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은 천체물리학, 지구과학, 생물학 등에 관해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2 ~ )이 쓴 짧은 과학 역사 이야기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정말 매우 넓은 반면, 그 깊이는 매우 얇다. 때문에, 해당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 이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반면, 해당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사람 이름만 기억에 남지 않을까 여겨진다. 아마도 다음의 노래를 듣고, 한국사에 대해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입문서(入門書)보다는 고시생들이 시험 10분전 전체 목차(index) 를 떠올릴 때 활용하는 책 수준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 여겨져, 이번 페이퍼에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가장 눈이 갔던 주제를 골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 ~ 1600)는 그의 저서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Dell'infinito, universo e mondi De la causa, principio e uno>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고, 결국 화형(火刑)으로 삶을 마치게 되었다. 

 

 우주는 무한한 전체로서 중심과 주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것은 단지 모든 개별적 천체에 대한 관계들입니다. 이 관계들은 내가 반복해서 여러 번 설명한 것처럼 특히 일정한 중심점들, 말하자면 태양들, 중심불들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제시한 그곳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들이 우리에게 인접한 태양 주위를 일곱 개의 유성이 회전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태양들과 중심불들의 둘레를 그것들의 모든 유성들, 지구들, 그리고 물로 된 천체들이 회전합니다.(p185)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외>中


 브루노는 비록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외> 곳곳에는 기존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제시된 마지막 문장의 '지구들', '물로 된 천체들'이라고 설명된 부분에서 우리는 고체상태의 지구형 행성(地球型行星, terrestrial planet)과 액체상태의 목성형 행성(木星型行星)을 연상할 수도 있다. 조금 엇나갔지만, 2003년에 쓰여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는 과거 행성이었던 명왕성(冥王星, Pluto), 지금은 왜소행성 134340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어느 곳인가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우리 은하계에 몇 개의 별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000억에서 4,000억 개에 이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은하는 1,400억 개의 정도일 것으로 짐작되는 은하들 중의 하나이고, 그중에는 우리 은하보다 더 큰 것도 많이 있다... 우리는 그 수백만의 문명들 중의 하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p41)...  1999년 2월에 국제천문연합이 명왕성이 행성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주는 크고 외로운 곳이다. 가능하면 많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p42) <거의 모든 것의 역사> 中


 <거의 모든 것의 미래>에서는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이라고 받아지는 학설에 대해 위와 같이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is the better)'의 개념으로 동의를 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명왕성은 이후 2006년 행성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312243.html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명왕성이 행성에서 강등된 이후인 2008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왜소행성 134340에 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명왕성의 왜행성 강등에 대해 개인적인 아쉬움을 확인할 수 있다.


 명왕성이 실제로 행성인지, 아니면 은하의 잔해들이 남아 있는 카이퍼 띠(Kuiper Belt)라고 알려진 곳에 있는 비교적 큰 덩어리인지에 대해서 많은 천문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명왕성은 2006년에 투표를 통해서 행성 연맹에서 쫓겨났다. 명왕성은 여러 가지 이유로 '행성'의 이름표를 얻는데 실패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명왕성은 '외행성'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70년 이상이나 행성으로 여겨졌고, NASA가 보낸 우주선이 2015년 7월 근처를 지나갈 예정이기 때문에 명왕성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다시 달라질 수도 있다.(p17)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中


 명왕성은 193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2000년대 중반 카이퍼 벨트에서 많은 왜소행성의 확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결국, 2006년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하게 되지만, 이 시기 미국은 명왕성 탐사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행보는 '명왕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각별한 애정 때문이라 여겨진다.

 

 2006년 1월에 나사의 뉴허라이즌스호는 케이프커내버럴에서 이륙해 명왕성과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갔다. 그 당시에는 명왕성이 실제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카이퍼 대의 안쪽 테두리에 있는 작고 먼 천체였다... 명왕성 근접 탐사 계획은 2000년까지 보류된 상태로 있었는데, 스턴은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가 1930년에 발결한 가장 작고 가장 큰 행성인 명왕성에 탐사선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에 앨런 스턴(Allan Stern)의 뉴허라이즌스 계획은 승인을 받았고, 2006년에 발사된 우주선은 명왕성을 향해 9년간의 비행을 시작했다.(p315) <천문학의 책> 中


[사진] 뉴허라이즌스 호 경로(https://www.sciencenews.org/article/rendezvous-pluto)


 '치와와가 개이듯 얼음 왜행성들도 행성체다.' 앨런 스턴이 남긴 말 속에서 우리는 명왕성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행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 과학계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토머스 S.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은 그의 주저 <과학 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nce Revolution>에서 패러다임(paradigm)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경쟁하는 패러다임의 추종자들이 어째서 상대방의 관점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들은 총괄적으로 혁명 이전과 이후의 정상과학 전통에서의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고 표현되었으며, 우리는 여기서 그것들을 간단히 요약하기만 하면 된다.(p258)...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것을 본다는 뜻은 아니다. 양쪽이 모두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역에서는 그들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대상들이 서로 맺는 다른 관계 속에서 그것들을 본다.(p261)... 그들 사이에서 충분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려면, 한 그룹 또는 다른 그룹이 우리가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불러온 개종(conversion)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경쟁적인 패러다임 사이의 이행은 공약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이행이기 때문에, 논리가 가치중립적 경험에 의해서 추동되어서 한 번에 한 걸음씩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p262) <과학 혁명의 구조> 中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인식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아마도 이들은 다른 세계를 사는 것이라는 쿤의 주장속에서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이라는 말은 '객관적', '합리적', '논리적' 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과학'이라는 단어를 포장하는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천문학의 책> 안에서 우리는 '명왕성은 왜행성이다'라는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학(科學, science) 역시 인간 인식 틀의 하나이며, 끊임없이 변화가 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학의 상대성을 새삼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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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9-16 2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정말 알라딘의 호랑이세요.... 장르도 뭣도 가리지 않고 다 씹어드신다.

겨울호랑이 2018-09-16 21:44   좋아요 1 | URL
에고, 호랑이가 되고 싶은 고양이입니다. ^^:) syo님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09-16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길그레이트 책은 제가 소장하는 최애템인데도 이 책은 생소한 걸로 보아~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 맞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6 22:34   좋아요 1 | URL
^^:) 한길 그레이트북은 종류가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제 독서가 워낙 구석을 찌르는 경향이 있어 북프리쿠키님께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책이라 생각됩니다...ㅋ 감사합니다.

베텔게우스 2018-09-16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해서 글 첫머리에 언급하신 부분에 대하여 격하게 공감합니다. 2주간 겨우 절반을 읽었는데, 나머지 절반을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특히 물리학에 관한 부분은 당최 무슨 말인지... 아무튼 저도 명왕성 부분을 읽으며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글쓴이의 다다익선식의 견해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글을 통해서 그 내용을 패러다임 전환의 측면에서까지 바라보게 되었네요~ 겨울호랑이님,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7 07:20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과학사에 대해 잘 정리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읽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책이 주는 ‘과학인물사‘ 느낌과 과거 국사 교과서를 읽는 느낌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네요.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베텔게우스님 역시 명왕성을 인상 깊게 읽으셨다는 것을 보면, 분량은 많아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베텔게우스님 감사합니다.^^:)

2018-09-17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