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코로나는, 그렇게 답답하기만 한 대상은 아니었다. 좀 차분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많이 확보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던 소확행도 좀더 누릴 수 있었다. 물론 길어지니, 뭘 못한다는 것보다 뭔가 나를 강제한다는 자체가 못 견디겠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행동을 통제받는 자체가 딱 질색인지라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긴 했다. 아니 컸지. 일단 야구장과 공연장, 전시장이 다 문을 닫아 버린 게 컸다. 야구는 내 생활의 일부이고 경기장에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갔던 것 같은데 그리고 올해는 전국 순회 공연을 해야지 했었는데.. 그게 망해버린 거다. 지금 개방은 하고 있지만, 거의 끝나가는 데다가... 두산. 으악. 두산. 포스트시즌에 가기는 가겠지만 4등 아니면 5등으로 갈 확률이라 .. 결구 남의 잔치 바라보는 신세가 될 게 자명해져서 (거의 확실하다) 흥미가 좀 떨어지고 있다. 오히려 시즌 끝나고 스토브 리그 때 두산에서 대거 FA가 나올 예정이라 그게 더 신경쓰인다.

 

클래식이나 뮤지컬이나, 미술 전시나 이런 것들을 못 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그래서 틈만 나면 공연장에 가는 게 취미인 것을, 올해는 대부분의 내한공연이 다 취소되어서 (그 중엔 기대되는 것들도 몇 있었다) 유튜브로 하는 실황중계 보는 것으로 날 달래고 있었다. 이제 1단계로 내려가면서 풀리긴 풀렸으나 내한공연은 불가능하고, 대신에 국내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좀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 이제 슬슬 재개 해야지. 하고 티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라지만, 아 정말 나같은 사람이 많은 모양이지. 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 쉽지 않다 가 아니라 못 구했다 ㅜ)

 

***

 

1. 조성진 전국투어

 

 

 

조성진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급이다. 난 이 연주자가 유명해지기 전에 오케스트라 협연하는 걸 들었었는데, 눈여겨볼 만한 연주실력을 가졌었다. 그 이름 석자를 똑똑히 내 머릿속에 새겨둘 정도였으니까.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이후 그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고.

 

이번에 심지어 대구 찍고, 부산 찍고, 창원 찍고, 서울 찍고, 춘천 찍는 전국 투어가 진행될 예정인데.. 허허. 역시 전체 매진. 그냥 5분도 안 되어 다 날아가는 수준이다. 이 연주자 실황연주를 도대체 언제쯤 다시 보게 될 지.. 의문이다 의문. 이번 전국투어 프로그램에 못 가는 건 대단히 아쉽다. 슈만과 리스트인데. 조성진의 슈만과 리스트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데.

 

 

2. 백건우와 KBS 교향악단 협연

 

여기서도 말했던가. 백건우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피아니스트다. 다른 취미 거의 없이 (언론 노출도 거의 없다) 수십 년 간 피아노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는 '구도자'라는 별칭이 너무나 어울린다. 공연장에 가보면, 앵콜도 없다. 계획한 프로그램에 전심전력을 다 퍼붓기 때문에 팬서비스로 낭비할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아 보여서 다들 수긍한다. 백건우의 연주도 슈베르트와 베토벤 두 차례 독주회를 갔었는데.. 훌륭하다. 대체로 작곡가의 전체 레퍼토리를 다 연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만 든다. 차분하고 깊이있고 사색적인 연주다. 물론 이번 공연도 11월 14일에 있는데 매진이지. 하하하. ㅠㅠ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공연인데 말이다. 네.. 다들 잘 보세요.

 

 

3. 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임동혁은 티켓 파워가 엄청난 클래식계의 또 하나의 아이돌이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그의 실력이 폄하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너무나 사랑하는 연주자이고 내가 들어본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는 수준급이다. 행동에 거침이 없고 하는 행보도 자신의 신념대로 하는, 신세대의 아이콘 같은 연주자다.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역시 베토벤을 골라 연주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늦게 들어간 거겠지. 물론 매진. 하하. 그러니까 다 매진.

 

***

 

올해는 피아노 연주 들으러 가는 건 글른 모양이다 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띠용.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와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하는 기회가 있음을 발견. 바로 들어가 예약에 성공했다. 으으. 다행. 하나는 건졌네. 사실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대단한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그리고 연주자들도 세계정상급은 아니지만 (그러니 표가 남았겠지) 그래도,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라니, 들으러 갈 의미가 충분하다. 다행. 하나라도 갈 수 있으니. 원래 내 생일이 11월에 있어서 항상 연주가는 걸 스스로에게 선물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가능할 것 같다..

 

 

***

 

뮤지컬도 풍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캣츠>와 이어서 할 <맨오브라만차> 그리고 곧 들어올 <노트르담 드 파리>, 셋다 굵직굵직하다. 세 뮤지컬 다 3번 정도씩은 본 것 같다. <맨오브라만차>는 원래는 정성화 버전을 좋아해서 계속 그 사람 걸로만 보았는데, 요즘 조승우에 꽂힌 나머지 예매를 시도.. 역시나 5분만에 매진이었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하나님석(2층 맨꼭대기..)을 구했다. 괜찮다. 구한 게 어딘가. 기대된다. <캣츠>는 못 갈 것 같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표 구해 다시 갈 생각이다. 사실 이제까지 본 수많은 뮤지컬 중에 단연 으뜸은 <노트르담 드 파리>다, 내겐. 프랑스 뮤지컬의 진수이고, 여행이 풀리면 파리에 가서 이 공연을 볼 계획이 있다. 진심으로 멋진 뮤지컬이다. 표.. 있겠지..?

 

***

 

이래저래 문화생활을 재개할 수 있어 많이 기쁘다. 집에서 음악 듣고 영화 보고 야구 보고 다 좋은데... 그래도 현장에 가서 듣고 보는 것 만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내년에는 제발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거리두고 봐도 좋으니... 공연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애정하는 피아니스트인 머레이 페라이어만 해도, 연세도 많으시고 (47년생) 몸도 자주 아파서 언제까지 연주를 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도 최근에 얼굴 보니.. 아이고 할배. 예전에 바이올린 계의 전설적 미인이었던 (그 실력은 퀘스쳔이긴 했지만) 안네 소피 무터도 이젠 장년의 얼굴로... 그래서 이들의 공연이 있다면 언제든 가서 보고 싶은 심정이다... 암튼 이제 문화생활 재가동. 바빠질 것 같네. 일도 많은데.. 흠. 일하러 가자.

 

내 신조는,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이미 젊진 않지만) 인데, 요즘엔 '노새노새'가 된 기분이다.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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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0-22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성진 연주회는 저도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하고...(전 나름 티켓팅에 자신 있는 사람이거든요. 콜드플레이, 폴 매카트니 내한 때도 원하는 자리 다 성공한..) 근데 조성진 티켓팅은 정말 넘사벽입니다.... 한국 살면서 이 청년 공연 제가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지 ㅠㅠ

비연 2020-10-22 12:1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ㅜ 유명해지기 전에 한번 들었기에 망정이지.. 향후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로 매진. 전 이 사람 저 사람 다 동원해도 잘 안 되더라구요. 중고나라 같은 데 들어가면 너무 비싸고 (사기꾼들..ㅜ). 그래도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피아니스트들이 많다는 것엔 자부심을 느껴요. 다른 아시아권 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도 이 정도 실력 가진 사람 별로 없는.
 

 

원래 10월과 11월은 일이 많은 달이다. 매년 그랬다. 덕분에 가을이라고 일컫는 달들에 단풍 구경이랄까를 간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좋아하는 여행을, 이 아름다운 날들에 가지 못할 정도로 일이 몰리는 시기다. 앉아서 꼼짝도 안하고 일해도 시간만 가지 능률은 그다지 오르지 않고, 진도는 나가지 않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사람인 이상,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바쁜 탓에 신경이 하늘 끝까지 예민해지고 잠을 못 자 허덕거리더라도 배가 고프니 뭔가를 먹어야 한다. 이런 때는, 뭔가 요리를 한다는 자체가, 사치다. 예전처럼 부모님과 살 때는 내가 이렇게 바쁘면 부모님이, 아니 정확히는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다리만 움직여 나가고 자리에 앉아 손으로 나르는 음식을 입에 넣어 씹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러고는 그대로 몸만 빠져나와 설겆이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라는 느낌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일하고 했는데. 이제 나는 모든 걸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간편한 음식을 한다고 해도, 어쨌든 준비하자면 이것 저것 꺼내야 하고 그릇도 놓아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나서 열심히 먹고 난 후 남는 것은.. 설겆이. 물에 녹는 그릇을 발명해달라.. 부르짖고 싶어지는 즈음이다. 먹고 물에 딱 넣으면 싹 녹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먹을 땐 애써 외면했으나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설겆이 거리에.. 한숨이 푹 나올 뿐이다.

 

어쨌든 음식 만드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난데없이 밀키트라는 것을 쳐다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조선호텔 밀키트로 나온 짬뽕과 짜장이 맛나다고 보내줬을 땐, 그래? 하고는 무시했었는데, 이쯤 되고 보니 다시 옛 글들을 뒤져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다. 항상 품절, 품절. 오기가 나서 알람 걸어놓고 아침에 울리자마자 들어가도.. 아, 누군가가 이미 채가는 날이 이어지더라는...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는 다시 알람, 실패, 알람, 실패. 우씨.

 

그러다가 어느날! 잡혔다, 짬뽕과 짜장이. 부모님 드실 것과 내가 먹을 것을 하나씩 주문하고 완료를 누르는데, 그 흐뭇함이라니. 그 뿌듯함이라니. 해냈구나, 비연. 며칠 뒤 도착한 그것들은, 생각보다 부피가 되었다. 특히 짬뽕은 이것저것 든 게 많아서 이거 쓰레기 치우는 게 더 일이겠군 싶어서 살짝 후회도 했었다.

 

그러나, 그러나. 만들어 먹어보니, 오, 이것은 사서 먹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맛. 일단 외양도 비슷하고 (짜장에 오이 썬 거라도 올렸으면 좀더 비슷했을텐데 아쉽다. 오이가.. 집에.. 없었다 ㅜ) 맛도 아주 괜찮았다. 시켜먹는 것보다 낫다고나 할까. 일단 면이 생면이라 삶아서 담으니 쫄깃쫄깃한 것이 식감이 좋았고 그 위에 얹는 소스들도 훌륭했다. 특히 짬뽕은 해산물이나 야채가 꽤 실하다. 집에 해산물이 좀더 있거나 죽순이라도 있으면 추가해 넣어서 더 맛나게 만들 수 있겠구나 했다.. 물론 집에 없었다. 요즘 장을 못 봐서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아멘. .ㅜ

 

 

 

 

 

 

 

그러나, 역시 설겆이는 남는다. 이래서 집사가 필요한 거다. 설겆이 시킬 집사. AI라도 좋으니, 설겆이 시킬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 먹고 나서 설겆이 하고 나면 맛있게 먹을 때의 감동이 십분의 일 정도로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뭐 암튼. 이거 추천. 내가 무슨 쓱닷컴 직원도 아니고 (쓱닷컴 근무하는 후배는 아주 좋아라 좋아라 하더라는 ㅎㅎ) 내돈내산하여 시식해본 결과 좋더라. 라는 평이다. 밀키트를 잘 안 먹어서 (사실 처음이다)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다시 사서 먹을 의향 이백퍼다. 물론 품절 상태의 이것들을 구입하려면 매일 아침 진이 좀 빠지겠지만서도.

 

.. 요즘 금주/절주 중인데, 오늘 일 하나를 끝내서 지금 와인 한잔 할까 고민 중이다. 한 달간 술 먹은 게 2번인가. 기적이다, 비연. 내가 아는 선배 언니는, 이 마당에 넌 금주/절주까지 하면 뭔 낙으로 사니? 했지만, 지금 일이 많아 술을 먹을 시간도 없어요 라고 대답.. 했다가는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웃지요.. 했다. 오늘은 한잔 할까? 큰 일 하나 일단 초안 완성했는데. 으흠?

 

**

 

이 와중에도 이번 달 책을 먹으면서 틈틈이 보는 비연. 짬뽕국물 짜장소스 튀길까봐 온몸으로 가리며 조금씩 읽고 있다. <사람, 장소, 환대>. 좋은 책이다. 지적이면서도 감정과잉 없고 억지논리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주장하는 바는 명백한 그런 책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책이라 읽을 때 훨씬 편하다. 그렇다고 쉬운 책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렵다. 많은 이론들이 교차하는 데다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란 뭐지? 에서 시작한 이야기들. 나는, 이렇게 내가 그냥저냥 알고 있던 기본적인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새롭게 혹은 통합적으로, 풀어나가는 책을 무진장.. 좋아해서, 이 저자에게 큰 관심이 생겼다. 김현경... 이 사람 강의가 있으면 찾아서 가봐야겠다.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사회는 여성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잘못 인쇄된 글자처럼, 여성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어 있따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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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20 2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맛있게 생겼습니다.
저도 오늘 감자를 갈아서 부쳐 먹는 감자전, 그리고 김치전을 저녁으로 해 먹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사진으로 남겨 놓을 걸 그랬다 싶어요. 먹느라 정신 없었던 모양입니다.
음식 사진을 보는 건 늘 즐겁습니다.

저도 <사람, 장소, 환대>에 관한 페이퍼를 올린 바 있어요. 앞으로 더 올릴 예정입니당~~

비연 2020-10-20 20:17   좋아요 0 | URL
앗. 감자전 김치전... 먹고 싶네요.. 이 식탐이라니.
나중에 사진 올려주세요^^

<사람, 장소, 환대> 읽고 계신 건가요?
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참 여러가지로 생각할 게 많은 책 같아요.
페크님 페이퍼 기대할게요~

다락방 2020-10-20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짬뽕 비쥬얼 장난 아닌데요!! 저도 시보고 싶지만 경쟁할 자신이 없네요 ㅎㅎ

저는 집에 오자마자 야채 잔뜩 넣어 카레 만들어 흡입했어요. 이제 자야죠...

비연 2020-10-20 20:1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제 구하기 좀 쉬워진 것 같아요. 지금도 들어가보니 떡 하니 구매하라고 되어 있네요.
아주 맛나니까 한번 시간내서 도전해보심이..

저도 오늘 카레 만들어 먹었는데... (저 위의 짬뽕과 짜장은 며칠 전 사진)
맛나서 넘 먹었더니 눈꺼풀이 감기네요. 아 자면 안되는데..모르겠다 싶은 마음..
다락방님, 편안한 밤..

syo 2020-10-21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대왕 비연님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맛있게 생겼네 쟤네들...

비연 2020-10-21 22:37   좋아요 0 | URL
사진대왕 ㅎㅎ 아이퐁이 대왕임 ㅋ 이거 둘다 너무 추천~ 요즘은 구하기도 쉬워요^^ 면 삶고 퐁퐁넣어 볶으면 완성!
 

 

... 라는 마음으로 어제 몇 권 주문. 못 읽는다는 죄책감(?)은 뒤로 하고 그냥 사고 싶으니까 사는 걸로.

 

 

 

 

 

 

 

 

 

 

 

 

 

 

 

 

프랑스 콩쿠르상 수상작을 좋아한다. 사실 상을 타서 그 책을 사서 읽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대체로 콩쿠르상 수상작들이 내게 잘 맞아왔다. 그래서 이 책을 알라딘 서재에서 발견하고 바로 보관함에 퐁당. 이번에 샀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는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 괜히 뭔가 결핍이 있어 보이는 느낌으로 어필이 되고 있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 부각되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녀의 글들을 보면, 놀랍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런 글을 쓰다니.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 갔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 권씩 두 권씩 사모으고 있다... 읽기도 읽자.. 비연..ㅎㅎ;;;

 

 

 

 

 

 

 

 

 

 

 

 

 

 

 

 

 

 

페미니즘 관련 책 두 권도 퐁당. <여자는 인질이다> 이 책이야 워낙 유명하니.. 이게 아직 나한테 없었단 말이야? 뭐 이런 심정으로 산 거고, <성의 변증법>은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에 나온 파이어스톤의 관점이 궁금하여 샀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사모으고 있는데... 언젠간 읽을, 아니 읽어야 할 책들이다.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늙고, 병들어가는 사람과 그 돌봄에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 경험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 가는 중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새벽 세 시의 몸이라.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읽을까말까 망설이다가 일단 사기는 했는데 괜찮을까 싶다. 책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 거라서가 아니라, 너무 쓸쓸해질까봐 두렵다는 게 더 옳은 말인 듯 싶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의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너무 감정과잉이고 너무 설교적이고 너무 미사여구가 많고... 이런 책들이 많아서 가급적 읽지 않는 편인데..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나니 하는 일에서 얻는 인생에 대한 관점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들은 읽을 만 하구나 해서 골라봤다.

 

 

 

 

 

 

 

 

 

 

 

 

 

 

 

 

 

시리즈물로 내가 무조건 구매하는 책 중의 하나가 루이즈 페니의 책이다. 추리소설류이지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류의 소설들이라 나오면 바로 구매. 새 책이 나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온 것이다. 8월에 나왔는데 이제야 발견한 게 억울할 뿐이다. 필립 로스의 야구책 <위대한 미국 소설>은 필립 로스가 썼는데, 내용이 야구래? 바로 퐁당이지. 뭐 이런 감정의 흐름이 있어 구매한 것이다. 필립 로스에 대한 내 심정은 좀 복잡하긴 하지만, 좋다고 하기에는 딱 내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글솜씨나 내용이 탁월하고.. 그러나 이 멋지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야구 이야기를 소설로 냈다는데 안 살 수가 없다. 어떻게 썼을 지 벌써부터 기대 만빵이다.

 

 

***

 

살 때는 많이 사는 것 같은데, 사고 나면 흠... 그렇게 많지도 않아. 뭐 이런 느낌이 든다. 내 원칙이 한달에 두번까지만 산다, 한번에 10권 이상 사지 않는다 라서 애써 마음을 누르고 보관함에 담겨둔 책들을 신중히 면밀히 검토 후 고르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구매하고 나면 흑. 괜한 아쉬움이 있다.

 

월요일이다. 이번 주도 일로 달려야 해서 독서가 많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알차게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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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9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나이가 나이인지라 늙고 병들어가는 몸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같은 이유로 지난 주에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주문했거든요. 저도 가지고 있게 되었지요.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사기는 자꾸 사는 것입니다, 네....

비연 2020-10-19 11:34   좋아요 0 | URL
아 주문하셨군요. 언젠간 읽겠죠.. 책장에 꽂혀 있으니. 언젠간....

다섯 2020-10-19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지 않을 수 없군요.ㅋ 책장에 꽂혀 있으면 읽듯이 장바구니에 넣어두면 사게 되더라구요. 좋은 책 소개 해주셔서 감사해요

비연 2020-10-19 15:05   좋아요 0 | URL
다섯님. 정말 읽고 싶고 사고 싶은 책들은 왜 이리 많은지요.. 쩝쩝.
책 소개 받으셨다니 너무 기쁘구요. 같이 읽어요!^^

레삭매냐 2020-10-19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 폴 뒤부아의 책은 작년에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해서, 두어권 중고서점에 사다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이번 책은 갑질하는 입주자대표와 건물
관리인의 이야기라는 글을 신문 기사에
서 보고, 아 프랑스/캐나다도 우리의 삶
과 다를 게 없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
읽고 싶어졌습니다.

필립 로스의 신간은 야구팬이라 머스트...
그나저나 미국을 노린 음모는 도대체
언제나 출간이 되는 건지.

비연 2020-10-19 15:07   좋아요 0 | URL
내용은 안 보고 무조건 샀는데 ㅎㅎㅎ 갑질 얘기군요. 잘 샀다는 생각이...
야구팬이시라니, 어디를 응원하시는지 급궁금.. 전 두산.. 요즘 추락세인 ㅜ
그러나 야구팬이라면 이 책을 외면할 순 없을 것 같아요.
필립 로스의 책은 번역이 많이 되어나온 것 같은데도 안 나온 게 많은 듯.
나와라 나와라~

수연 2020-10-19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프 언니닷!!!!!!! 외치고난 후 그러고보니 저도 별로 읽지 않았어요 울프 언니;;;; 이런 생각 드니 가슴이 두근두근

비연 2020-10-19 18:28   좋아요 0 | URL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은 끊이질 않는 것이죠..(먼산)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은 한번 몰아서 찬찬히 보고 싶다.. 생각만...(흠냐)

2020-10-20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0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10-2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세시의 몸들에게 읽고 싶어서 킵 해뒀는 데! 갖춰놓은 모습 보니 따라 읽고 싶은 마음! 그치만 언제나 처럼 ㅋㅋㅋ 안읽을 걸 알아서 오늘은 참는다 (꾸욱-)

비연 2020-10-21 19:22   좋아요 1 | URL
쟝쟝님. 참지 말고 사세요 ㅎㅎㅎㅎ
언젠간 읽지 않을까.. 조심스레.. 이미 받은 자로서... 얘기해봅니다... (흠냐)
 

 

 

 

 

 

 

 

 

 

 

 

 

 

형님, 책이 나오면 제가 나서서 널리 읽히도록 하고 싶네요.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마세요." (p258)

 

100세 시대라고 한다. 60대는 이제 노년이 아니잖아, 청춘이지, 라고 말한다. 80대에 돌아가신 분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은 그런다. 너무 일찍 가셨어. 그렇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일 뿐. '사회적으로는' 60세가 넘어가면 그냥 노인이다. 국민연금도 65세는 되어야 나오고, 대중교통 수단 무료 이용권도 70세로 높여야 한다고, 고령인구 많은데 60대가 무슨 노인이냐며 이야기하지만, 60대의 사람들을 일할 사람으로 보진 않는다. 아니 일할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도 안 하려는 일, 막 부려도 되는 일, 허드렛일 등에 넣어도 될 만한 연령대의 '노인'으로 본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 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p15)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조정진님에게 편하게 노후를 누릴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어졌을 때, 세상은 냉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은행에서는 대출을 갚으라고 닥달을 하고, 아들은 비싼 학비가 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가진 경력으로 취직을 다시 해보려 하지만 '나이 잡수신 노인을 어떻게 부려 먹습니까.(p16)' 라는 얘기에 머물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임계장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長)을 줄인 말.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사지 육신 멀쩡하게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체력만을 요구한다. 그 전에 있었던 경력도, 지식도, 다 필요없고 그냥 '사람' 하나 때우는 일에 넣었다가 몸 상해 버티기 힘들어지면 그냥 바로 갈아끼우는 부품 취급을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대우는 좋아지지 않고 돌아오는 건 싫은 소리와, 자르겠다는 소리와, 책임지라는 소리 뿐이다. 직장이라고 나갔는데 어디 편하게 머물 곳도 없고, 제공하는 장소는 벌레가 나오고 비좁고 추운 곳이다.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정상화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 수를 줄이고 총액을 맞추는 구조로 운영된다. 남은 사람은 남아서 고맙다 열심히 일하지만, 한 사람이 서너 명, 어떨 땐 예닐곱 명의 일을 해야 한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된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p39)

 

나는 아니야. 난 나이 들어도 저렇지 않을 거야. 라고 대책없는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같은 사람에게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아직 당해보지 않은 일이니) 이 대목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아 자욱을 남긴다. 드라마나 영화나, 잡지나, 어디에서든 나이들어 전원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취미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못해본 것들을 이루어내는 사람들 이야기 투성이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훨씬 많은 사람들은 70세가 넘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내 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혹여 운이 좋아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누군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비껴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 나도 이 바닥에서 밥벌이하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해냈다고! 밥벌이가 그렇게 쉬워?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돼. 늙은 영감탱이를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금 어디서 불평이야?" (p42)

 

"너 이 자식, 대대손손 아파트 경비나 해처먹어라." (p78)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p98)

 

"뭐야, 이 새끼, 신고를 하든 조치를 하든, 지금 바로 해! 당장 살 수가 없는데 내일이 뭐야, 내일이. 당신 그런 일 하라고 월급 주는 거 몰라? 한번만 더 오밤중에 오토바이 소리 들려봐. 가만두지 않겠어." (p101-102)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저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p103)

 

읽으면서, 슬프다 씁쓸하다 이런 게 아니라 고통이 찾아왔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나이든 노동자들, 시급 받으며 온갖 일 다하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보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들 성질머리를 있는 대로 퍼붓는 이런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한테도 비수인데 직접 듣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갈까.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 된 거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p122)

 

이불을 꺼내려고 이불장을 열자 벌레들이 무더기로 흩어졌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소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한다. 자주 세탁하고 해충을 없애지 않으면 여러 잡균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숙소의 침구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전임자들의 20년 묵은 체액과 체취가 배여 있었다. 이 냄새에 적응해야 경비원 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터미널 고속에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숙소에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서 악취 나는 쓰레기를 매일 주무르고 음식물 잔반통을 씻으며 살았기 때문에 왠만한 냄새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경비원 숙소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잘 수는 없었다. 1980년대 군대 내무반보다 더 못한 취침 환경이다. 자는 곳이라기보다는 심야 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에 가까웠다... (중략) ... "당신들이 쓰는 침구를 왜 회사가 세탁해 줘야 합니까. 그런 건 당신들이 빨든지 새로 사든지 알아서 해요." (p213-215)

 

아는 분이 그런 말을 하셨었다. "사람 하나하나는 하나의 우주다. 한 명이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우주가 침해받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주여야 할 사람을 뭉개고 멸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곳들이 있다. 힘이 없으니, 돈이 급하니, 일을 해야 하니, 참아나가는 그들의 마음 속 우주는 정말 시커멓겠다.. 싶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필요해서 앉혔으면 그 직종 자체를, 그 사람 자체를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고 대해야 하고 최적은 아니라도 기본적인 살만한 환경은 제공하면서 일을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역지사지라고. 말하는 너같으면 그런 데서 일하겠는가,  사람 대접 못받는 직장에서 일하겠는가.. 묻고 싶어졌더랬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어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써낸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감사의 글 中)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을 억눌러 와서인지, 쌓인 고통이 터져나와서인지, 이 책 제일 마지막 이 대목을 보고 새벽녘에 혼자 펑펑 울어 버렸다. 글쓴 이의 심정이 이 짧은 글에 집약되어 나타난 듯 하여. 내가 괜히 미안하고 감사해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학술적인 글, 비정규직이 어떻다 고령인구가 어떻다 어쩌구저쩌구 공부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론들 다 갖다붙여서 써내는 글들의 공허함을 확 걷어내고, 정말 그 속에서, 사실은 지난 세월 동안은 그 속과 전혀 무관하게 살았으나 이제는 그 속의 일부가 되어서 담담히 써내려간 이런 글이 훨씬 더 명징하게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글을 쓴 이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임계장을 하고 계시겠지만, 이 글이 널리 널리 퍼져서,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글들을 내주셔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제도가 변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뿐이다.

 

 

*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살아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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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0-1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임씨 성을 가진 ‘계장‘ 직급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수명은 길어졌는데, 정년퇴직 나이는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지금 막 노인이 된(또는 될) 세대가 위로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자식도 키웠는데, 노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연 2020-10-18 23:55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엔 몰랐었어요. 사실 알기 힘든 게 사실이기도 하고.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나이에 맞게, 경력에 맞게 일할 자리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명도 길어졌는데 연륜과 더불어 쌓인 것들이 사장되는 것도 아깝고.. 무엇보다 노후문제도 있고 하니.
 

 

 

 

 

 

 

 

 

 

 

 

 

 

 

북유럽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보는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서일지도. 그래서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때 (사실 뭔가 좀 급하게 서둘러 많은 것이 해결된 느낌도 있었지만) 씁쓸함이 더 강하게 남는 것 같다.

 

오름베리라는 곳이 있다. 낙후된 곳. 그 옛날엔 제철소가 있었고 제분소가 있었고 사람들에겐 직업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이전하고 남은 것은 변화라고는 없는 매일의 일상과 그 곳에서 먼지처럼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난민수용소만이 있을 뿐이다. 산업이 나가고 들어온 것은 난민수용소. 보스니아나 아랍의 이주민들이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으려고 정부에서 이 곳에 그들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쇠퇴해가는 이 곳에서, 대놓고 뭐라 하진 않으나 그 난민들에 대한 두려움, 증오, 역차별당한다는 실의.. 이런 것들이 동네의 저변에 무겁게 깔려 있다.

 

여기서 성장한 경찰관 말린. 그녀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이제 스톡홀름의 변호사와 결혼을 해서 완전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 직전에 이 곳에 다시 돌아온다. 지긋지긋한 곳. 하지만 일상적인 경찰 업무에서 벗어나 좀더 스릴 있는 살인사건을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아온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동네가 그녀에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된다. 그녀에겐 엄마가 있고 고모 마르가레타와 사촌 망구스가 있다. 오름베리의 터줏대감들. 외로운 사람들.

 

엄마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은 부모와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르가레타와 망누스가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망누스는 25년 전에 그 집에서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마르가레타에게는 달리 아무도 없고, 망누스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분명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다. (p310~311)

 

마지막 대목에서 멈칫, 한다. '외로움'은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라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사는 건, 사랑해서, 증오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외로와서인지도.

 

열다섯살의 제이크. 엄마가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알콜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빠와 누나와 함께 산다. 이 아이, 여자처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기는 그래서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남자들만이 그놈들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걸까?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뜻일까? 여자애들이 조심해야 하는 종류의 인간? 내가 자라면 통제력을 잃게 되나? 그게 남자가 된다는 뜻일까?

그런 거라면, 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 (p185)

 

 

가부장적인 남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구나, 이 아이. 남자가 그런 거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한껏 치장한 채 나갔다가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던 프로파일러 한네를 만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치매를 앓아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던 한네가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써내려간 일기장을 주워 와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면서, 한네를 친구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해 부딪힐 용기를 가지게 된다. 여자 같다고, 호모 같다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에게 분연히 대적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

 

사라진 한네의 애인이자 경찰인 페테르를 찾아나가면서, 8년 전 발견된 여자아이의 유골과 이제야 발견된 어느 여자의 유골을 따라 그들을 살해한 사람을 찾아나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그 고정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가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난민들에  대한 편견, 여성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아이에 대한 편견, 나이든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편견,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 그러나 누구나, 그 대상이, 그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이었을 수도 있었어요.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일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빌어 여실히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는 스스로, 편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일들 속에서 온전히 중립적일 수 있는지, 나의 상황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있는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에 편하게 손쉽게 나를 얹어 그냥 그렇게 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었다. 제대로 산다는 건, 이렇게 어렵다. 아이는 그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어른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여러 가지 잔머리를 굴리며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지, 가끔씩 흠칫 흠칫 놀라는데, 그 속에 제발 내가 없기를, 항상 바랄 뿐이다... 소설이 좋은 건 이런 거겠지. 어려운 얘길 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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