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치,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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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몰랐던 거야. 우리는 무너뜨리는 것도 희망이고 다시 세우는 것도 희망이라는 걸. 허물어진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아까와는 조금 다른 모양의 마음을 새로이 쌓아 올리는 것이 성장이라는 것을. 언젠가, 희망 덕분에 생긴 울퉁불퉁한 마음의 결을 한 겹씩 쓰다듬으며 그것을 경험이라고 부를 날이 오고야 말 거라는 걸. 그래 이 글은, 그 겨울 핸드폰을 이불 위에 던지고 울던, 단지 지금보다 조금 어렸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136~137쪽)

 

귀여운 캐릭터에 절로 눈이 간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다. 애교가 넘치는 복숭아, 어피치. 분홍 분홍 색감이 설레는 봄을 닮았고, 맛있는 복숭아의 계절 여름을 부른다. 아직 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은 무엇일까. 기분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처럼 다정함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글이라니. 매일 어떤 말이 넘어지고 어떤 문자에 속상하고 누군가의 태도에 마음이 쪼그라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포근한 마음의 엉덩이였다.

 

길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문득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토실토실 말랑말랑, 그 어떤 거친 바닥에서도 뼈와 장기를 폭신폭신하게 받쳐주는 엉덩이. 심한 말, 못된 말, 독한 말을 들은 하루 몽실몽실 내 마음을 감싸, 그 어떤 명사와 동사도 경동맥을 찌르지 못하게 지켜주는 그런 마음의 엉덩이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6쪽 프롤로그 중에서)

 

감성, 치유, 위로라는 키워드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해 받는다면 그야말로 미세먼지 따위 걱정 않고 숨을 들이마시는 일처럼 반가운 일이다. 명랑만화를 보는 것 같은, 맛있는 불량식품을 먹는 것 같은 즐거움을 기대해도 좋다. 귀여운 악동 어피치의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는 덤까지. 사실 저마다 웃음 코드가 다르기에 아무리 내가 재밌게 읽었다고 해도 고스란히 그 느낌이 전달될 수는 없다. 그래도 남녀노소 누구가 좋아하는 뽀로로, 곰돌이 푸, 아기 상어를 떠올리면 생기기는 미소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튼 그랬다는 말이다.

 

 

나는 어제 눈을 빛내며 나 자신이 좋다고 말했고, 오늘은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가능하다면 평생 안 보고 싶었어. 매일 내가 예쁘고 매일 내가 미워. 내가 알기로 이런 변덕스러운 마음은 사랑밖에 없는데. (48쪽)

 

기발하고 산뜻해서 어디 공감 버튼이 없나 찾게 만드는 글, 이미 경험했기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말을 건네고 싶은 글을 지나 하루하루 복잡다단한 일상을 보내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괜찮다는 글에서는 나도 그 말을 따라 하고 만다.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 없듯 매일매일이 불행하지는 않다는 걸 확인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꽤 잘 사는 건 아닐까.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찾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삶이니까.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지금 아파해도 괜찮아. 나는 네가 언젠가는 다시 행복에 겨워 두근거릴 거라는 걸 알고 있어. (78쪽)

지친 하루하루의 끝에 매달린 신나는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휴가지에 어피치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싶다. 게으르고 나른한 일상을 어피치와 함께 즐기면 어떨까. 조금씩 줄어드는 휴가가 아쉬워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피하고 싶은 순간 어피치가 건네는 귀여움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휴가는커녕 잠깐의 휴식도 사치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쌓인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어피치의 귀여움은 확인해보는 게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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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감사노트 - 내 삶에 넘치는 하나님의 선물, 100일간의 감사 기록
이찬수 엮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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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메모를 통해 잠깐이라도 나를 기록하며 기도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유용한 감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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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6-1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 읽어보았습니다. 좋은 기록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19-06-15 10:09   좋아요 1 | URL
좋은 기록의 시작이라는 말이 참 예쁘네요. 서니데이 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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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들은 몇이나 될까? 생각하는 그 자리에 그 대상이 있다는 건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불러온다. 이곳을 떠나 오랜 시간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친구가 나를 만나 가장 먼저 물었던 건 특정 상호의 식당이었다. 냉면집이었는데 그 식당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는 함께 냉면을 먹었다. 과거 단골이었던 친구는 식당 주인의 내력도 알고 있는 듯했다. 대를 이어서 영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님의 경우, 한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알지 못하니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주주』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까 3대째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일상 말이다.

 

주인공 미쓰코는 아빠와 친척 신이치와 함께 변두리에서 ‘주주’라는 이름의 햄버거 가게를 운영한다. 보통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미쓰코에게는 든든했던 엄마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들다. ‘주주’를 빛나게 했던 엄마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요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게로 돌아온 신치이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한때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연인이었지만 현재는 요코와 결혼했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만 지난 시절을 생각할 때도 있다. 신이치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미쓰코의 집에 맡겨졌다. 성장하면서도 부모와의 관계는 좋지 않다. 미쓰코와 신이치는 가족과의 이별, 관계 단절을 이해하면서 일상을 공유한다.

 

소설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삶을 지루하지 않게 잘 보여준다. 맛있게 만든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같은 동네에게 오랜 시간 가게를 운영해온 이웃과의 소소한 일상을 말이다. 그들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온 끈끈한 우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미쓰코를 비롯해 아빠와 신이치가 ‘주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주주’란 공간에 소중한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수조 안의 물은 물론, 아니 미생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생명을 이룬다.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각자의 사생활, 갖가지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고, 또 퍼져 나가고 있다. 무한히. 이 무한은 조그만 틈새 사이사이로 실은 한없이 확대되고 있어서,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햄버거 가게일지라도 주주를 둘러싼 우주는 사실 엄청나게 광활하고 농후하다. 현재인데 모두 과거를 내포하고 있는, 우주의 별들처럼, 생명이 넘치는 태고의 바다처럼. (111쪽)

 

한가한 시간에 동네를 산책하는 미쓰코에게 그 길은 아마도 가장 편안하고 따듯한 길이다. 오가며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 그들의 웃음에 화답하는 일의 축복을 미쓰코가 어린 시절에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주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미쓰코와 이웃의 상처와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가득할 그곳은 다른 이름의 ‘주주’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슬플 때도 힘들 때도 가게를 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은 쉴 수가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맺어진 관계, 그리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들과의 이별까지. 사는 건 참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나를 둘러싼 작은 우주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정한 이들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주주’의 안과 밖으로 이어진 그들처럼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잔잔한 일상을 통해 다정한 기운을 전해준다. 맛있는 햄버거를 먹을 때 ‘주주’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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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비가 내렸다. 어쩌면 예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곧 장맛비가 내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는 것과 닮은 기분을 데리고 온다. 좀 엉뚱하지만 허연이 만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으면서 책 속의 설국을 마주하면서 비가 쏟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과 비, 그것이 주는 예민한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 어쨌거나 이 책이 좋았다는 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읽기도 전에 문장에 미혹된 소설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니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거나 읽어보고 싶은 리스트에 담긴 소설이 아닐까 싶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되어 소설의 전체를 이끄는 소설은 많지 않다. 첫 문장을 시작으로 눈의 나라로 초대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생각하면 나는 기차와 하나가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 낯선 세계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 번도 눈으로 가득한 땅, 그곳이 어디든 방문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아마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이는 많을 것이다. 눈부시게 강렬하고 차가운 눈과는 반대로 뜨거운 태양의 계절인 여름에 만나는 설국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헌연의 이 책은 설국 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오직 설국만 읽었기에 소설과 작가를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허연이 들려주는 대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는 일, 그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았다.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을 바라보는 아득한 기분이라고 할까. 말이 많아진다. 기다렸던 책이라 그랬을까. 읽는 내내 지루함은 찾을 수 없었고 더욱더 가와바타 야스나리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 책을 따라 여행을 할 수도 있고 눈의 계절에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어느 겨울 저녁, 가까이 있는 산과 멀리 있는 산이 한꺼번에 성에 낀 기차 유리창에 비친 풍경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기차 안과 기차 밖, 속계와 선계의 경계에 비친 여인의 얼굴. 그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허무.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나는 에치고유자와를 그리워하며 『설국』을 읽고 또 읽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여인의 옆얼굴을 보는 듯하기도 했고, 때로는 바쇼의 하이쿠 한 구절에서 보여주는 소멸의 미학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전철역에서 펄럭이는 주간지의 속됨이 느껴지다가도, 어떨 때는 일본에서 처음 봤던 칠흑같이 엄숙한 장례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게 『설국』은 깨달음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눈앞에 등장하는, 문을 열 때마다 이 문이 끝일 거라고 기대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되는 거대한 미로 같았다.

 

허연은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시작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이 꽃을 피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그의 소설을 하나씩 설명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시인의 해설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완벽에 가깝다. 책은 언제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데 설국이 여러 단편의 연작 형태였다는 것도 그렇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소설을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쓴 게 아니라 연작 형태로 시작했다고 한다.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까 생각하니 아름다운 문장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가히, 최고의 문장이라 할 수 있는 도입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치고 또 고쳤을 테니 말이다.

 

책을 통해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인생에 대해 알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 일본의 문화적 흐름, 동료들과의 교류, 사랑까지 말이다.  설국을 비롯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다른 소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산소리, 고도에 대한 소개도 그렇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추구한 이미지와 소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허연은 하나씩 짚어준다. 특히『설국』에 대한 해설은 다시 소설을 꺼내들게 만든다. 주인공 시마무라와 두 여인 고마코와 요코의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는 묘사와 대립에 대한 부분은 소설을 빛나게 만든다.

 

설국은 줄거리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정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라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에치고유자와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에 드러나는 이미지, 어둠 속 기차 차창에 비친 신비로운 이미지, 바로 그 이미지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가울 책이겠지만 솔직히 나는 허연의 이야기가 좋았다. 위대한 문학 속 장치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고 할까. 시인이 만난 소설가, 설국의 고장인 에치고유자와에 대한 시인의 기대로 시작한 도입부터 여행의 묘미를 만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지금껏 만났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가운데 제일 좋았다. 읽을수록 끝을 향하는 게 아쉬웠다. 그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인생을 채운 허무하면서도 외로운 분위기와 이전에 몰랐던 그의 소설에 대한 허연의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누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죽음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은 죽음과 하나였다. 그런 그에게 생은 부질없이 소멸하는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자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그가 자살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느껴진다. 나 역시 그의 죽음이 그가 살아온 생과 잘 어울린다는 허연의 생각에 동의한다.

 

살아 있어 느끼는 환희와 기쁨보다는 삶 자체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고요한 허무가 그를 지탱했을 것만 같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와 다름없이 성장했고 파혼의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사라진 약혼자로 인해 비탄에 빠진 젊음, 문학이 있었기에 그는 살아갈 수 있었던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그래서 그에게 체념은 체념이 아닌 위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체념의 힘을 알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체념의 깊이와 대가가 느꼈을 그것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존재함과 동시에 결국엔 소멸하고야 하는 생의 본질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어떤 희망이나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따라 허연은 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태어난 집을 가만히 지켜보고 그가 걸었을 길을 걷고, 학창시절 다녔던 서점에 가보고 그가 마셨던 커피를 마시면서 그를 생각한다. 허무로 남은 생을 말이다. 닿는 순간 부서지고 마는, 부질없이 소멸하는 생에 대해서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즐거움에 사색이 더해지는 시간이다.

 

온 세상을 순백으로 덮는 눈도 그러하다. 햇빛이 닿는 순간, 녹아버리고 만다.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만지고 그것에 닿기를 원한다. 겨울에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초여름, 설국으로의 초대는 반갑고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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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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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오묘하다. 낮과는 다르게 밤에는 새로운 감각이 살아나는 듯하다. 그건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분출된다. 같은 듯 다른 밤이 펼쳐진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밤은 더욱 그렇다. 밤의 분위기에 취한다고 할까. 분위기에 취해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나 잊어버린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떤 것을 얻기도 하고. 노르웨이 작가 한느 오스타빅의 『아들의 밤』은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진 소설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떠날 것이다. 되도록 아주 멀리. 창문으로 언덕과 마을 그리고 호수를 바라보며 낯선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며 영원히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5쪽)

이혼한 젊은 엄마 비베케와 와 눈을 깜빡이는 틱 증상을 가진 어린 아들 욘은 4개월 전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아직 이곳을 잘 모르고 낯설다. 엄마는 퇴근 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길 원하고 여덟 살 욘은 그런 엄마를 방해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맞이하는 적막한 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채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둘은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다. 아니, 그런 여유가 없다. 마치 어겨서는 안되는 약속과 규칙처럼 서로는 그렇게 지낸다. 그러나 내일은 욘의 아홉 살 생일이니 오늘 밤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아들 욘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거나 욘은 엄마에게 케이크를 준비했냐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지 않을까. 욘은 말 대신 조용히 집을 나온다. 엄마가 모든 걸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옆집 할아버지를 방문하고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의 집에 놀러 간다. 온통 눈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차가운 밤은 빨리 도착하고 욘은 소녀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하고 다정한 그 집에 더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기차 선물세트를 받을 아홉 살 생일을 생각하며 문을 열지만 열리지 않고 욘은 혼자 남겨진다. 엄마가 곧 올테니 욘은 기다릴 수 있다.  

 

손이 벌써 차가웠다.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가 생각났고 잠든 소녀에게서 본 흰 눈동자가 떠올랐다. 진입로를 내려가 도로에 들어섰다. 그는 다음 날 통학버스를 타면 꼭 소녀를 찾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소녀를 발견하면 말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21쪽)

욘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베케는 이동식 놀이동산에 있다. 도서관에 갔다가 놀이동산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 거기서 일하는 남자 톰을 만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그를 꼼꼼하게 살핀다. 혼자 외로웠던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욘이 집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거라는 걱정은 아예 없었다. 그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단정하고 외출을 했으니까.

 

그녀는 톰과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가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생각했다. 그녀는 카운터에 기댄 톰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코로 조용히 내쉬었다. 그녀는 남자가 그런 식으로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는 거의 잠든 것처럼 보였다. 순간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했다.(183쪽)

​기다리는 엄마는 오지 않고 낯선 여자가 욘에게 말을 걸고 차에 태운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마냥 엄마를 기다리는 것보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순간 여자가 욘을 납치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조바심이 났다. 다행인지 여자는 욘을 내려주고 자신의 길을 가고 욘은 혼자 눈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불빛을 받는 눈은 황색과 청동색을 띠고 있었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조금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숲은 고요했다. 욘은 야간 조명이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동안 자신이 두려워해온 일을 극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만 밟으며 발자국과 스키 자국 사이로 걸었다. 기차처럼 소리가 나도록 리듬을 넣어가며 숨을 쉬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겨우 반밖에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멀리 있는 듯했다. 그는 오르막길이 나타나기 전에는 결코 앞을 쳐다보면 안 된다고 되뇌며 묵묵히 걸었다.(225~226쪽)

단 하룻밤의 이야기지만 아들과 엄마의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보통의 일상처럼 보이는 밤 일지도 모른다. 일에 치친 엄마가 원하는 휴식과 아들이 바라는 그것이 같은 지점에 닿는 순간은 수많은 감정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외출을 끝내고 돌아와 아들의 잠자리를 확인하지 않는 엄마, 시시콜콜 모든 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어린 아들의 마음이 겨울밤처럼 시리다 못해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아름다움의 비극이라고 할까. 비베케의 외로움을 이해한다고 해도 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고요한 슬픔이 흐르는 밤이 사라지고 그들이 마주할 아침이 나는 너무 두렵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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