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후반기에 중국은 소련과 미국을 상대로 ‘중국 카드’를 유효 적절히 활용했다. 탈냉전 세계에서 러시아에게는 ‘러시아 카드’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접근하면 유라시아의 판세는 결정적으로 서구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 것이며, 1950년대 중소 밀월관계에 대한 우려가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중국 결속은 유교-이슬람 결속처럼 양국 모두에게 서구의 패권과 보편주의에 맞서는 수단이 된다.
이 결속이 장기적으로도 유지될 것인가는 첫째, 러시아와 서구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상호 만족을 느끼는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가 둘째,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헤게모니 장악이 경제, 인구,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얼마나 위협하는가에 달려 있다.

또 하나의 ‘그네’ 핵심국 인도는 냉전 시대에 소련의 우방이 되어 중국과 한 차례, 파키스탄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인 바 있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서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카슈미르, 핵무기, 이 지역의 전체적 군사 균형 문제를 놓고 여전히 갈등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문명과 그 핵심국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양면적이며 자주 변화한다. 한 문명 안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른 문명에 속한 나라들과 관계를 정립할 때 대체로 핵심국의 노선을 따른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문명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다른 문명에 속한 모든 나라들과 동일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제3의 문명에 속한 공동의 적을 겨냥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문명에 속한 나라들 사이의 협력을 낳을 수 있다

소련의 패배는 소련의 사회와 정치 체제에 심각한 여파를 미쳤으며 소련 제국의 해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과 서구인에게 아프간 전쟁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승리, 냉전 시대의 워털루 승전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싸웠던 사람들에게 아프간 전쟁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한 서구 학자의 지적대로 그 전쟁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의 원칙에 바탕을 두지 않고 외세를 이겨낸 최초의 사례다.

단층선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국가나 무리 사이의 집단 분쟁이다. 단층선 전쟁은 폭력으로 비화한 분쟁이다. 이 전쟁은 나라들 사이에서, 비정부 집단들 사이에서, 혹은 나라와 비정부 집단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정체성을 민족과 종교라는 해묵은 대용물에서 발견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물론적 명제를 금과 옥조로 받든 국가들의 억압적이지만 평화로웠던 질서는 다양한 신들을 떠받드는 민족들의 폭력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다. 이슬람 사회의 인구 폭발과 15~30세까지 연령대의 남성 실업자군이 다수 몰려 있다는 점은 이슬람 내부의 분쟁과 비이슬람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모두 불안정과 폭력을 낳는 자연스러운 요인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복수적 정체성은 퇴색하고 분쟁과의 관련성이 가장 높은 정체성이 전면에 나선다. 그 정체성은 거의 예외 없이 종교가 정의한다. 종교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교도 세력과의 싸움을 정당화화는 심리적 위안과 자긍심을 제공한다.

단층선 전쟁을 문명 간 충돌로 이해하면 냉전 시대의 도미노 이론도 부활한다. 차이점이라면 국지적 분쟁에서 패배할 경우 일련의 후속 분쟁에서 잇따라 패퇴하여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세력은 미국과 소련이 아니라 주요 문명의 핵심국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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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완성 -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다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6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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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회는 무슨 업적을 남겼는가? 1791년 9월 30일 마지막 회의를 끝마친 시점에서 보면 제헌의회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겼다. 그들은 1789년 5월부터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을 만들거나 거기에 휩쓸리면서 2년 5개월 동안 헌법을 제정했고, 그 헌법을 기초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투표로써 입법의원들을 뽑아놓고 물러났던 것이다. 그들이 비록 구체제의 방식으로 뽑혀 전국신분회에 나갔고 개인별 투표를 전제로 모이지는 않았지만 '주권의 혁명'을 성취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373/38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6권 <헌법의 완성 -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성하다 Liberte>는 바스티유 사건 이후 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Divine Right of Kings)의 절대군주제 대신, 국왕을 '제1 공복'으로 규정한 입헌군주제의 프랑스를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2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혁명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루이 16세는 왕당파의 지지를 받으면서 버티려고 노력했지만 절대군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 국회의 권력이 더욱 강해지는 데 비해, 그는 더욱 위축되었다. 그는 점점 자유를 구속받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어떻게든 혁명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파리에서 도주했다. 그러나 그는 24시간 만에 국경과 가까운 바렌에서 붙잡혔다... 그는 전국신분회가 175년 전처럼 군주를 위해 세금을 걷는 일에 동의해주기 바랐지만, 거기에 모인 제3신분 대표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태를 이끌어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국민의 진정한 대표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국신분회의 전통적인 방식인 신분별 회의를 거부하고 세 신분이 한데 모여 의논하자고 주장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9/380

미국 독립전쟁 참전 등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소집한 삼부회(三部會)에서 본래 의도했던 증세(增稅) 대신 특권 폐지와 제3신분에 의해 주도되는 국회에게 입법권을 넘겨주는 과정과 이후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은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모두에게 깊은 감정의 상처를 남겼다. 혁명 이후 절대군주제의 부활을 노렸던 루이 16세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영국식의 입헌군주제를 원하는 제3신분 사이의 치열한 다툼 끝에 루이 16세가 결국 도주하면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 했다.

왕이 파리로 돌아간 뒤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6월 말까지 국민에게 왕의 재판을 맡기자, 법원에 왕의 재판을 맡기자, 루이 16세를 폐위하자, 왕의 자격을 정지하고 섭정을 두자, 이렇게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팔레 루아얄에서는 몇몇 작가나 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수립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아직까지 큰 호응이 없었다. 특히 코르들리에 클럽은 공화제를 주장했다. 그들은 자코뱅 클럽에 대표를 보내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의 무시당했고, 심지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19/380

그럼에도 이들은 혁명을 인정하고, 왕을 존중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며 결국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실, 국회의원 전원이
루이 16세를 지속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제3신분을 중심으로 한 국회에서 설계하는 새로운 질서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루이 16세의 도주 사건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공화정을 주장하는 급진세력이 출현학는 계기가 마련되면서 변화가 생겨났다.

국회에서는 왕의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왕의 신성성을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극우파와 우파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하고, 중도우파와 중도좌파는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 혁명이 급진화할수록 좌파에서 공화제를 주장하는 극좌파가 나타났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32/380

사람들은 국회의 합동위원회에 "왕에게 신성성이 있는데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 라고 물었지만, 르장드르는 그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왕에게 신성성이 있다면 국회는 무슨 권리로 왕의 자격을 정지시켰는가? 그것은 국회가 제정한 헌법의 원칙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르장드르는 국회가 원칙을 벗어난 이상, 왕은 인민의 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47/380

루이 16세의 도주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급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헌의회는 입헌군주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빠른 시일 내에 구체화할 필요에 쫓기고 있었다. 이런 다급함을 잘 알고 있던 루이 16세를 비롯한 절대왕정세력은 수세에 몰린 처지에서도 당당하게 제헌의회의 헌법을 제정하는 한 축으로 기능하면서,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받았음을 우리는 <헌법의 완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과연 대중들을 속일 수 있었을까?

국회에서는 헌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7월 14일의 기념식에도 겨우 스물네 명의 대표만 참석시킨 채 현안문제를 다룬다고 바쁜 척했다. 그러나 민중은 그동안 희망을 안고 참았지만 생활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몹시 분하게 여겼고, 급진적인 신문 발행인은 국회가 일부러 혁명의 다음 단계를 늦추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11/380

왕과 왕비는 비록 튈르리 궁에 갇혀 있는 형국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 주위에 모이는 사람들은 항상 국내외 반혁명세력과 연계할 궁리를 하면서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기회만 엿보았으니, 그들이 자기 패거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유쾌하고 오만한 태도로 궁 밖에 오가는 민중을 '개/돼지' 정도로 깔보고 가엾게 여겼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체제도 어차피 질서의 안정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16/380

그렇지만, 이들의 이런 정치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좌/우 야합(野合)'의 실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혁명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인민의 삶과 생각보다 늦어지는 개혁의 움직임 등으로 제3신분 다수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후 혁명이 입헌군주제의 수립에서 멈추지 않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복선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의 움직임은 국회를 구성하는 이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1789년의 혁명이 제3신분 중 어느 정도 성공한 부르주아(bourgeois)만의 공화정인가, 아니면 제3신분의 다수를 구성하는 데모스(demos)를 위한 혁명의 성격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헌법은 제정되었으나, 이를 지켜내기 위한 프랑스의 혁명 전쟁은 다음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인민은 왕국의 방방곡고에서 대대적으로 봉기해 도시를 둘러친 세관 울타리, 지방을 갈라놓은 그 울타리들을 무너뜨렸다. 소금세, 각종 소비세, 담배세, 입시세를 받던 세리들은 쫓겨났다. 사람들은 창고를 약탈했다. 식료품의 밀수가 도처에 성행했고 이성보다 폭력이 세상을 먼저 지배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270/380

1791년 초부터 수많은 단체와 우애관계를 맺은 코르들리에 클럽은 7월 8일의 회의에서 왕의 신성성에 대해 논의했다. 여러 사람이 연단에 올라가 왕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왕도 죄를 지었으니 재판하고 벌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은 왕이 도주하는 순간 신성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도주는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헌법에 공식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왕에게 신성성을 되찾아주고 그를 왕좌에 굳건히 앉히려고 노력혔다. 그리고 국회는 왕이 납치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인민이 떠들기 시작하면서 국회의 노력은 실패했다. _ 주명철, <헌법의 완성> , p13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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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22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왕을 죽이는 것은 쉽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왕의 자리를 죽이는 것은 그 체제가 유지되어온 시간만큼 힘든거겠지요. 혁명을 일으키는 것보다 혁명 후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만큼요. 이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인간들이네요.

겨울호랑이 2022-08-22 08:42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과거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과 인물들이 기시감이 들 정도로 반복됨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인류가 진보해왔다면, 과거의 성과들이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왔기 때문이라 여겨지네요... 인간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인류와 문명은 그런 면에서 사회적 진화를 해 온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나는 인간에게 확고부동만큼 어려운 것은 없고, 변덕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부적인 일들을 통해, 그리고 하나하나 따로따로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자가 진실을 말할 공산이 클 것이다.

모든 덕의 시작은 반성과 숙고이며 그 끝과 완성은 확고부동이라는 것은 데모스테네스의 말이라고 한다. 숙고를 통해 확고한 길을 잡는다면 가장 훌륭한 길을 잡을 것이다

덕이 원하는 것은 오직 덕 자체를 위한 덕행뿐이다. 가끔 우리가 다른 목적으로 그것의 가면을 빌려 오면 덕은 대번에 우리 얼굴에서 그 가면을 떼어내 버린다.

우리는 모두 조각들로 이루어진 데다 어찌나 종잡을 수 없는 복잡다기한 구조로 되어 있는지 조각들 하나하나가 매 순간 제멋대로 논다.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는 우리와 남 사이만큼의 차이가 있다.

밖으로 드러난 행동만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는 것은 사려 깊은 이해의 방식이 아니다. 속까지 탐사해 보고, 어떤 원동력에 의해 유발된 동요(動搖)인지 봐야 한다.

가장 자발적인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다. 인생은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 죽음은 우리의 의지에 속한다.

참을 수 없는 고통 그리고 자살보다 못한 죽음의 위협이 내 보기엔 가장 용납할 만한 자살 동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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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채택안은 달랐지만 대책의 기본 방향은 같다. 데이터와 경험상 과거 비가 많이 오고 피해가컸던 지역에 크고 튼튼한 배수시설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비는 그 용량 또한 뛰어넘었다. 국내 현존하는 최신식 · 최대 배수시설이라 할 수 있는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과 반포천유역분리터널이 최대로 처리해낼 수 있는 시간당 강수량이 각각100㎜, 95(완공 시) 정도다. 8월8일 폭우가 집중되던 오후 8~9시 서울 강남 일대의 시간당 강수량은 10㎜를 넘겼다. - P13

치수의 해법을 ‘치수‘ 바깥에서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환경단체에서 오랫동안 정부의 물관리 정책을 살펴온 신재은활동가(풀씨행동연구소)는 이제껏 정부가 펼친 좋은 수해방지대책 중 하나로2010년 서울시 수해 이후 제정된 ‘반지하주택 건축허가 제한‘을 꼽는다. 이후 10년사이 서울시내 반지하 주택이 약 10만여 가구 감소했다. - P14

다시 큰 물난리를 겪게 된 서울시가8월10일 내놓은 대책은 10여년 전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침수 우려 지역과는 상관없이 반지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이미 지어진 반지하 건축물은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주거 취약계층이 반지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이유를 간과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 P17

지난해 출범한 TTC의 핵심 목표는서방국가(미국과 EU)들이 기술 부문의글로벌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기술의 중국 수출이 서방의 국가안보를위협할 수 있는지 기준을 정해서 ‘수출가능 장비‘와 ‘불가능 장비‘ 사이에 선을 그으려 한다. 마침 EU의 행정부라 할 수 있는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월, EU 내의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는 데 500억 달러(약 430억 유로)를 투자하는 내용의 ‘EU 반도체법‘을 제안해놓은  상태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TTC 협의직후 나온 공동성명의 골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슬의 재균형화 (rebalancing)‘였다. 
여기서 재균형화는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중국 배제‘의 부드러운 표현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일본·타이완 등동아시아에 대한 이른바 ‘칩4‘ 역시 대중수출규제를 위한 국제협력의 시도로 볼수밖에 없다.  - P22

‘펠로시 패싱‘이 해프닝이 아니라면,
더 큰 의문이 남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의 큰 방향이 바뀌었느냐는지점이다.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한·미동맹 약화,
대중 굴종 외교, 주종의 남북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적극 공격하며 선거 캠페인을벌였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겠다는 한 줄 공약도 남겼다.  - P25

여기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의장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신냉전 질서가 격화하는 시기에 ‘윤석열 정부는 어떠한 대응책과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펠로시 패싱‘으로 미국이 받은 충격은 "타이완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은동맹국인 한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더 힐>)"라는 보도로 드러난다. - P26

 <워싱턴포스트>는사설에서 "펠로시 의장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우군 민주당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타이완을 방문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혹시 이번 방문을통해 그가 공화당 승리가 예상되는 올가을 중간선거 이전에 하원의장으로서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굴뚝같더라도 시기적으로 타이완행은 현명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노정치인 펠로시의 타이완행을 국익을 무시한 채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는 ‘욕‘으로 본것이다. - P29

사납금 폐지는 법인택시 기사들의 오랜 염원이다. 택시가 못한 것을 타다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첫째, 타다는 법인택시 회사들처럼 차량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앱도 직접 운영했기 때문이다. 택시1 노동자들의 주행거리, 횟수, 시간은 물론= 누적 휴게 시간까지 초 단위로 추적할 수있었다. 기사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지정한 대기 장소로 이동시켰고, 기사들이 콜을 자주 수락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부여했다. 둘째, 손님이 별로 없는시간에도 시급 1만원을 준 부분은 피크시간대에 기존 택시보다 50% 더 요금을올리는 방식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 P36

발사체와 분리돼BLT 궤적에접어든 탐사선은 지구로부터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 1까지 태양 중력에 이끌려 간다 (라그랑주는 우주공간에서 태양과 지구가 서로 당기는 힘이 0이 되는 지점이다). 라그랑주 1에서 방향을 바꾼 탐사선은 이번에는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구 방향으로 돌아오다가 달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굽이굽이 600만km를 돌아가기에 4.5개월이 걸리지만, 태양과 지구의중력을 이용하는 덕분에 달에 갈 때까지연료를 거의 쓰지 않는다.
2019년 다누리의 무게가 변경된 이후, 당시 달탐사사업단 단장이던 이상률항우연 원장은 2020년 1월 급하게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하고 돌아와BLT 궤적이라는 솔루션을 내놓았다.  - P48

 다누리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달 전체를 찍어서 달 전체에대한 ‘편광 지도‘를 얻는 것이 목표다."
달 탐사선에 편광 카메라를 탑재해 달주위를 돌며 편광 사진을 찍는 건 다누리가 세계 최초이다. 그동안 지구상의 망원경으로 달을 편광 관측한 적은 있지만 달의 앞면만 볼 수 있었다. 다누리에 실린
‘폴캠‘은 달의 뒷면과 옆면을 모두 관측할수 있다. 2023년 2월 1일 다누리가 정상운영을 시작하며 보내오는 폴캠의 데이터는 인류가 처음으로 보는 사진이다.
- P50

 언론역사학자인 파트리크 에베노는 같은 날 라디오 프랑스앵포에서(수신료 폐지가) 공공기관의 재정에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최근 증액된 정부예산에서 공영방송 운영비용을 충당하면오히려 세수가 간결해진다"라고 말했다.
좌파 정당 후보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3월8일 유럽녹색당(EELV)의 야니크 자도 후보는 "공공기관에 대한 대통령노선이 극우 정당과 같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수신료폐지는 극우 성향 ‘재정복(Reconquête)당‘의 에리크 제무르, 우파인 공화당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 등의 공약이기도 했다.
사회당(PS) 안 이달고 후보는 "TV 수신료 폐지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죽이는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 P53

투자사가 작품에 거액의 예산을투입할수록 작품에 대한 입김이 세지는건 당연하다. 흥행 리스크를 짊어지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를통틀어, 국내 관행상 쿠팡플레이가 거의불가능한 일을 해버렸다는 평가도나왔다. 영화·드라마 업계를 두루경험하고 현재 제작사를 독립 운영 중인A씨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감독과제작사, 투자사가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평행선을 달리는 일은 흔하다. 언성을높이고 진땀을 빼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적정선을 찾아 서로 양해하고조율하면서 작업을 마무리한다.  - P57

그러니 아스팔트 틈새에서 자라는식물에는 ‘그런 데서도 자랄 수 있는생명력‘과 함께, 머지않아 스러질것이라는 예견된 죽음이 겹쳐 있는셈이다.
그 죽음은 바로 그 좁은 틈에 또조금의 양분을 남기고, 또 다른 싹이그곳에서 자라날 것이다. 아스팔트의작은 틈새에서도 꽃이 피고 갈라진 계단틈에서도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나듯이,
아무리 흙으로 덮고 없애도 식물은 그틈에서 집요하게 되살아난다. 식물의삶의 방식이란 그렇게 틈새를 찾고파고들어 자기 자리를 느리게,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생각한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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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들은 항상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정권창출과 장기집권에서 찾으면서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정치꾼들을 꺾기 힘들다. 그래서 정치꾼들은 속으로 낙관했다. 그리고 민의보다는 권력 편에 선 국회의원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촛불을 드는 민심은 달라졌다. 시민들은 아무리 추워도 광장에 나갔고, 연말에도 나갔다.

시민들은 어렵게 만든 기회를 헛되이 놓아버리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봐야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 자크 루소는 선행의 첫걸음이 악행을 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는데,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자들이 악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쥐가 달걀을 낳기를바라는 일과도 같다. 어렵사리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잇달이 대통령 노릇을 하는 9년 동안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국격이 땅에 떨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루소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또다시 절감했다. 우리는 투표할 때만 주인이었고, 9년 동안 정치적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진보적인 양심세력은 ‘입안보‘, ‘입애국‘ 세력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매사에 인보와 애국을 들먹이면서
"그 말을 독점했지만, 북한의 핵실험에는 겨우 확성기만으로 대응한, 그래서 진정한 ‘입안보‘ 세력일 뿐이되었고,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서도 자주국방의 길을 제대로 열지 못한, 그래서 진정한 ‘입애국‘ 세력에 시
" 내지 않는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닫는 시점까지 진보세력은 사회의 건강한 부분에 대한 비판보했다는 아픈 부분을 고치는 데 전념하기를 바란다. 진보세력끼리 ‘입진보‘라고 비판하면서 선명성을 경쟁하기보다 더욱 절박하게 해결할 일이 있음을 명심하자. 한마디로 대의제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정치적 모형을 제시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프랑스 혁명을 생각할 거리도 많아졌다. 나는 프랑스 혁명이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근대화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합리화, 산업화, 정교분리와 함께 민주화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근대화라 하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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