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고려를 정벌하면서 현토(玄?)·횡산(橫山)·개모(蓋牟)·마미(磨米)·요동·백암·비사(卑沙)·맥곡(麥谷)·은산(銀山)·후황(後黃)의 열 개의 성을 뽑고, 요주·개주·암주(巖州, 백암)의 세 주의 호구를 옮겨서 중국에 들여온 사람이 7만 명이었다. 신성(新城)·건안(建安)·주필(駐?)에서 있었던 세 번의 큰 전투에서 목을 벤 것이 4만여 급(級)이었고, 전투하다가 죽은 병사가 거의 2천 명이었고, 전마(戰馬)로 죽은 것은 열에 일고여덟 마리였다. 황상은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깊이 후회하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위징이 만약에 있었더라면 나로 하여금 이번 행동을 하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무술일(6일)에 요주(遼州, 치소는 요녕시 조양시)도독부와 암주(巖州, 백암성, 요녕시 등탑시의 서쪽)를 철폐하였다.

황상이 고려에서 돌아오자 연개소문은 더욱 교만하고 방자하여 비록 사자를 파견하여 표문을 받들었지만 그 말은 대부분 모두 속이고 거짓이었다. 또 당의 사자를 대우하는 데도 거만하여 항상 변경에 틈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여러 차례 칙령을 내려서 신라를 공격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침략하여 능멸하는 것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임신일(14일)에 조서를 내려서 그들의 조공을 받지 말게 하고 다시금 그를 토벌하는 것을 논의하였다.

"고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만드니 이를 공격하여도 빨리 뽑아버릴 수가 없습니다. 전에 대가(大駕)가 친히 정벌에 나서자 그 나라 사람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가 없었고, 이긴 성에서는 모두 그 곡식을 거두었으며, 계속하여 한재(旱災)가 들어서 백성들의 태반이 먹을 것에 주려 있습니다.

신라왕(新羅王) 김선덕(金善德)이 죽자, 김선덕의 여동생인 김진덕(金眞德)을 주국(柱國)으로 삼고 낙랑군왕(樂浪郡王)에 봉하였으며, 사신을 파견하여 책명(冊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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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은 천하라는 큰 그릇을 그가 아끼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화란(禍亂)의 근원을 막았으니, 멀리를 꾀하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9월 경진일(4일)에 신라(新羅)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백제(百濟)가 그 나라의 40여 개 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다시 고려(高麗, 고구려)와 군사연합을 하겠다.’고 말하여서 신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조현(朝見)하는 길을 끊으려고 모의하였다고 말하고, 군사로 구원해 달라고 빌었다.

상리현장(相里玄?)이 평양(平壤)에 이르렀는데, 막리지(莫離支)는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그 두 개의 성을 깨뜨렸지만 고려왕의 사자가 그를 부르니 마침내 돌아왔다. 상리현장이 신라를 공격하지 말게 하려고 타일렀더니, 막리지가 말하였다. "옛날에 수(隋) 사람들이 들어와서 노략질하자 신라가 틈을 타고서 우리의 땅 500리를 침략하였는데, 스스로 우리에게 침략하였던 땅을 돌려주지 않으니 아마도 군사조치는 그칠 수 없을 것이오."
상리현장이 말하였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찌하여 추후에 논란을 한단 말이오? 요동(遼東)에 있는 여러 성의 경우에 본래 모두 중국의 군현(郡縣)들이지만 중국에서도 오히려 또한 말을 하지 않는데 고려가 어찌하여 반드시 옛날 땅을 요구한단 말이오."
막리지는 끝내 좇지 않았다.

여름, 4월 초하루 무술일에 이세적은 통정(通定, 요녕서 신민시 동쪽)에서 요수(遼水)를 건너서 현토(玄?)에 이르렀다. 고려에서는 크게 놀라서 성읍(城邑)에서 모두 문을 닫고 스스로 지켰다.

정해일(9일)에 태상승(太常丞) 등소가 고려(高麗,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회원진(懷遠鎭, 요녕성 요중현)에 수(戍)자리를 서는 병사를 늘려서 고려를 압박할 것을 요청하였더니, 황상이 말하였다.
" ‘멀리 있는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여야 하는 것’인데, 아직은 100~200명의 수자리 서는 병사가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 위엄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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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일(16일)에 백제(百濟)에서 사람이 와서 그의 왕인 부여장(扶餘璋)의 상사(喪事)를 알리니, 사신을 파견하여 그의 사자(嗣子, 후계자)인 아들 부여의자(扶餘義慈)에게 책명(冊命)을 주게 하였다.

황상이 위징에게 물었다. "최근에 조회에 나오는 신하들이 어찌하여 특별히 사건을 평론하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시고 받아들이신다면 반드시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신하들 가운데는 나라를 위하여 죽으려는 사람이 적고, 자기 몸을 아끼는 사람이 많으니, 저들은 죄 지을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말을 아니 할 뿐입니다."

정사일(5일)에 영주(營州)도독 장검(張儉)이 주문을 올려서 고려(高麗, 고구려)의 동부대인(東部大人)인 천개소문(泉蓋蘇文)이 그의 왕인 고무(高武)를 시해하였다고 하였다.

황상이 위징을 생각하는 것이 그치지 않아서 시중을 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사람은 구리를 가지고 거울을 만들어서 의관(衣冠)을 올바르게 하는데, 옛것을 거울로 삼는다면 흥망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잘잘못을 알 수 있는데, 위징이 죽으니, 짐은 한 개의 거울을 잃었도다."

황상이 직방랑중(職方郞中) 진대덕(陳大德)을 파견하여 고려(高麗)35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8월 기해일(10일)에 고려에서부터 돌아왔다. 진대덕이 처음에 그들의 경계로 들어가서 산천과 풍속을 알고자 하여 도착하는 성읍마다 그 지키는 사람에게 능기(綾綺)36를 주면서 말하였다.

"나는 본디 산수(山水)를 아주 좋아하니 이곳에 명승지가 있으면 내가 이를 보고 싶소."

지키던 사람은 기뻐하며 그를 이끌고 돌아다녀서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왕왕 중국인들을 만나자, 그들은 스스로 말하였다.

"집은 어느 어느 군에 있었는데 수(隋) 말년에 군대에 나왔다37가 고려에 몰입되었으며, 고려에서는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처로 삼게 하였으며, 고려 사람들과 섞여 사는데 거의 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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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8월 10일,  에두아르 에리오의 급진적 정부는 ‘프랑스의 노동력을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기업 및 산업 부문에서  외국인 노동자  쿼터제를 적용하는 데 물꼬를 텄다. 고용주는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외국인을 우선 해고한다. 고용 계약이 해지된 수십만 명의 폴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노동자들은 이제 5년 안에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실업률은 여전히 증가했고 민족주의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라지자, 일부 기업에서는 비용이 증가했고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롱위 (Longwy. 프랑스 북동부에 위지한 코뮌으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국경이 접해 있다 역주)를 연구한 역사학자 제라르 누아리엘은 "철강업체 사주들은 실업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더 비싼 노동력 유지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독신 이민자를 해고한다는 ‘해결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 고 용주들이 노동력의 대규모 이동이 가져올 혜택을 포기했기 때문" 이라고 썼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난 그 일자리에, 프랑스인 노동자들은 몰려들지 않았다. 일은 몸시 고되고 위험한데, 보수는 적은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 P10

피케티 특유의 방대한 경험적 연구는 이 문제에 대한 출발점을 암시한다. 1990년대 이후 한때 노동자들의 정당이었던 유럽과 미국의 선거좌파 정당들은, 고학력자의 정당 ‘브라만좌파‘가 돼 민중과의 갈등관계에 생각한다. 브라만좌파와 상인 우파는 교대로 집권하면서 기존 불평등체제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공유한다. 전자는 인적자본의 축적을, 후자는 물적 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세계화는 양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게다가 선거좌파는 특권계급화되면서 특권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세습되기를 원한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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