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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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된 병원 검사 일정을 변경했다. 병원 고객센터의 직원이 담당 부서로 전화를 돌려주며 대기하는 시간은 꽤 길었다. 내가 원하는 날짜의 시간과 검사가 비어있는 날을 맞추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몇 번의 기다림 끝에 일정을 변경했다. 검사를 미루기로 결정한 이유는 내가 느끼기에 상태가 괜찮아지는 것 같았고 지난번 외래에서 만난 의사의 말이 컸다. 의사가 확실한 믿음을 주는 말을 한 건 아니다. 그가 들려준 가장 큰 믿음은 과거 외래에서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의사와 환자인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상대는 허락하지 않는다. 좁혀지지 않는 어떤 일정하고도 적절함, 정이현의 단편집 『노 피플 존』을 떠올리면 그런 거리감이 떠오른다. 불편함과 편함의 거리, 친밀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 상대가 내민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런.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런 구절이 딱 그러하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환자에게 괜찮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 사이에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조정하는 것이 이 직업에 가장 필요한 덕목일지도 몰랐다.(「선의 감정」, 95쪽)

「선의 감정」은 코로나19를 배경으로 의사인 ‘나’가 환자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이야기라고 할까. 환자의 죽음이 자신의 의료 과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책임 소재. 소설은 환자가 죽은 이유를 찾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환자의 보호자였던 딸이 ‘나’의 환자로 나타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소설의 제목의 선(線/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병원이라는 배경을 벗어나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감정은 「실패담 크루」에서도 느껴진다. 실패의 속상함과 아픔을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모임 ‘실패담 말하기 크루’에서 삼십 대 변호사 ‘나’는 가장 젊은이다. 모임의 대부분은 사회적 위치가 확고한 중년의 기성 서대다.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이 소설에서 인생의 선배로 실패해도 괜찮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말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위치의 권력을 즐기고 싶을 뿐이니까. 나의 실패가 그들에게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나의 실패담은 말 그대로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패배감을 조성하는 분위기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일지라도 말이다.

학과 조교로 일하며 지도 교수의 일을 대신 맡아서 하지만 그에 대한 인정은커녕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인회 언니'의 이야기인 「언니」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수와 실패담 크루의 기성 서대는 누가 봐도 강자이며 모임에서 가장 젊은이였던 나와 조교인 인회 언니는 약자다.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회 초년생, 그 시기에 진입한 이와 그 시기를 지나온 이에게 「실패담 크루」와 「언니」는 생생한 현장 중계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럼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의 이력이 쌓이거나 소위 인생의 다음 단계인 결혼을 했을 때는 조금 괜찮아질까.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게 될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더 확장된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완벽한 해결책이 아닌 가장 무난한 답을 찾는 일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관계의 시작부터 거부해야 할까. 모르겠다. 「빛의 한가운데」 속 아들을 키우는‘안희’와 딸을 키우는 ‘미령’은 남다른 사이다. 함께 모든 걸 나누고 우정을 키워 온 관계. 안희의 아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딥페이크 성범죄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안희는 충격에 빠진다. 아무렇지 않게 아들을 두둔하는 남편을 향한 안희의 절규.

둘째를 임신하면서 육아휴직을 쓰지 않기 위해 입주 시터를 구하는 「이모에 관하여」, 놀이 가정 교사 업체에 취직해 심리적을 불안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단 하나의 아이」에서는 돌봄에 대해 말한다. 입주 시터가 간절하지만 중국인 동포 이모의 신분이 미덥지 않다. 그녀의 이력은 충분했고 잠깐 동안 보낸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하나라도 더 찾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화자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고 그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사회적 시선도 여전히 강하다.

그녀가 첫날 일터에 맨발로 온 것은 사소한 부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 면을 가지고 사람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재연은 자꾸자꾸 맨발에 대해 생각했다. ( 「이모에 관하여」, 285쪽)

같은 맥락으로 「단 하나의 아이」는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놀이 가정 교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으며 아이와 적절한 거리 두기가 요구된다. 「단 하나의 아이」에서 놀이 가정 교사가 된 ‘한나’는 아이 ‘하유’의 이상 행동을 발견하고 부모에게 알리지만 결과는 하유가 바쁘다는 이유로 놀이교사 일이 종료된다. 한나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맞을까. 선을 넘는 일로 치부될 게 분명하다. 어쩌면 한나가 아이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노 키즈 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얼마나 어리든 또 얼마나 늙었든 자신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 피플 존. 나와 내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거나, 있어도 눈에 뜨지 않는 곳. 타인의 존재가 내 신경에 거슬리게 하지 않는. (「단 하나의 아이」, 157쪽)

정이현이 그려 낸 『노 피플 존』의 인물이 겪는 일은 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다. 경험하지 않아 모르는 세계라고 해도 왠지 알 것 같다.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문제, 개선되지 않는 제도.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서 그냥 뻔한 보통의 일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정이현은 최대한의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말이다. 그러한 노력은 그 거리의 간극이 좁혀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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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7-07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어도 좋은 자목련 님의 리뷰입니다.^^

꼬마요정 2026-07-0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제 읽어도 좋은 자목련 님의 리뷰입니다^^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요새 좋은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꿈 목욕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지연 지음, 김지혜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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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게 짧은 소설은 어떤 의미일까. 문득 자유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지연의 짧은 소설은 내가 안다고 여긴 김지연의 소설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김지연의 그것 같기도 하다.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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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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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읽은 책 목록 중에 소설이 제일 많다.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제대로 된 읽기가 아니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라는 것.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부 사항‘의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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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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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듣고 헤아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어렵다. 내 사정에 더 급하니까. 나 살기도 급급하니까.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잊힌다. 어쩔 수 없다. 거들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오지랖이라는 책망만 돌아오니까. 관여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엔 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지만 자꾸 말을 건다. 대단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거라 거절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종들」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소설 속 ‘정해’와 남편 ‘영기’는 주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는 이웃, 난간에 위험하게 놓인 화분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 정자에서 계절감 없는 옷을 입고 혼자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다. 부모가 의심스럽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경찰은 별일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건지 정해와 영기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사는 세상, 그들의 행동은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최소한의 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다른 문제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종들」, 29쪽)

「관종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정해와 영기가 지나치다는 싶으면서도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내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을 개인 공간인 양 사용하는 이들로 인한 고통이 경험한 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를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정해와 영기처럼 쪽지를 받고 현관문에 불편한 메모를 발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모임이나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잘 지내기도 버겁기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 언제부턴가 타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교회의 성경 모임에 나가게 된 「푸른색 루비콘」의 ‘나’도 그렇다. 아들의 걱정 때문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하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일들을 혼자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나 싶고 뭔가 말할 준비가 돼 있어도 딱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입성이 별로인 남자의 부탁으로 양봉장에 데려다준다. 만날 때마다 그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그와 보낸 시간이 묘하게 편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이, 그가 내어준 꿀물이 오래 남는다. 모임의 마지막에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 보이지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체하며 다가온 남자, 궁금하지 않았지만 실없이 건넨 말들, 그러니까 그는 곁을 내어준 것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나눠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말」의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이불 가게를 물려받는 ‘애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일상을 나눈 ‘현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기꾼만은 아니다. 처음 운영하는 가게의 어려움을 살갑게 들어주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소를 했지만 현서를 면회한 애실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실은 자신의 모든 말을 들어 준 현서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현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현서로 인해 애실은 자신의 상처나 실수를 말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해 방치된 청소년기를 보낸 건 애실의 잘못이 아니라고 7년 만에 연락해 돈을 빌려 간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한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하루치의 말」, 134쪽)

말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저 호감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주시한다. 그러니 어떤 말은 주저하고 어떤 말은 사라지고 상대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남편과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나’가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외국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를 읽어주는 「빈티지 엽서」, 아르바이트로 저명한 미술가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며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우연의 직조」,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가까운 이가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운 아들의 이야기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말들은 그러하다. 진위를 구분할 수 없기에 힘들다.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 손해만 볼 수 있기에.

이처럼 김혜진은 관심이 병이 되고 선의의 마음조차 거부되어 돌아오는 시대에 최소한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걀의 온기」의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한 후 비어 있는 고향 집에 돌아온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그 집을 처분하기로 한다. 엿을 만들어 팔던 집안 내력 덕분에 ‘엿집’ 막내딸로 통했던 자신을 알아보는 어른들을 피해 다니지만 ‘민지’라는 어린아이와 자꾸 마주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모에게 맡겨진 아이였다. 당찬 아이는 스스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청란, 달걀을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달걀을 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달걀의 온기」, 233~234 쪽)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이제껏 자신의 불행을 아버지와 두 오빠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여전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보살펴준 손길을 생각한다. 한 알에 천 원인 청란이 하나도 비싸지 않다는걸. 표제작 「달걀의 온기」를 통해 우리는 실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온기와 다정함을 품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소한의 그것이 상처받은 우리를 어루만지고 살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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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시리즈 82
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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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단어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품었던 기억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말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끼거나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분노하거나. 그 모든 건 글이 될 수 있고 네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감이 다채로우니 저자도 다양하다. 수집광이거나 에세이 리스트거나 작가거나 나만 모르는 세계의 유명인이거나.

아무튼 나는 새벽에 끌려다는 말이다. 뿌연한 안개를 곁에 두고 달리던 새벽, 소중한 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맞이한 새벽이 스쳐 지나간다. 홀로 새벽에 쏟아낸 수많은 말들과 술병. 새벽이라는 푸르스름한 빛, 불투명한 이미지, 고독과 사색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시간.

잠들려고 애쓰지만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새벽의 시간의 날들이 있었기에 그 새벽을 생각한다. 비공개 카테고리로 이동한 그날들의 기록을 보면 그 새벽에 나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웠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여겼지만 괜찮지가 않아서 잠들지 못하고 자판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돌이켜보면 부질없고 아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새벽은 소중했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위로하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무튼, 새벽』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여서 싫기도 하고 혼자여서 충만하기도 했던 감각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 단편적인 새벽, 새벽의 조각만 떠올렸다. 새벽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지각은 당연했다. 새벽만 되면 잠이 달아나고 그 밤에는 영화가 보고 싶고, 영화배우가 꿈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새벽마다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만드는 그가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저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를 검색했으니까. 그런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도움을 받아 새벽을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한데 나는 오롯이 새벽에만 끌렸기에 저자의 새벽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다니며 마주했던 조용하고 적막한 시골 읍내의 풍경이나 새벽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생동감이나 활기 같은 걸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가 고양이와 인연을 맺으며 새벽을 그들을 돌보며 마주한 일상은 새벽의 다른 이면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새벽. 여성에게 더 많은 위험과 공포가 도사리는 새벽. 이제야 표지에 왜 고양이가 등장했는지 알 것 같다. 사실, 고양이도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새벽과 고양이의 접점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새벽엔 풀 냄새, 바람 냄새, 너구리 무리가 머물렀던 자리의 냄새가 너무 짙어서 눈에 보일 것만 같다. 서리 때문은 아니다. 보슬비 내리는 낮에는 없는 냄새가 새벽에만 있으니까. 고요가 허락하는 냄새를 만끽하려면 보폭을 줄여야 한다. (100쪽)

내가 사는 시골의 새벽은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다. 새소리로 시작하는 여름의 새벽은 더욱 그러하다. 그 소리는 상쾌하고 청량하지만 이불 속 나에게는 볼륨을 줄여줬으면 싶을 때가 많다. 나의 새벽은 그들처럼 날갯짓을 하고 움직이는 새벽이 아니기에. 나만의 새벽은 사라졌다. 아니, 나만의 새벽이 잠들기를 원한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힘들다. 새벽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현재 나의 새벽은 깊고 깊은 잠이길 바란다. 그러니 『아무튼, 새벽』에서 나만의 새벽과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새벽이 있다는 걸 수긍할 뿐이다.

새벽이면 이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덥고 습한 새벽, 꽁꽁 얼어붙은 새벽, 눈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이면 이 시간의 주인을 자처하던 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 날에도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은 환경공무관과 새벽 배송 기사 그리고 길고양이 돌보미인 나였다. 하루만큼 버려진 쓰레기와 하루만큼 쌓인 택배 상자, 그리고 하루만큼 비워진 고양이들의 밥그릇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만났다. (124쪽)

내가 깊게 잠들기를 소망하는 새벽에 누군가는 바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나의 아침을 위해 누군가의 새벽은 노동으로 채워진다. 수고와 고마움으로 새벽은 이어진다. 도시의 새벽은 더욱 요란하고도 고요할 것이다. 새벽마다 깨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 나는 한 번쯤 『아무튼, 새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가 될 것 같다. 내가 기대했던 새벽, 내가 궁금했던 새벽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특별한 새벽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새벽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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