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기본소득 구상은 대한민국 산업의 비약적인 자동화에서 출발한다. 가령 2020년 대한민국 사회의 산업 로봇 보급률은 노동자 1만 명 당 932대에 달했다. 단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급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주류로 통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은 '창조적 파괴'(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과정이 또 다른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사회가 큰 피해 없이 구조적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 낙관한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이런 낙관론을 믿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디지털 혁명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권력의 문턱에 선 이재명의 보편소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월호에서는 한국 대선과 관련한 기사가 이례적으로 2편이 실려있다.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 때문인지, 한국판에 한정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사에서는 대선 이슈를 부동산과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다른 페이퍼에서 부동산은 이미 다룬 만큼, 이번 페이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기사에서는 기본소득을 대선의 주요 이슈로 보고 있지만, 실상 한국 정치의 현장에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물 건너간 주제로 보인다. 당초 기본소득 등 여러 현안들이 주요 정치쟁점이 되리라는 일반의 전망과는 달리 뜻밖의 스캔들이 대선정국의 주요 이슈로 차례로 등장하면서, 정책과 관련한 논의는 발붙일 여지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겠지만, 그런 문제가 없었더라도 기본소득 문제는 이념만큼이나 극명하게 찬반이 갈리는 부분이라 논의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무엇이고 어떤 점이 찬반의 논점이 되는가.
기본소득이란 개인에게 적용되며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정기적인 현금 소득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제도와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사이의 차이점이 또 하나 있으니,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당을 받을 이들이 일을 해야 한다거나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의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에는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obligatioin-free)"라고 말할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41/629
가장 저명한 기본소득 옹호자 필리페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1951 ~ )는 기본소득을 자동화로 인해 생겨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설명한다. 자동화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최저 생계비 보장(대략 1인당 GDP의 25% 수준)은 실업, 교육, 저출산 고령화 등 현대사회의 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파이레스의 설명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기존의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같은 공공부조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양쪽 모두 빈곤 문제를 해소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 목적은 그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해방시키는 데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기본소득은 단지 궁핍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동경할 만한 세상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28/629
개인에게 적용되며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아무런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정기적인 현금 소득. 그것이 기본소득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이 비판받은 지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큰 우려가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조달과 노동동기 부여 감소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파레이스는 이 점에 대해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조달은 소득세(소비세)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자금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기본소득제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기존의 소득보장제도(4대 보험 등)의 재원이 기본소득재원으로 전환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는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지만, 이러한 부분에 있어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잘 발달된 조세 시스템과 잘 발달된 복지제도를 모두 갖춘 나라에서 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 소득세다... 기본소득의 많은 부분이 두 가지 방법으로 '자체적 재원 조달'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모든 낮은수준의 사회적 (부조 혹은 보험) 수당들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모든 높은 수준의 사회적 수당의 아랫부분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가구의 최저소득 구간에서의 세금 면제도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것이며, 그 밖에 수많은 다른 세금 지출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서비스나 사적 연금에 대한 지출도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312/629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순비용이 한계 세율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 하는 것이다. 노동의 동기부여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핵심적인 위협이며, 이는 재산 조사 최저소득 제도에서 보편적 소득 제도로 이동할 때 항상 나타날 수밖에 없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313/629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이 기본소득제도로 전환된다고 했을 때, 얼마만큼의 재원이 어떤 식으로 전환될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문제는 분명 쉽지 않은 문제다. 어떤 제도를 제안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겠지만, 이것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로 구체화하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일 것이다.
무상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시혜'도 아니다. 시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의 기본 권리이고 복지 확대는 헌법으로 규정한 정부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무상복지처럼 기본소득도 세금내는 국민이 기본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몫'을 받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비약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_ 다니엘 라벤토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p14/460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공동 번역하는 등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팽팽한 찬반 여론은 그에게 별로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대자에게는 포퓰리즘이자 불안정한 정책으로, 찬성자에게는 부족한 복지로 보여지는 기본소득 정책. 그래서, 현재 추진중인 기본소득금액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무색하리만큼 적은 금액(2020년 기준 GDP 31,489$의 25%는 약 940만원에 해당, 년간 지급예정액은 1인당 100만원)이 지급되었을 때, '퍼주기'와 '생색내기'라는 양쪽의 비판을 받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후보의 추산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해도 재정지출은 4%밖에 늘지 않는다. 조세제도를 통해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는 “조세혜택을 줄이는 한편, 탄소세·환경세·자산세·인공지능세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재원조달 방안 중 일부가 그의 공약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교수는 “청년층의 관심은, 이재명 후보 개인 보다는 기본소득을 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재명 후보에게 주어진 도전과제 중 하나다. 그에게는 보수세력에 맞서기에 충분한 청년표를 결집해야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오늘날 청년층은 복지정책 보다 안티페미니즘이나 정권 교체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보수세력 쪽을 더욱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권력의 문턱에 선 이재명의 보편소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와는 달리 기본소득은 현 대선 상황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분명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제도 역시 문제나 개선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答)임은 분명하다. 매년 정기적으로 치뤄지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에 드는 개발공약은 난무하지만,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 - 저출산 고령화, 구조적 실업 등 장기과제 - 에 대한 고민은 애써 감춰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기존의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같은 공공부조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양쪽 모두 빈곤 문제를 해소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 목적은 그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해방시키는 데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기본소득은 단지 궁핍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동경할 만한 세상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28/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