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8.09 ~ 08.13 SNS 미션 (8월 15일 자정까지)
'토지박경리' 5행시로 감상평을 아래의 조건을 충족하여
신청서에 적어주셨던 개인 SNS에 남겨주세요.
이번 주 토지독서챌린지 미션은 5행시다. 여태까지 미션이 한 주동안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이 주제였다면, 이번 미션은 연휴를 맞아 쉬어가자는 운영자님의 배려로 읽혀진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이 미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시(詩) 감각이 없는 내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ㅜㅜ 결국 어찌어찌 만들었지만,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참 공개하기가 꺼려진다. 부족한 5행시는 페이퍼 끝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 한 주 독서를 페이퍼로 간단하게 마무리 짓는다.
콜레라는 인간이 유일한 숙주이지만, 동물 숙주 없이도 인간의 몸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바실루스에 감염될 때 발생한다. 오염된 식수를 통해 전염되며 내장 기관에 문제를 일으키고 탈수 증세를 초래한다. 초기의 콜레라는 건강한 성인의 치사율이 50퍼센트 정도였는데, 어린이와 노인은 더 높았다. 이 질병은 갠지스강의 하류 지역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19세기 초에 전 세계로 퍼졌다. _ 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 , p274/534
"그 뱅은 걸리기만 하믄 죽는다!" 빙 둘러싸고 있던 사람의 울타리는 무너진다. 불거져 나온 두 눈, 관골과 코만 댕그랗게 솟아오른 해골, 김서방의 그런 모습은 순간 이들에게 다른 뜻으로 비쳤다. 암담하고 침울하고 슬펐던 눈빛은 일제히 공포로 변했다... 집안의 일상은 무너졌다. 마을의 일상은 무너졌다. 불안과 공포는 시시각각 검은 구름같이 마을을, 최참판댁을 엄습해오고 있었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토지 3>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호열자(콜레라)는 평산리를 덮치고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면서 사신(死神)의 불길한 기운이 온 마을에 퍼져 나갔다. 성별, 나이,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호열자의 파도에 쓸려가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바뀌게 된다. 파국이 시작되었다.
병이 그런 방어를 겁낼 리는 없다. 보이지 않는 무서운 형상으로 들리지 않는 함성을 지르면서 골목을 점령하고 마을을 점령하고 방방곡곡을 바람같이 휩쓸며 지나가는 병균. 그들의 습격대상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었다. 부자와 빈자의 구별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인심은 흉년의 유가 아니었다. 난리가 났다면 피난이나 가지 하고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희망을 미신에 걸어보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_ 박경리, <토지 3>, p296/518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절망,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려는 노력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 ~ 1960)의 <페스트 La Peste>에도 잘 표현된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좌절 후 희망을 품어보지만, 결국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의 모습처럼 페스트가 퍼져가는 오랑의 시민들은 변해간다.
그때에 그들의 용기와 의지, 그리고 인내의 붕괴는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그들 스스로 영원히 그 수렁에서 다시 기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가 자유로워질 시기를 결코 생각지 않고, 이제는 더는 미래를 바라보지도 않으며, 말하자면 늘 두 눈을 내리깔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p134)... 이와 같이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의 깊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맛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35/574
그들은 까닭 없이 괴로워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한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은 바랄 수 없어서 각자가 혼자서 근심해야만 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우연히 자기 속내를 털어놓거나 모종의 감정을 말해도,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대답은 어떤 종류건 대개 불쾌감을 주는 것이었다. _ 알베르 카뮈, <페스트> , p140/574
<페스트>의 오랑 시민들은 외부로부터 차단된 고립된 곳에서 죽음의 공포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 ~ 1375)의 <데카메론 Decameron> 속 주인공들은 사뭇 다른 처지에 있다. 피렌체에 흑사병이 닥쳤을 때 이들은 질병을 피해 멀리 시골로 떠나 다른 세계에서 죽음의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엘리시움 Elysium> 속의 피난처와 같은 곳으로 떠난 7명의 귀부인과 3명의 청년은 올림푸스 산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불멸의 신과 같이 필멸의 인간들의 사회를 마음껏 비웃으며 즐겁게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갔다.
집착인지 오만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원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앞서 그랬고 그러듯이 이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p23)... 그곳에서 이성의 경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쾌락을 맛보자는 것이지요.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1> , p24/335
유쾌한 10일간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들을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를 주었지만, 이러한 여유의 끝이 어땠는가는 분명치 않다. 개인적으로 <페스트>와 같은 지옥도와 같은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진다면, 10일간의 천상생활이 가져다 준 여유는 하룻만에 날라가지 않았을까. 그들의 여유는 언제까지나 죽음의 파도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나온 것이었을테니까.
인간의 지혜란 단순히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거나 현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지혜로 평가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앎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현자들은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무서운 흑사병의 계절이 시작된 뒤로 우리는 음울하고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찬 거리를 피해 피렌체에서 도망쳐 나왔고,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피난처를 구해야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정숙함과 화합 그리고 친밀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저는 보고 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여러분과 저의 참으로 소중한 명예이자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_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3> , p280/318
카뮈의 <페스트>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페스트(흑사병)이 가져다 준 공포와 이로 인해 고립된 인간이 느껴야 하는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희망의 끈을 잡으려 하지만, 계속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암울한 상황을 잊을 때 뿐이고, 이를 정면으로 맞아야할 때 인간과 공동체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어머니와의 이별로부터 연속적으로 닥친 불행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야 했던 <토지>의 어린 서희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슬픔과 함께 자신 또한 느꼈을 호열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신을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등 복잡한 감정을 어린 서희가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음 깊이 자리잡은 이러한 마음이 이후 최씨 문중의 증흥을 위해 친일(親日)까지도 꺼리지 않았던 그의 행보를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몇 해 동안 연이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바우 내외만은 명대로 살다 갔다 할 수 있었으나 최치수의 죽음, 귀녀의 죽음, 집안 식구는 아니었지만 불에 타죽은 또출네 하며, 죽음치고도 비참한 그들 비명을 보았건만 새로이 직면하는 죽음은 여전히 하인들 가슴에 전율을 일게 한다. _ 박경리, <토지 3>, p260/518
앞서 말한 독서챌린지 미션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토 : <토지>를 읽으며
지 : 지나간 우리네 삶과 수난을 씁쓸하게 맛본다
박 : 박경리 작가는 작품 안에 이들을 잘 녹여냈구나
경 :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다시 꺼내든다
리 : 리해(이해)를 하려면 아직 멀었지. 가다보면 가까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