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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ㅣ b판고전 19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손주경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3월
평점 :
대체 이 악덕, 이 불행한 악덕은 무엇이란 말이냐?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들, 부모들, 아이들, 심지어는 자기만의 삶을 버리고 학대당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군인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기 피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할 야만의 군대에 의해서도 아니고, 헤라클레스나 솔로몬 같은 자도 아닌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많은 경우 그 나라에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유익하며, 전쟁의 화약을 결코 마셔보지도 않고, 결투의 모래바닥을 조금도 밟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휘하는 데 뿐만 아니라 가장 가냘픈 여인네마저도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인간 같지도 않은 한 사람에 의해서 탈취와 방탕과 잔혹함을 겪에 되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8
에티엔 드 라 보에시(Etienne de La Boetie, 1530~1563)는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에서 물음을 제기한다. 왜 민중들은 폭군(暴君)에게 복종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단 한 사람에게 복종하는 상황이 다수에게 불행이라면, 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보에시는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자발적 복종'에서 찾는다.
우선 당장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들이, 많은 도시들이, 많은 국가들이 단 한 사람의 폭군을 때때로 지지하게 되는지 만을 생각해보자.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견뎌내기를 원하는 만큼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기보다는 스스로 참고 견디는 것을 더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4
한 명에 의해 많은 이들이 구속되어 있는 상황은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면 설명되기 어렵다. 힘이 부족해서 일시적인 복종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힘의 크기가 현저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가 가능한 것은 자발적 복종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가 충족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자유(自由)망각' 때문이며, 자유망각은 '관습'에 의해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 보에시의 분석이다.
사람들이 복종을 당하자마자 자유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 자유를 다시 얻기 위해 깨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서서 섬기고, 그것도 기꺼이 섬기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단지 단지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복종을 얻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처음에는 힘에 의해 억압을 당해 굴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후에 사람들은 후회도 하지 않고 복종하며, 자기네 선조들이 강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일을 자진해서 해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7
모든 영역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관습은 무엇보다도 복종을 배우게 만드는 관습이며, 독약에 길들여진 끝에 목숨을 잃었던 미트리다테스 Mithridates가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복종의 독이 쓰디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자진해서 들이키도록 가르쳐주는 것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다.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8
보에시에 따르면 관습은 우리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덕목들을 가르쳐 주지만, 관습이 지향하는 수많은 덕(德 vertu)에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찬양받는 미덕(美德)에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기에, 전승되는 관습에 무비판적으로 따를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소수의 다수 지배라는 시스템에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된다.
용감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려 깊은 자들은 어떠한 고통도 물리치지 않는다(p26)...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들이 욕망하지 않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위대하고 감미로운 자유이다. 그것이 상실되면 모든 악덕이 이어지고, 자유 뒤에 놓여 있던 다른 모든 행복들은 굴종으로 인해 썩어버려서 맛과 풍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오직 이 자유, 그것을 인간들만이 유일하게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27
이러한 상황에서 결론은 자연스럽게 '계몽(啓蒙)'으로 흘러간다. 자기 스스로 관습을 깨치고 관습을 벗어날 수 있도록 잘 배우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구체제(Ancien Regime)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결론이 <자발적 복종>의 구조이며 결론이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의지를 말하지 않는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상호 보조'를 위한 것이며,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 사이의 연대(slidarite)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인간 이성(理性)에 기반한 자유를 통해 깨닫고, 연대를 통해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현재의 '자발적 복종'을 넘어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저자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자발적 복종>의 마지막 주장은 계몽시대의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자칫 식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수로부터 권력을 받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한 지배라는 상황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관점에서 합리화하지 않고, 개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실에서 <자발적 복종>이라는 모순된 제목의 책은 씁쓸함과 유용함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한다...
그러니 배우도록 하자. 잘 행동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우리의 명예 혹은 우리의 미덕에 대한 사랑을 위해,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을 충실히 증명해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한 신의 명예와 사랑을 위해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폭정보다 선량하고 자유로운 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 신은 폭군들과 그들의 공모자들을 위해 몸소 이 땅에 어떤 특별한 몫을 남겨두었다는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03
우정 l'amitie이라는 공동의 의무가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 때문이다. 미덕(vertu)을 사랑하고 훌륭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의 명예와 이득을 더하기 위해 때때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줄이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