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사안은 종전(終戰)과 평화체제 구축이라 여겨진다. 물론, 우리나라는 휴전협정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최종논의는 북미 회담에서 마무리 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국전쟁(韓國戰爭, 1950 ~ 1953)을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바라보고자 한다.


1. 미국 : 반공(매커시즘)을 통한 국내 여론 통합과 세계 패권 유지 기반 마련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추축국(독일, 일본, 이탈리아)을 적으로 국내 여론을 통일할 수 있었으나, 종전(終戰) 후에는 외부의 적이 사라지게 되었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 미국은 외부의 강력한 적(敵)이 필요했고, 이는 한국전쟁 참전을 통해 실체화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은 목적을 달성했을까?

 

 전후 10년 동안 미국은 냉전(冷戰)과 반공(反共) 정책을 둘러싸고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공화당과 민주당의 국민적 합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연합은 공격적인 대외정책으로 보수파의 지지를 얻고 자국에서의 복지 프로그램으로 자유주의자들을 매혹시키게 될 자유주의적인 민주당 대통령에 의해 가장 잘 형성될 수 있었다... 반공의 분위기가 충분히 강력해진다면, 자유주의자들은 평상시라면 관용이라는 자유주의 전통을 위반하는 것으로 비춰질 억압적인 국내 정책을 지지할 수 있었다. 1950년대, 트루먼이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벌인 한국 전쟁이 그것이었다.(p131) < 미국민중사 2> 中


 미국은 한국 전쟁을 통해 국내 여론을 통합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통합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국의 위치를 유지할 자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매카시즘'이 위치했다.


 한국 전쟁은 자유주의 여론을 전쟁과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시켰다. 한국 전쟁은 해외에서의 개입정책과 국내에서의 경제 군사화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연합을 만들어 냈다.... 자유주의자들은 조지프 매카시 Joseph MaCarthy 상원의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한국 전쟁은 "매카시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p132) < 미국민중사 2> 中


2. 중국 : 타이완 침공 저지에 대한 복수


 1949년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으로 쫓아낸 후, 티베트 침공을 통해 그 세(勢)를 확장시켰다. 그렇지만, 이어진 타이완 침공에서 실패를 맛보게 되었고, 미국의 개입으로 더 이상의 침공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중국의 감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중국은 미군이 북한군을 국경까지 밀어붙이는 순간에 이르자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입각한 규정(애치슨 선언) 속에 타이완과 1945년 이후 38도선을 기준으로 소비에트가 점령한 북한과 분리되어 미국의 보호 아래 독립국으로 부상한 남한이 포함되지 안은 점을 주목했다. 만일 타이완을 점령한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미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이고 있던 유엔에서 당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p110)... 미 제7함대의 배치로 타이완에 대한 공격이 완전히 불가능해졌음을 확실히 인식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푸젠 해안에서 훈련 중이던 제3군에서 3만여명 가량의 부대를 선양(瀋陽)으로 북상시켰다. 다른 군대들도 산둥반도를 향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2> 中


 한국전쟁의 결과 수십 만명의 중국군이 사망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북한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혈맹(血盟)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전쟁이 중국 내에 미친 영향을 굉장히 컸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혹독한 겨울에 철지난 의복, 부족한 식량, 최소한의 무기를 가지고 압도적으로 우월한 공군력과 화력을 지닌 적군과 싸워야 했던 수십만 명의 중국군이 당한 고통이었다. (p113)... 전쟁에서 경험한 사건들은 중국으로 하여금 서양 제국주의의 해악에 더욱 눈뜨게 해주었고, 특히 미국을 중국의 주된 적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p114)  <현대 중국을 찾아서2> 中


3. 일본 : 한국전쟁을 통한 전후 경제불황 탈출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국은 일본이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일본은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한국전쟁 3년을 통해 극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일본이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단지 그들의 근면과 성실로만 돌릴 수 있을까?

 

 일본의 1945 ~ 1949년에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급등했다.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한 미국인은 "인플레이션에 제동이 걸린 1949년까지 물가는 4년 만에 무려 150배나 뛰었다."고 술회했다.(p433)... 디플레이션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1년 뒤인 1950년 봄, 일본은 부흥은 커녕 더 깊은 불황의 늪에 빠지기 직전인 것 같았다. 연합국 최고사령관(SCAP :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의 처방이 일본을 고사시킬 것처럼 보이던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대한해협 건너편의 비극이 일본에게는 엄청난 행운을 안겨주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본의 산업계에는 군수품 조달을 위한 미국의 주문이 쇄도했다. 1951 ~ 1953년에 군수품 조달액수는 약 2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대략 일본 총수출액의 60%에 해당했다... 기업체들은 패전 이후 처음으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설비와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국민총생산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부흥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p434) <현대 일본의 역사> 中


4. 한국 : 그리고 바뀐 것은 없었다


 반면, 한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얻은 것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전 38선이 휴전선(休戰線)으로 바뀐 것 외에는 바뀐 것이 없었고,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70여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은 사실상의 대량학살이 그들의 나라를 황폐하게 하고 1945년의 힘찬 기대를 악몽으로 바꾸어 놓는 것을 목격했다. 기억할 점은 이 전쟁은 내전(內戰)이었으며, 한 영국 외교관이 언젠가 말했듯이 "모든 나라는 자신의 '장미전쟁'을 치를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비극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순전히 한국인들끼리의 내부충돌이라면 식민주의, 민족분단, 외국간섭 등으로 야기된 엄청난 긴장이 해소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극은 이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직 이전의 현상(現狀)으로 복구되었을 뿐이며, 오직 휴전만이 평화를 유지했을 뿐이다. 오늘날까지 긴장과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p418)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中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적을 만들 수 있었고, 중국에게 한국전쟁은 타이완 합병을 저지한 미국에 대한 복수기회였으며,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군수품 수출을 통해 새로운 경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단지 아픔이었을 뿐이다.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세계 각국이 바라보는 입장은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입장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전쟁은 상처이고 아픔뿐이었기에, 이번 회담이 이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을 희망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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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6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4-27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일로 쓰려고 했는데, 벌써 오늘의 일이네요.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인데, 좋은 소식 있었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4-27 00:17   좋아요 2 | URL
네 서니데이님 정말 기대가 많이 되네요. 오늘 저녁에는 기대보다 더 좋았던 하루로 기억되길 바라게 됩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하게 하루 마무리 하세요^^:)!

NamGiKim 2018-04-28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이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회담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 흘렸고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서 부모님에게 제가 모은 월급으로 밥사줬습니다. 금강산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8 17:49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저 역시 어제 눈물이 저절로 나더군요.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것을... 저 역시 부모님 댁에 와서 요즘 유행인 냉면을 먹을 예정입니다. ㅋ NamGiKim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NamGiKim 2018-04-28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만 눈믈 흘린게 아니었군요. 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8 18:02   좋아요 1 | URL
^^:) 아마 많은 이들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받았던 많은 부분이 치유되었을 것 같네요^^:)

AgalmA 2018-04-29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처럼 전쟁팔이 나라도 없죠;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등. 사안에 따라 경중은 있겠으나 경제 이권, 여론 통합, 세계 경찰 훈장 등등의 효과를 매번 노렸던 거 같은데 앞으로는 그게 먹히지 않을 듯(과연). 반미 네거티브 패널티가 많이 쌓여서 더이상은 좋을 게 없죠. 911로 크게 겪어 봤죠.
더 큰 문제는...그 행태를 수수방관하며 용인하는 세계 정세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전쟁 자체보다 그걸 제지하는 통제력 상실이 가장 뼈아픈 인간성의 후퇴 같달까요. 폭력과 이익심리도 인간의 큰 욕구(?), 작용(?)이니 인간성이니 퇴보 운운은 긍정성만 바라는 관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성과 인간성이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가장 현저히 보여주는 게 전쟁 같은 사건이죠.

겨울호랑이 2018-04-29 08:33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역사 속에서 미국의 패권은 전쟁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 역사 속에서 세계대전의 배경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 그 배경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됩니다. 자본을 축적하려는 욕구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한 아마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의 위협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깨어난다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AgalmA 2018-04-29 09:22   좋아요 1 | URL
오래전부터 전쟁이 인간의 먹고살이에서 중요한 역할이긴 했죠. 근데 이 전술을 활용하는데 미국이 참으로 적극적인... 폭력의 역사로 최근 건국된 영향도 있는 것일까요-_-?

1846년 멕시코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징수된 세금 납부를 거절해 감옥살이한 소로 같은 기개를 가져야겠지요!
공부하는 연의야, 너희들이 희망이얌~ 겨울호랑이님 같은 부모들이 있어서 맘이 조금 든든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9 11:08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면 미국이 종교의 자유를 찾고자하는 청교도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이야기는 미화된 신화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랬다면 미국이 걸어온 길이 달라졌어야 했겠지요...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우리만의 꿈을 이뤄가야겠지요.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우리 아이들의 두 눈속에 담기도록이요. 물론 제가 한 말은 아닙니다만 ㅋㅋ

2018-04-30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