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쓰기
김연수 외 지음 / 물결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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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도 명확한 목적이었다. 김연수의 에세이가 읽고 싶어서 구매한 책, 김소연, 허태임, 윤경희, 김지승. 계절로 연결되는 공간, 통증, 감정, 기억. 애틋한 보통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돌고도는 계절이 새삼 고맙고 그들의 계절을 읽고, 나의 계절을 떠올리고 다가올 계절이 벌써부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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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아프다. 심각하게 아프다. 오래 사용했으니 그럴만하다.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알면서도 결정은 쉽지 않다. 지금 이렇게 잘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필요한 것들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정작 써야 할 때 켜지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 알면서도 조금 미루기로 한다. 새로운 컴퓨터와의 만남을 미룬다.

다시 비가 온다. 폭염은 사라지지 않았고 습한 날들이 힘들다. 제법 선선해졌다고 생각한 것 오산이었다. 구름을 담았던 곳에서 비를 담았다. 비는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이 비라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비가 있다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처럼.






능숙한 여름은 없다. 어제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면서 전기 요금을 보고 놀랐다. 최고였다. 그만큼 이 여름이 더웠고, 그만큼 나는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꿈에는 다른 친구가 나왔다. 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친구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마도 나는 그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보름이 되면 나도 친구에게 달을 보라고 말해야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름달 떴다고

나가서 보름달 보라고

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

샛노란 밤의 눈동자

보름달 보이지?

그래, 보여!

그렇구나, 우리 눈빛이

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

폭풍 찌는 열대야 삼아

밤이 켜졌다, 밤이 커졌다

(「밤이 켜졌다」, 전문)


밤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 도시에서는

밤이 부족하다

마음에게도 턱없이

저 키 큰 나무들

작은 모래알 한 알

새들 물고기에게도

밤하늘 저 높은 별들에게도

크고 많아아 할 것이 많지 않다

작고 적어야 할 것이 많지 않다

(「밤이 부족하다」, 전문)


너무 열심히 사느라 밤이 부족한 친구에게, 너무 바쁘게 사느라 밤인 줄도 모르고 지내는 친구에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밤이 내렸으면 한다. 밤이 내려와 밤을 느끼고 밤과 지내며 밤을 껴안고 고운 잠이 들기를. 수고한 이들에게 편안한 밤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 밤을 토닥여 줄 책을 고른다. 아, 읽고 싶은 책은 왜 이리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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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한 밤이라는 말 좋아요. 모두에게 충분하고 편안한 밤을 저도 자목련님께 보냅니다. 받아주세요. ^^

자목련 2026-08-23 10:06   좋아요 1 | URL
덥석 받아서, 지난밤 평온했어요!
 


『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뭔가 비밀스럽지만 평범하고 모두에게 다 열린 단어였다. 작가, 시인, 번역가 10명이 각가 자신만의 다섯 단어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미 만난 단어, 독자라면 그 작가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법도 하기에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김화진의 주머니라든가, 정용준의 산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작가, 시인, 번역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의미를 지니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걸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모든 단어는 그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 와 나만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모두에게 알려진 물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어떤 소중한 기억이나 위로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아니면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해 특별하게 관리하게 위해 남들과 다른 이름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 내가 이름 붙이기 나름인, 내가 사용하게 편리한 그런 단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목록을 보면서 끌리는 단어, 좋아하는 단어를 살펴보며 그것을 먼저 만나면 재밌는 읽기가 될 것이다.

내 경우 정용준의 소설 『유령』이나 「선릉 산책」이 떠올라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 「사랑의 신」에서 만난 ‘주머니’란 단어가 기억나서 김화진의 단어부터 찾았다. 소설에서 사람은 주머니 같다는 김화진의 말은 뭔가 호기심을 불러오니까. 익숙한 느낌이면서 내가 모르는 의미를 만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붙잡은 건 시인이나 번역가의 단어였다. 시와 시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망 같은 게 작용한 것이다.

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시 쓰기도 실은 고원을 산책하는 일 같다. 시를 쓰는 동안 어느새 도달한 고원은 시가 끝나는 동시에 서서히 흐려지다가 곧 그 고도와 넓이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늘 불만족 상태에 머무르며 다음 고원을 기다린다.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고원의 상태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황유원 「고원」 중에서, 38쪽)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는 시인의 시간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할까.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황유원의 작품은 정확하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선형의 번역가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어 왠지 안도한다. 번역가의 단어를 읽으면서 원서를 읽으면 나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어쩐지 pang은 내 안 어딘가에서, 가슴에서, 혹은 뱃속에서, 불시에 팡, 터지는 얼음 폭탄 같다. 움찔 소스라쳐 아연하는 사이, 수백만 조각으로 비산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혈류에 침투해 온몸으로 퍼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미소한 얼음 조각들이 흐느끼며 녹아내린다. (김선형 「Pang (n.)」 중에서, 130쪽)

『나만 아는 단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번역가 정수윤의 글이다. 일본어 루리에 대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수윤이란 이름에 담긴 애정에 대해서. 애틋하고 애틋한 그 애정을 응원하고 응원받는다.





이름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존재가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서 모두와 함께 약속되는 순간이다. 그 모두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나에게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그 무한한 사람들로부터 내가 특정되는 일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이 내 이름의 뜻을 알든 모르든 나는 내 이름이 품고 있는 힘의 파장을 받게 된다. 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그 이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말하고, 쓰고, 부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갈고닦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더 해진다고 믿는다. (정수윤 「루리」 중에서, 208~209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이나, 내가 아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이 이어진다. 내가 시집을 고를 때, 몇몇 시어에 끌린다는 것.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산, 의자, 풍경이 그러하다. 종종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우산에 대한 이런 글이 좋다.

우산을 열다, 우산을 펴다, 우산을 접다, 우산을 개다. 말장난 같은 말들이 주르륵 따라왔다. 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건 간편하고 편리하구나 생각했다.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는 우산, 마음에는 그런 버튼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음을 여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한다. 연다는 건 문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문의 위치와 입구를 찾는 게 먼저다. 그렇게 찾아 연 문이 닫힌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물론 마음의 문을 닫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활짝 열린 마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으니까. 어렵게 열린 마음이니 그 마음을 닫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마음에는 길도 없고 마음에는 이정표도 없고.

우산 안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우산의 내부, 일정하게 자리한 우산 댓살처럼 안으로 들어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함부로 예측하고 예단하면 안 된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게 마음이다.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마음 안에서 마음을 보는 일. (우산을 정리하다 쓴 글)

다시 좋았던 소설가의 소설을 펼치고 시인의 시를 찾는 일로 확장된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기분 좋은 읽기.


어쩌면 그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솜씨 좋은 작가처럼 거짓을 진짜처럼 혹은 진실을 가짜처럼. 영혼은 편하게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종일 내 손을 잡고 유령처럼 산책하다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일이니까.「선릉 산책」 중에서


사람을 상상하는 일.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전부라고 애써 믿으면서도 그 안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일. 나는 그런 걸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아.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사랑의 신」 중에서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고 공통적이면서도 공통적이지 않은 단어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가 소중하게 다루는 단어를 함께 기억한다는 건 작가와 알게 모르게 연결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지나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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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예쁜 찻잔과 책이 함께 놓여있는 자목련 님 페이퍼의 사진은 언제나 좋습니다!

자목련 2026-08-18 10:49   좋아요 0 | URL
더 열심히 찍어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6-08-1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찻잔, 맛있는 커피, 그리고 책.... 이건 완벽입니다!!!

자목련 2026-08-21 09:12   좋아요 1 | URL
요정 님의 댓글이야말로 행복을 전하는 완벽입니다!!
 
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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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부드러운 숨결,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 박솔뫼의 소설집 『영릉에서』을 읽고 내가 떠올린 것들이다. 박솔뫼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박솔뫼를 그리는 장면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솔뫼는 여전히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억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박솔뫼가 쓰는 소설과 내가 읽는 소설의 끝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박솔뫼는 사건이나 서사가 아닌 한순간을 포착해 그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원을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반복이 이어지고 어떤 장면은 중첩되고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는 원준이는 정목이와 정목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계속에 놀러 간다. 그러다 정목이 아버지가 먼저 떠난 걸 알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어른들에 대한 기억. 그런데 묘한 건 이 소설이 아름답고 좋으면서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남았지만 연락은 닿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 왠지 모를 쓸쓸함과 슬픔의 조각이라고 할까.

정목이와 원준이가 정목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처럼 정목이와 원준이를 따르는 것이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햇빛과 선명한 파란색의 하늘은 그대로이고 그것은 어느 다른 날의 햇빛과 하늘과 구름과 같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어느 날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13쪽)

박솔뫼는 특정 장소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영릉이 그러하듯 나머지 단편에서도 독자를 장소로 이끈다.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닌 그곳에 도착해서 마주한 기억, 그러니까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꺼내 들려준다.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의 부산, 「극동의 여자 친구들」속 중부시장, 「아오모리에서」에서는 아오모리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일상의 기록처럼 읽히는 부분도 많다.

김연덕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때문에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를 읽고 「아오모리에서」를 다음으로 읽었다. 「아오모리에서」는 9월의 아오모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 이야기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꿈같기도 한데 덕분에 나는 9월에는 아오모리가 생각날 것 같다.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느리게 외우며 어떨 때는 누군가를 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누구도 잘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것이 슬프지 않았고 기꺼웠다. 나에게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 내 얼굴을 보아주는 사람들 역시 나와 같지 않을까. (「아오모리에서」, 188쪽)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움직임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극동의 여자 친구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투 오브 어스」 세 편의 연작소설이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의 화자 강주는 중부 시장에서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가며 마주한 간판, ‘움직임 연구소’. 움직임을 연구하는 곳이 있다니. 정말 흥미롭다. 밝은 눈을 가진 이만이 그곳을 발견하고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이다. 세 단편의 화자는 움직임 연구소의 워크숍에서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말하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구현한다.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니. 나의 움직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상상하기 어렵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혹은 잘못된 자세 같은 것만 떠오를 뿐이다.


세 편의 이야기는 ‘움직임 연구소’란 공통분모가 있지만 그보다 작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이 오가며 마주하는 공원과 지금은 부지로만 남은 ‘미극동공병단’에 대한 것이다. 1950년대의 공간과 그곳에서 있었을 사람들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 잊히고 사라지는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라고 할까. 미극동공병단 근처를 걷고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매일 걷고 스치는 지나는 공간이 지닌 기억을 헤아리고 회상한다고 할까.


다른 소설이 주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는 조금 다르다. 기정은 자신의 집을 친구에게 내어주며 서원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서원은 기정과 지내면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진다. 기정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서원이 기정과 연결된 사람들과 만나며 기정을 향한 마음은 변화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자신의 머리카락과 이마 눈썹과 피 눈물과 피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한다는 것이 마치 바람의 호흡을 살피고 구름과 별의 움직임을 헤아리는 일처럼 중요하였고 서원이는 자신과 주변의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생각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2쪽)


모든 사랑은 언제나 늦게 찾아오며 이미 시작되어 있다는 것, 이미 시작되었고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또한 사랑은 어긋나며 어긋난 대로 반복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서원이가 사랑을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이며 콧물에서 벌어진 일이자 서원이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7쪽)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걷기를 생각하면 서원이 기정을 향한 마음의 걷기의 속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서 빠르게 걷는 마음, 그리고 조금 멀어져 천천히 걷는다. 마침내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마음의 걷기.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다. 걷기와 움직임, 이 소설은 그렇게 연결된다.

소설을 읽으며 종종 검색을 했다. 영릉, 중부 시장 건어물, 명동 성당, 부산. 그리고 박솔뫼 작가를 검색했고 단편 「사과」로 올해 이효석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과」가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은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가 좋았다는 blanca 님의 댓글이었다. 「사과」로 이어지는 것까지 마음이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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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단어 - 늘 따라오는 것, 쫓아오는 것, 나를 숨게 하지 않는 것, 무자비한 것,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것
김화진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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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시인, 번역가가 사랑하는 단어.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고유하고 평범한 단어. 어떤 단어는 작가의 일부이자 상징이 된다. 번역가의 단어가 재밌고 특별하게 읽혔다. 내가 모르는 언어라서 그럴 것이다. 나만의 단어를 갖는 일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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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8-19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어수집광이라고 할만합니다~~ㅎㅎ 단어, 들어간 책은 다 사는 듯해요~

자목련 2026-08-21 09:20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이 책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