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해서 고양이 컵이 생각났다. 꺼내놓고 보니 흡족할 정도로 반가웠다. 집사는 아니지만 나는 고양이가 좋다. 아무튼 세계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주말까지 무지 덥더니 어제부터는 뭔가 기운이 달리진 것 같다. 급기야 어젯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잤다. 물론 긴 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8월에도 책을 샀다. 사는 건 즐거우니까. 그게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르고 골라 주문한 두 권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다. 김화진의 소설집『텅 빈 마음 가진 채로 』과 김연수의 에세이가 있는 『계절 쓰기』다. 김화진의 소설을 생각하면 많이 읽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내가 큰 목소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김연수의 글이다. 『계절 쓰기』에서도 김연수는 여름에 대해 썼다. 어느 여름일까, 어떤 여름일까.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 그러면서, 이제 김연수의 에세이나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인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김연수는 계속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계속 좋아하는 마음에 흠집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괜히 그런다. 계속 좋아하다, 계속 읽다가 이제는 읽지도 않고 신간이 나와도 지나치는 작가가 많아졌으니까. 계속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걸까.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글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변심 때문일까.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건 무척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를 계속 좋아하고 싶다. 어쩌면 그냥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내 책임 안에 두지 않아서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겨서. 책임이 부여된다면 더 크게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계속 좋아하는 일은 혼자만의 사랑이라 가능하면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계속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계속 좋아하기를 계속 생각한다. 계속 좋아하기, 계속 좋아해서 끝까지 좋아하기. 계속 좋아하고 좋아해서 계속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면 굳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직은 계속 좋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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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8-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가 좋아요. 강아지는 좀 무서운데 고양인 귀여워요.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고(지인집 두 집도 더 있겠군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거든요. 확실히 고양이가 더 이쁘더군요.^^
자목련 님도 집사가 아님에도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반갑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님에 대한 애정도 보기 흐뭇합니다. 저는 아직 김연수 작가님 소설들을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좋아한다고 말 꺼내기가 좀…ㅋㅋㅋ 그래도 신간 소식은 늘 반가워요. 책 좀 자주 내주시면 좋겠어요.^^

blanca 2026-08-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김연수 작가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자목련님 마음이 너무 같아 깜짝 놀랐어요. 제가 계속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작가거든요.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게 되는 작가로 삼십대 초반부터 여전히 질리지 않는 작가로 남아 있는 작가예요. 이제 단행본 나올 때 됐는데, 해서 신간 알림 오면 깜짝깜짝 놀라다 앤솔로지라 조금 실망하고 그러는 중입니다. 저도 좋아하다 이제 신간을 사지 않는 작가가 늘어갈 때마다 뭔가 마음이 좀 그래와요. 계속 좋아하기,는 참 어렵고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라는 자목련님 문구가 참 귀여워요. :)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온(on) 시리즈 5
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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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

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

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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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6-08-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여자였더라고요. 뭔가 고백하기 어려운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묘했어요. 그녀가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그런 상투적 안부를 보내고 싶었어요.

자목련 2026-08-07 14:26   좋아요 0 | URL
저도 응원하고 안부를 전하고 싶어요. 꼭 그녀에게 닿았으면 싶고요! 고양이 ‘등단‘이와 행복하게 지냈고 있을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8-05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하게 자랐던 저에게는 늘 돈이 부족하고 돈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삶이 너무 당연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세상에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게 드라마 같은 곳에서만 있는 건 아니었구나.

가난의 온도 라는 단어를 들으니 지금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이어지고 있는 폭염과 열대야가 생각나네요. 저는 거의 이주일째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여기저기 에어컨이 있는 집들을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에어컨이 있고 저를 재워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며칠씩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나서 하루 정도는 집에서 자야지 생각하고 저녁 늦게 들어갔는데,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피난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목련 2026-08-07 14:29   좋아요 1 | URL
저도 풍족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아요. 경험하는 세계가 넓어질 수록 다른 세상이 있구나 싶었고요. 요즘 너무 덥습니다. 건상 조심하세요. 택배 엄무 하실 때도요. 오늘이 입추인데,가을이 오긴 할까 싶어요 ㅎ

잉크냄새 2026-08-06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존감을 포기하고 가난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복지의 혜택을 하사하는 헬조선의 민낯이 드러나더군요. 낙인 = 복지 혜택의 등가가 성립되는 구조입니다.

자목련 2026-08-07 14:35   좋아요 0 | URL
누군가 그 복지를 탐패서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는 지원이 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한 것 같아요. 말씀처럼 헬조선의 악순환입니다.
 
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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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 거기 있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 거기 있어서. 재밌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눈부신 은유에 놀라고 감탄하다. 그런 읽기가 전부였다. 뭐, 그런 읽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일개의 독자이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글에 매료되어 그 방대한 세계의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작은 틈새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이 30년 전에 쓴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가 그랬다. 20세기의 문학 작품 가운데 사랑을 읽고 탐구한 기록이다.


책을 읽기 전 우선 목록을 살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있는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그에 비해 세계문학은 읽은 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게 맞을지도. 그래도 반가운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윌라 캐더’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윌라 캐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루시 게이하트』가 너무 좋아서, 고닉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애와 환경을 참고하면 더 풍부한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윌라 캐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닉에 의하면 그녀는 실제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소설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월라 캐더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 『루시 게이하트』 속 루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피아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루시가 자기 자신을 몰랐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고닉이 소설 속 루시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을 때는 우연인가 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월라 캐더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애덤스와 아내 클로버 에덤스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나처럼 헨리 애덤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 애덤스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셀럽 부부의 허상이자 지적이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화 능력도 놀라운 아내 클로버에 대한 헨리의 우울과 질투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건 남편 헨리라는 점에서 클로버는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고닉의 글처럼 말이다.

클로버처럼 ‘덜 중요한 삶’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과 가까운 중요한 인물은 풍부한 기록을 남긴 역사가들이 그럴듯한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덜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누이는 신경쇠약이었고, 신부는 도망쳤고, 아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는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결말만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51쪽)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눈치가 빠른 이라면 부모와 자식이락 답할 것이다. 남편이 아닌 자식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집착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 사랑에 삶을 저당잡힌 이야기. 『아들과 연인』을 시작으로 『고독의 우물』, 『메리 올리비에』, 『등대로』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친밀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지독한 연애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우리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삶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으키는 병적 흥분에 발목 잡힌 연애 사건이다. (86쪽)

30여 년 전 고닉의 글을 읽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친 작가,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한 작가의 목록을 읊는다.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그들이 그려낸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막장 드라마 같고 어떤 소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현재의 기괴하고 소름돋는 잔인한 사건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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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8-0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시 게이하트‘ 좋아해요. 복수인 ‘우리‘가 기억하는 루시. ‘나‘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그걸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루시의 상황은 물론 가슴 아프지만요. 제 경우는 <이선 프롬>의 어쩌지 못하는 갑갑한 불운, 그리고 가해진 강제적 선택이 겹쳤지요. 이 책, 저도 사러 갈게요~

자목련 2026-08-07 14:20   좋아요 0 | URL
‘루시 게이하트‘ 를 좋아하신다니 반갑고 좋습니다. 고닉의 비평은 재밌고 쉽고 놀라웠어요!
 
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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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는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움직이고 헤어진다. 공간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를 떠올린다. 반복해서 걷는 사람들, 스치듯 만난 사람들. 도돌이표 같기도 하고 돌림노래 같기도 한 소설들. 더워서 걷기 힘들 여름이지만 이상하게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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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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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로 깊은 잠은 달아나버렸다. 잠들지 못한다는 핑계로 TV 채널을 돌리고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잠을 기다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이 오지 않아 고통스럽게 여길 생각할 뿐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달랐다. 똑같은 상황을 차분한 관찰로 아름답게 서술해 나를 공간으로 이끈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은 그렇게 기꺼운 초대였다.

어쩌면 혹자는 제목 때문에 게으름 찬양이나 자기 계발서로 여길지도 모른다.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헤세가 기록한 삶을 향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탐색이다. 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자기 계발로 다가올 수도 있다. 헤세가 들려주는 일상의 단편은 목적 없이 달리기만 한 이들에게 멈춤, 쉼, 혹은 다른 속도를 제안한다. 재촉하지 않으며 순간에 집중할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말이다.

많은 부분이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마치 삶은 여행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볼 수 없는 것들, 이동하며 만나는 낯선 사람과 자연을 통해 느끼는 경이로움과 사유를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 아닌 유명한 관광지를 찾는 모습은 100 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던 걸까. 헤세의 안타까움을 우리는 잊은 지 오래다.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뼈아프다.

지구는 정말 가득 들어차버렸다. 어디로 눈길을 주든 새로운 집, 새로운 호텔, 새로운 기차역이 눈에 들어온다. 어딜 가든 건물을 한층 더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지구에서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듯하다. (61쪽)

헤세가 만나고 그리워한 이들은 유명한 이들이 아닌 산골 마을에 살며 연기에 그을려 위생적이지 않고 침투성이 바닥의 부엌에서 낡은 양철 주전자로 끓인 커피를 내주는 마귀 같은 친구다. 그가 기억하는 여행지의 모습은 휴양지의 명소가 아닌 소도시에서 친분을 쌓은 목사와 함께 머리에 작은 총상이 나 있던 연고 없는 부랑자였던 고인의 묘지에서 그를 축복한 일이다. 누군가는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을 그 순간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묘하게 울컥하는 건 왜일까.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이라서 헤세의 이런 글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벗에게 쓴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당부로 들린다. 휴가철이라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다. 쉼에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만 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휴식에 빠져들지 못하는 현대인이라면 격하게 수긍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지만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에는 도통 재능이 없답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여름의 끝자락에 약간의 호젓함을 누리는 것이 제겐 휴식이 됩니다. (95쪽)

헤세가 누리는 휴식의 일부는 자연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붓으로 표현하고 찬미하고 싶은 순간, 그가 반한 백일홍에 대한 눈부신 사유 울림 그 자체다. 죽음의 춤이라니! 백일홍을 꺾어 방에 두고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해마다 작약과 수국을 곁에 두고 바라보지만 나는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 헤세의 시선을 따라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마주한다.

한참 전부터 백일홍을 볼 때면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하고 아늑한 기분이 됩니다. 오래되어 은은한, 그러나 결코 약해지지 않는 이런 애정은 특히 이 꽃들이 시들어가는 걸 볼 때 더 각별해집니다. 꽃병에 꽂혀 차츰 마르고 죽어가는 백일홍을 보면 죽음의 춤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덧없음에 슬프고도 황홀하게 동의하는 모습이랄까요. 가장 덧없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97쪽)

작가 아닌 인간 헤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도시의 축제 기간에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밤’에 참가한 헤세, 티켓을 파는 이도 참석한 이들도 그가 헤세인 줄 모른다. 낭독자가 시 속의 단어들을 누락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실망하고 상처받는다니. 끝까지 견디디 못하고 자리를 뜨는 헤세의 표정은 씁쓸함이 묻어 있지 않을까. 여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 숭고한 건축물과 예술가의 작품을 향유하며 본연의 나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찾으려 했던 게 무엇이며 갈망하는 그것에 대해서.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평소의 삶에서도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별을 좇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삶의 원천에 대한 강한 향수, 모든 살아 있는 것, 창조하는 것, 성장하는 것 들을 알아가고 동질감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세상의 비밀을 여는 그들의 열쇠다. (242쪽)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는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고 어디를 펼쳐도 헤세의 찬란한 문장이 반겨준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여행하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어쩌다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약간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고 깨닫게 될지도. 헤세의 하루를 따라 그의 마음의 길에 동행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게으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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