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비록 이민족(異民族)에 의한 타율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당시의 각종 경제제도의 근대화과정이나 경제성장 및 구조적 변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일어났는가 하는 점 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성과가 그것이다. 이러한 실증적 경제사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17~19세기 조선 후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긴 역사적 전개과정을 놓고 어떤 측면에서든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재평가/재해석해 보고자 한 것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주체적 동기라 할 수 있다.(p22)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는 한국경제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경제사책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수탈의 시대로 알고 있는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이를 통해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 사관에 입각해 쓰여진 경제사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바라보고 있는 근대화란 무엇일까.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시장경제제도의 성립과 발전>의 내용을 들여다 보자. 


  1840년대 프랑스 앙뜨완 다블뤼(Antoine Daveluy)주교에 의하면 19세기 조선 사회는 양반 지배계급에 의한 지독한 폭정 아래 놓여있었다. 양반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평민들을 마음대로 구금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였다. 다블뤼 주교의 기록에는 다소간의 과장도 있어 보이지만, 유사한 내용의 관찰은 이후 조선왕조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서양인들의 기록에서도 쉽게 발견된다.(p193)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서양인들이 남긴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 조선왕조 시대에는 근대적인 재산제도가 성림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왕조의 경제는 19세기 내내 침체하고 하강했던 것으로, 즉 산림의 황폐, 미곡생산성의 하락, 물가의 상승과 노동자 실질임금의 감소, 그리고 농촌시장의 분열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심각한 경제 침체의 결과로 일제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패망하고 말았다.(p194)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이영훈에 의하면 19세기 조선은 세도정치 하에서 지배계급의 수탈, 자원과 생산성의 부족 등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배층인 조선왕조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하강의 주요 원인은 심한 수탈로 인한 사유 재산의 부재였다고 진단을 내린다. 사유재산에 대한 인식부족은 자본축적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근대화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겨우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식민지 근대화론'의 골자다.


 경제를 이처럼 장기적으로 침체시킨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설명이 가능하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를 꼽으라면 근대적인 '재산제도'의 결여가 아닐까 한다.(p194)... 경제 성장 요인은 생산과 혁신을 위해 자본을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효율적인 제도(institutions)와 기구(organizations)의 존재이다. 이러한 제도와 기구를 통틀어 여기서는 '시장경제제도'라고 부르기로 한다. 식민지기에 개시된 근대적 경제성장은 그 전제조건으로서 그에 합당한 시장경제제도의 정비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p195)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조선의 경제는 19세기에 걸친 장기의 침체를 경과한 뒤 20세기 전반 일제하의 식민지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한 전환이 있게 된 데는 근대적인 사유재산제도의 확립을 중핵(中核)으로 하는 시장경제제도의 성립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였다.(p216)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그렇다면,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타당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독립운동사 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그 중 일부의 내용만 간략히 다뤄보자.

 

 먼저 경제발전(經濟發展)에 대해 생각해보자. 경제발전이 단순히 전년 대비 몇 %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는가를 뜻한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통계수치에 의해 조선 시대보다 일제하에서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근대화가 경제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일제 식민지 기간을 통해 여러 문제점이 생겨났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깊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면 우리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고려를 했을 때에도 우리는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수량화 문제는 최근 GDP(國內總生産, Gross domestic product)가 가지는 한계(비시장상품 측정 불가, 소득 분배 상황 미반영 등)나 원자력 발전의 발전 단가 산정 시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논란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러한 비용-편익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지불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조선말 시기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시작된 세도정권 시기에는 봉건 지배계층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절정을 이루었다. 농민 수탈의 내용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등 소위 삼정문란으로 집약되었다.(p51)...  세도정권의 횡포 앞에 방치된 농민들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과 통로를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세도정권의 손발이 된 부패한 아전을 포함한 지방관에 대한 대한 합법적 고발의 길이 막혀 있었다.(p56) <고쳐 쓴 한국 근대사> 中


 <고쳐 쓴 한국 근대사>에서 바라본 19세기 상황은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팩트(fact)지만, 지금부터 조금 달라진다.


 지배층의 부패와 수탈에 대해 일부 민중은 비밀결사로 저항을 기도했다.1684년에 발생한 검계(劍契), 살주계(殺主契) 사건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범죄들이 이 시기에 와서 크게 증가한 것은 기존의 사회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함께 집권층의 반동화가 동시에 심해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같은 각종 범죄는 점점 빈번히 발생하고 또 극렬화해서, 크게는 농민전쟁으로 작게는 민란으로 발전했다.(p58)... 임술민란 후부터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무려 40여건의 크고작은 민란이 계속되었다. 안동김씨 세도정권 말기에 우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민란이 30년 후의 갑오농민전쟁으로 연결되까지 농민들의 끊임없는 투쟁이 계속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봉준(全琫準, 1854~ 1895) 과 같은 몰락양반층을 중심으로 한 지도세력이 비로소 형성되어갔다.(p65) <고쳐 쓴 한국 근대사> 中


 <고쳐 쓴 한국 근대사>의 저자 강만길 교수는 조선 시대 세도 정치의 폐단을 바로잡는 움직임이 민중으로부터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홍경래의 난(洪景來의 亂, 1811 ~ 1812)부터 우리가 동학 농민 운동으로 알고 있는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 1894)까지 이어져왔음을 지적한다. 


[사진] 녹두장군 전봉준의 압송사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688417493019697683/)


 정리하면, <고쳐 쓴 한국 근대사>에서는 조선 말에 지배층의 문제를 아래에서부터 고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는 일본의 무력개입으로 좌절되었던 것으로 식민지를 겪지 않아도 근대화를 이룰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논증한다. 그리고, 이 경우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측면에서 일제를 겪지 않았을 때의 비용이 겪은 후보다 더 저렴하다는 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주의 역사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일본 역사학은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와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하는데, 이에 대한 특성과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사료편찬계의 사업이 확정된 것은 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즘실증주의 일본 역사학의 성격이 시게노 야스쓰구, 구메 구니타케 등의 실증주의를 이어받아 국정의 추이를 중심에 두는 편년체식 정치사/외교사를 명확한 기본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사료편찬계(뒷날 사료편찬소)를 중심으로 한 일본사 연구 체제 확립의 의미를 조금 더 다각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고대와 중세, 특히 중세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사료의 독점 체제가 성립된 점이다. 둘째, 사회, 경제, 문화 등 정치 과정에 직접 관련이 없는여러 측면에 대한 연구가 불리하고 곤란해지거나 일차적으로는 중시되지않는 경향을 낳은 점이다. 셋째로 사료 고증과 고문서 연구가 역사학의 근간에 자리함으로써 역사가가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의 주체성과 사상성을 통해 역사인식과 씨름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는 풍조를 낳았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p56)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中


 동경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실중주의 역사관이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위의 글을 읽는다면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에서 보여지는 뉴라이트 사관의 개략적인 모습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사실에 근거한 실증주의 사관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통계자료와 객관적 근거를 중시하는 실증사관은 수리 모형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경제학의 모습과도 통하는 바가 있는데, 이에 대해 피게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 했다. 사실 그 방법들은 수학적 모형의 과도한 이용에 의존하는데, 이런 모형들은 흔히 자기 영역을 지키고 내용의 공허함을 가리는데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통제된 실험에 바탕을 둔 실증적 방법에 대한 열의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들 자체가 이따금 어떤 과학적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학자들은 예컨대 문제 자체는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순수하고 참된 인과관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보낼 수 있다.(694) <21세기 자본> 中


 한편,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제자본에 대한 과세,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한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 통제하려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p617)<21세기 자본> 中


 그리고, 이 속에서 우리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 한 팀(국가, 자본, 종교, 과학)이 깨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피게티에 따르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는 권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과 국가 연합간의 대립이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은 복수의 나라의 기업가, 노동자, 소비자가 연결되어 만들어 낸 커뮤니티다. 문자 그대로 다국적 네트워크는 본래의 국가라는 개념이나 단위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현상이다. 그리고 복수의 나라의 자본이나 노동을 결합하는 커뮤니티인 이상, 다국적 기업이 추구하는 것은 본래와 같은 특정 국가의 '국익'과는 다른 것이다. 전통적인 국가라는 틀 속에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와 가은 글로벌한 존재는 비국가 행위자들(nonstate actors)로 한 국가의 거버넌스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각 국가라는 구조와 법률 체계만으로 완전히 규제하기는 불가능하다.(p107) <역사가가 보는 현대 세계> 中


 그런 관점에서 최근(2019년 7월)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는 상당히 흥미롭다(?). 일본 강제징용피해 배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만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인 삼성과 SK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규제는, '국가'의 '글로벌 기업'에 대한 도발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피게티 모형과 비슷해 보인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피게티의 글로벌 기업이 글로벌 금융 자본을 의미하는 반면, 삼성전자/SK 하이닉스는 산업 자본이고, '민주주의 국가 연합'이 '정치 후진국 1개국'이라는 부분은 다소 차이나지만.(다시 생각해보니, 삼성그룹에서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이 지배구조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삼성을 금융자본으로 구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도 같다.)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금융자본을 잡기 위해서는 국가들이 연합해서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1개국에 의해 이루어진 이번 봉쇄는 비록 대상이 산업자본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경제봉쇄령이 효과가 없을 것과 복잡하게 얽힌 국제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에 타격을 입은 자본의 복수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뻔한 결론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삼성과 SK 하이닉스를 일개 한국기업으로 생각하는 일본 정치인의 인식 수준은 20세기에 머물러있다 판단된다. 그런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는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싫어져 본의 아니게(?)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이 자신의 생산 활동을 글로벌 경제 내 특정한 거시지역 내에서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에서 통합 과정은 일본과 보다 최근에는 한국의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주로 추동되고 있다... 삼성은 ASEAN에서 광범위한 거시지역적 생산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왔다. 삼성코닝(말레이시아)은 말레이시아에서 컬러 브라운관 생산을 위해 중요한 요소인 튜브 유리를 삼성전관의 공장에 제공한다. 삼성코닝은 또한 삼성전자(태국)와 인도네시아(컬러텔레비전), 말레이시아(컴퓨터 모니터), 베트남(컬러텔레비전) 등의 계열사에 중간제품과 조립품을 판매한다.(p284)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中


 페이퍼가 다소 길어졌는데, 여기서 내용을 정리해 보자. 식민지 근대화론은 외세에 의한 조선의 문제 해결이 당연한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발전을 이루었다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경제외적 측면에서 시대를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는가를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글로벌 대자본(산업자본)에 대한 의미없는 봉쇄이며, 이제는 일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탈피해야겠지만, 이제는 글로벌 대자본이 된 재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이번 기회에 점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 사관의 지향점을 잘 표현한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의 결론을 소개하며 길었던 페이퍼를 마치고자 한다. 


 종합해 보면, 결론적으로 한국경제의 국제화 전략의 기본은 '새 모델'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데 주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美, 日, 中 3국과의 국제적 분업관계를 어떻게 하면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느냐하는 문제로 귀착된다.(p545)... 결론적으로 오늘의 한국경제가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내부의 구조조정이나 거시정책적 수단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대외분업적 측면에서 경제의 '국제화 전략'을 올바로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대국적 견지에서 경제의 글로벌化를 가로막는 反시장주의적이면서도 시대역행적인 편협한 민족주의 이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라고 함을 여기에 강조해두고자 한다.(p547)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PS, 어쩌면, 이 결론은 우리보다 현재 일본에 더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뉴라이트 역사가들에게는 식민지 시절 근대화에 대한 답례를 할 기회가 주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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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7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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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7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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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겨울호랑이 >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투키티데스(천병희 譯)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얼마 전 읽은 「파이데이아」와 연관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리뷰를 올려봅니다. 3년 전 글인 것을 보니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관련 책을 읽었군요. 그런 면에서 독서의 계적적 요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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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0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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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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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빌헬름 딜타이 지음, 손승남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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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유명한 대화편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서 아이들은 읽기를 배워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 또한 노래하듯이 시를 암송하는 음유시를 다룰 때 속도와 음색이 아동의 영혼에 익숙하도록 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문법수업이 전개되었다. 이미 초등교사에게서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과 멋진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문자 혹은 문법 학교에서 기술적인 문법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시인들이 해석되었다. 언어와 화술의 기술적 관점들이 발전하면서 그의 과제 또한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빼어난 오성의 소유자로 만들었던 수업의 총체다.(p97)

그리스 교육의 근원을 돠돌아볼 때 그것이 개별 인간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체 정신에 기원을 둔 그리스적 정신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p104)... 파이데이아는 민족성의 내면에서 탄생된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감각적 현상에서의 내면적인 것과 시각적 영상 속에서의 사고, 신체적 운동 속에서의 의지 행위, 언행과 몸짓에서 영혼의 과정을 소유하는 것 등이다.(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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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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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1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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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과제는 희랍의 인간교육(paideia)을 희랍 고유의 특질과 역사 전개 가운데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 교육은 추상적 이념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체험된 운명의 구체적 현실 가운데 발견되는 희랍역사 자체다... 희랍인은 최고 의지를 표현하는 개념을 그들 발전의 초기 단계엔 갖지 못했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고 길을 걸어가면서 희랍인은 자신과 자신의 삶이 지향하는 목표를 점차 뚜렷이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더욱 훌륭한 인간의 조형이었다. 희랍인에게 교육사상은 모든 인간적 분투를 대표하며, 교육은 인간 공동체와 개인의 궁극적 존립 정당성이었다.(p20) <파이데이아 1> 中 


 베르너 예거(Werner Jaeger, 1888 ~ 1961)는 <파이데이아 1 Paideia: The Ideals of Greek Culture Volume 1>에서 고대 희랍의 문학, 철학, 정치 등의 작품에 담긴 교육의 대상과 내용을 분석하면서, 희랍 교육 사상안에 희랍 정신의 정수(精髓)가 담겨있다고 결론내린다.


[그림] Paideia(출처 : https://hellenicfaith.com/paideia/)


 희랍 교육사상은, 민족과 국가가 정신적으로 조형된 삶 속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며 그 힘으로 타 민족과 타 국가를 빨아들이는 가장 숭고한 힘의 총체가 되었다. 인간교육의 이념 말고 희랍세계에서 아테네가 보여준 정치적 권력의지를 정당화해줄 근거는 달리 없을 것인데, 특히 아테네의 외적 좌절 이후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인간교육의 이념에서 아티카 정신은 영원한 존속이라는 위안을 얻었다.(p588) <파이데이아 1> 中


 고대 희랍에서 교육(敎育)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예거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귀족계층은 흥망(興亡)을 거듭하며, 때로는 권력을 내주기도 하지만 빠른 시간내에 권력을 획득하면서 중심에 있었으며 이러한 귀족정신을 대표하는 덕목이 '탁월함(arete)'이라 해석한다. 


 귀족층은 민족교육의 정신적 원천이다.... 교육은 다만 점차 정신영역으로 옮겨간 민족적 귀족이념이다.(p39)... 지배와 탁월함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다. '탁월함(arete)'의 어원은 뛰어남과 월등함의 최상급인 '제일 뛰어남'이며, 복수형으로 늘 귀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p41)... 귀족교육은 각자가 평생 바라볼 이상(理想)에 대한 의무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의무감을 '염치(aidos)'라고 하는데 이는 언제든지 귀족에게 촉구될 수 있는 것이며, 그 훼손은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분노(nemesis)'를 다른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다.(p43) <파이데이아 1> 中


 예거는 호메로스(Homeros, ? ~ ? )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가 이러한 귀족정신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되는 <일리아스>와 트로이아를 파괴한 후 많이도 떠돌았던 오뒤세우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뒷세이아> 안에서 우리는 탁월한 귀족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일리아스>는 탁월함의 고대적 영웅정신이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던 세대를 배경으로 하며, 탁월함의 이상을 모든 영웅에게서 실현한다. <일리아스>는 노래로 전승된 신화 속 옛 영웅들의 모습에서, 무엇보다 이미 분명한 도시국가 생활을 익힌 헥토르와 트로이아의 모습에 담긴바 당대의 생생한 귀족전통을 통합하여 영원한 이상형을 제시했다.(p59) <파이데이아 1> 中


 <오뒷세이아>는 우리에게 옛 귀족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자료다. 물론 그것은 <오뒷세이아>가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이오니아 지방의 귀족문화겠지만, 이를 우리의 연구대상인 전형적 귀족문화로 간주할 수 있다.(p60) <파이데이아 1> 中


  호메로스가 귀족문화의 전형을 제시했다면, 헤시오도스(Hesiodos, BC 7세기 ?)는 민중의 삶을 노래하면서 영웅이 아닌 일반인의 삶을 노래한다. 헤시오도스가 <일들과 날들> <신들의 계보>를 통해 신화를 민중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이제 시민계급이 새로운 교육의 주체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이제까지 의식적 교육에서 배재되었던 민중계급은 헤시오도스 서사시에서 정신적 자기 형성을 완수한다. 이때 민중은 상류 사회의 문화가 그들에게 제공한 이점들, 특히 궁정문학의 정신적 형식들을 활용하고, 민중 삶의 근원에서 그들 고유의 내용과 정신을 길어 올린다.(p136) <파이데이아 1> 中

 

 <일들과 날들>의 근본사상, 정의와 노동의 관계가 바로 연결 고리였다. 평화로운 노동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에리스만이, 대지에 질투와 갈등이 만연하는 것을 저지할 유일한 신성이다. 노동은 인간에게 힘겨운 강제이며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시인 헤시오도스는 세계 질서의 영원한 법칙 가운데 근거 짓고, 사상가 헤시오도스는 이를 신화의 종교적 표상 가운데 깨닫는다. 호메로스 사유는 신화전승을 이런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이르지 못했고, 반면 헤시오도스는 그의 다른 위대한 저작 <신들의 계보>에서 이를 최초로 시도한다.(p123) ... <신들의 계보>의 '인과적' 사유형식을 헤시오도스는 <일들과 날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통해 노동의 실천적/윤리적/사회적 문제에 적용한다.(p125) <파이데이아 1> 中


 이후 아테네의 솔론(Solon, BC 640 ? ~ BC 560 ?)은 입법자에게 한층 더 높은 수준의 도덕 기준을 요구하며, 이른바 '솔론의 개혁'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테네 민주주의는 한층 발전하지만, 통치 계급에 더 높은 수준의 '탁월함'을 요구하는 다른 기준은 후대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를 통해 '철인(哲人)' 지배를 주장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계와 끝이라는 개념은 솔론과 동시대인들이 중요시했던 문제, 내면적 성찰을 통한 새로운 생활규범의 획득과 분명한 연관성을 가진다... 한계는 딱 잘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대중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법률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법을 만든 입법자에게는 어디에도 없는 좀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된다. 그에게 이런 기준을 찾게 만든 아주 특별한 것을 솔론은 "판단"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늘 올바른 통찰과 확교한 실천 의지를 나타내는 "앎"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솔론이 가진 내면 세계의 통일성을 파악해야 하는 지점이다.(p246) <파이데이아 1> 中


 후대의 모든 교육이 고민했던 큰 사회 문제는 개인주의의 극복이고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라는 기준에 따른 인간교육이었다. 이런 문제의 실질적 해결방안으로 엄격한 규율의 스파르타 국가가 유력해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플라톤의 사유는 스파르타 국가에 평생 매달렸다.(p149) <파이데이아 1> 中


 

도시국가는 각 형태마다 거기에 맞는 특별한 인간유형을 길러냈다는 플라톤의 말은 옳다.(p185)... 우리는 이오니아에서 시작되어 옛 희랍 귀족문화가 '보편적 인간교육'의 이념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새로운 도시국가의 의미를 검토해야 한다.(p187)... 플라톤은 <법률>에서 모든 참된 교육 혹은 인간교육을, 상인과 장사꾼과 뱃사람 등 직업인의 특수 지식과 구별하여 "참된 교육은 법률의 토대 위에 통치하고 통치받을 줄 아는 완벽한 시민이 되려고 열망하는 인간을 그가 갖추어야 할 탁월함으로 이끄는 것이다."고 정의했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초기 도시국가의 정신에 충실하게 '보편교육'의 근원적 의미를 천명했다.(p191) <파이데이아 1> 中


 고대 희랍에서 교육의 대상이 이처럼 귀족계층에서 시민 계급으로 확대되었다면, 교육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예거는 이를 아이스퀼로스(Aischylos, BC 525 ~ BC 456),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7 ~ BC 406),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 ~ BC 406)의 비극을 통해 페리클레스 50년의 황금기 동안 고대 희랍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 인간은 신들의 주사위 게임의 말에 불과한 존재에 불과하다. 아이스퀼로스 작품 안에서 인간은 신에게 탄원하는 존재라면,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인간은 비로소 주체로서 생명을 부여받았다. 

 

 삼부작 형식은 아이스퀼로스 문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삼부작 형식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운명이기 때문인바 이때 운명의 담지자가 개인일 필연선은 없고 개인이 속한 가문 전체일 수도 있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에서 인간은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고 운명의 담지자일 뿐이었고 문제는 운명이었다.... 극 전개의 주인공은 인간들이 아니라 초인간적인 신들이다. 신성은 권력의 정점에 서서 인간들의 싸움을 굽어보고 있고, 만물은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p383) <파이데이아 1> 中


 소포클레스의 인물에는 억지스러운 궤변이나 인위적 과대과장이 없다. 소포클레스의 기념비적 성과는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 비율에서 나타난다. 소포클레스의 인물을 아이스퀼로스의 인물처럼 불쑥 땅에서 쏟아난 땅딱막한 진흙형상의 인물과 달랐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모든 인물을 필연성에서 태어난다. 전형이라는 공허한 보현성에서도 아니며, 개별 인물의 일회적 특수성에서도 아니며, 오로지 비본질적인 것을 배척하는 실체 자체에서 태어난다.(p407)...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은 미적 감각에서 탄생했는데, 그 출발점은 이제까지 전례가 없던 '영혼 부여'였다. 이로써 탁월함의 새로운 이상이 출현했고 이때 처음으로 '영혼'을 의식적으로 모든 인간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다.(p415) <파이데이아 1> 中


 예거에 따르면 소포클레스 작품에 보이는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지식교사(소피스트 sophist)라 불리는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은 새롭게 조명되고, '만물의 척도'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짙게 영향을 끼친다.


 철학이 인간에 관심을 두고 점점 더 가까이 관심 대상에 다가갔다는 사실은 지식교사의 출현이 역사의 필연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다. 물론 지식교사들이 충족시킨 요구란 학문적/이론적 요구가 아닌 철저히 실제적 요구였다.(p436)... 지식교사들은 교육요소가 아주 강하게 드러나는 여러 종류의 잠언투 운문문학을 새롭게 산문화했고 이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의식적으로 형식에서나 사상에서 운문문학과 경쟁했다.(p437)... 지식교사들의 공적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놀라운 형식교육 기술의 독창성에 있다. 그들의 약점은 그들 교육의 내적 실질을 채워줄 정신적/윤리적 실체의 결함에서 유래한다.(p484) <파이데이아 1> 中 

 

소포클레스는 시대의 가파른 정점을 걷고 있었고, 에우리피데스는 시대가 파괴할 교육비극의 계시자로 활동했다. 시대는 그의 정신사적 위치를 규정했고, 그의 문학을 오로지 시대적 표현으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구속성을 그에게 부여했다.(p486)... 에우리피데스의 인물들이 숨 쉬는 정신적 환경의 대기는 섬세하고 건조했다. 아이스퀼로스의 강력한 생명력에 비추어 다만 약점이었던 예민한 정신성은 이제, 새로운 주관적 공감 능력을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끝없는 대화를 요구하는 비극의 정신적 매체가 되었다.(p506)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에서 예거는 지식교사들의 교육이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며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은 정치교육'이라는 사상은 결국 사유(思惟)를 극한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한계점을 노출하게 된다. 여기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들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를 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진실로 '보편적인 것'은 프로타고라스가 보기에 오로지 정치교육 뿐이었다. 프로타고라스는 그의 '보편'인간교육이라는 개념 이해를 통해 희랍교육 역사의 발전 전체를 요약했을 뿐이다. 도덕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진정한 인간교육의 토대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순수 미학적 유형의 인문주의가 추가되고 혹은 이것이 기존 인문주의를 대체한다.(p443) <파이데이아 1> 中


 매우 강력한 요구와 함께 등장한 교육이념은 그만큼 더 철학과 종교의 단단한 토대를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플라톤 철학이 새로운 형태를 부여한 호메로스에서 비극에 이르는 옛 희랍교육의 종교적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지식교사들의 교육이념을 극복하면서 지식교사들 이전으로 회귀한다. 지식교사들에서 결정적인 것은 의식적 교육사상 자체다. 교육사상은 희랍의 모든 문학창작과 모든 사유 노동이 인간형상의 규범적 특징을 찾으려 애쓴 지속적 노력의 표현이다.(p446) <파이데이아 1> 中


 탐구의 활동은 "오로지 교육을 위해"이며 교육이 필연적인 한에서일 뿐이다. 이 표어는 페리클레스 교육을 상징하는데, 페리클레스 교육은 철저하게 실용적이고 정치적이었다. 토대는 희랍의 패권을 지향하던 아테네 제국이었다.(p469).... 번성하는 학문의 엄격한 제한적 향유를 지시하는 이 문구는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귀족 칼리클레스가 벌인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p468) <파이데이아 1> 中


 이번에는 역사학을 살펴보자.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4 ~ BC 425)는 <역사>를 통해 페르시아 전쟁을 두 세계의 격돌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했다면, 투퀴티데스(Tuchididdes, BC 465 ~ BC 400)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전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헤로도토스의 작품이 전쟁의 원인을 형이상학적인 것에서 찾는다면, 투퀴티데스는 인간 내부에서 이를 찾아냈다. 이는 그리스 비극에서  아이스퀼로스가 신의 뜻을 강조한 반면, 소포클레스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강조한 것을 연상시킨다.


 헤로도토스는 헤카타이오스처럼 민족학과 지역학의 통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중점은 인간들에게 두었다... 그의 내적 통일성은 상고기적 화려한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이에 희랍인들과 크로이소스왕이 이끄는 이웃 뤼디아인들 사이에 벌어진 확인가능한 최초 격돌로부터 페르시아 전쟁까지의 동양과 서양의 대결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중심이 되었다.(p552) <파이데이아 1> 中


  투퀴디데스는 정치사의 창시자다. 창조과정에서 아테네가 보여준 정치적 사유와 의지의 놀라운 집중은 투퀴디데스의 작품에서 합당한 정신적 표현을 발견했다.(p553)... 아테네 국가의 비극을 기록한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아테네 권력의 몰락을 오로지 내적 와해의 결과로 보았다. 이 순간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을 펠로폰네소스 정쟁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여기서 관심은, 점차 표면으로 드러나고 더욱더 급격하게 진행된 사회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위대한 역사가의 진단이다.... 투퀴디데스는 현행 가치 전체의 파탄을 말한다. 이는 심지어 언어에서 완전한 어의변화로 감지된다. 고래로 최고 가치를 표현하던 단어들은 추락하여 일상언어에서 사고와 행동의 경멸적 지시에 사용되었고 이제까지 비난을 표현하던 언어들은 출세하여 칭송의 수식어로 상승했다.(p489)... 대체로 경제발전 흐름과 패권정치 흐름에 집중되어 그려진 과거사 영상은 동시대의 희랍인들에 대한 투퀴티데스의 입장을 반영한다.(p558)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 >에서는 이처럼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polis)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정체(政體)를 고민했으며,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정체의 모습을 공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와 대상이 귀족에서 일반 시민으로 확대되었고, 교육의 내용이 신(또는 자연)에서 인간으로 변화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교육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국가정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국가정체는 희랍에서 오늘날 우리가 국헌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국가정체가 규정하는 한에서 도시국가의 삶 전체를 포함한다. 비록 시민의 모든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스파르타 방식대로는 아니지만 아테네의 국가정체에서 국가의 영향은 보편정신으로서 모든 인간적 생활영역에 깊이 침투했다... 페리클레스가 그린 아테네 국가정체의 모습은 경제, 윤리, 문화, 교육 등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총체적 내용을 포함한다.(p587) <파이데이아 1> 中


 <파이데이아 1>은 고대 희랍의 교육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주요 문학, 철학, 역사서를 다루기에 결코 내용이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이들을 하나의 실로 꿰어 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PS. 그리스 비극을 다루었으니, 그리스 희극은 부록으로 옮긴다. 투퀴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에게는 <헬레니카>를 추천한다. 

 

 희극도 비극의 영향으로 비로소 '주인공'이란 것을 도입했고, 서정시적 형식요소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의 영향이다. 발전의 절정에서 희극은 비극으로부터 마침내 최종적 도야를 위한 영감을 획득했는바 비극의 교육적 소명을 받아들였다. 이는 희극 본질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생각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은 예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동시대 비극과 대등한 창조물이라는 지위를 굳혔다.(p524).. 비극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심호한 문제를 가지고 인간 내면으로 침잠했다. 반면 희극은 대중을 숨쉬는 공기로 삼아 대중을 통해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국가 미래와 정신 운명의 긴밀한 결합을 강조하고 대중 전체에 대한 창조적 정신의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희극은 그 교육적 소명의 정점에 도달한다.(p549) <파이데이아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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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7-25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교육 문제의 원류가 희랍에 있었군요. ㅠㅠ

겨울호랑이 2019-07-25 22:30   좋아요 1 | URL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이 악용된 사례가 반드시 희랍에만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만,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자라난 제도이니만큼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5 22:32   좋아요 1 | URL
개인 행복이 아닌 항상 체제를 위한 교육이라는 말씀에 오뉴월 더위가 무척 섬뜩해 집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9-07-25 22:36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찰리 채플린가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담아냈듯 부속품화된 개인을 양산하는 체제가 그들이 지향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중장보병전술인 팔랑크스도 밀집대형으로 전체로서 싸우는 형태라는 사실도 떠오릅니다. 결국, 고대 희랍 사회는 거대한 파시즘 사회의 전형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5 22:40   좋아요 1 | URL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게 정말 바람직한지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5 22:53   좋아요 1 | URL
네, 사회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잘 심어주는 것이 바른 교육인지, 아니면 아이가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도록 주관을 심어주는 것이 가야할 길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는 북다이제스터님과 저만이 아닌 모든 부모들의 고민일 것입니다...