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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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은 조심스럽다. 이미 맺어온 관계만으로 충분해서 그렇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하고 싶은 모임이나, 알고 지내고 싶은 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과 더 가까이, 그들과 한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확장되는가. 누군가의 지속적인 노력이나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예소연의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는 일이 점점 더 불가능한 시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연약하게 이어온 관계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단절하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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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에서 만나는 관계는 조금 이상하다.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신경 쓸 일 없는 사이로 보이는 데 그게 잘 안된다. 그냥 단 한 번의 만남, 일적으로 만난 사이인데 묘하게 끌려 상대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무슨 말이냐면 구급차를 모는 ‘이중일’이 자신이 호송하던 환자 ‘진정희’와 보호자 ‘서송이’에게 자신의 구급차를 빼앗기는 이야기 「작은 별」가 그렇다. 이중일은 그냥 그들을 호송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가 구급차에 탄 이후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중일은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마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환자의 의지, 그리고 자신이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삶의 끝에 다다른 환자였기에 이중일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상태’를 알아봐 준다는 건 가장 큰 위로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누가 봐도 이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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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이한 감정은 노인을 돌보는 시터로 일하는 ‘희지’가 돌보던 두부 할머니의 관계를 보여주는 「아무 사이」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만큼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를 돌보는 일, 의무는 거기까지다. 하지만 희지는 최선을 다했다. 이전에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불안했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있었다. 두부를 만병통치약으로 아는 두부 할머니가 희지가 가사 일을 하는 사이 사라진 것이다. 갈 법한 곳은 다 찾아다녔는데 할머니는 없었다. 할머니의 며느리에게는 거짓말까지 한다. 할머니가 주무신다고. 정작 할머니는 며느리와 함께였고 할머니는 희지에게 전화기를 놓고 간 사실을 미안해한다. 며느리는 희지에게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하지만 희지는 그럴 수 없다. 할머니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삶의 최소한을 지켜내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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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사이」란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아무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가 아닌 사이가 될 수 있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할 수 있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단편이 좋았던 이유는 희지가 할머니를 찾기 위해 성당, 시장의 두부집을 찾아다니며 ‘이순이’ 할머니라 말하는 것,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희지’라고 저장된 부분이었다. 누군가 이름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일은 관계의 시작이며 서로에게 속하는 일이니까. 희지와 두부 할머니 둘 사이의 하루와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부분. 갑과 을이 아닌, 고용주와 고용인이 아닌 ‘희지’와 ‘이순이’ 둘 사이의 관계는 한결같다.





나는 문득 두부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내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연락처 목록에 들어가보니 ‘희지’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마치 백지처럼. 유희지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닌 담백한 나의 이름, 희지. 나는 그걸 본 순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차렸다. (「아무 사이」, 208~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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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나의 나쁜 무리」를 보자면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유선의 성장소설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손녀 ‘유선’은 할머니를 여사라 부른다. 둘은 할머니와 손녀가 아닌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데 연애에 자유로운 여사는 유선에게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여사가 살아가는 삶에 스며든 유선에게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선은 성인이 되자마자 여사로부터 도망쳤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여사처럼 살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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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사와 우리가 되기 위해 애썼던 시절들을떠올리고 있자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되기 위해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나의 문제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사는 어땠을까? 12세의 나를 더이상 애가 아니라고 여겼던 여사는 내가 성장함으로 점점 더 우리가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너의 나쁜 무리」, 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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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사와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 여전히 여사와 한 패가 되어 여사의 과거 남자친구의 현구 아저씨의 굴착기를 찾기 위해 모였다. 유선의 옛 남자친구 이해신과 함께. 과거 현구 아저씨는 굴착기 구매 사기를 당했고 여사는 현구 아저씨에게 돈을 빌려줬다. 연인에서 채무관계가 된 여사와 현구 아저씨처럼 관계는 변하지만 그들이 보낸 시간은 변할 수 없는 걸까. 지긋지긋하면서도 끈끈한 사이,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하게 아무 사이도 아니자 가장 가까운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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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자신이 ‘뚜비’라 부르던 고모와 친구 ‘근정’의 결혼을 바라보는‘문주’의 이야기 「뜰의 미래」 속 관계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없다. 뚜비의 재산을 노리고 근정이 접근한 것 같지만 아니었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했고 뚜비는 문주가 혼인서약을 해주길 바란다. 이처럼 어떤 관계는 숱한 의심을 받는다. 둘 사이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소란한 속삭임」은 비밀 아닌 비밀을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어 연대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데 새로운 관계와 연결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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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영원할 것 같은 관계를 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관계의 매듭이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매듭이 풀리는 건 한순간이다. 관계의 지속은 혼자만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관계 맺는다는 건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이행하는 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결국 예소연의 『너의 나쁜 무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를 갈망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박헤진 평론가의 발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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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9-2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커피잔 하고 책하고 넘나 깔맞춤 아닙니까!! 자목련 님의 책+커피잔 사진 팬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첫 만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첫 떨림 정도는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누군가는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어린 시절 집에는 양장본의 세계문학이 있었다. 아마도 영업사원의 화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구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는 상술에 약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한 마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세계 전집 가운데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를 기억한다. 읽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읽지 않았지만 두 명의 언니 중 한 명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동화책에 대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명절이었는데 고모가 책을 사 왔는데 내가 아닌 사촌에게만 주었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내가 울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받았다. 나의 기억과 고모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모여서 책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선생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나의 은사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


올여름 카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기프트 카드였다, 책과 함께 행복하라는 메모도 있었다. 잊고 있다가 책을 주문했다. 책을 고르는 고민은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궁금한 소설도 많아서 어렵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윤고은의 『테니스나무』를 골랐다. 『찌니주의보』는 다른 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결제를 했고 취소를 하려니 벌써 출고 작업 중이었다. 창비의 요즘 표지는 정말 별로인데, 출판사는 모르는 걸까. 여름 독서가 아닌 가을 독서, 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이 되었다. 연휴에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책은 언제나 좋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있는 건 더 좋다. 친구들 가운데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기억하는 이가 있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나누는 것도. 가끔은 내가 좋아는 걸 무작정 내 맘대로 선물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 꽃, 티. 요즘엔 티가 많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여기 알라딘은 친근하고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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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어렸을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셨나봅니다. 전 어렸을 때 밖에서 논 기억밖에 없어요..ㅎㅎ

자목련 2026-09-23 12:38   좋아요 0 | URL
어려서부터 책을 아주 많이 읽지는 않았고요. 바깥보다는 집안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한 것 같기는 해요.
야무 님 평온하고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6-09-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 너무 공감이 갑니다. 딴데서는 눈치보고 잘 말하지 못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이곳에서는 맘껏 표현할 수 있어서 이곳이 너무 좋아요.
알라딘 서재를 항상 풍성하게 만들어주시는 자목련님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우리 세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8
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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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살피지 않고 조해진의 소설이라 선택했다.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이 내가 생각한 그분인가 싶었는데 맞았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의 삶. 개인의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 고통을 조해진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상처를 위로하고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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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6-09-22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별 다섯이라니!

자목련 2026-09-22 10:47   좋아요 0 | URL
조해진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별점입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5 ㅣ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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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단편 <무덤을 보살피다>가 궁금해서 주문한 책으로 기억하는데 전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긴 그게 뭔지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냐마는. 다른 두 작가의 단편도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 모르겠다. 뭔가 많이 아쉽고 부족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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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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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내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종종 어제의 나를 부정한다. 아니, 어제의 다른 나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를, 실수를 해 창피한 나를, 실패한 나를, 게으름으로 가득했던 나는 사라지기를 바라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안 돼서 삶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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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의 소설 『이벤트』의 주인공 ‘슬목’과 그가 만나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사실, 모두가 그러하다. 복잡한 도시와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겪은 슬목은 퇴사하고 호텔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합격할까 싶었는데 합격 소식을 받고 도착한 곳은 깊은 산속에 위치한 한옥 호텔 ‘담야(談夜)’다. 말이 호텔이지 일곱 개의 객실과 열 명도 안 되는 직원이 전부다. 거기다 대표는 호텔 경영에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직원들의 건의사항은 모두 수용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호텔이다. 누가 보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같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걱정이 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그래서 오픈 일 주년을 기념으로 홍보 이벤트를 기획하기로 한다.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진해하기로 한 이벤트는 슬목의 아이디어였다. 개개인의 맞춤형 이벤트를 원하는 고객을 초대하고 그 내용을 홍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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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호텔 담야에 과연 이벤트를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신청자가 있었다. 기쁜 마음에 호텔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데 일어나 보니 낯선 곳이다. 옷차림도 수상하고 눈앞에는 경찰이 서 있다. 분명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잠들었는데 집에 가 보니 잃어버린 건 없고 탁자에는 쪽지가 놓여있다. 짧은 내용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다. 과연 누가 슬목의 집에 다녀간 것일까. CCTV를 설치하고 확인하며 놀라고 만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 시절, 심각한 아토피로 고생하며 놀림을 받던 순간,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절망하던 순간에 벌어진 사건까지. 화면에 등장한 이는 바로 자신이었고 메모를 남기는 것도 같은 사람이었다. 슬목은 몽유병 환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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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은 뒤로하고 출근을 했고 첫 이벤트에 집중한다.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프러포즈를 하는 내용이었다. 첫 이벤트로 제격이다. 남자가 프러포즈를 해야 한 하는 건 아니니까. 고객이 원하는 대로 준비를 하고 도착한 손님을 맞이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소꿉친구로 시작해 연인이 된 두 사람. 형편이 어려운 남자 친구는 더 이상 여자친구의 배려와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사랑과 믿음은 확실했다. 담야의 첫 이벤트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고객의 사랑은 실패라 할 수 없다. 훗날 두 사람에게 담야의 이벤트는 가장 멋진 과거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야말로 가장 멋진 이벤트.


소설 『이벤트』는 호텔 담야를 배경으로 고객의 사연과 슬목의 과거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함께한다. 몽유병이 아니라면 밤 열시 이후 존재하는 다른 슬목은 누구인가. 십이 년 전 스무 살의 슬목은 긴 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서른둘의 자신을 만난 것이다. 스무 살의 자신은 서른두 살 미래의 자신에게 쪽지를 남기고 서른두 살의 슬목은 스무 살의 자신을 위해 냉장고를 채우고 주의 사항을 건넨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일이지만 스무 살의 자산의 생각과 일상이 나쁘지 않다. 이것은 슬목만 아는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벤트’는 누군가에게는 멋진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건처럼 다가올 수 있다. 담야에 사연을 보내는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조카의 취직을 축하하는 이모의 사연,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엄마의 사연도 그러하다. 이모를 떠올리면 조카보다 나이도 많고 아들의 생일이라면 당사자가 함께 호텔을 찾을 거라 여기는 건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는 다른 존재이고 다른 삶을 살아가니까.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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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이벤트'는 무엇일까. 스무 살의 슬목에게는 입시의 실패가 커다란 사고였을 것이다. 좌절에 절망하면 주변을 돌아보고 살필 여력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서른두 살의 슬목이 돌아본 그 시간은 실패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고 성장했으니까. 그때의 자신이 존재했기에 스물하나의 삶도 존재했고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고 그 곁에는 여전한 부모님의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마다의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풍부한 자양분이 된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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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택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나온 나름의 결괏값인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덧없이 지나가 버린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영원히 함께하자던 우정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온 세상이 환희로 넘쳤던 첫사랑까지. 그 아름다웠던 시간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지만 낙엽처럼 시간이 분해되어 삶의 밑거름이 되고 그 힘으로 모두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지도 모른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아침이면 눈물을 닦고, 슬픔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웃음을 그린 채, 아픔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척 굳건히 살아갈 수는 있는지도. (267~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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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어떤 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날은 조금 괜찮고 어떤 날은 아주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삶이란 모조리 실패로 채워지지 않고 성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저절로 알게 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다양한 이벤트처럼 자신만의 이벤트가 있기 마련이다. 지나간 이벤트는 수정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이벤트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채우고 존재하게 만든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살아가며 나만의 이야기로 나의 이벤트를 만들어 가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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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9-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책 표지가 너무........
창비 요즘 표지가 너무...... ㅋㅋㅋㅋ

자목련 2026-09-20 10: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창비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