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그린: 위대한 사서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지음, 김지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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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오래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다.
˝넌 책 많이 읽는 것 치곤 많이 무식해.˝
이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모욕적이라던가 충격적이라서가 아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게, 적지 않게 읽는데도 어떻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많은 거지?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 거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언젠간 알게 되겠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도 참 나다운 그런 기억인데, 올해 만나게 된 ‘패싱‘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랬다. 물론 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 역시 마찬가지로 난 지식이 전무했다. 책을 읽으며 겨우 올해에 들어서야 인지하게 된 것이니 책이라도 안 읽었으면 이 무식함을 어쩔 뻔 했나?

그 시작은 필립로스의 [휴먼스테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콜먼은 유난히 피부가 하얀 흑인으로 사회적 성공을 위해 흑인이라는 정체성 대신 유대인 백인의 삶을 선택해 성공한다. 백인 아내를 만나 백인처럼 흰 아이들을 낳고 살았기에 그가 선택한 정체성은 유지되는 듯 하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흰 흑인이 있을 수 있지?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실제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흑인이 백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패싱‘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용어를 알게 된 덕분에 이 소설보다 훨씬 먼저 쓰여진 소설 [패싱]도 만나게 되었다.

[패싱]의 클레어는 콜먼과 달리 매우 불안해 보인다. 그녀는 백인의 특권을 욕망하여 흑인을 혐오하는 백인 남성과 결혼하며 철저히 백인으로 살아간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라 아이도 갖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며 살지만, 어느 날 고향 친구 아이린의 가족과 어울리며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이린의 삶도 흑인 집단 내에서만 안전할 뿐, 인종분리 정책이 펼쳐지는 세상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백인 행세를 하고 사는 클레어의 불안도 못지 않으니 마냥 클레어를 비난할 수 없었다. 화려하지만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벨그린 : 위대한 사서]를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패싱은 정말 너무 제한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겨우 책 2권으로 만난 게 전부니 당연하다. 벨은 본인이 원해서 패싱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기대와 가족의 행복 그리고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패싱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흑인 인권가인 아빠가 아닌 엄마의 선택을 따른 것이리라. 윌슨 대통령(아니 이 사람 민족 자결주의 외친 그 사람 아닌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이 인종분리법을 승인하기 전엔 흑인의 삶도 백인과 별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평등한 사회에서 능력을 펼치던 흑인들에게 갑작스러운 차별 정책과 혐오는 더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벨 그린] 까지 읽고 나니 [휴먼스테인]과 [패싱]도 새삼 더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휴먼스테인]의 콜먼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내와 자식들에게까지 철저하게 숨긴 반면, 벨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아빠와 워싱턴의 친척들)의 이해를 받고 싶어했다. 콜먼보다 벨에게 패싱이 더 절실해 보였다. 그녀의 성공에 가족의 생존이 걸려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벨이 [패싱]의 클레어처럼 불안해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했지만, 클레어가 물질적인 특권을 추구한 반면 벨이 자아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은 다르다. 클레어는 자신이 백인의 삶을 선택했지만 타인의 시선에 이끌려 가야 했던 반면, 벨은 비록 엄마의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해내고 싶었고,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했다. 그런 삶의 태도가 J.P. 모건 도서관의 초대 사서가 되도록 만든 가장 큰 힘이었을 것이다. 실로 대단한 여성이다. 화려했지만 비극적이진 않았다.

세 캐릭터 중 내 마음을 가장 움직인 사람이 누구인지와는 별개로, 벨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실제 그녀의 삶이 얼마나 이 소설과 유사할지는 모르지만,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이 약점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잠식하곤 하는데, 결코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는 벨의 결의가 느껴졌다. 차별받는 흑인이기 이전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온 인간의 존엄성이 느껴진달까? 그녀가 플리트 가문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던지! 필사본들을 사들이는 영민함과는 별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까 밝힐까 고민하는 시간을 후대로 미룬 것도 정말 놀랍다. 나 같으면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신경쇠약도 심해질 것 같은데, 대담한 여성이다. 그런 여성이 내가 좋아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사서라는 점이 괜히 으쓱하다.

아직도 나의 무식의 영역은 너무나 광활하지만, 올해는 ‘패싱‘을 알게 된 것으로 아주 조금은 그 영역을 좁혔기에 만족한다. 필립로스 그리고 지금 읽는 이렌 네미롭스키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지식도 아주 조금 쌓아가고 있다. 그래도 오래 전의 저 말은 죽을 때까지 내게 기억될 것 같다. 기억력이 미천하여 금방 까먹기 때문인데, 그래도 저 말은 안 잊으니 내 기억력의 기준을 모르겠다. 아무튼 기억력의 보완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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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9-1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3쪽 이야기 정말 충격적이네요.
저도 <휴먼 스테인> 읽었을 때, 경계에 있던 백인들과 흑인들 이야기 읽고 놀랐어요.

트레버 노아라고 예전에 미국 방송국에서 더 데일리 쇼 진행하던 사람이 스탠딩 코메디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백인과 흑인 혼혈인 노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살 때,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를 백인으로 여겼다는 건데요. 미국 가면 넌 완전 흑인이다 이런 이야기 들은 상태에서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흑인 말투 연습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니 자기를 멕시코인으로 보더라는.... 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들은 굳이 분류하려 하고 말이지요.

그렇게혜윰 2026-09-17 22:59   좋아요 0 | URL
책에 지나가듯 백인처럼 하얀 흑인이 태어났다는 건 백인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역사가 있다고 넌지시 언급되는데 그 아픈 역사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차라리 나아서 그 삶을 선택해야 했다는 게 많이 슬프더라구요.
챗지피티한테 진짜 백인같은 흑인이 있냐 사진 줘봐라 하니 어떤 사람은 음....그런데? 어떤 사람은 진짜 몰랐겠다 싶더라구요.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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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가장 놀라운 점은 무거운 이야기도 굉장히 재밌게 쓴다는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늘, 그의 문장력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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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아동용 전집이나 청소년용 요약본 외에는 변변하게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했다. TV를 틀면 김헌 번역가의 '오디세이아' 썰이 나오고, SNS에는 놀란 감독의 인터뷰가 수시로 나온다. 호메로스 못 읽은 자로서, 명함도 못 꺼낼 이 분위기 어쩔....그러다 원작 대신 책장에 있던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꽤 어렵게 구했던 책이라 그동안 애껴만 뒀었다. 지금도 절판 중인 걸 보면 귀한 책은 맞는 듯 하다. 



난 망구엘의 책을 읽으면 정약용이 생각나는데, 얼마나 많이 읽고 요약을 잘했을지 감도 안 오고 맹목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망구엘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이펙트]를 재밌는 만큼만 이해하며 읽는 중에 문득 궁금함이 생겼다. 아마 이건 오래 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를 읽었던 경험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오디세이아]가 뭐길래 이 난리인가!' 그래서 망구엘의 책을 읽고 나서 관련 소설들을 좀 읽어보하고 정리를 해 두기로 했다. 




신화의 실제 시간 순서를 좀 따라가면서 읽으면 어떨까 일단은 그렇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분명 시간 순서대로 읽지는 않을 것이다. 


1) 트로이 전쟁 이전부터 트로이 전쟁 중의 이야기















이후에 또 등장할 [키르케]와 함께 꼭 읽어야 할 이 시대의 호메로스 매들린 밀러의 [아킬레우스의 노래] 그리고 지금은 절판된 콜린 맥컬로의 [트로이 전쟁](전2권)이다. 그래, 호메로스는 시인이었지. 현대 작가의 노래로 들어보는 맛이 어떨까?


2) 그 마지막 10년의 이야기 - [일리아스] 들

천병희 번역본을 가장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완역본이 없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최근에는 꽤 많은 판본들이 있다. 나 역시 어떤 판본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3)  트로이 함락 후 오디세우스의 귀환 10년 -[오디세이아]들

마찬가지로 최근 더 많아진 판본들 때문에 어떤 책을 고를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잘 아시는 분이 알려주시길 바라고 있다. 
















4) 트로이 전쟁 속 여성들의 이야기

호메로스를 읽기 전 마거릿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를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SF 소설에 매료된 다른 분들과 달리 난 이 소설로 마거릿애트우드를 사랑하게 되었다. SF는 아직 너무 어렵... 아무튼 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환영인데, 마침 근작으로 트로이 전쟁 속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도 있다고 하니 반갑다. [천 척의 배]를 쓴 나탈리 헤인스가 그리스 여신들을 재해석한 소설도 궁금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좀 생략하고 대신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여성 예언자 [카산드라]를 읽어보자. 
















5) 그리고 1904년을 배경으로 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호메로스만큼(?)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우스].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1904년 더블린을 배회하는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목차를 보면 이것이 1904년인지 기원전의 이야기인지, 오디세우스를 모티브로 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 듯 하다. 





오디세이아에 무지한 사람이 이제 좀 알아가 보려는 시도를 해 보았는데 아마, 그래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연달아 한 번 읽는 게 우선일 것 같다. 망구엘의 책을 읽다보니 호메로스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이 있었건 말건 내 결론은 호메로스는 '가장 오래된 동시대인'이라는 상징같다. 유명인들이 어떤 것의 특정 아이콘인 것처럼 호메로스는 사람을 노래하는 시인의 아이콘이며, 그의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날이 업그레이드 혹은 다운그레이드 되며 변화되고 그 시대에 맞게 회자될 것이라는 것만 분명한 듯 모두의 의견은 의견대로 그냥 뭐 다 맞다고 고개만 끄덕일란다. 호메로스를 읽은 모든 분들께 부러움과 존경을! 저,,,,읽어낼 수 있겠죠???? 아동용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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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9-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무척 재밌었고, <키르케>는 읽다 말았고, <천 척의 배>는 읽어보고 싶어요. 콜린 매컬로가 트로이 전쟁도 썼었군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는 어떤 내용인가 궁금하네요 (제가 못 모은 망구엘의 책들 중 하나).

그렇게혜윰 2026-09-03 14:03   좋아요 0 | URL
콜린 매컬로가 마스터스오브로마도 그렇고 역사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키르케는 왜 읽다 맘?

건수하 2026-09-03 14:09   좋아요 1 | URL
<아킬레우스의 노래> 원서로 읽었는데 재밌어서 호기롭게 <키르케>도 샀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서...

카스피 2026-09-03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리어드와 오디세이 그리스원작은 시문이여서 산문에 익숙한 현대인이 읽기는 쉽지않다고 하더군요.

그렇게혜윰 2026-09-03 20:0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꾸 주변 얘기만 읽나봐요 ㅋㅋㅋㅋ 맘 다잡고 읽어보겠습니다!
 

요즘 읽는 책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나가노하루

어제 막 다 읽은 책이다. 환자를 돌본다는 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나는 노화된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도 절실히 느끼는데 조현병 엄마를 여덟살부터 돌봐야했다니 그 삶이 가늠되지 않았다. 본인 역시 양극성 장애를 가졌고 언니도 우울증에 쉽지 않은 가정이다. 엄마 돌보기를 그만둔지 16년이 되었고 현재는 자신을 돌보는 데에 집중한 저자의 결단을 결코 비난할 수 없다. 아니 응원하고 싶다. 일단 본인 삶은 본인이 가장 적극적으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돌봄에는 한계가 있다. 피붙이라 하더라도. 티비에 나오는 신계 사람들은 흔치 않아서 티비에 나오는 것이니까.

[장안의 여지], 마보융

장안24시와 마찬가지로 당현종 천보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즉 당현종이 혼군인 시기이다. 중드보다중국사 에서도 그를 성군이라 불러야할지 혼군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고 한 꼭지를 할애했는데, 이 책에서는 혼군 타임으로 양귀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여지(리치)를 구해오라는 특사를 임명한다. 일반적으론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의 주인공은 어찌됐건 수학적으로 궁리하고 있다. 그건 그가 계산만 잘하는 말단 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인데, 그가 이 역할을 맡기부터 그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마보융의 이전 소설과는 느낌이 다르다. 뢰가음(레이자인)이 주연하여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나 미남이 출연하지 않아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한듯 한데, 믿고보는 마보융이니 소설 끝내면 시작해야겠다.

[메리 스튜어트], 슈테판 츠바이크

출근할 때 자투리 시간에만 읽는 학교도서관 책인데, 아 츠바이크는 어쩜 평전인데도 글발이 느껴지는지 감탄하며 읽는다. 이 책읽고 마리 앙투아네트도 읽어야지! 주워듣기만 피의 메리니 엘리~~~자벳이니 했는데 이 참에 서양사 상식도 하나 채워야겠다. 근데 너무 두꺼워서 자투리 시간만으로는 진도가 안 나가서 앙투아네트는 언제 만날지 미지수다. 발자크까지 읽고 싶은뎅.

[매스커레이드 라이프], 히가시노게이고

이 책도 7월에 다 읽은 책인데, 투명한 나선을 읽어야겠다 싶은 참에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 중이라 투병을 짐작도 하지 못했는데 죽음이라니 마음의 갈피를 잠시 잃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소설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을 불평했던 어리석은 독자였구나. 최근 읽은 이 소설과 가공범, 침묵의 퍼레이드 등이 좋아서 이젠 기복이 사라졌구나 했었는데 그것이 삶의 마지막 투혼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하니 숙연하다. 마지막 작품이 일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니 106권의 작품 세계가 있어 그를 잊지는 않을 것 같다. 학교 연구실에 갖다 둔 내 히가시노 컬렉션을 샘들이 좀 적극적으로 읽으시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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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 다른 방 트루먼 커포티 선집 1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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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즈음엔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의 책을 우르르 사들였다. 그중 한 사람이 트루먼 카포티인데, 내가 그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인 콜드 블러드]로 지금은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쓴 작가에 대해 수없이 감탄을 했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뭔가 시니컬하고 독특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가 오드리헵번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썼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소설도 읽어보고 영화도 다시 봤는데, 영화와 소설은 결이 달랐고 어쩌면 작가는 이 영화에 만족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 그 느낌은 아니지. 그리고 나서 시공사에서 당시 출간된 책들을 사뒀었는데 그중 한 권이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이다. 그후로 또 다른 작가가 땡겨 그 작가를 읽었던지 남은 책들은 빛만 바래져 책장에서 10년도 넘게 자리만 차지했다 이번에 내 책장을 파먹어주는 북클럽 멤버들 덕분에 읽게 되었다. 


초반에 읽을 때에는 트루먼 카포티의 수식어 중 하나인 '아름다운 문장'이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것 외에는 [인 콜드 블러드] 만큼은 딱히 매력을 못 느끼며 읽었다. 아마 모호함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갈수록 그 모호함은 도가 지나쳐 삶과 죽음을 오가기까지 하는데, 곱씹을수록 그러한 단계들이 상징하는 바들이 추가되니 결국에는 역시나 이번에도 작가에게 감탄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트루먼 카포티가 1940년대에 젊은 나이로 인기를 쓴 소설가라는 사실이 이해가 되었다. 요즘 쓴 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문체에 독자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유동적일 표현들이 놀라웠다. 살아있을 때 부를 얻은 흔치 않은 소설가라더니, 좀 부럽구만. 


[작가란 무엇인가3]에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거기서 만난 트루먼 카포티는 굉장히 쾌활해 보였다. 역시 스타성이 있는 작가였어! 인터뷰에는 작가의 쾌활함 뿐만 아니라 놀라운 내용이 있었다. 바로 이 소설은 자전소설이 아니라는 말! 첫 장편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조엘의 처지가 어린 날 트루먼 카포티의 환경과 비슷해 당연히 자전적일 거라 생각했고 해설에도 그렇게 쓰인 듯 했는데 인터뷰에서 그는 그것을 부인했다. 오히려 [풀잎 하프]가 자전적이라고 했다. 다 읽었는데, 다시 읽어야 하나? 하지만 자전적이든 픽션이든 그런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으니 차라리 다른 작품을 읽는 게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소설을 남부고딕소설로 분류한다던데, 나는 그런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느낌보다는 열세 살 소년의 성장소설로만 읽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떠돌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거취,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작한 조엘의 성장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진실을 알게 되면서 실망한 후, 아버지의 대체자로서 랜돌프를 받아들이며 종국에는 성장을 이뤄내는 흐름으로 읽었다. 그 과정에서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동원해 다른 목소리와 다른 방을 경험하며 강해지고 성장하는 조엘의 모습이 괜히 기특했다. 음침한 면이 있어 혹시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내심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얘를 왜 부른거야?' 의문이 들었다. 조엘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고 산송장같은 그를 돌본다고 해도 감추고 싶을 것 같은데, 속죄하듯 조엘을 부른 랜돌프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모임을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조엘이 아버지의 역할을 랜돌프에게 기대했듯, 랜돌프 역시 조엘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우발적으로 조엘의 아버지인 샌섬씨를 총으로 쏘기 전까지 랜돌프는 이런저런 혼란을 많이 겪었던 사람이었고, 그러한 경험이 그에겐 또 하나의 성장이었을 터, 그것을 조엘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현실과 상상 그 어디쯤에서 조엘은 랜돌프를 따라 누군가가 지키는 다른 목소리, 다른 방에 들어가고 죽었다 살아나며 비로소 아버지도 랜돌프도 다 떨어내고 조엘 그 자신으로 서게 되었다. 다른 인물들이 경험한 죽음들을 통해서도 성장의 모습이 엿보여, 어쩌면 성장이란 하나의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누군가의 삶을 함께 경험하면서 다른 목소리와 다른 방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다 읽고 나서도,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뭔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러나 소설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읽을 때마다 다른 해석이 나오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언제나 남아 있는 것. 모임원들은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좋았다고 했지만 트루먼 카포티를 읽었다고 말하려면 그래도 한 작품만 읽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닌가? 난 세 작품 읽었는데 여전히 트루먼 카포티를 읽었다고 말하기에 괜히 양심이 찔린다. 그게 트루먼 카포티의 매력이던가? 그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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