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위를 모두 잘라낸 나무의 둥치는 다시 온전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시도를 매년 하고 또 한다... 전체가 하나로 기능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모듈로 만들어져서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무는 전체를 모두 벗어던진 후 대체할 수 있고, 몇 백 년에 걸쳐 나무들은 평생 그 일을 되풀이해왔다. 결국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너무 값비싸질 때 죽는다. _ 호프 자런, <랩 걸>, p216


 호프 자런(Hope Jahren, 1969 ~ )의 <랩 걸 Lab Girl>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삶을 다룬 에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공인 식물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과학계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느끼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여러 관점을 담고 있으면서도 책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작가가 주제의 무게 중심을 잘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에는 어떤 모습이 담겨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함께 읽을 책들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먼저, 교양 과학서로서의 <랩 걸>은 우리에게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는 책이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동물과 다른 생명체로서 식물을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당연하게도 동물과는 달리 식물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식물을 진화가 덜 된 생명체로 단정짓지만, 저자는 다르다. 저자는 동물과 다른 식물의 '다름'을 말한다. 동물들은 움직임(動)을 통해 공간(Space)을 살아가지만, 식물들은 정(靜)적으로 시간(Time)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실험을 위해 우리는 식물과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식물 조직의 대부분이 대체 가능하고 융통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요하면 뿌리가 줄기가 되고, 그 반대 현상도 일어난다. 하나의 배아를 조각 내도 같은 식물을 여럿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것들은 유전자 청사진이 완전히 동일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랩 걸>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다름'은 다음 주제와도 연결되지만, 그 전에 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짚고 넘어가자. <랩 걸>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차이부터 시작해 식물의 특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만, 글자로만 설명되어 독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을 <DK 식물 대백과 사전>에 나오는 상세한 사진과 설명을 통해 보완한다면, 내용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온다.


 눈 속에서 사는 식물들에게 겨울은 여행이다. 식물은 우리처럼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은 특히 긴 여행이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54


[사진] <DK 식물 대백과 사전> 中

 

 히아신스와 대부분의 밑뿌리 식물들은 계절적으로 건기가 있는 지역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봄이 지나면 긴 여름 가뭄이 찾아온다. 수축근은 온도가 더 서늘하고, 건조에 덜 취약한 땅속으로 알뿌리를 더 깊이 끌어당긴다. 봄에 꽃이 피는 알뿌리는 여름 동안 건조하게 유지되면서 뿌리가 완전히 쪼그라들기도 한다. 겨울 우기가 찾아오면 다시 뿌리가 자라고 식물은 이듬해 봄에 꽃 피을 준비를 마친다.  _ DK <식물> 편집위원회, <DK 식물 대백과 사전>, p37


  다른 한 편으로 <랩 걸>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곳곳에는 과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 과학자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어려움이 담겼다. 식물과의 차이를 인정해야 연구가 가능한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계 주류와의 갈등이 담긴 내용은 일종의 모순상황이다. 그리고, 저자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로잘리드 플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 1920 ~ 1958). DNA 발견에 거의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은폐된 그녀의 삶은 과학자 집단의 폐쇄성과 모순을 잘 드러낸다. 그리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는 잊혀진 과학자 프랭클린의 삶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연장선상에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모두 받은 유명한 마리 퀴리(Maria Sklodowska-Curie, 1867 ~  1934)와 영국 중심의 물리학계의 중심 뉴턴(Sir Isaac Newton, 1643 ~ 1727)의 물리학의 종말을 고한 독일계 유태인 출신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 평전도 비주류 과학자들의 어려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가볍게 읽고자 한다면, 지식인 마을의 <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나가오카 & 유카와 : 아시아에서 과학하기>가 관련 주제를 생각하기에 좋을 책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했다. 남자 등료들보다 두 배는 더 능동적이고 전략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박사학위 3년차부터 교수 자리에 지원했고, 빠른 속도로 성정하는 주립대학인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채용 제의를 받았다. _ 호프 자런, <랩 걸>, p68


 내 사무실과 종잇장처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휴게실에서 매일 아침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내 성적 취향이나 어릴 때 겪었을지 모르는 트라우마에 관해 벌어지는 토론을 듣게 되는 영광을 누린 결과, 나는 여자 교수들과 과에서 일하는 여성 비서들은 학계의 천적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_ 호프 자런, <랩 걸>, p105


  마지막으로 <랩 걸>안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연구를 분리시키지 않는기에, 독자들은 <랩 걸> 안의 과학이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지식이 아닌 우리 삶의 지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책이 주는 이러한 다양한 매력이 <랩 걸>이 인기를 끌게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랩 걸>안의 여러 모습을 정리하다보니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이 떠오르게 된다. 과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인류 평화를 말하던 과학자이자 작가. 비록 전달하는 메세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과학이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담긴 학문이라는 것을 알려준 칼 세이건 처럼 호프 자런도 <랩 걸>을 통해 과학과 사람을 함께 보여주려 했음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여러 내용을 알차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랩 걸>은 미니 쿠퍼와 같은 느낌의 책이라 평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을 선택한 것은 과학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의 집, 다시 말해 안전함을 느끼는 장소를 내게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_ 호프 자런, <랩 걸>, p18


 현재의 모든 설정을 고려하면, 우주는 영원히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태양계와 그 너머 곳곳의 여러 세계들에 안전하게 흩어져 있을 우리의 먼 후손들은, 그들이 공유한 유산, 그들의 고향 행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우주를 통틀어 다른 생물은 몰라도 인류만은 지구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식으로 한 가족이 될 것이다. _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p423


 상호 불신의 망령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케 하여, 모든 국가를 죽음을 향해 서둘러 행진케 할 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짓거리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초래될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p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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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9-14 0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고 정성 가득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미니 쿠퍼 느낌이라고 비유해놓은신 것이 재미있어요.

겨울호랑이 2020-09-14 07:23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nine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페크(pek0501) 2020-09-14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4백쪽이 넘네요. 그만큼 풍성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이 리뷰를 읽으니 알 수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4 12:44   좋아요 0 | URL
네. 400 페이지 정도 되지만, 어렵지 않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라 생각 됩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