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불을 버렸다. 침낭과 베개도 버렸다. 그 가운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예쁜 이불이라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어려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단지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 내 것이라는 어떤 욕심이 자리했던 것이다. 둘러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나는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오랜만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스피를 보면서 지금껏 주식을 하지 않는 나는 잘못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주식을 하는 모두가 이익을 낸 건 아니다.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속 인물이 대사처럼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미국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 「플레인 Plain」에 실린 27편의 에세이를 담은 책 『간소한 삶』를 읽으면서 깊어졌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따라가는 삶. 과감하게 무언가를 내려놓고 버리는 삶. 그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사는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 농부, 시인,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 할아버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필자가 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씩 생각날 건 분명하다.

한 편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30여 년 전에 나온 책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냐고 말이다.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와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미디어와 AI에 의존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그것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혼자가 편하고 간편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해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곡물을 재배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림과 가난에 죽어간다. 책에서 마주한 삶은 과거 우리가 살아온 모습의 조각이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내고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일. 물물교환, 품앗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잼을 만들어 먹는 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삶.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우리 삶에서 돈이 자치하는 자리를 줄이며 균형을 찾는 일은 상당히 도전이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가 쓰는 돈의 연결고리와 그것이 미치는 효과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돈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71쪽)






음식에 관한 한 가장 멋진 점은 물론 먹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함께 먹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 별 재미가 없다. 음식을 나누며 우리가 뜻깊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이웃을 사귀고 베풀고 감사하고 삶을 나눈다. 향연과 축제, 작은 파티, 공동식사를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식탁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이다. (158쪽)

우리가 정말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하루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삶, TV 플러그를 뽑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TV는커녕 라디오를 꺼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원하던 고요를 느끼고 아이와의 대화는 풍요로워지고 노래를 부른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정된 삶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스마트폰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놀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잠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럽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일, 나만 그럴까?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을 사라지고 주변의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간다. 정체를 모르는 욕구 불만에 계획 없이 무언가를 사들이고 대화는 단절된다. 단답형의 대화, 줄임말로 이어지는 문자.

더 이상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손의 감각에 의지할 뿐 도어록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메모했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과거로 회귀한 듯 모두가 자급자족하며 공동체의 삶을 꾸리며 『간소한 삶』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리 부모님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게 정말 중요할까? 부모와 아이들을 갖다 맡긴 후 이론적으로 복잡한 관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좋아졌는가? 좋은 삶이란 서로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온전한 삶의 핵심이다. (305쪽)

『간소한 삶』을 읽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주제적인 나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없겠지만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월든』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내면의 소리, 내가 외면하는 소리, 그러나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


인간은 언제나 자기영혼이 하는 진실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꾸준한 소리다. (『월든』, 286쪽)


같은 의미로 최근에 읽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스크린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한다. 스크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가 스크린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메타버스, AI, 기후변화, 가상현실과 적절하게 조화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야 하니까.


누군가 당장 변화를 찾아 행동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와는 다른 삶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는 간소한 삶을 찾는 일. 그게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삶을 향한 시작을 『간소한 삶』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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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9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주식은 책입니다! 그리고 제 주식은 단 한 번도 마이너스로 간 적이 없습니다! ㅎㅎ

자목련 2026-06-19 12:01   좋아요 2 | URL
이제부터 저도 제 주식은 책입니다!
잠자냥 님의 댓글이 무지 든든합니다. ㅎㅎ
점심 맛있게 드시고요!

hnine 2026-06-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은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엔 구입을 해야할 것 같아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이 글을 읽게 되었네요. 간소한 삶을 위해선 우선 마음 부터 간소하게 정리하며 살아야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간소함보다 우선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상을 산다. 하루를 산다. 똑같은 날들이 지루하고 때로는 지겨워서 뭔가 이벤트가 있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이벤트는 신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그러다 제법 큰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뻔한 일상이 뻔한 하루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졸였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어찌할 수 없는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하게 말이다.

6월이 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는데 달라져야 했는데 말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친구는 이사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사는 집을 팔았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보관 이사를 했고 당분간 살 공간을 원룸을 구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만나러 왔다.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나를 만나러 오라고. 겨울에 얼굴을 보고 두 계절이 지났다.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친구는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생각, 줄어들지 않는 불안과 찾아야 할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시간에 대해, 어떤 요일에 대해 내가 부여한 의미들에 대해서. 그 시간이, 그 요일이, 그 느낌이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힘들었다.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그것들이 두려웠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잔뜩 부여한 의미. 그게 문제였다.




나를 아끼는, 나의 소중하고 귀한 친구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쓰는 루틴을 찾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라고.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잔을 구매했다.계획에 없던 일이다. 다시 충동의 일상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읽으려고, 궁금했던 책을 기록한다. 이 책들은 5월의 책이다. 읽기는 느리고 더디지만 6월의 책도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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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624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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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불안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불안은 깊어졌고 잠잠하지 않고 요동쳤다.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 이르려야 조금 괜찮아졌다고 여긴다. 정말로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 그런 의식이 필요하고 다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할까. 그리고 겨우 시집을 읽는다. 실은 작약의 계절에 이 시집을 읽고 싶었고 생생했던 작약의 꽃잎이 시들고 떨어지는 날들에 이 시집이 그리웠다.


빗나가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시는 그랬다. 모든 시는 불온해야 하고 모든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불온한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다. 내 모든 시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바친다. (시인의 말)


그래서 얼마나 불온한 시냐고? 그건 모르겠다. 다만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허연의 시는 뭐랄까, 외롭고 쓸쓸한 한 인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독한 남자가 맞을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그가 건넨 시가 가만히 내게로 건너와 내 곁을 지킨다. 다시 시집을 펼치면서 여전히 같은 시에 시선이 길게 머문다. 그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리고 내심 모른척했던 이런 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읽는다.


사람들이 땅을 발견함으로써

자두나무를 발견하고

모든 결과는 자두가 되었다

염탐된 사상들이 담긴

서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장서관 맨 위 칸 귀퉁이가 찢어진

그 서책은 놀라운 것이었다

엄마에 반발한 아이들이

줄지어

죽어갔던 날들의 기록이었다

익숙한 햇살이 땅을 비출 때마다

그림자는 이름을 가졌다

결국, 세상은 그림자였음을 안다

바라보면 눈멀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성당 한쪽 담벼락에

섬망이 지나갔다

죽어갔지만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 전문)




사라진 기억, 사라졌다고 믿었던 날들, 이제는 부재한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이름을 덧붙인다. 나의 생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멸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멀리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장 큰 불안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믿어도 그건 아는 게 아닐 터.

그러나 유한한 생은 오늘을 데려왔고 오늘을 살게 한다. 어떤 이는 치열하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어떤 이는 제법 아름답고 균형 있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주어진 5월의 하루하루는 우울감으로 가득했고 무기력으로 짓눌렸다. 심하게 구져졌고 위축했던 나의 마음이 도무지 펴질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저 오늘이 전부라는 걸 잊었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런 시는 완벽하다.

단명할 것이 분명한 화분에

여전히 물을 준다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일들

그런 게 뭐라고

속이 탄다

화분의 죽음은

화분의 시간은

직관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

시소에 앉아

인조 잔디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어떤 게 쓸 만한 선택인지 생각한다

시소에 앉아 느끼는

생의 무질서도(度)는 그나마 견딜 만한다

주기니까

딱 거기까지니까

노인에서 소년으로

시소는 움직인다

양쪽에서 하는 일과 양은 같은데

한쪽은 등신이고

한쪽은 전사다

딱 거기까지가 생이다

화분에 물을 준다

(「슬픈 주기 1』 - 전문)

나의 5월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6월이다. 5월이 될 수 없다. 나의 오월은 지나갈 것이다. 나의 5월은 기억이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6월이 되지만 나의 6월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6월에도 5월을 살지도 모른다. 6월에도 5월의 감정에 허덕이며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5월을 살아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의 작약이 그러했듯이. 『작약과 공터』가 그러하듯이.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작약과 공터』, 일부)



공터에선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와

내 끔찍한 나라가

불온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공터가 있어서

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터가 있어서

작약이 있어서 (「작약과 공터 2』,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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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5-31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가 갈수록 생의 유한함, 이런 저런 상황들이 맞물려 불안이 증폭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유 없이 갑자기 막 심장이 두근대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마음에 평화와 평온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자목련 2026-06-09 15:58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덕분에 불안의 강도가 약해지고 쪼그라든 마음이 조금 더 펴지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늙고 있어서 그렇다고 여기며 살려고 하는데 어려워요. 요즘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는 태도를 생각해요.
 



어제는 서울에 다녀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서울에 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서울에 갈 일은 병원 진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에 다녀온 게 좋은 일이 되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확인을 받았으므로. 서울은 정말 더웠고 장미가 가득했다. 장미 공원을 조성해 놓은 곳도 있었고 벚꽃 나무 아래로 넝쿨장미들이 가득했다. 분홍, 빨강, 노랑, 흰색의 장미가 아름다웠다. 그 모든 풍경에 대한 대화는 병원 진료가 끝나고 병원 내 카페에서 베리베리 라떼를 먹으며 할 수 있었다.

나는 건강에 자신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긴 누가 건강에 자신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몸이 보내는 신호와 증상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지방에 사는 이들이 그렇듯 서울로 향하는 길은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대비가 동반된다. 금식을 했고 혹시나 모를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예약을 할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침 일찍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되도록 빨리 오라고 했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의사가 내 상태를 확인했다는 뜻이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랜 기간 만난 담당 의사는 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하지만 확진은 아니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렇다.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시행되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단순한,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다고, 회복되고 완화되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의견. 나도 동의했다. 과잉진료를 하는 의사는 아니니까. 혹시 모르니 검사 예약은 하자고 했고 내가 의심하는 부분에 대한 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다. 장미에 대한 이야기는 피를 뽑고 검사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5월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연두와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의 경로에는 그것이 없었다. 안 좋은 것들, 나쁜 것들이 내 마음의 경로를 지배했다. 나는 다시 그 경로를 수정한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고 그 모든 걸 이해하고 나는 기존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


지난주에 친구가 보낸 노란 라넌큘러스를 보며 기뻐하는 나로,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소박한 카네이션을 보내는 나로 말이다. 나의 유일한 선생님, 최고의 스승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 손주를 돌보느라 지친 선생님께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 조만간 목소리로 뵙고 싶다.







책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내가 주문한 책은 이곳에 없다. 이런 책과 커피를 샀다. 윤후명의 시집 <모루도서관>, 오랜만에 아무튼 시리즈 <아무튼, 새벽>윌리엄 포그너의 <야생 종려나무>. 세 권 모두 좋은 책일 것 같다.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못했다. 쓰고 싶다는 나로 돌아봐서 다행이다. 매일 쓰고 싶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서 다행이다. 다행인 마음이 생겨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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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15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다행이고, 끝까지 다행이길 바라겠습니다.
어제 정말 더웠는데... 오늘은 더 더워요! (사무실에 에어켠 올해 처음 켰어요! 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6-05-24 10:00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감사합니다.
점검을 받는 계기였어요.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작은 불안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ㅎ
에어켠을 켤 정도였군요. 올 여름이 무서워요 ㅠ.ㅠ

2026-05-15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2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6-05-15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울 너무 더워요.
견디다 못해 선풍기를 꺼내 왔습니다.
회복되고 완화되고 있어 다행이며,
일시적인 현상은
그저 약간 예민하게 반응한 의심뿐이기를요.
주고 받은 꽃에
마음을 볼 수 있어 더 예쁩니다.
야생 종려나무,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목련 2026-05-24 10:02   좋아요 1 | URL
약간 예민하게 반응한 의심이라는 말씀, 좋아요!
예민에서 무뎌지는 쪽으로 마음 연습 중입니다.
야생 종려나무 언제 읽을지 ㅎㅎ

구단씨 2026-05-15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나면서 별 관심 없이 보던 꽃들도, 자목련님 서재에 오면 더 특별해 보이고 더 자세히 보게 되네요.
예뻐요, 꽃들이...

여긴 오늘 최고 기온이 31도였어요. 5월 중순의 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은데, 갈수록 더 최고 기온은 높아지겠죠.
더워지는 날들에 건강 이상 무 신호가 계속 켜져 있기를 바랍니다. ^^

자목련 2026-05-24 10:04   좋아요 0 | URL
아, 꽃은 다 예쁩니다. 요즘 가장 궁금한 꽃은 감자꽃인데 보지 못했어요 ㅎ
구단씨 님의 하루도 꽃처럼 예쁘고 향기롭기를 바라요~~

coolcat329 2026-05-16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서울로 향하던 무거운 발걸음이 돌아올 땐 한결 가벼워지신 듯해 다행입니다.
저도 요즘 건강에 예민해져 있어서 자목련님의 글이 더욱 깊이 와닿았네요.
저 역시 「야생종려나무」와 저 커피를 샀는데, 많이 기대됩니다. 꽃과 책, 그리고 커피가 자목련님께 작은 행복을 선물해주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6-05-24 10:06   좋아요 0 | URL
서울은 갈 때마다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구나 실감해요 ㅎㅎ
내 몸이 하는 말을 더 자세히 듣고 알아차려야 할 때인가 싶어요. 근데 그게 참 어렵고요.
커피향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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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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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주문한 커피, 정확한 맛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곳이 아닌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급하게 돌아오느라 책과 커피를 챙기지는 못했다. 노동절 아침에 마시니까 더 좋다는 그 맛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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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15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 5월 1일까지 기더리시면 안 됩니다! 🤣

자목련 2026-05-24 09:51   좋아요 0 | URL
곧 개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