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온(on) 시리즈 5
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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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

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

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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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6-08-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저자가 남자인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여자였더라고요. 뭔가 고백하기 어려운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묘했어요. 그녀가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기를....그런 상투적 안부를 보내고 싶었어요.

감은빛 2026-08-05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하게 자랐던 저에게는 늘 돈이 부족하고 돈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삶이 너무 당연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세상에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게 드라마 같은 곳에서만 있는 건 아니었구나.

가난의 온도 라는 단어를 들으니 지금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이어지고 있는 폭염과 열대야가 생각나네요. 저는 거의 이주일째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여기저기 에어컨이 있는 집들을 떠돌아다니고 있어요. 에어컨이 있고 저를 재워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며칠씩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나서 하루 정도는 집에서 자야지 생각하고 저녁 늦게 들어갔는데,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피난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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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 거기 있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 거기 있어서. 재밌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눈부신 은유에 놀라고 감탄하다. 그런 읽기가 전부였다. 뭐, 그런 읽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일개의 독자이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글에 매료되어 그 방대한 세계의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작은 틈새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이 30년 전에 쓴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가 그랬다. 20세기의 문학 작품 가운데 사랑을 읽고 탐구한 기록이다.


책을 읽기 전 우선 목록을 살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있는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그에 비해 세계문학은 읽은 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게 맞을지도. 그래도 반가운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윌라 캐더’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윌라 캐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루시 게이하트』가 너무 좋아서, 고닉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애와 환경을 참고하면 더 풍부한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윌라 캐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닉에 의하면 그녀는 실제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소설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월라 캐더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 『루시 게이하트』 속 루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피아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루시가 자기 자신을 몰랐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고닉이 소설 속 루시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을 때는 우연인가 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월라 캐더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미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애덤스와 아내 클로버 에덤스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나처럼 헨리 애덤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 애덤스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셀럽 부부의 허상이자 지적이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화 능력도 놀라운 아내 클로버에 대한 헨리의 우울과 질투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건 남편 헨리라는 점에서 클로버는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고닉의 글처럼 말이다.

클로버처럼 ‘덜 중요한 삶’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과 가까운 중요한 인물은 풍부한 기록을 남긴 역사가들이 그럴듯한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덜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누이는 신경쇠약이었고, 신부는 도망쳤고, 아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는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결말만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51쪽)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눈치가 빠른 이라면 부모와 자식이락 답할 것이다. 남편이 아닌 자식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집착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 사랑에 삶을 저당잡힌 이야기. 『아들과 연인』을 시작으로 『고독의 우물』, 『메리 올리비에』, 『등대로』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친밀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지독한 연애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우리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삶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으키는 병적 흥분에 발목 잡힌 연애 사건이다. (86쪽)

30여 년 전 고닉의 글을 읽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친 작가,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한 작가의 목록을 읊는다.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그들이 그려낸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막장 드라마 같고 어떤 소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현재의 기괴하고 소름돋는 잔인한 사건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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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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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는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움직이고 헤어진다. 공간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를 떠올린다. 반복해서 걷는 사람들, 스치듯 만난 사람들. 도돌이표 같기도 하고 돌림노래 같기도 한 소설들. 더워서 걷기 힘들 여름이지만 이상하게 여름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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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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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로 깊은 잠은 달아나버렸다. 잠들지 못한다는 핑계로 TV 채널을 돌리고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잠을 기다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이 오지 않아 고통스럽게 여길 생각할 뿐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달랐다. 똑같은 상황을 차분한 관찰로 아름답게 서술해 나를 공간으로 이끈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은 그렇게 기꺼운 초대였다.

어쩌면 혹자는 제목 때문에 게으름 찬양이나 자기 계발서로 여길지도 모른다.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헤세가 기록한 삶을 향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탐색이다. 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자기 계발로 다가올 수도 있다. 헤세가 들려주는 일상의 단편은 목적 없이 달리기만 한 이들에게 멈춤, 쉼, 혹은 다른 속도를 제안한다. 재촉하지 않으며 순간에 집중할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말이다.

많은 부분이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마치 삶은 여행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볼 수 없는 것들, 이동하며 만나는 낯선 사람과 자연을 통해 느끼는 경이로움과 사유를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 아닌 유명한 관광지를 찾는 모습은 100 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던 걸까. 헤세의 안타까움을 우리는 잊은 지 오래다.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뼈아프다.

지구는 정말 가득 들어차버렸다. 어디로 눈길을 주든 새로운 집, 새로운 호텔, 새로운 기차역이 눈에 들어온다. 어딜 가든 건물을 한층 더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지구에서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듯하다. (61쪽)

헤세가 만나고 그리워한 이들은 유명한 이들이 아닌 산골 마을에 살며 연기에 그을려 위생적이지 않고 침투성이 바닥의 부엌에서 낡은 양철 주전자로 끓인 커피를 내주는 마귀 같은 친구다. 그가 기억하는 여행지의 모습은 휴양지의 명소가 아닌 소도시에서 친분을 쌓은 목사와 함께 머리에 작은 총상이 나 있던 연고 없는 부랑자였던 고인의 묘지에서 그를 축복한 일이다. 누군가는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을 그 순간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묘하게 울컥하는 건 왜일까.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이라서 헤세의 이런 글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벗에게 쓴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당부로 들린다. 휴가철이라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다. 쉼에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만 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휴식에 빠져들지 못하는 현대인이라면 격하게 수긍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지만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에는 도통 재능이 없답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여름의 끝자락에 약간의 호젓함을 누리는 것이 제겐 휴식이 됩니다. (95쪽)

헤세가 누리는 휴식의 일부는 자연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붓으로 표현하고 찬미하고 싶은 순간, 그가 반한 백일홍에 대한 눈부신 사유 울림 그 자체다. 죽음의 춤이라니! 백일홍을 꺾어 방에 두고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해마다 작약과 수국을 곁에 두고 바라보지만 나는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 헤세의 시선을 따라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마주한다.

한참 전부터 백일홍을 볼 때면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하고 아늑한 기분이 됩니다. 오래되어 은은한, 그러나 결코 약해지지 않는 이런 애정은 특히 이 꽃들이 시들어가는 걸 볼 때 더 각별해집니다. 꽃병에 꽂혀 차츰 마르고 죽어가는 백일홍을 보면 죽음의 춤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덧없음에 슬프고도 황홀하게 동의하는 모습이랄까요. 가장 덧없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97쪽)

작가 아닌 인간 헤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도시의 축제 기간에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밤’에 참가한 헤세, 티켓을 파는 이도 참석한 이들도 그가 헤세인 줄 모른다. 낭독자가 시 속의 단어들을 누락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실망하고 상처받는다니. 끝까지 견디디 못하고 자리를 뜨는 헤세의 표정은 씁쓸함이 묻어 있지 않을까. 여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 숭고한 건축물과 예술가의 작품을 향유하며 본연의 나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찾으려 했던 게 무엇이며 갈망하는 그것에 대해서.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평소의 삶에서도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별을 좇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삶의 원천에 대한 강한 향수, 모든 살아 있는 것, 창조하는 것, 성장하는 것 들을 알아가고 동질감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세상의 비밀을 여는 그들의 열쇠다. (242쪽)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는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고 어디를 펼쳐도 헤세의 찬란한 문장이 반겨준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여행하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어쩌다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약간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고 깨닫게 될지도. 헤세의 하루를 따라 그의 마음의 길에 동행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게으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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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6
세사르 아이라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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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아이라의 『바라모』는 1923년 파나마 콜론의 공무원 ‘바라모’가 월급을 받은 순간부터 열두 시간에 걸쳐 쓴 시「아기 예수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연 독자는 시 「아기 예수의 노래」의 전문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어떤 시이기에 라틴 아메리카에 시의 걸작으로 찬사 받는지 궁금하니까. 단 한 번도 시를 쓴 적이 없는 바라모가 쓴 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주목할 건 월급을 받는 순간부터다. 바라모가 월급으로 받은 이백 페소(100페소짜리 두 장)이 위조지폐였던 것이다. 받은 순간 알아차렸지만 바라모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그가 공무원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위조지폐라도 상관없던 것일까.

광장으로 나온 내내 바라모를 지배하는 건 위조지폐. 왜 아니겠는가.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진 그 앞에 차에서 내린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는 남자다. 정부 청사의 운전기사로 공무원들에게 판 돈을 대주는 도박단이기도 하다. 오늘이 월급 날인 걸 알고 빚을 받으러 온 것인가. 아니었다. 노련한 도박꾼인 어머니가 딴 돈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쯤이면 그 시절 파나마가 어떠했는지 짐작된다. 공무원도 도박을 하는 사회. 그렇다면 위조지폐 유통도 만연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라모가 전전긍긍하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수중에 진짜 돈이 생겼으니 뭐라도 먹기로 한다. 땅이 떨어졌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니. 젤리는 파는 여자에게 주사위처럼 생긴 빨간 젤리를 산다. 여자에게 줄 동전이 없어 운전기사에게 받는 1페소를 건넨다. 너무 큰돈을 받은 여자는 거스름돈을 구하기 어렵고 그걸 보던 신체 불구자가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나선다. 바라모는 자신에게 잔돈이 없음을 미안해한다. 여기서 신체 불구자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잘못은 화폐를 제대로 발행하지 않아서 액면가가 낮을수록 일반 대중에게 더욱 희귀해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야기한 통화 당국에 있다고. (18쪽)

이런 문장을 곳곳에서 마주하는데 이 소설이 그 시대의 파나마를 파헤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젤리를 손에 들고 광장 중앙으로 가는데 미친 남자가 빚을 갚으라며 달려든다. 노상 있는 일이라 동건을 건네며 빚 갚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젤리를 든 손 때문에 힘들다. 정작 젤리는 먹지도 못하고 흘러내려 버려야 하는데 휴지통은 없고 화단 쪽의 풀밭에 버리려다 키 큰 관목의 가지 끝에 젤리를 꽂았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바라모와 독자인 나도 진이 다 빠졌다. 근데 위조지폐는 어쩌지.

집에 왔지만 쉴 수가 없다. 공무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기 어려워(거기다 도박까지 하고 있으니) 바라모는 취미인 동물 박제로 언젠가 돈을 벌기를 꿈꾸며 오늘도 물고기를 만진다. 그는 물고기에 관련된 것이라면 아마뤼 사소해도 일일이 기록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가 도착해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며 보여준다. 내용은 협박이었다. 어머니가 파나마로 이주한 지 오십 년이나 지났지만 두 모자에게는 사그라들지 않는 소문이 있었다. 바라모의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훔쳐 왔다는. 중국인 어머니, 누가 봐도 중국인인 바라모를 보면 그럴 리가 없지만 어머니에겐 남편이 없었다. 어머니를 달래고 뒷면을 보니 매트리스 영수증이었다. 언젠가 바라모가 어머니와 함께 매장에서 직접 가지고 온 매트리스. 그토록 찾을 때는 사라지고 없던 영수증. 바라모에게 종이가 추가된다. 호주머니 속의 종잇조각들.

어머니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바라모는 자신의 평소 루틴대로 카페를 찾는다. 여전히 위조지폐를 생각하면서. 경찰이 자신의 주머니 속의 실체를 알 것 같아 두렵다. 뭔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구나 싶은 게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퇴근할 때 만난 정부 운전기사가 사고 피해자였고 바라 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차 안에는 경제부 장관이 있었다. 사고가 아닌 테러였고 장관이 임시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는 가정집에 옮긴다. 그 집은 바라모도 아는 공고라 집안이었는데 자매가 사는 줄은 몰랐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골프채 밀수로) 처음 알게 된다.




공고라 집안에서 나와 카페에서 바라모가 합석한 세 명의 신사들과 대화를 나눈다. 늘 카페에서 봤던 그들이지만 합석은 처음이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들은 해적판 출판업자로 바라모가 출판에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해 글을 쓰냐고 묻는다. 바라모에겐 기록(물고기)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퇴근길에 광장에서 들었던 클라리온 소리까지 기록하는 바라모인 것을.

그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날 기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 나중에 혹시 이때의 기록이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메모지를 잘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35쪽)

그럼 원고료는 얼마인가? 어쩌면 당신이 예상했을 이백 페소가 맞다. 거기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바라모의 말에 그들은 네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호주머니에 이백 페소가 들어온다고. 아, 이처럼 쉬운 일이었던가. 골칫거리 위조지폐 2장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해묵은 쓸데없는 습관, 즉 손에 들어오는 모든 종이 쪼가리를 보관해 두는 습관이 결실을 맺는 때였다. (104쪽)

그의 눈앞으로 광대한 사막 같은 황량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야자수, 어둠에 잠긴 정부 청사들 그리고 적막을 가로지르며 태엽 장난감처럼 외로이 굴러가는 자동차. 그는 잠을 자느라 이러한 장관을 늘 놓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런 것이 작가의 특권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향수에 젖었다. (106쪽)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위조지폐는 진짜 돈이 되었고 기록하고 모아둔 습관은 책이 되었다. 한낱 말단 공무원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던 바라모는 작가이자 시인이 되었다. 예술의 재료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그것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바라모처럼. 1923년 부패한 파나마이라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글쎄, 지금 여기는 그곳보다 나은가? 정답을 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월급으로 받은 위조지폐 두 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수많은 곁가지를 만들어 확장한다. 얼마나 대단한가. 내가 가장 놀라고 감탄한 부분은 카페를 나와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나무 꼭대기 위아래로 ‘8’자와 ‘Z’자를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 자리는 바라모가 젤리를 꽂아둔 그 가지였다는 것. 그 모든 게 풍자였고 폭로였다. 암시였고 복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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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7-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라모가 중국인이라는 설정도 신선했어요. 제 편견에 또 한번 놀라기도 했고요. ㅋㅋㅋㅋ

자목련 2026-07-26 09:02   좋아요 0 | URL
그런 설정에 대한 생각 1도 못했어요 ㅋㅋ
다른 소설은 얼마나 놀라울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