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공직 사회에서 반지성주의는 주로 기업인들이 줄곧 품어온, 과학 연구소나 대학, 외교 집단 등 자신들의 세력 범위 바깥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의구심으로서 표출되었다. 극우파가 지식인들에게 드러낸 적대감은 훨씬 더 극렬하고 무차별적이었다. 이런 태도는 교육 수준이 높은 식자층이나 가문, 지위, 교양 등 모든 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전형적인 혐오였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26/504
제20대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단어는 단연 '반(反)지성주의'였다. 취임사는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것은 '반지성주의'이며 이로 인해 집단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뒤이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로 '자유(自由)'가 35차례 강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결국, 취임사를 거칠게 요약하면 비과학적인 반지성주의로부터 자유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면에서 '반지성주의'는 취임사에서 빌런(villain)의 역할을 맡고 있는 듯하다. 자유를 위해 사라져야 할 반지성주의. 이 구도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다음은 취임사 중 일부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 제20대 대통령 취임사 中
반지성주의와 관련하여 리처드 호프스태터 (Richard Hofstadter, 1916~1970)의 <미국의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떠올리게 된다. 반지성주의에 대해 저자는 무엇이라 정의했는가.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는 하나의 관념으로서는 단일한 명제 내용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명제가 중첩된 상태를 가리키며, 하나의 태도로 볼 때는 흔히 양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_ 지성이나 지식인에 대한 순수한 혐오는 보기 드물다. 그리고 역사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면, 반지성주의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한 가닥의 실이 아니라 때에 따라 강도가 변하는 다양한 원인에서 힘을 끌어내는 하나의 세력이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21/504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단일한 흐름으로 규정하기보다 '지성에 대한 다양한 양태'로 해석한다. 취임사에서 언급하듯 특정한 상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흐름으로 바라보기에 정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때문에, 저자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용어의 남용을 경계하고 있다. 다음 구절을 쉽게 정리하면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에 대해 '반지성적'으로 매도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라 생각된다.
1950년대의 정치적 혼란과 교육 논쟁을 거치면서 반지성적 anti-intellectual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자기평가에서 가장 중심적인 표현으로 부각되었다. 이 용어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어로 들어왔고, 지금은 못마땅한 여러 현상을 서술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갑자기 이 말을 의식하게 된 이들은 대개 반지성주의가 생활의 어떤 영역에서 설득력을 지닌 표현으로 여기거나, 최근의 상황에서 생겨난 말이기 때문에 조만간 압도적인 비중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20/504
쉽게 규정하기 힘든 '반지성주의'지만,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전체 흐름에서 이는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반감'으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하다. 이로부터 저자는 미국 사회 지식인들의 소외 문제와 사회 참여 문제를 지적한다. 대중에 의해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권력과 결탁하거나 권력과 비판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며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 격렬한 내분과 분화가 일어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권력과의 결합을 완전히 포기한 지식인은 자신의 무력한 입장이 모종의 계몽에 유용했음을 충분히 - 지나치게 충분할 정도로 -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이 권력에 접근하고 권력과 관계되는 문제에 관여하다보면 다른 형태의 계몽이 가져다 줄 가능성을 놓칠 경우가 많다. 권력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여론을 움직여서 사회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반면에 권력에 결합된 지식인은 직접적으로 지식인 공동체의 사고에 따르는 형태로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역할은 반드시 서로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다. 양측 모두 모종의 개인적/도덕적 위험이 걸려 있다. 또한 양측 모두 운을 하늘에 맡긴 개인적 선택을 보편적 규범으로 삼을 수는 없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434/504
그렇지만, 호프스태터에 의하면 지식인들의 분화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다원성과 받아들이는 관용에 의해 파국적인 결과를 막을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관대함이며, 이를 위해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전체 결론이다. 결국, 호프스태터에 의하면 지식인 내부의 갈등과 외부(대중)과의 불화를 봉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솔직함과 열린 태도에 기초한 논쟁과 토론이며 이를 위해 자유가 기초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 취임사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취임사에서 이러한 구도의 앞뒤가 바뀌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비판자들 중에서도 정신적으로 자신들의 사회 바깥에서 그런 상황을 엄격하게 직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으며, 그들은 인원수나 자유로운 정도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세력이 될 것이다. 양측 간에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향후에도 있을 것이며, 또 지식인 공동체 내부에서는 권력과 비판의 양 세계를 아우를 만한 능력을 갖춘 지성이 탄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식인 사회는 서로 반감과 위화감을 지닌 세력으로 분열되는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건전함은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다원성과 이 요소들이 서로 관여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435/504
과거의 자유로운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스타일의 지적인 삶을 인정한 점이다. 그 덕분에 다양한 유형의 지식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열정과 반항심에 의해 이름을 얻은 지식인도 있지만, 우아하고 화려한 지식인도, 검소하고 엄격한 지식인도 있다. 현명하고 복잡한 지식인도, 인내심 강하고 총명한 지식인도, 특별한 관찰력과 인내력을 지닌 지식인도 있다. 어쨌든 다양한 장점을 이해하려면 솔직함과 관대한 정신이 필요하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437/504
취임사에서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자유가 보장되어 지식인 내부와 외부가 솔직하게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한다면 집단지성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도출되지 않을까. 오히려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하고 배격하는 태도야말로 반지성적인 행태는 아닐런지. 호프스태터가 지적한 미국사회의 반지성주의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던 시점이 바로 극우사상인 '매카시즘McCarthyism)'이 바로 활개를 치던 시점임을 생각해 본다면 누가 '반지성주의' 집단이며, 반지성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모두가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된 듯하다. 아마, 이 점 때문에 취임사 해독이 어려웠던 것 같다...
미국에서 비판적 지성이 처참할 정도로 경시되고 있다는 우려를 일깨운 것은 무엇보다도 매카시즘이었다. 물론 매카시가 끊임없이 비난을 퍼부은 대상은 지식인만이 아니었지만 지식인은 늘 표적이 되었고, 지식인을 사냥할 때 그의 추종자들은 특히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_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 p17/504
PS. 이제 겨우 취임 2일 째인데 그 사이 참 많은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