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맑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9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본과 국가는 그것들이 어떤 필연성에 뿌리박고 있는 까닭에 자율적인 힘을 지닌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초월론적인 가상인 까닭에 단순한 부정에 의해서는 사라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좀 더 강력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관한 깊은 통찰(비판)이 필요하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43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1941 ~ )의 <트랜스크리틱 トランスクリティ-ク―カントとマルクス >은 '탈(脫)자본주의'를 위한 고찰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이념과 국가라는 통치권력의 긴밀한 연합을 과연 깨뜨릴 수 있을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이 과제를 위해 고진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와 맑스(Karl Marx, 1818 ~ 1883)을 소환한다. 


  국가나 네이션이 비록 공통 환상이라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은 자본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에게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네이션은 상품 교환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역시 '교환'에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더라도 그와 같은 계몽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 그것들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초월론적 가상인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35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본질을 칸트의 초월론적 가상으로부터 밝혀내고, 이들의 연결고리를 맑스의 이윤원천인 '교환'에서 찾아낸다. 교환관계로 결합된 초월론적 가상. 마치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cerberus)와 같은 이들의 본질을 밝혀내기 위해 <트랜스크리틱>에서 고진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Copernican revolution)에 해당하는 칸트적 전회(轉回)를 꺼내든다.


 중요한 것은 지동설인가 천동설인가가 아니라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나 태양을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사물과는 별도로 어떤 관계 구조의 항으로서 파악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야말로 지동설로의 '전회'를 초래한다. 즉 코페르니쿠스의 전회 그 자체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칸트는 경험주의처럼 감각으로부터 출발할 것인지, 합리주의처럼 사유로부터 출발할 것인지 하는 대립을 빠져나간다. 그가 가져온 것은 감성의 형식이나 지성의 카테고리와 같이 의식되지 않는, 칸트의 말로 하자면 초월론적인 구조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56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칸트적 전회를 통해 초월론적 구조를 도입한다. 초월론적 구조 안에서 '타자(他者)'가 도입되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보편성과 특수성은 자리바꿈을 한다. 여기에서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는 헤겔의 변증법적 구조와 같이 정(正)-반(反)-합(合)의 구도를 갖지 않는다. 결코 자신이 될 수 없는 타자와의 끊임없는 관계, 사이가 목적과 수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성은 자본=네이션=국가를 긴밀하게 엮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그것은 교환관계에서 온다. 이제부터 주제는 칸트에서 맑스로 전환된다.


 중요한 것은 칸트가 '보편성'을 추구했을 때 불가피하게 '타자'를 도입해야만 했다는 것, 그 타자는 공동 주관성이나 공통 감각에서 나와 동일화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초월적인 타자(신)가 아니라 초월론적인 타자이다. 그와 같은 타자는 '상대주의'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만이 보편성을 가능하게 한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85


 이 명령(정언명령)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공동체에서 오지 않으며, 신에게서도 아니다. 이 명령은 (칸트의) 초월론적 태도 자체에서 온다. 초월론적 태도는 암묵적으로 '괄호에 넣어라'는 명령을 포함한다(p176)... 초월론적인 시점이 그와 같은 '명령'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망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초월론적인 시점 자체가 하나의 명령에 의해 촉구되고 있다는 것도 망각되고 있다. 그 점은 초월론적 시점 자체가 어디서 오는가를 물을 때 분명해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타자'와 연관되어 있다. 초월론적인 시점 자체가 윤리적인 것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177


 고진은 맑스의 <자본>에서 특히 3권에 주목한다. 잉여의 원천과 신용관계를 통한

자본의 끊임없는 지불유예와 만기연장을 통한 자본증식의 본질을 고진은 밝혀낸다.  다른 가치 체계에서 교환을 통해 형성된 이윤이 끊임없이 돌려막기되면서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 고진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긴밀한 유대를 끊어낼 수 있는 약한 고리를 생산-교환-소비의 단계 중 교환에서 찾아낸다. 초월론적 구조 안에서의 영구 교환 시스템. <트랜스크리틱>에서 논의된 구조의 본질에 대한 구체적 행동 논의는 <세계공화국으로>와 <윤리 21>에서 보다 상세하게 논의된다...


 맑스는 G-W-G'에서 W-G'가 실현될지(상품이 팔릴지) 아닐지 하는 것에서 '목숨을 건 도약'을 보고 있다. 그 경우 덧붙여야 할 것은, 실제로 자본은 상품이 팔린 것으로 간주하고 운동을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신용'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235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을 촉진하고 '판매'의 위태로움을 감쇄하는 '신용'이 자본의 운동을 무한(endless)히 강제한다. 총체적으로 보면 자본의 자기 운동은 마치 자전거 타기처럼 바로 '결제'를 무한히 뒤로 미루기 위해서 존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만약 거기에 '끝'이 있다면 신용은 붕괴하기 때문이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342


 맑스는 자본의 원천에서 바로 화폐의 페티시즘을 고집하는 수전노(화폐 축장자)를 발견하고 있다. 화폐를 가진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것과도 직접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사회적 질권'을 갖는 것이다. 화폐 축장자란 이 '권리' 때문에 실제의 사용 가치를 단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역설적이게도 수전노는 물질적으로 욕심이 없다. 수전노에게는 종교적 도착과 유사한 점이 있다. 사실 세계 종교도 유통이 일정한 일정한 '세계성' - 공동체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이윽고 공동체들에게도 내면화되는-을 지닐 수 있었을 때에 나타났다. _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 p325


통상적으로 공적이라는 것은 사적인 것에 반해 공동체나 국가 차원에 대해 말해짐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역으로 후자를 사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여기에 중요한 ‘칸트적 전회‘가 놓여 있다. 이 전회는 단지 공공적인 것의 우위를 말한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의 의미를 바꿔버린 것에 있다. 공적이라는 것=세계 공민적이라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는 오히려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개인적인 것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공적 합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개인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다. - P150

언어는 개별성-일반성의 회로로 회수되지 않는 잔여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고유 명사가 초래하는 패러독스에서 그것이 나타난다. 거기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단독성이 이를테면 ‘사회적‘인 것과 관계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성-개별성과 보편성-단독성의 구별이다. 또는 공동체-사회의 구별이다(p165)... 고유 명사(proper name)은 종종 사유 재산(property)과 결부된다. 따라서 고유 명사에 대한 공격은 반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보인다. - P166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기 위해 채택된 시스템의 핵심은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에 있다. 제비뽑기는 권력이 집중되는 장소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참으로 삼권분립을 보증한다. 이리하여 만약 익명 투표에 의한 보통 선거, 요컨대 의회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인 독재의 형식이라고 한다면, 추첨제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싱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어소시에이션은 중심을 지나지만, 그 중심은 제비뽑기에 의해 우연화된다. 이리하여 중심은 있음과 동시에 없다고 해도 좋다. 즉 중심은 이를테면 ‘초월론적 통각 X‘(칸트)인 것이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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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4-18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는데… 상당히 어려운데요!!!

겨울호랑이 2023-04-18 22:39   좋아요 2 | URL
아, 제가 <트랜스크리틱> 리뷰에서 큰 골격만 떼어 요약하다보니,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생각하기에도 100%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스스로도 부족함이 많은지라... 직접 읽으시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DYDADDY 2023-04-19 0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05년에 번역된 책과 같은 내용인줄 알았는데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크게‘ 바뀌었다고 하네요. 새로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ㅠㅠ

겨울호랑이 2023-04-19 04:58   좋아요 0 | URL
서두에 이전 내용 중 일부를 보완했다는데 저는 이전 본을 읽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만, DYDADDY님 말씀을 들으니 저도 그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4-25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칸트=나쁜 놈 이란 도식을 알기 위해 저도 읽어봤는데 앞 부분은 참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3-04-25 23:00   좋아요 1 | URL
<트랜스크리틱>에서 칸트의 사상이 자본, 네이션, 스테이트의 골격을 설명하다보니 처음에 저도 선뜻 내용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강한 칸트의 초월론은 그 내용은 차치하고, 이해의 어려움으로 독자들의 건강에 유해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