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나서 하루 정도는 집에서 자야지 생각하고 저녁 늦게 들어갔는데,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피난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목련 2026-08-07 14:29   좋아요 1 | URL
저도 풍족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아요. 경험하는 세계가 넓어질 수록 다른 세상이 있구나 싶었고요. 요즘 너무 덥습니다. 건상 조심하세요. 택배 엄무 하실 때도요. 오늘이 입추인데,가을이 오긴 할까 싶어요 ㅎ

잉크냄새 2026-08-06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존감을 포기하고 가난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복지의 혜택을 하사하는 헬조선의 민낯이 드러나더군요. 낙인 = 복지 혜택의 등가가 성립되는 구조입니다.

자목련 2026-08-07 14:35   좋아요 0 | URL
누군가 그 복지를 탐패서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원이 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한 것 같아요. 말씀처럼 헬조선의 악순환입니다.
 
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 거기 있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 거기 있어서. 재밌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눈부신 은유에 놀라고 감탄하다. 그런 읽기가 전부였다. 뭐, 그런 읽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일개의 독자이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글에 매료되어 그 방대한 세계의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작은 틈새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이 30년 전에 쓴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가 그랬다. 20세기의 문학 작품 가운데 사랑을 읽고 탐구한 기록이다.


책을 읽기 전 우선 목록을 살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있는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그에 비해 세계문학은 읽은 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게 맞을지도. 그래도 반가운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윌라 캐더’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윌라 캐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루시 게이하트』가 너무 좋아서, 고닉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애와 환경을 참고하면 더 풍부한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윌라 캐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닉에 의하면 그녀는 실제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소설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월라 캐더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 『루시 게이하트』 속 루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피아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루시가 자기 자신을 몰랐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고닉이 소설 속 루시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을 때는 우연인가 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월라 캐더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애덤스와 아내 클로버 에덤스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나처럼 헨리 애덤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 애덤스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셀럽 부부의 허상이자 지적이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화 능력도 놀라운 아내 클로버에 대한 헨리의 우울과 질투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건 남편 헨리라는 점에서 클로버는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고닉의 글처럼 말이다.

클로버처럼 ‘덜 중요한 삶’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과 가까운 중요한 인물은 풍부한 기록을 남긴 역사가들이 그럴듯한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덜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누이는 신경쇠약이었고, 신부는 도망쳤고, 아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는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결말만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51쪽)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눈치가 빠른 이라면 부모와 자식이락 답할 것이다. 남편이 아닌 자식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집착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 사랑에 삶을 저당잡힌 이야기. 『아들과 연인』을 시작으로 『고독의 우물』, 『메리 올리비에』, 『등대로』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친밀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지독한 연애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우리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삶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으키는 병적 흥분에 발목 잡힌 연애 사건이다. (86쪽)

30여 년 전 고닉의 글을 읽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친 작가,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한 작가의 목록을 읊는다.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그들이 그려낸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막장 드라마 같고 어떤 소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현재의 기괴하고 소름돋는 잔인한 사건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젤소민아 2026-08-0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시 게이하트‘ 좋아해요. 복수인 ‘우리‘가 기억하는 루시. ‘나‘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그걸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루시의 상황은 물론 가슴 아프지만요. 제 경우는 <이선 프롬>의 어쩌지 못하는 갑갑한 불운, 그리고 가해진 강제적 선택이 겹쳤지요. 이 책, 저도 사러 갈게요~

자목련 2026-08-07 14:20   좋아요 0 | URL
‘루시 게이하트‘ 를 좋아하신다니 반갑고 좋습니다. 고닉의 비평은 재밌고 쉽고 놀라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