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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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사회의 성격은 불완전함, 불충분함, 결여 등으로 규정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적극적인 것으로서, 자연환경과 사회적 계획의 지배로서, 스스로의 사회 존재를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며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의지로서 규정되어야 한다(p246)... 원시사회의 경제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원시사회에서 경제가 자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247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민족학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원시 문화들을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이른바 구심운동을 하는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진정으로 고대적 사회에 대해 우리가 사회가 아닌 고대적 사회의 실재에 맞는 담론을 만들기 원한다면 시각의 완전한 전복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류학이 우리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34


 피에르 클라스트르 (Pierre Clastres, 1934 ~ 1977)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La Socie'te' Contre l'Etat de Pierre Clastres>에서 원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분명 벗어난다. 원시사회-> 노예제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라는 단선적 발전론적 입장에서 원시사회는 다음 단계로 이행을 위한 초기 단계이며, 내부모순에 의해 붕괴될 수 없는 사회다. 이러한 초기예비단계라는 기존 시각에 대해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 자체에서 완전성을 발견한다. 그러한 완전성은 원시사회에서경제면에서 이미 잉여 생산물을, 정치적으로는 독재를 방지하는 일종의 장치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종종 공동체의 연간 필요 소비량에 맞먹는 잉여 식량을 생산했다는 것, 즉 연간 필요 소비량의 두 배를 충족시키거나 혹은 두 배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식량을 생산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p18) 이 지적은 단순히 고대적 사회가 고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계경제라는 개념이 실제 원시사회가 처했던 경제적인 현실보다 오히려 원시사회에 대한 서구 관찰자들의 태도와 습관을 반영하고 있는 "과학적" 허위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9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 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61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속의 추장의 모습은 권력을 통해 지배하는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다. 끊임없이 주변에 의해 흔들리는 추장의 모습. 이러한 추장의 모습은 J. G.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 1854 ~ 1941)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에서 보여지는 '신의 살해'를 떠올리게 한다. 절대적인 존재인 신을 대리하는 대리자에 대한 살해. 이 같은 의례 또한 절대권력에 대한 또다른 견제장치는 아니었을까.


 추장의 역할은, 비록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지도자는 집단의 경제활동, 의례활동을 계획하고 이끌지만 의사 결정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명령"이 집행될 것이라고 확실할 수 없다. 끊임없이 도전받는 권력의 이러한 본질적 취약함으로 인해 권력 행사는 독특한 성격 tonalite을 지니게 된다. 즉 추장의 권력은 그 집단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49


 다른 사람들과 다른 추장에게만 요구되는 능력 - 말하기와 같은 - 마저도, 그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 아닌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추장 스스로가 입증해야 하는 사회 공동체의 요구는 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로 작동한다. 또한, 권력사회에서 발화(發話)는 그 자체로 명시적 의미를 갖지만, 원시사회에서 발화는 모호하고 중의적인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저자는 이 같은 원시사회의 견제와 모호함을 통해 권력사회의 첫 번째 계단이 아닌, 반(反)권력사회로서 원시사회를 조명한다.


 언어가 곧 폭력의 반대라면, 말하기는 추장의 특권 이상의 것으로서, 그것은 권력이 강제적 폭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집단이 가지는 수단이자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매일 반복되는 보증으로 해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말에는 언어에 내재하는 소통의 기능에서 벗어난 애매모호함이 숨겨져 있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60


  발화된 말은 교환되는 메시지인 동시에 모든 메시지의 부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호로서도 기호의 반대물로서도 발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아야키족의 노래는 우리들에게 열려진 소통의 기능으로서도, 또한 자아 구성의 닫혀진 기능으로서도 전개될 수 있는 언어활동의 이중적이고 본질적인 성질을 가리킨다. 이러한 반대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언어활동의 역량은 기호와 가치로 나누어질 수 있는 언어활동이 지닌 가능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56


  오랫동안 인류의 정치사는 중앙집권화 여부에 따라, 경제사는 어느 에너지를 활용했는가에 따라 우열을 판단해왔다. 그렇지만, 역사속에서 우리 인류는 과연 끊임없이 진보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권력에 대한 견제가 무너지면서 부족제사회에서 왕정으로 넘어가고, 경제적으로 삼림이 황폐화되면서 나무 대신 석탄을 활용하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변화, 인류 사회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퇴보는 아니었을까.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 대신 인간의 행복지수가  반비례하여 낮아지는 이유도 설명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원시사회에 대한 현대인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 여겨진다..


 분리의 본원적 징표이자 분리가 확대되어나가는 특권적인 장은 권력의 생성이라는 환원 불가능하고 확고하며 아마도 불가역적인 총체적 사실 그 자체이다. 일부의 구성원만이 소유하며 전체 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 즉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사회를 향하여 또는 필요하다면 사회에 반하여 행사되는 권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국가를 형성한 모든 사회들을 이러한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191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추장이 일체의 권위와 강제력,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다. 추장제의 공간은 권력의 장이 아니며 원시사회의 "추장"은 앞으로 나타날 전제군주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국가 장치가 원시사회의 추장제로부터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_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p254

권력과 교환 사이의 관계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거기에서 권력이 지닌 문제 틀이 등장하고 구체화되는 사회구조의 가장 심오한 층위, 즉 사회의 여러 무의식적 구성의 장이 드러나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권력에 대한 거부에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것은 자연에 대한 주요한 차이로서의 문화 자체이다... 문화는 권력과 자연 모두에 대한 부정이다. 그것은 자연과 권력이 문화라는 제3항에 대해 동일한 - 부정적인 - 관계만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위험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문화가 권력을 자연의 재출현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에서의 부정인 것이다. - P57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력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 P192

인간을 괴롭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이 불완전함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모든 사물은 전체 속에서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온다... 이 불완전한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이기 때문에 불행은 그 불완전함으로부터 생긴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특성이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특성이다. 하나란 불완전함의 이름이다. 과라니족의 사고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란 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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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5-06 1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두기만 했는데 이제 정말 읽어볼 타이밍인 듯 싶네요. 끊임없이 발전지향으로 나아가서 문제가 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5-06 13:49   좋아요 4 | URL
이제는 언론에서 진부하게 사용하는 ‘단군 이래 최대 ~‘ 등의 표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현대 사회가 예전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되네요. 거리의화가님 좋은 독서 되세요! ^^:)

얄라알라 2023-06-08 12:53   좋아요 1 | URL
이 오래 전 나온 전문서가 요새 알라딘 서재에 가끔 올라오는 걸 보면, 겨울호랑이님의 이 리뷰가 쏘아올린 신호탄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화가님, 타이밍 바로 지켜 실행하신거네요. 두 분의 글을 읽게 되어 넘 좋습니다

초원 2023-05-06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빗소리가 약해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잘 지내시죠?

왕이 없는 추장제 사회는, 클라스뜨르의 논의에서 보면, 무척 매력적이네요. 저도 오랜만에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읽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국가에 대항하는‘이라는 책제목은 뭔가 비껴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겨울호랑이 2023-05-06 19:47   좋아요 1 | URL
비가 오는 연휴네요. 덕분에 꽃가루도 먼지도 많이 씻겨 내려가 시원해졌구요. 본문의 내용을 읽으며 헤시오도스가 노래한 <일과 나날> 속의 다섯 시대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황금, 은, 청동, 영웅, 철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의 삶은 점차 퇴보한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또한 초원님 말씀처럼 ‘국가에 대항하는 ~‘ 대신 다른 표현 - ‘권력을 거부하는‘ -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네요. 그럼에도 ‘국가‘를 제목에 붙인 것은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민족국가에서의 국가권력이고, 중앙집권의 종착점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구요. 초원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

얄라알라 2023-06-08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 책 읽고 입사식의 고문에 가까운 신체화된 주민등록증이 가장 인상깊었었어요.

contre는 ‘against‘의 의미여서 ‘대항하는‘이라고 번역했을까요?^^ 초원님 말씀을 들으니, 대안어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3-06-08 15:31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주민등록증은 국가의 영토 내에 구속된 개인의 처지를 잘 드러내는 도구라 여겨집니다. 저도 무심코 넘어갔었는데, 초원님 덕분에 좋은 생각할 거리를 얻었습니다.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더 풍성하게 얻어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