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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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듣고 헤아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어렵다. 내 사정에 더 급하니까. 나 살기도 급급하니까.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잊힌다. 어쩔 수 없다. 거들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오지랖이라는 책망만 돌아오니까. 관여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엔 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지만 자꾸 말을 건다. 대단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거라 거절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종들」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소설 속 ‘정해’와 남편 ‘영기’는 주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는 이웃, 난간에 위험하게 놓인 화분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 정자에서 계절감 없는 옷을 입고 혼자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다. 부모가 의심스럽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경찰은 별일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건지 정해와 영기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사는 세상, 그들의 행동은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최소한의 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다른 문제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종들」, 29쪽)

「관종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정해와 영기가 지나치다는 싶으면서도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내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을 개인 공간인 양 사용하는 이들로 인한 고통이 경험한 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를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정해와 영기처럼 쪽지를 받고 현관문에 불편한 메모를 발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모임이나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잘 지내기도 버겁기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 언제부턴가 타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교회의 성경 모임에 나가게 된 「푸른색 루비콘」의 ‘나’도 그렇다. 아들의 걱정 때문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하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일들을 혼자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나 싶고 뭔가 말할 준비가 돼 있어도 딱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입성이 별로인 남자의 부탁으로 양봉장에 데려다준다. 만날 때마다 그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그와 보낸 시간이 묘하게 편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이, 그가 내어준 꿀물이 오래 남는다. 모임의 마지막에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 보이지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체하며 다가온 남자, 궁금하지 않았지만 실없이 건넨 말들, 그러니까 그는 곁을 내어준 것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나눠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말」의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이불 가게를 물려받는 ‘애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일상을 나눈 ‘현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기꾼만은 아니다. 처음 운영하는 가게의 어려움을 살갑게 들어주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소를 했지만 현서를 면회한 애실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실은 자신의 모든 말을 들어 준 현서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현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현서로 인해 애실은 자신의 상처나 실수를 말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해 방치된 청소년기를 보낸 건 애실의 잘못이 아니라고 7년 만에 연락해 돈을 빌려 간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한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하루치의 말」, 134쪽)

말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저 호감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주시한다. 그러니 어떤 말은 주저하고 어떤 말은 사라지고 상대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남편과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나’가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외국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를 읽어주는 「빈티지 엽서」, 아르바이트로 저명한 미술가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며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우연의 직조」,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가까운 이가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운 아들의 이야기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말들은 그러하다. 진위를 구분할 수 없기에 힘들다.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 손해만 볼 수 있기에.

이처럼 김혜진은 관심이 병이 되고 선의의 마음조차 거부되어 돌아오는 시대에 최소한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걀의 온기」의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한 후 비어 있는 고향 집에 돌아온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그 집을 처분하기로 한다. 엿을 만들어 팔던 집안 내력 덕분에 ‘엿집’ 막내딸로 통했던 자신을 알아보는 어른들을 피해 다니지만 ‘민지’라는 어린아이와 자꾸 마주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모에게 맡겨진 아이였다. 당찬 아이는 스스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청란, 달걀을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달걀을 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달걀의 온기」, 233~234 쪽)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이제껏 자신의 불행을 아버지와 두 오빠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여전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보살펴준 손길을 생각한다. 한 알에 천 원인 청란이 하나도 비싸지 않다는걸. 표제작 「달걀의 온기」를 통해 우리는 실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온기와 다정함을 품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소한의 그것이 상처받은 우리를 어루만지고 살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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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시리즈 82
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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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단어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품었던 기억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말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끼거나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분노하거나. 그 모든 건 글이 될 수 있고 네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감이 다채로우니 저자도 다양하다. 수집광이거나 에세이 리스트거나 작가거나 나만 모르는 세계의 유명인이거나.

아무튼 나는 새벽에 끌려다는 말이다. 뿌연한 안개를 곁에 두고 달리던 새벽, 소중한 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맞이한 새벽이 스쳐 지나간다. 홀로 새벽에 쏟아낸 수많은 말들과 술병. 새벽이라는 푸르스름한 빛, 불투명한 이미지, 고독과 사색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시간.

잠들려고 애쓰지만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새벽의 시간의 날들이 있었기에 그 새벽을 생각한다. 비공개 카테고리로 이동한 그날들의 기록을 보면 그 새벽에 나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웠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여겼지만 괜찮지가 않아서 잠들지 못하고 자판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돌이켜보면 부질없고 아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새벽은 소중했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위로하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무튼, 새벽』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여서 싫기도 하고 혼자여서 충만하기도 했던 감각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 단편적인 새벽, 새벽의 조각만 떠올렸다. 새벽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지각은 당연했다. 새벽만 되면 잠이 달아나고 그 밤에는 영화가 보고 싶고, 영화배우가 꿈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새벽마다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만드는 그가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저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를 검색했으니까. 그런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도움을 받아 새벽을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한데 나는 오롯이 새벽에만 끌렸기에 저자의 새벽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다니며 마주했던 조용하고 적막한 시골 읍내의 풍경이나 새벽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생동감이나 활기 같은 걸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가 고양이와 인연을 맺으며 새벽을 그들을 돌보며 마주한 일상은 새벽의 다른 이면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새벽. 여성에게 더 많은 위험과 공포가 도사리는 새벽. 이제야 표지에 왜 고양이가 등장했는지 알 것 같다. 사실, 고양이도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새벽과 고양이의 접점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새벽엔 풀 냄새, 바람 냄새, 너구리 무리가 머물렀던 자리의 냄새가 너무 짙어서 눈에 보일 것만 같다. 서리 때문은 아니다. 보슬비 내리는 낮에는 없는 냄새가 새벽에만 있으니까. 고요가 허락하는 냄새를 만끽하려면 보폭을 줄여야 한다. (100쪽)

내가 사는 시골의 새벽은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다. 새소리로 시작하는 여름의 새벽은 더욱 그러하다. 그 소리는 상쾌하고 청량하지만 이불 속 나에게는 볼륨을 줄여줬으면 싶을 때가 많다. 나의 새벽은 그들처럼 날갯짓을 하고 움직이는 새벽이 아니기에. 나만의 새벽은 사라졌다. 아니, 나만의 새벽이 잠들기를 원한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힘들다. 새벽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현재 나의 새벽은 깊고 깊은 잠이길 바란다. 그러니 『아무튼, 새벽』에서 나만의 새벽과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새벽이 있다는 걸 수긍할 뿐이다.

새벽이면 이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덥고 습한 새벽, 꽁꽁 얼어붙은 새벽, 눈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이면 이 시간의 주인을 자처하던 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 날에도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은 환경공무관과 새벽 배송 기사 그리고 길고양이 돌보미인 나였다. 하루만큼 버려진 쓰레기와 하루만큼 쌓인 택배 상자, 그리고 하루만큼 비워진 고양이들의 밥그릇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만났다. (124쪽)

내가 깊게 잠들기를 소망하는 새벽에 누군가는 바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나의 아침을 위해 누군가의 새벽은 노동으로 채워진다. 수고와 고마움으로 새벽은 이어진다. 도시의 새벽은 더욱 요란하고도 고요할 것이다. 새벽마다 깨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 나는 한 번쯤 『아무튼, 새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가 될 것 같다. 내가 기대했던 새벽, 내가 궁금했던 새벽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특별한 새벽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새벽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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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을 주문하려고 살펴보고 있었다. 올해는 분홍에 꽂혀지만 청보라를 거부할 수 없어 분홍과 청보라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수국이 도착했다. 친구가 보낸 게 분명했다. 친구가 신청한 구독은 끝났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을 보냈더니 모른다는 답이 왔다. 어쨌거나 내게 온 수국은 은은하게 예뻤다. 강렬하고 화려한 수국이 아닌 다소곳한 수국이라고 할까. 수국수국의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






어제는 예약된 치과 진료가 있었다. 스케일링과 검진이었는데 비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로수에 수국이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도 수국과 목수국이 있었다. 작년에도 있었던가 기억하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수국의 계절이었다. 자귀나무도 꽃을 피웠다. 예전 같으면 6월인데 덥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6월이니 덥다가 익숙하다. 여름인 것이다.





주문한 책도 왔다. 세 권의 소설이다. 모두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조해진의 『우리 세희』, 백 솔뫼의 『다가오는 이마와 검은 털 고양이』, 이서수의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이다. 조해진의 소설은 읽지 못한 소설도 있고 쓰지 못한 리뷰도 있지만 꾸준히 읽는다. 처음 그의 소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말하자면 박솔뫼의 소설도 그러하다. 박솔뫼의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짧은 소설이 급 궁금해졌다. 아, 김지연의 짧은 소설도 읽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위픽 시리즈도 하나. 이서수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여성 연대를 기억한다. 그들의 연대가 끈끈하고 단단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수국도 좋고 소설도 좋다. 수국은 조금씩 시들고 있다. 수국과 소설을 짝꿍처럼 담아보려 했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수국을 바라보는 소설, 소설을 바라보는 수국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라고 말이다. 소설과 수국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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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6-2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을 좋아하는 수국. 청색 한방울 머금은 청보라 수국 너무 예뻐요😍

자목련 2026-06-28 11:28   좋아요 0 | URL
수국이 체절!
망고 님 마당의 수국에 따라갈 수 없지만 마음에 드는 수국이에요^^

독서괭 2026-06-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정말 아름답네요!! 마지막 사진 책과 책 보는 소녀 북엔드와 수국이 어우러져 멋집니다😍

자목련 2026-06-28 11:29   좋아요 1 | URL
책과 북엔드와 수국! 독서괭 님의 댓글 모두 좋아해요 ㅎㅎ

오후즈음 2026-06-2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수국 너무 예뻐요 저도 주문해야겠어요

자목련 2026-06-28 11:29   좋아요 0 | URL
어서 주문하세요!

blanca 2026-06-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 지는 게 너무 아쉬워요. 저는 박솔뫼 작가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읽고 정말 너무 좋았던 기억 나서 찾아 읽다 요새는 좀 뜸했는데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요새 산수국도 참 이쁘더라고요.

자목련 2026-06-28 11:32   좋아요 0 | URL
여름과 수국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았다고 하신 박솔뫼의 소설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ㅎㅎ
 


얼마 전 이불을 버렸다. 침낭도 버렸다. 그 가운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예쁜 이불이라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어려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단지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 내 것이라는 어떤 욕심이 자리했던 것이다. 둘러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나는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오랜만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스피를 보면서 지금껏 주식을 하지 않는 나는 잘못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주식을 하는 모두가 이익을 낸 건 아니다.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속 인물이 대사처럼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미국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 「플레인 Plain」에 실린 27편의 에세이를 담은 책 『간소한 삶』를 읽으면서 깊어졌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따라가는 삶. 과감하게 무언가를 내려놓고 버리는 삶. 그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사는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 농부, 시인,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 할아버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필자가 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씩 생각날 건 분명하다.

한 편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30여 년 전에 나온 책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냐고 말이다.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와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미디어와 AI에 의존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그것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혼자가 편하고 간편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해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곡물을 재배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림과 가난에 죽어간다. 책에서 마주한 삶은 과거 우리가 살아온 모습의 조각이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내고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일. 물물교환, 품앗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잼을 만들어 먹는 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삶.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우리 삶에서 돈이 자치하는 자리를 줄이며 균형을 찾는 일은 상당히 도전이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가 쓰는 돈의 연결고리와 그것이 미치는 효과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돈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71쪽)






음식에 관한 한 가장 멋진 점은 물론 먹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함께 먹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 별 재미가 없다. 음식을 나누며 우리가 뜻깊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이웃을 사귀고 베풀고 감사하고 삶을 나눈다. 향연과 축제, 작은 파티, 공동식사를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식탁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이다. (158쪽)

우리가 정말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하루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삶, TV 플러그를 뽑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TV는커녕 라디오를 꺼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원하던 고요를 느끼고 아이와의 대화는 풍요로워지고 노래를 부른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정된 삶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스마트폰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놀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잠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럽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일, 나만 그럴까?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을 사라지고 주변의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간다. 정체를 모르는 욕구 불만에 계획 없이 무언가를 사들이고 대화는 단절된다. 단답형의 대화, 줄임말로 이어지는 문자.

더 이상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손의 감각에 의지할 뿐 도어록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메모했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과거로 회귀한 듯 모두가 자급자족하며 공동체의 삶을 꾸리며 『간소한 삶』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리 부모님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게 정말 중요할까? 부모와 아이들을 갖다 맡긴 후 이론적으로 복잡한 관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좋아졌는가? 좋은 삶이란 서로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온전한 삶의 핵심이다. (305쪽)

『간소한 삶』을 읽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주제적인 나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없겠지만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월든』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내면의 소리, 내가 외면하는 소리, 그러나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


인간은 언제나 자기영혼이 하는 진실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꾸준한 소리다. (『월든』, 286쪽)


같은 의미로 최근에 읽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스크린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한다. 스크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가 스크린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메타버스, AI, 기후변화, 가상현실과 적절하게 조화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야 하니까.


누군가 당장 변화를 찾아 행동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와는 다른 삶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는 간소한 삶을 찾는 일. 그게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삶을 향한 시작을 『간소한 삶』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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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9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주식은 책입니다! 그리고 제 주식은 단 한 번도 마이너스로 간 적이 없습니다! ㅎㅎ

자목련 2026-06-19 12:01   좋아요 2 | URL
이제부터 저도 제 주식은 책입니다!
잠자냥 님의 댓글이 무지 든든합니다. ㅎㅎ
점심 맛있게 드시고요!

hnine 2026-06-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은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엔 구입을 해야할 것 같아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이 글을 읽게 되었네요. 간소한 삶을 위해선 우선 마음 부터 간소하게 정리하며 살아야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간소함보다 우선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목련 2026-06-21 10:07   좋아요 0 | URL
마음부터 간소하게 정리하는 일, 정말 그게 시작인데 자꾸 욕심이 파고듭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채워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잊어버려요. 나인 님, 소로와의 즐거운 만남 이어가시길 바라요.
 



일상을 산다. 하루를 산다. 똑같은 날들이 지루하고 때로는 지겨워서 뭔가 이벤트가 있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이벤트는 신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그러다 제법 큰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뻔한 일상이 뻔한 하루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졸였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어찌할 수 없는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하게 말이다.

6월이 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는데 달라져야 했는데 말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친구는 이사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사는 집을 팔았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보관 이사를 했고 당분간 살 공간을 원룸을 구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만나러 왔다.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나를 만나러 오라고. 겨울에 얼굴을 보고 두 계절이 지났다.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친구는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생각, 줄어들지 않는 불안과 찾아야 할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시간에 대해, 어떤 요일에 대해 내가 부여한 의미들에 대해서. 그 시간이, 그 요일이, 그 느낌이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힘들었다.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그것들이 두려웠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잔뜩 부여한 의미. 그게 문제였다.




나를 아끼는, 나의 소중하고 귀한 친구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쓰는 루틴을 찾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라고.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잔을 구매했다.계획에 없던 일이다. 다시 충동의 일상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읽으려고, 궁금했던 책을 기록한다. 이 책들은 5월의 책이다. 읽기는 느리고 더디지만 6월의 책도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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