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제시하는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던 이 시기의 중국과 그 주변은 정적이고 단절되고 폐쇄된 곳이 결코 아니라, 물자와 인력, 정보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는 결국 대운하 및 이와 연결된 북경으로 수렴되고 이와 관련된 이해관계 속에서 통제되거나 풀렸다는 사실이다. _ 조영현,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24/436
조영헌의 <대운하 시대 1415~1784 -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는 여러 면에서 저자의 전작 <대운하와 중국상인>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다. 전작에서 대운하 시대를 배경으로 휘주(徽州) 지역 상인의 면모를 통해 이윤의 추구와 자본의 축적이 이미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살펴봤다면(비록 유럽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중국의 자본주의가 해양 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한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와 연관하여 피터 C. 퍼듀(Peter C. Perdue, 1949 ~ )의 <중국의 서진 China Marches West>에서 통해 일대(一帶)를 통한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이 활발히 전개된 반면, 일로(一路)를 통한 해양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함께 살핀다면 좋을 것이다. 그 전에, 오금성(吳金成, 1941 ~ )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를 통해 이 시기 중국 경제사의 전반을 이해한다면 좋을 것이다.
대운하는 광대한 중국의 남북을 연결했다.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황하와 장강과 같은 자연 하천이 대부분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쪽 바다로 흘러나갈 때, 대운하는 황하, 장강, 회수 등의 주요 수계를 남북으로 연결했다. 수양제가 막대한 비용과 인민의 노동력을 희생 제물로 삼아 대운하를 개통하면서 수나라는 일찍 망했지만, 남부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고 정치적 통합을 유지하는 데 공헌한 '대운하 효과'는 수를 이은 당대(唐代)부터 체감되었다. _ 조영현,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319/436
이렇게 청(淸)나라 시기 중국의 진출이 동남(東南)쪽이 아닌 서북(西北)쪽으로 이루어진 배경이 이해된 이후 우리는 시선을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돌릴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동편에 자리한 이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문제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제국으로서 고구려를 생각한다면, 중앙아시아의 정세가 오늘날의 우리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라본다면 과거 페르시아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연관지어 볼 수 있으리라. 이러한 시선의 이동은 이후 독서의 계획이기도 하다. 상세 내용은 리뷰에서 깊이 살펴보고, 페이퍼로 연관짓도록 하자...
마무리 전에... 글을 읽으시는 모든 이웃분들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